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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현 - 연변TV방송국 분장사의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4월16일 16시02분    조회:7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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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예술을 꽃피워가는 사람

분장예술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생소하게 생각할것이고어떤 사람은 알쏭달쏭하게 여길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미용원에서 하는 화장이나 무대화장을 떠올릴수도 있겠지만 분장은 미용원에서 하는 일반 화장보다 한차원이 더 높은 예술이다. 분장예술은 배우들을 극중인물의 성격과 모습에 맞게 분장하는 미술로서 얼굴과 몸매, 옷차림새 따위로 그 효과를 나타내기때문에 일반 화장보다 한단계 더 높은 기술이 필요한것이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분장실에는 이런 높은 기술을 요구하는 분장예술에 몸을 담고 청춘을 불태워가는 40대의 사나이가 있는데 그가 바로 주광현분장사이다. 주광현은 무대미술, 조각, 서예 등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재간둥이일뿐만아니라 재능있는 영화배우이기도 하다.                                          

분장실이 없는 분장사

2001년 7월 7일, 주광현의 마음은 몹시 무거웠다. 이날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의 저명한 사회자 최영원이 《사랑으로 가는 길》생방송프로에 10만원을 기부하기 위해 생방송현장에 찾아왔는데 그를 화장해줄 장소가 마땅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때까지도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는 분장실이 따로 없어서 아나운서나 사화자, 특집프로에 초대된 배우나 귀빈들의 화장은 모두 미술도구창고에서 해주었던것이다. 그런데 성망이 높은 최영원사회자를 또 어지러운 미술도구창고에서 화장을 해주자니 몹시 난처했다. 4년전인 1997년 연변텔레비죤방송국창립 20돐기념행사때 최영원을 화장해준적이 있는 주광현은 이번에도 4년전과 조금도 변함이 없는 곳에서 최영원을 화장해주면서 얼굴이 뜨거워났다. 최영원이 “이처럼 간고한 환경에서도 조선족예술인들은 전국적으로 최고의 정품예술을 창작해내고있으니 정말 대단합니다”라고 탄복하면서 주광현이 해준 화장을 몹시 마음에 들어했지만 주광현은 루추한 곳에서 최영원을 분장해준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은 조선족을 대표하는 전파매체인데 분장실 하나 갖추지 못하여 최영원 같은 명인들을 지저분한 미술도구창고에서 화장해줘야 하다니? 이는 우리 민족의 얼굴이 깎이는 일이다. 앞으로도 최영원같은 수많은 명인들이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을 방문하거나 프로에 동참할것은 불보듯 뻔한 일인데 그냥 분장실이 없어서 루추한 미술도구창고를 사용해야 된단 말인가. 또 연변텔레비죤예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분장실은 꼭 필요한것이다.)

주광현은 지도부를 찾아가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으면서 분장실을 내올것을 제기했다. 지도부에서는 경제형편이 어려웠지만 주광현이 제기한 분장실문제에 대해 중시를 돌리고 분장실을 내오기로 결정했다.

이리하여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력사에서 처음 자체의 분장실이 있게 되였다. 주광현은 개인이 거둔 성과보다도 분장실을 내온것을 가장 큰 자호감으로 여기고있다.

분장예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1963년 9월,연길에서 출생하여 줄곧 연길에서 자란 주광현은 1980년부터 1983년까지 연변주공예미술공사에서 조각예술사업에 종사했다. 나무, 돌, 금속따위를 깎거나 새겨서 립체형상을 만드는 조각은 산을 깎아서 거대한 물체를 만들기도 하고 바늘구멍안에 미형의 립체형상을 새겨넣기도 하기때문에 비범한 재주와 섬세한 기술을 요구하는 마법과 같은 예술이다. 주광현은 비록 달인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가 조각한 작품은 살아서 숨쉬는듯했다.

