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종주변호사-수고비? 피 값을 어떻게 받습니까!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5월8일 23시28분    조회:1016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수고비? 피 값을 어떻게 받습니까!
이주노동자 인권변호사 김종주

천민자본주의에서 가장 큰 죄는 무전유죄(無錢有罪)다. 반대급부로 가장 큰 혜택은 유전무죄(有錢無罪)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가 아니라 전(錢)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법 정신은 허위이며 법치(法治)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국가는 허구이다. 법은 곧 권력과 돈에 의해 다스려지는 하부 단위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국민은 다 안다.  

법률전문가? 이들에겐 있는 죄를 없게 하고 없는 죄를 있게 하는 매우 희한한 재주가 있다. 때론 작은 싸움을 부추겨서 큰 싸움판으로 만들기도 하고 싸움이 커지면 적당히 조정하는 흥행사의 능력도 발휘한다.  

이러한 권한은 국가가 부여했으니 합법적이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괜찮은 직업을 꼽아보라면 '법률가'를 선뜻 꼽을 생각이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식 잃은 재중동포 노인의 딱한 사연 

김해성(48·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 대표) 목사가 운영하는 '중국동포의집' 쉼터에 작달막한 재중동포 노인이 거처하고 있었는데 사연이 참 딱했다.

 전영남(81·중국 길림성) 할아버지의 아들(당시 34세)이 2003년 8월 김포의 한 공장 숙소에서 가스폭발 사고를 당했는데, 사고 당시 근로계약이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산재처리가 되지 않았다. 아들은 2500만 원의 화상치료비를 남기고 끝내 숨졌는데 악덕사업주는 이미 재산을 빼돌린 상태였다. 김 목사의 도움으로 치료비와 장례는 어렵게나마 해결됐지만 보상 문제는 막막했다. 

이 문제 또한 김종주(37) 변호사가 맡았다. 올해로 5년째 이주노동자 무료법률 상담 및 지원을 하고 있는 그의 헌신적인 노력과 호소에 재판부도 감동하면서 조정이 성사, 마침내 배상금 2600만 원 가량을 받아내면서 5년이란 긴 세월을 잡아먹은 사건이 일단락됐다. 사건을 매듭짓는 과정에서 김 목사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애초 다른 변호사가 맡았던 사건을 김 변호사가 맡아주었습니다. 김 변호사가 2년 넘도록 수고를 다했는데 그 헌신에 판사도 감동을 했는지 사업주 사위로 하여금 돈을 내놓도록 했습니다. 너무 수고하셔서 얼마라도 받으라고 했더니 '그 돈이 어떤 돈인줄 아는데, 그 피 값을 어떻게 받습니까!'라며 정중히 사양하는데 가슴이 참 먹먹했습니다." 

지난해 7월 김 변호사로부터 보상금을 전달 받은 전씨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그로부터 석 달 뒤인 10월 숨을 거둔 전씨 할아버지, 그가 두 눈을 감고 편안히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지키기 위해 애쓴 한 법률전문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김해성 목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사법연수원(34기) 시절이던 2004년이었다. 연수원 실무교육 차원에서 구로구 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으로 출근했는데 그곳은 자본주의 모순이 집결된 곳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밀려드는 산재, 임금체불, 폭력, 이혼 등을 보면서 초보 법률가는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을 돕는 법률전문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실무교육이 끝났지만 그는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한 번 시작한 일은 책임지고 매듭짓는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신앙적 양심이 한몫을 했다. 가난한 자와 약자를 업신여기는 '개독교인'이 아닌 예수의 십자가를 믿는 개신교인으로 이주노동자에게 가한 비정한 코리아의 죗값을 대신 짊어지며 살아가고 있다.  

  
김해성 목사(왼쪽 끝)가 입회한 가운데 김종주(가운데) 변호사가 보상금을 전달하려고 하자 전영남 할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조호진
변호사

이주노동자의 '무전유죄' 없는 세상을 향해 

 

그 또한 운동권 학생이 되었다. 89년 전교조 교사 대량해직 사태를 목격한 그는 91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 군대 가기 전인 3학년 1학기까지는 공부보다는 이념서클(목화회, PD계열)에 열중했다. 덕분에 학점은 1~2점대(4.0 만점), 복학한 뒤 '열공'으로 올 A학점을 받으면서 평균 3점 넘게 끌어올렸다.  

