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이윤기 해외한민족연구소'한우물파기'20년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5월21일 08시04분    조회:871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동포연구 ‘한우물 파기’ 올해로 20년 맞았다”
해외한민족연구소 이윤기 소장, 다음달 1일 연구소 창립 20주년 기념식 개최

동포문제가 주목받지 못하던 1989년부터 중국과 CIS지역 동포들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쳐온 해외한민족연구소(소장 이윤기·사진)가 다음달 1일로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이 연구소는 매년 봄이면 조선족과 고려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하고 가을이면 전통 민속절 행사를 지원해왔다.

또 항일독립운동 유적을 연구하고 연변에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복원하는 등 민족정신 회복에도 애써왔다.
한민족 이주사, 고구려와 발해, 근대독립운동사 등을 주제로 각종 연구서를 발표해 오면서 매년 2회에 걸쳐 국내외 저명한 학자들을 초빙해 강연회도 열어 왔다.

그러면서 20년의 성상을 보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모두 이윤기 소장의 힘으로 이뤄온 일이다. 이러한 연구소의 20년에 걸친 발걸음은 나라 안에서보다 해외의 동포들한테 더 인정받고 있다.

이윤기 소장은 연구소 20년의 성상을 기념하기 위해 다음달 1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국내외 해외한민족연구소 회원과 동포관계자 400여명을 모아 조촐한 기념행사를 열 예정이다.

해외한민족연구소는 세종문화회관 근방 당주동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 11일 연구소를 찾아가 이윤기 소장을 만났다.

“지난 20년간의 일을 얘기하려면 엄청 길어요.”

이렇게 말하는 이 소장은 그동안 동포사업에는 아낌없었지만 자기 일을 생색내는데는 무척 인색한 편이었다. 얼마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관계자가 이 소장을 찾아왔을 때도 그는 ‘어떻게 우리 연구소를 알고 왔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제가 동포문제에 눈을 뜬 건 1980년대 국회 외무위원으로 활동하면서예요. 당시 한국정부가 동포를 보는 눈은 ‘짐스럽고 도와줘야 하는 존재’였죠.”

그는 한국의 무관심한 태도에 자극받아 소외된 지역 동포들에게 오히려 애정을 쏟기 시작한다. 이 소장에게는 동포들이 ‘짐’이 아니라 ‘한민족’이었다.

동포 이주사 연구부터 조선족 3, 4세를 위한 학습 기자재 지원과 민족명절 개최까지 그의 활동 영역은 다양하다.

특히 항일독립운동의 양대 요람이었던 연해주 신한촌과 연변의 명동촌에는 해외한민족연구소의 발자국이 깊게 남아있다.

연구소 주도로 1994년 명동촌에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복원되고 1999년 신한촌에 기념탑이 세워진 것.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위치한 명동촌은 1890년대 후반 김약연 선생을 비롯한 민족선각자들이 개척한 마을이에요. 당시 ‘간도 대통령’으로 불렸던 김약연 선생은 윤동주 시인의 외삼촌이기도 하죠.”

윤 시인의 생가는 현재 연변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옛 함경도식 한옥이다.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신한촌은 1937년 강제이주 당한 고려인 동포들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는 곳이다. 이 소장은 러시아정부와 현지 총영사관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기념탑 건립을 추진한다. 기념탑에 쓸 돌도 한국에서 직접 배로 운반했다.

“꼭 10년 전이군요. 블라디보스톡까지 돌을 힘들게 운반했더니 러시아 정부가 ‘핵 폐기물이 아니냐’고 꼬투리를 잡았습니다. 하마터면 모스크바에 있는 핵폐기물 조사실까지 갈 뻔 했죠.”

기념관 건립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음을 짐작케 하는 말이다.

“고려인 동포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기념탑을 세운 겁니다.”

이 소장의 고생이 헛되지 않아서인지, 신한촌 기념탑은 고려인 동포들이 매년 3·1절과 광복절을 기념하는 중요한 장소로 자리 잡았다.

“우리 한민족연구소의 발걸음들이 한반도, 연변, 연해주를 잇는 한민족 공동체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길 희망해요.”

지난 20년의 노력은 이를 위한 것이었을까?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동북지방이 우리의 미래와 연관돼 있다”는 이 소장의 말이 새삼 새로움을 더한다.  
이윤기 소장은 1932년 경북 성주군 출신으로 1955년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미국 와이오밍대학교대학원에서 석사, 한양대학교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81년 11대 국회의원으로 민한당 정책연구실 실장을 지냈다. 이 소장의 주요 논문과 저서로는 <한국 정당의 뿌리>, <잊혀진 땅 간도와 연해주> 등이 있다. 