1983년부터 1986년 7월까지 연변방송예술단에 들어가 서기원사업에 종사한 주광현은 사업여가에 원래부터 취미를 가지고있던 무대미술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다가 1986년 8월부터 텔레비죤방송국의 무대미술사업에 종사했다. 무대미술은 무대장치와 의상에만 한정하는것이 통례이며 무대효과를 예상하여 설계하지만 조명에 의한 색채변화까지도 고려하여 무대의 정경과 분위기를 꾸미거나 살려야 하기때문에 일반 미술과는 다른 감각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다시 말해서 무대를 일정 공간으로 하여 무대에 존재하는 대상물 즉 넓은 의미의 무대장치전반에 주는 미적표현을 보여주는것인데 여기에는 무대장치, 무대의상, 무대조명, 무대화장, 소도구 더 나아가서 배우의 자세, 군상의 구성까지도 세심하게 살펴야 하기때문에 미술을 바탕으로 하는 종합지식이 필요되는것이다.

주광현은 처음에는 텔레비죤프로의 무대미술을 맡아하다가 1987년에 텔레비죤극 《우리 선생님》의 미술담당을 하면서부터 《갈꽃》, 《외로운 넋》, 《별찌》, 《황혼빛갈》 등 텔레비죤련속극의 미술담당을 맡아했다. 주광현은 여러편의 련속극 미술담당을 맡아하면서 연변에 분장예술이 공백이라는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무대미술을 맡아할 때도 사회자나 가수, 소품배우들이 미용원에 가서 화장을 하고 출연하는것을 보고 자체의 분장사가 있어야 하겠는다는것을 느꼈지만 이때처럼 절실하게 느껴본적은 없었다. 매편의 련속극을 찍을 때마다 분장사가 없다보니 배우들은 여러곳에 널려있는 미용원을 찾아다니면서 화장을 하느라고 촬영시간에 늦게 도착하거나 촬영현장으로 오는동안 화장이 일부 지워져서 다시 미용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페단이 늘 발생하군 했다. 이런 정경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그는 (중앙이나 다른 성, 시의 텔레비죤방송국에는 모두 분장사가 따로 있는데 연변에는 아직 분장예술이 공백이구나. 텔레비죤련속극까지 촬영제작하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 분장사가 없어서야 될 말인가?)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분장을 배워서 분장예술이란 이 공백을 메우기로 마음먹었다.

분장예술에 혼신을 불태우며

1989년에 김희자와 결혼하여 아들까지 보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있던 주광현은 1994년부터 사랑하는 가족들과 잠시 떨어져서 장춘영화촬영소, 북경영화촬영소 등 전문업체에 가서 배우분장, 특수분장을 배우기 시작했다. 원래 미술기초가 있고 또 꾸준히 배운덕에 주광현은 사회자분장은 물론 련속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분장까지 재치있게 할수 있는 분장사로 되였다.

분장사란 배우를 등장인물의 특성에 맞게 꾸며주는 일을 맡아하는 사람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방송, 연극, 영화, 가극, 광고 등 작품의 내용과 인물의 성격에 따라 직업, 지위, 년령, 기질 등에 맞게 배우를 분장시키는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직업을 말한다.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하는 미용원의 화장사와 혼동하거나 혼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격한 의미에서는 구분이 된다. 분장사는 제작팀과 함께 현장을 지키며 시시각각으로 분장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배우의 성격과 극의 내용이 일치할수 있도록 표정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써야 하는 등 성실함과 꼼꼼함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처음에는 숙련된 분장사를 보조하면서 기술을 전수받는 형태를 취하다가 3~5년이 걸려야 독립적으로 분장사업무를 수행할수 있지만 주광현은 1년이란 단기학습을 마치고서 직접 텔레비죤련속극 《초연속의 수리개》의 분장을 맡아하게 되였다. 1995년에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는 장춘영화촬영소와 합작하여 텔레비죤련속극 《초연속의 수리개》를 찍기 시작했는데 자금문제로 장춘영화촬영소에서 철회하는 바람에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는 자체로 촬영하게 되면서 주광현이 독립적으로 분장사업무를 맡아하게 되였다.

이 련속극은 전쟁장면이 많아서 분장사의 업무량이 많고 난이도가 높았다. 하지만 주광현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등장인물들의 특성에 맞게 화상흉터, 칼자국, 파편자국, 피자국 등 부상을 입은 장병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비록 피로했지만 촬영이 순조롭게 끝나고 련속극장면이 화면에 나타날 때마다 더없는 보람을 느끼군 했다. 그후 주광현은 《야명주》, 《녀자는 무엇입니까》, 《하얀꽃》 등 텔레비죤련속극의 분장을 맡아하면서 분장예술에 정력을 몰부었으며 그 재능을 충분히 과시했다.