그의 인생 계획에 변호사는 없었다. 대학을 졸업한 98년엔 IMF가 닥치면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기 위해 취직을 시도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마침 사법고시를 공부하는 친구를 보면서 '자유로운 인간과 평등한 세상'을 향한 열망과 사회적 약자를 돕고 싶은 의지를 품고 사법고시에 도전했는데 자본론을 공부할 때처럼 머리에 쏙쏙 들어왔고 헤겔의 이론과 비슷해서 재미있었다. 99년 고시공부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2002년 11월 사법고시(44회)에 덜컥 합격했다.  

그 또한 전라도 사내이다. 고향 전북 김제 부안면 동진강변 마을 어귀에 사법고시 합격이란 플래카드가 붙었다. 돼지도 잡고 막걸리 통도 푸는 등 동네잔치를 한 것은 당연지사다. 정규 교육을 받은 적 없는 억척 농사꾼 아버지(81)는 막내아들의 사법고시 합격에 울음을 참지 못하셨다. 학생운동 때문에 애를 먹인 7남매의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고된 인생 막바지에 춤추게 한 것이다.  

마을 어귀에서 점방을 하며 막내아들을 대학까지 가르친 어머니(77)는 2006년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당시 의료진은 '많이 사시면 1년 6개월 정도일 것 같다'고 예상했지만 빗나갔다. 모친은 3년째 강한 의지로 암투병중이며 막내아들은 어머니를 한 달에 한 번 서울 큰병원(강남삼성병원)에 모시고 간다. 어머님이 편찮으신 것을 감안해 '가사도우미를 두시라'고 권했더니 '시골에서 웬 가정부냐'고 펄쩍 뛰셨고, 평생 대접을 받았던 아버지가 밥을 지어드리는 등 간호에 지성이다. 

그 또한 10년 연애 끝에 동향인 전주 처녀와 결혼해서 세 딸(7세, 5세, 3세)을 두었는데 여간 예쁘지 않다. 그의 귀가시간은 거의 오후 7시 이내인데 그것은 화사한 꽃들의 유혹 때문이다. 그는 법률 시장의 각종 협잡과 헛수작 따위와 손잡아야 큰돈 쥔다는 유혹은 쉽게 뿌리치지만 아내를 포함, 네 명의 예쁜 꽃들의 유혹에 견디지 못한다.

 

그에게 '고향 전라도는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살아서는 부안이라는 '생거부안'(生居扶安)이란 말처럼 고향 부안은 산, 바다, 강, 들녘이 참 아름답습니다. 어릴 적 갯벌에서 미끄럼 타며 놀다가 조개를 줍기도 했는데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비록 서초동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저의 속성은 촌놈인 것 같습니다, 전라도 촌놈! 약자(이주노동자)를 돕는 힘은 전라도의 생명력, 끈기, 저항, 근성 끝내는, 촌놈의 힘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고향 동진강물처럼 자유와 평등이 출렁이는 푸른 세상이다. 그는 전관예우 따위의 유전무죄(有錢無罪)를 만들어 낼 재주도 없고, 고액 사건을 수두룩하게 유치할 사기발도 폭탄주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정직과 진정성을 무기로 변론한다. 다만 이주노동자들이 무전유죄(無錢有罪)로 피눈물을 쏟는 것은 두고 볼 수 없기에 발 벗고 나설 뿐이다.   

