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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송- “우리의 소원은 통일” 독일강연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6월15일 08시24분    조회:7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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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6.15 공동 선언’발표 9년째가 되는 해이다. 남북의 두 정상이 굳게 손잡고 화해와 협력을 다짐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최근 남북은 오히려 2000년 이전의 대결 시대로 되돌아가는 악화의 길로 역행하고 있는 것 같다.

6.15 공동 선언은 분단 이후 남북 당국이 이루어 놓은 획기적인 성과이다. 비록 해외에 살고 있지만 남북관계의 조속한 복원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기원으로 잊혀져 가는 6.15 공동 선언을 회생하는데 작은 기여를 하고자, 독일 라인 강변에서는 해외 동포들이 살고 있는 현장과 그에 입각한 조국 통일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유럽 동포들과 교환하기 위하여, 얼마 전 서울과 중국, 일본에서 젊은 학자와 활동가들이 모여 국제 세미나를 가졌다.

이에 기자는 독일 세미나에 흑룡강신문 논설위원 자격으로 그 번 회의에 참석한 김범송 박사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김 박사는 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이며, 근년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지에서도 매우 각광 받고 있는 중국동포 신세대 유망 학자이다. 또한 본지 칼럼리스트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

   
▲ 독일 강연회 단체사진(2009. 6)

기자 : 금번 독일에 가게 된 계기는?

= 금년 3월 6.15 유럽공동위(6.15 공동선언실천 유럽지역위원회) 박소은 위원장으로부터 5월 30일부터 6월 1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해외동포와 민족통일>이란 심포지엄 행사의 주제발표자로 참석해달라는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금번 심포지엄은 6.15공동성언 9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6.15 유럽공동위의 주최 하에 강연회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시아(한··일) 초청학자 3명의 연사(演士) 중, 제가 중국 흑룡강신문 논설위원 자격으로 초청을 받게 된 것입니다.

기자 : 독일에서의 행사 일정은?

= 5월 28일부터 6월 4일까지의 7박8일 독일 방문일정중, 라인 강변의 유명한 포도주 산지 뤼데스하임에서의 2박3일 강연회 행사가 금번 독일 방문행사 중의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습니다. 행사의 두 번째 날 5월 31일 오후 2시에 제가 “중국동포와 한(조선)반도와의 상생관계”란 주제로 발제를 하였습니다. 6월 1일 행사가 끝난 후 저는 중국에서부터 서울, 독일까지 줄곧 동행해준 김원희(흑룡강신문사 독일지사장)선생의 차로 독일의 주요 역사유적과 세계적 문화유산들을 견학했습니다.

기자 : 독일 심포지엄(강연회)에 대한 소감은?

   
▲ 독일 강연회 발제 장면{2009. 5.31)
금번 독일 심포지엄(강연회)은 좀 느긋한 분위기 속에서 참가자 전원이 발표주제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고, 강연회 전후로 전문가의 소개와 설명을 동반한 포도주 시음과 라인강변 도보 산책 및 와인파티를 곁들여서 여유롭게 진행되었다는 점이 인상이 깊습니다. 이는 한국의 학술회의가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내용의 일정을 단숨에 소화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특히 한성대 김귀옥 교수가 “세계화와 열린민족주의”란 주제로 발제를 한 후, 현지의 독일동포들이 흥분된 어조로 ‘민족주의’에 대한 찬반양론과 열띤 토론을 벌이던 장면이 비교적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자 : 독일동포들에 대한 총체적 인상은?

= 독일동포들이 굉장히 소박하고 겸손하며 관용적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고, 중국동포인 제가 같은 해외동포로서의 동질감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강연회 진행 중 와인파티와 (강연회)마무리에서 두 번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참가자 전원이 다 같이 손잡고 합창하는 장면을 보면서, 해외동포를 비롯한 7천700만 한민족의 화해와 민족통일을 갈망하는 진솔한 염원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강연회 마무리(합창)에서 통일을 소망하며 열심히 부르는 독일동포어르신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저도모르게 눈시울이 젖어들었고, 작금의 경색된 남북관계와 ‘요원해지는 통일’을 생각하니 더욱 만감이 교차되었습니다.

현재 독일에는 1960~70년대 독일로 이주한 광부와 간호사 주축의 1세대를 중심으로, 약 5만명의 한인(수 백명 중국동포를 포함)들이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 박소은 선생님과 함께(독일에서)

기자 : 통일독일과 독일인에 대한 인상은?

= 1990년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동서독일이 통일되어 20년, 동서간의 이념과 사회제도 및 경제발전의 차이가 극복되면서 통일독일은 세계 3위의 국내총생산(GDP)과 유럽에서 가장 많은 8천2백여만 인구를 가진, 현재 EU의 중심국가로 발전되었습니다.

한편 법과 사회제도 및 일상규칙 준수를 최우선시하는 독일인들의 질서정연한 모습에서 선진국의 사회문화를 절감했으며, 독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을 보면서 저출산·고령화가 사회적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는 독일사회의 문제점을 체감했습니다. 또한 독일인의 느긋한 성격과 ‘느끼한’ 중국요리를 즐겨먹는 음식문화에서 독일인 중 비만환자가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기자 : 독일 역사유적지 견학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 독일 와인-시음
= 중국에 유명한 만리장성이 있다면, 독일에는 역사유적지로 수많은 성(城) 건축물들이 있습니다. 그중 일부는 세계적인 문화유산 및 관광지로, 이를 관광하기 위해 불원천리하고 해내외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제가 견학한 대표적인 두 성은 중부의 하이델베르크성과 남부의 ‘백조의 성’입니다.