재외동포신문 [174호] 2009년 05월 15일 
최선미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아침에 일어나면 수술환자가먼저 떠오릅니다놀라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또는 설레일 때 누구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심장속의 마음이 뛰고있기때문에 느껴지는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희로애락과 함께 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기관을 지키기 위해 25년간 한시도 쉬지 않으면서 심혈관외과 전문의로서의 역할을 ...
  • 2008-07-25
  • 《인류령혼의 공정사》로서 교원의 넋은 언제나 학생들을 위한  한길로 향하고있다.  길림성 룡정시룡정중학교의 리정남교원은 농촌교육봉사 지원의 일환으로 지난학기부터 지신진 명동련합학교에 파견되여 1년간 산골학교에서 사업하게 되였다. 명동련합학교에 몸을 담은지 얼마 안되여 그는 교수설비가 비교적 ...
  • 2008-07-22
  •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연변촬영가협회의 직원으로부터 부비서장,부주석,주석을 거쳐 길림성촬영가협회 부주석직을 련임한 촬영가 남룡해씨가 연해지구인 청도시에 진출한후 우리 민족을 위한 사업에 적극 투신하여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룩하고있다.지난 주일에 휴가차로 청도에 잠간 다녀온 기자는 남룡해씨와 대화...
  • 2008-07-20
  • 중국의 소수민족 춤들을 정통한 조선족무용가 장미나(28세)씨, 그는 올해 한국류학 5년만에 성균관대에서 무용박사학위를 받음으로써 무용실력에 리론까지 겸비한, 중국에서 도합 9명밖에 안되는 무용박사중의 한사람으로 되였다. 일찍 1988년 연변조선족아동예술단 가입을 시작으로 이듬해 북경인민대회당 공연, 구쏘련에서...
  • 2008-07-13
  • 농민육종가 리수철씨가 20여년간 육성한‘룡도7호',‘중국 1등쌀’로 자리매김 조선족 농민육종가 리수철(44세)가 다년간 실험전을 꾸려 육성해낸 ‘룡도7호’ 입쌀이 전국입쌀평의에서 1등 쌀로 선정됐다. 리수철씨는 80년대 중반부터 벼육종에 전념했다. “벼육종에 큰 흥취를 갖게 된것은...
  • 2008-07-11
  • 일 막을 내린 제2회 대구국제 뮤지컬페스티벌(DIMF) 폐막작 '버터플라이즈'를 본 관객들은 뮤지컬 공연에는 이례적인 '오케스트라'를 보며 즐거워했다.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는 늘 함께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음반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 뮤지컬 작품으로는 처음 한국에 진출한 '버터플라이즈'는 오케스트...
  • 2008-07-11
  • 문학예술인으로의 변신을 실현하기까지 -연변가무단 부단장 박춘선에 대한 이야기박춘선이라는 본명보다는 주룡이라는 필명으로 더 알려진 문학예술인, 《사랑의 푸른 하늘》 등 인기가요의 가사를 써서 소문을 놓은 우수한 작사자   현재 연변가무단 업무부단장의 중임을 떠메고 실무지도,공연조직,창작평론 등으로 팽이...
  • 2008-07-09
  • 어린이들의 심령에 동심을 심어온 45년—조선족 동요동시에 한획을 그은 김득만 시인     동요동시 다산작가로 불리우는 김득만씨라 하게 되면 아마 연변은 물론 중국내 조선족 소년아독자들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것이다. 하기야 김득만 시인은 45년이라는 기나긴 창작생애에서 또 23년간이나 연변...
  • 2008-07-06
  • 모든이들의 아낌없는 로고로“장백의 진달래”를 창조해냈다—“장백의 진달래”의 기획 창작 련습에 얽힌 이야기6월 28일, 2008년 중국북방관광교역회 및 중국연변조선족민속문화관광박람회개막식에 이어 펼쳐진 대형집단무용 “장백의 진달래”, 그 하나하나의 화려한 장면들은 우리...
  • 2008-07-04
  • 2002년 목단강시리과장원, 2003년 목단강시문과장원, 2004년 흑룡강성문과장원에 이어 해림시조선족중학교는 또 경사가 났다. 올해 대학입시에서 고중 3학년 2반의 남홍옥학생이 659점으로 목단강시문과장원을 따낸것이다.  홍옥이는 자신의 성공비결중 하나로 자립을 꼽았다. 초중 2학년때부터 부모님들이 한국나들이...
  • 2008-07-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