  
이주노동자에게 법률상담을 해주고 있는 김종주 변호사. 김 변호사는 매주 일요일 '한국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무료법률 상담을 5년째 해오고 있다.
ⓒ 조호진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장백현 장백진 록강거리에 가면 식당업으로 알차게 살림을 꾸려가는 한 조선족녀성이 있으니 그녀가 바로 금강산식당 주인(45) 조금춘녀성이다. 1990년 조금춘녀성은 27세의 꽃나이에 십이도구촌에서 교원사업을 하는 김영호씨와 결혼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두 딸을 아기자기 키우면서 알뜰살뜰 화목하게 살아왔다. 하지...
  • 2008-04-17
  • 연길인사복무유한회사 명인영업부를 운영하고있는 리영빈﹙43살﹚씨는 돈을 벌줄도 알고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돈을 쓸줄도 아는 따뜻한 사람이다.태여나서부터 어려운 생활을 해보지 못한 쌍둥이를 키우는 리영빈씨는 얼마전 쌍둥이를 데리고 화룡시에 있는 “사랑의 집”에 찾아가 부모곁을 떠나 살...
  • 2008-04-17
  •   화룡시 팔가자진 룡산촌의 리옥순 부부는 다각경영으로   해마다 순수입 15만원 올리고있습니다.   지난 2002년부터 리옥순 부부는 가공소를 경영하는 한편  밭 20여헥타르를 도급맡아 다루었습니다. 치부하려면 기계화농사에 의거해야 하고 가공소도 현대화기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일념으...
  • 2008-04-16
  • 훈춘시제1실험소학교 김화련(37세)은 길림성 우수교원입니다. 그는 1992년에 연변제1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불타는 열정과 꿈을 안고 애들의 “코기러기”로 되였습니다. 17년간의 교육생애에서 김화련교원은 모성애로 학생들의 종신발전을 위해 기반을 닦아왔습니다.        ...
  • 2008-04-14
  • 2008년 북경올림픽에 선정된 우리 민족의 유일한 “꼬마기자” 리려영은 대련시조선족중학교 재교생입니다.리려영은 지금 올림픽을 계기로 집중훈련 중인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미 초급단계의 수련과정은 마친 상태로 23일부터 고급단계 수련과정에 들어갑니다.초급단계 주요내용은 신문에 대한 리론지식과 취재기...
  • 2008-04-11
  • “동포청 참정권은 앞으로 제가 맡겠습니다.” 재외동포출신으로 18대 국회에 입성하게 된 조원진 당선자는 동포정책 관련한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어서 대한민국 밖에서 거주하는 국민들에게 차별이 없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필요한 심부름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 2008-04-11
  • —안도현 만보진 영부촌 악문화녀성 1977년, 악문화(50세, 조선족)녀성은 안도현 만보진 영부촌에 시집갔다. 당시 시아버지는 일찍 세상뜨고 시어머니가 1남 1녀를 데리고 몇무 안되는 경작지에 매달려 생활하다보니 집은 째지게 가난해 서발장대 휘둘러도 거칠것이 없는 극빈호였다. 설상가상으로 결혼 2년만에 아이가...
  • 2008-04-11
  • 연변과기대 IT교육원 구병국 교수, "IT교육으로 조선족 청년 자립지원"봉사활동 계기 중국행 결심현지기업에 취업 연결 보람평범한 고등학교 교사에서 유명 서버 프로그램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의 변신 그리고 다시 중국 길림성 연변 과기대 IT 교육원의 교수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독특한 이력의 구병국씨는 조선...
  • 2008-04-11
  • 국제무역청사 1층에 가면 1평방메터 남짓한 시계수리방이 있는데 이곳에서 매일 손님들에게 고장난 시계를 열심히 수리해주고있는 장인이 있다. 21살에 시계수리를 배워서부터 장장 38년 동안 시계수리를 해온 류신유﹙59살﹚씨이다. 그는 어린 시절 성장발육이 멈추면서 키가 제대로 크지 못해 장애인으로 취...
  • 2008-04-10
  • ㅡ《인민법원보》 유성일사적 소개  “백성원장”의 칭호는 정부측에서 준것이 아니고 자기절로 봉한것도 아니며 길림성의 2700만 백성들이 무기명투표방식으로 선거해 이룬것이다. 이 사람이 바로 2007년 “감동길림”10대인물의 한 사람으로 평의된 연길시인민법원 원장 유성일이다.지난 2월 2...
  • 2008-04-0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