13세기에 건축된 하이델베르크성에는 세계 최대의 포도주 술통이 있었고, 전쟁으로 인해 성의 일부가 ‘폐허’가 된 것을 그대로 방치해둔 것이 특징적이었습니다. 반면 남부의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백조의 성’은 1886년 바이에른 왕국의 마지막 왕 루드비히 2세가 자신의 향락을 위해 직접 설계하고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후세에 희귀한 문화유산과 관광지를 남긴 루드비히 2세는 성이 완공되기 전에 ‘의문의 시체’로 연못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외, 남부도시 뮨헨 근처에 있는 유명한 집단학살·강제수용소(1942~1945년)를 견학했는데 히틀러와 나치의 극악무도한 ‘파쇼적 민족주의’를 실감했으며, 왜서 독일동포들이 민족주의에 대해 ‘부정적 입장’과 더불어 그토록 흥분했는지에 대해서도 다소 납득이 되었습니다. 현재 강제수용소는 독일인들이 역사를 반성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추모단지’로, 후세들의 교육현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기자 : 독일에서 ‘가장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행사나 방문지는?

= 독일에 도착한 이튿날(5월 29일), 저와 김원희 선생은 서독의 수도였던 본(BOON)의 한국대사관(분관)에 임시로 설치된 故 노무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우리는 당지 영사관 직원의 배동 하에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빌었으며, 생전에 ‘서민대통령’으로서 대북 포용정책을 펼치고 재한중국동포들을 몸소 찾아주셨던 고인의 은덕을 기렸습니다. 그리고 저와 金 선생은 대사관 (분향소)방문록에 첫 외국인 조문객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5월 29일, 독일에서의 첫 방문지가 바로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 부퍼탈에 있는 엥겔스(Engels Friedrich, 1820~1895) 생가(生家) 박물관이었습니다. 엥겔스가 태어난 생가에는 현재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고, 세 번째 생가가 박물관으로 만들어져 국내외의 방문객들에게 개방되고 있습니다. 19세기 독일의 경제학자·철학자·정치가였던 엥겔스는 칼 맑스를 협력해 과학적 사회주의 및 사적 유물론을 창시한 위인이며, 1848년 2월 맑스와 공동으로 “공산당선언”을 발표한 분입니다. 또한 그가 친구인 맑스의 정신적·물질적 활동을 경제적으로 후원한 ‘푸른 잎’의 귀감으로서, 더욱 후세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저의 사견입니다.

그 외, 독일 남부도시 휘션의 부근에 위치한 알프스산맥을 향해 가는 도중에 김원희 선생이 지금 이웃나라 ‘오스트리아 땅’을 달리고 있다고 해서 경이로움을 느낀 적이 있으며, 동시에 EU의 유럽일체화를 더욱 실감했습니다.

기자 : 독일에서 도움을 준 고마운 분이 있다면?

   
▲ 라인 강반에서
두 분이 있는데, 한분은 금번 독일에 저를 초청해주시고 현지에서 많은 관심과 배려를 해주신 6.15 유럽공동위 박소은 위원장입니다. 사실 서울주재 독일대사관의 비자(허가)신청이 매우 까다로웠는데, 박소은 선생님이 초청장과 함께 직접 대사관에 메일을 보내주시면서 여러모로 도와주신 덕분에 겨우 비자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강연회가 끝나고 귀국할 때는 모처럼 댁에 청해주셨고, (프랑크푸르트)독일동포의 집에 초대하여 진수성찬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다른 한분은 지난 5월 연변에서 진행된 저의 책 출간기념회에 불원천리하고 참석해주었고, 중국과 한국 및 독일에서의 제반 일정을 배동해주면서 기사와 가이드의 ‘일인이역’을 해준 독일 국적의 김원희 선생입니다. 졸링본에 있는 金 선생의 댁에서 2일간 신세를 졌는데 빵을 ‘먹지 못하는’ 저를 배려하여 아침에 친히 중국요리를 만들어주었고, 여행 중에는 본(BOON)의 한국식품점에 직접 가서 라면과 김치를 박스로 구입해 여행 중에 아침식사가 가능하도록 자상한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기자 : 독일에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동서양의 음식문화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독일의 주식(主食)은 빵과 감자(스프) 및 소시지이었는데 빵을 잘 ‘못 먹는’ 저로서는 자연히 라면과 김치가 생각났고, 관광이동 중에는 중식과 한식점을 찾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독일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金 선생이 현지의 지리에 밝았고, 독일 전역에 중(한)식 음식점들이 적지 않아서 그나마 ‘먹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차적응이 또 다른 문제였는데, 처음 며칠간은 시차로 좀 고생했습니다. 독일과 한국은 6시간 시차가 있는데, 현지시간 오후 6~7시면 졸음이 몰려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겨우 참았습니다. 다만 독일의 맥주와 와인은 매우 맛있었는데 금방 적응이 되었습니다. 특히 독일에는 중국이나 한국처럼 ‘권하는 음주문화’가 없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서울과 프랑크푸르트를 다녀오려면 20여 시간(왕복)을 항공기에서 보내야 하는데, 그것도 저에게는 꽤 힘들었던 여정(旅程)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금번 인터뷰 기회를 주신 동북아신문 이동렬 국장님께 진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립니다.

2009년 6월 11일 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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