어느 한번 주광현은 이름난 연극배우 “떼떼” 리동훈에게 부상당한 극중인물의 분장을 해주었는데 리동훈은 분장을 지우지 않고 집에 돌아가서 누구한테 얻어맞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가족들은 피자국과 멍이 진 얼굴을 보고 정말로 심하게 맞았는가 해서 리동훈을 병원에 호송하려고까지 했다.

또 어느 한번은 맹장수술자리가 보기 흉하다고 그 자리에 문신을 한 처녀가 미용원에 갔다가 소문을 듣고 주광현을 찾아왔다. 그 처녀는 딱한 사정이 있어서 잠시 문신을 가리우려고 하는데 본래의 살가죽처럼 해달라고 애원했다. 주광현은 하도 간절하게 청하는지라 거절할수 없어서 알심들여 분장을 해주었데 수술자리인지 문신자리인지 알아볼수 없게 본래의 피부모습대로 재현되여서 처녀는 무사하게 고비를 넘기게 되였다. 그리고 또 한번은 출국을 하겠는데 자신의 얼굴을 늙어보이게 분장해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주광현은 안된다고 딱 잘라서 거절했지만.

분장사이면서도 영화배우인 주광현

주광현의 분장솜씨는 날로 늘어나서 영화감독의 초청을 받아 영화분장까지 맡아하게 되였다. 영화는 텔레비죤련속극보다 한차원이 더 높은 종합예술이기때문에 분장사에 대한 요구 또한 더 높았다. 주광현은 기회를 소중히 여기면서 열심히 잘해보려고 마음먹었다.

그가 처음 분장을 맡아한 영화는 《망종》이였다. 그런데 영화촬영현장에 간 그는 깜짝 놀랐다. 감독은 그더러 분장을 맡아하면서 영화의 남주인공역까지 맡아하라는것이였다. 연기경험이 하나도 없는 그더러 보조역도 아니고 주인공역을 맡아하라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주광현은 용감하게 주인공역에 도전해나섰다. 그는 비록 연기경험은 없었지만 수많은 련속극의 분장을 맡아하면서 배우들의 연기를 현장에서 지켜보았기때문에 파악이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김공정사역을 맡은 그는 조선족김치장사 최순희역을 맡은 류연희와 호흡이 잘 맞아 성공적으로 영화촬영을 마무리지었는데 이 영화는 제32회 시애틀국제영화제,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등 20여개 국제상을 받았다. 또 《망종》은 2007년 9월 23일에 한국 KBS의 추석특집으로 방송되기도 했다.

주광현은 영화 《망종》외에 영화 《중경》에서도 분장사 겸 제2호인물인 류학생역을 맡았다. 주광현은 연기에도 분장 못지 않게 정력을 쏟아부었다. 그는 진실한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옷을 몽땅 벗기까지 했다.

주광현은 또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제작한 김광호감독의 영화 《궤도》의 분장을 맡아했는데 이 영화는 두팔을 잃은 남자와 벙어리녀자가 한집에서 살며 벌어지는 이야기로서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제37회 로떼르담국제영화제 “타임 앤드 타이드”부분에 진출했다.

주광현은 분장예술에 혼신을 바치면서 특수분장에도 도전했다. 화면에 보여질 배우의 얼굴을 최대한 자연스럽고 상황에 맞게 다듬어주는 역할이 일반분장이라면 특수분장은 말그대로 배우의 특수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서 전문적인 기술을 표현하는것이다. 상황에 따라서 성형과 관련된 설정, 흉한 상처나 잘려진 신체부위 등 인위적설정으로 인해 배우의 신체훼손을 가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이때 필요한것이 특수분장이다. 주광현은 아주 간단한 특수분장을 할수는 있었지만 특수분장사에 비해 그 수준차이가 있었다. 그는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있다. 그는 보다 많은 일을 해보려는 꿈은 가지고있지만 자금난때문에 그 꿈을 마음대로 펼수 없는것이 유감이라고 말하면서 연변의 분장예술을 더욱 꽃피우기 위해서 계속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연변라지오TV신문   김희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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