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라지오음악편집 오미란에 대한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4월10일 09시44분    조회:911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청춘을 라지오음악프로와 함께

연변인민방송국 라지오위성방송의 음악프로 《오미란의 우리 가락 노래가락》을 통해 청취자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항상 지기가 되여주는 오미란이다. 30대중반의 젊은 나이에 비해 훨씬 성숙된 프로를 만들어 자체로 진행하고 또 절로 작곡한 노래들을 부드럽게 부르면서 광범한 노래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그녀는 정녕 라지오음악프로를 위한 사업에 청춘의 빛과 열을 다 바치고있다.            

   음악인으로 성장하기까지

1973년,오씨가문의 1남3녀중 막내로 태여난 오미란은 노래를 잘 부르는 엄마(유치원 교양원)와 가야금이며 손풍금,피리 등 여러가지 악기를 다루기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려서부터 음악에 남다른 흥취가 있었고 노래도 꽤나 잘 불렀다.

룡정시신안소학교 중창대에서 활약한적있는 그는 묘령세멘트공장으로 전근한 아버지를 따라 묘령에 전학해가서는 음악교원인 리강춘선생님의 지도아래 독창실력을 키웠다. 그 보람으로 련속 3년간 왕청현의 소학생노래콩클에서 1등을 따내고 주급노래콩클에 참가하여 서향화 등 당시의 이름난 꼬마가수들과 어깨겨룸하기도 했다.
막내딸을 꼭 예술가로 키우고싶었던 부모님들은 그후 오미란이 변성기를 경과하게 되자 주말이면 연길에 가서 손풍금연주를 배우도록 했다.이렇게 1주일에 한번씩 7살이상인 큰언니의 손에 이끌려 연길로 드나들면서 장차 예술학교에 진학할 꿈을 키우게 된 오미란은 연길시제3중학교 고중2학년에서 공부할 때 대학입시에 참가,우수한 성적으로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지금의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교육학부에 입학하였다.

오매에도 그리던 배움의 전당에 발을 들여놓고보니 음악교원양성을 목표로 하는 여러가지 학과목이 그렇게 재미있을수 없었다. 이리하여 오미란은 꼬박3년간 중소학교 음악교육과 관련되는 모든 지식을 부지런히 배우면서 노래,반주,작곡 등 다방면의 실력을 갖춘 음악인으로 자라났다.

라지오음악프로를 만드는 기쁨

1994년에 졸업하고 1995년에 연변인민방송국에 입사하여 음악부에 배치받은 오미란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광범위하게 응용하면서 라지오음악프로를 만들어가는 일상이 너무너무 좋았다. 그래서 대학본과학력쟁취를 목적으로 연변대학 통신학부 조문전업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한편 선배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차근차근 배우면서 보다 훌륭한 음악프로그램을 독립적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고 짬만 있으면 프로진행이며 작곡도 해보느라 분주히 보냈다.

1997년부터 오미란은 《음악네트워크》, 《음악려행》, 《오미란의 가요세상》,《라지오가요대행진》으로 《길림성라지오문예프로그램상》 을 여러차 타고 작곡한 노래 《사나이와 한잔 술》로 전국조선말라지오텔레비죤우수원고평의에서 수상하는 등 성과를 올리였고 2002년에 중급직함을 따낸후에는 자신에 대해 부단히 높은 요구를 제기하면서  더욱 큰 진보를 이룩하기 위해 진력하였다.  

《오미란의 민요광장》 등 음악프로와 작곡작품 《장미의 밤》,《또 다른 시작》,《차라리》 등으로 해마다 전국조선말라지오텔레비죤방송작품평의를 비롯한 여러 급별의 평의에서 상을 타고 음악부의 골간편집으로 성장한 오미란은 2006년 라지오위성방송채널이 개설되자 《오미란의 우리 가락 노래가락》프로그램의 편집진행임무를 맡고 다양한 모습으로 매일 청취자들과 만나고있다.

《판소리》,《악기소개》,《통속가요》,《팔도민요소개》,《신민요》 도 환영받고있지만 《오미란의 우리 가락 노래가락》에서 제일 인기가 있는것은 그래도 매주 토요일,일요일마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전통민요교수님들을 청해서 민요를 가르치는 《오늘의 노래주머니》이다. 민요보급을 위주로 하는 《오늘의 노래주머니》에서는 1년 반째 김순희선생을 모시고 경기민요를 가르치고있는데 이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청취자들이 부쩍 늘어나고있는 추세이다. 

라지오위성방송에서 주임직을 맡고있는 김계월아나운서는 《오미란은 무슨 일이나 똑 부러지게 잘해나가는 보배둥이랍니다. 사유가 옳바르고 반응이 민첩해서  프로기획을 척척 잘해나가는건 물론 진행이나 작곡도 잘합니다. 밝고 부드러운 목청으로 노래는 또 얼마나 잘 부른다구요? 주일마다 오미란 작곡으로 되였거나 오미란이 직접 부른 노래를 요청하는 청취자들이 퍼그나 된답니다. 》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미란의 사업에서 자랑거리로 되는것은 련속 2년이나 민요가수들을 상대로 펼쳐진 전국과외가수노래콩클을 성공적으로 조직한것과 음악특집 《두만강노래에 얽힌 우리 백년》으로  2007년 세계방송인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한것이다.

사라져가는 우리 민요를 보급하기 위해 연변지역에서 구전되여오는 우리 민요를 채집,방송하던중 오미란은 우리 민족이 쪽박차고 두만강을 건너올 때 불리워졌었고 구전으로만 전해내려온 민요인 《월강곡》의 악보를 발굴하게 되였다.150년전의 이 노래가 더 잊혀지기전에 되살려 보급하고저 연변인민방송국에서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편곡과 연주,노래로 복원을 완성하였는데 이는 음악을 통해서 우리 지역의 어제와 오늘과 래일을 재증명하는 훌륭한 계기였다. 

이런 시점에서 오미란은 소실될번했던 《월강곡》을 발굴해서 두만강에 대한 우리 민족의 깊은 감정을 재현한 전후사연을 특집으로 묶어 방송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민족정서가 서려있는 두만강과 관련된 노래를 시대적배경과 음악적분석을 통해 밀도있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세계 14개국 70여개사 100여명 우리말방송사 대표들이 참가한 2007년 세계우리말방송인대회(KBS와 한국언론재단 공동주최)에서 라지오부분의 최우수상을 탔다. 따라서 오미란은 한국에 가서 KBS방송국 정영주사장으로부터 상패와 상금을 수여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였다.

확실한 《대리인》을 두고있어

오미란은 주위사람들로부터 확실한 《대리인》을 두고있는 행운아라고 인정받고있는데 그 《대리인》이 바로 7살 이상인 큰언니라고 한다.

오미란의 소개에 따르면 큰언니는 어린시절 갑자기 들이닥친 사고로 건강상황이 그닥잖은 엄마를 대신해 구석구석 챙겨주고 오미란이 묘령에서 연길로 손풍금연주를 배우러 다니던 나날에는 무거운 손풍금을 자기가 메고 녀동생의 《대반》을 서주었다.

녀동생이 하는 일이면 무조건 도와주어야 시름을 놓는다는 큰언니는 10여년전 한국에 간후부터 한국방송을 열심히 듣고 좋은 프로가 있으면 록음테프에 담아서 보내주군 했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보내온 록음테프만도 한가방은 된다고 한다.  언니의 내리사랑에 감동된 오미란씨 역시 2005년에 《이 밤을 함께 합니다》프로를 통해 언니에게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지난해에 오미란이 세계방송인대회에 참가하고저 서울행차를 떠나자 회사에 출근하는 언니는 아예  말미를 맡고 옷을 챙기는 일부터 모든것을 자기가 알아서 처리해주고 귀국할 때까지 줄곧 곁에서 지켜주었다.언니의 지극정성이 오죽했으면 주최측의 한국인들까지도 《확실한 매니저(대리인)》를 뒀다며 오미란을 부러워했을가.
음악프로 기획, 진행 및 작곡면에서 따낸 성과로 2007년에 부교수급직함을 쟁취한 오미란씨는 앞으로의 소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지난 2년 반동안 민족음악의 계승과 발전,보급을 위해서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을 모색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느라 나름대로 노력해왔는데 앞으로는 신세대청취군체를 확보하는데 력점을 두고싶어요. 20대들도 부담없이 들을수 있고 사랑할수 있는 프로그램을 창출하는 합격된 방송인으로 되기 위해  연구와 학습에도 게을리하지 않을겁니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장백산 기슭에 뿌리내린 미인송중국전역에 조선민족 문학 알리는 한 상하이지식청년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 = "불의에 물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관용을 베풀면서 살아가고 있는 진설홍 번역가가 돋보인다"라고 연변작가협회 우광훈 작가는 말하면서 "진설홍 번역가는 원작에 가...
  • 2010-03-15
  • 한 녀류작가의 희로애락  연변작가협회 창작실 주임 리혜선에 대한 이야기 련속 두기나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고있는 리혜선씨 1980년대 중반에 단편소설 《눈내리는 새벽길》을 《연변문예》에 발표한것을 계기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고 지난 25년간 부지런히 글농사를 지으면서 볼거리가 있는 작...
  • 2010-03-13
  • “선생님의 들창가 지날 때마다”, 교정은 물론 전국에  널리 울려퍼지는 노래,   40, 50대는 물론 20, 30대들도 많이 불러온 이 노래는 작곡가 동희철선생에 의해 작곡되고 《20세기 중국소년아동 10대가요 》등재되면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것이다.이미 신문에 나갔는데 또 취재를...
  • 2010-03-12
  • 최영원의 《련환화전기관》을 찾아서 ㅡ조선족이 북경에 꾸린 첫 개인박물관3월 7일, 필자는 일요일 휴식을 리용하여 CCTV의 이름난 아나운서이며 저명한 조선족 수장가인 최영원선생의 첫 공익성적인 개인박물관ㅡ《련환화전기관(连环画传奇馆)》을 찾아 떠났다. 비록 붐비는 뻐스와 지하철...
  • 2010-03-10
  • 中에 조선족 문화 알리기 한평생 “이번 中정협서 박물관 건립 제안” 유일한 조선족 정협상무위원 이승숙 씨“조선족박물관 건립을 제안합니다.” 3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 제11기 3차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전국정협)가 열리는 인민대회당 입구에서 만난 이승숙 위원(67·여...
  • 2010-03-10
  • 반금시 제2인민병원 리홍수원장   반금시 사상 첫 조선족석사연구생 도사로 2002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반금시제2인민병원 원장에 선임되며 료녕성 의학계의 주목을 끌었던 리홍수씨는 2006년에 중국의과대학 박사과정을 마쳐 반금시 위생계통의 첫 박사로 되였고 지난해에는 료녕의학원 연구생원의 석사연구생도사로 ...
  • 2010-03-09
  • 조선족금융리재의 든든한 뒤심이 되여―중국은행 민족지행 행장 남해금씨의 이야기《조선족들의 금융거래에 편리를 도모하고 상업수요를 만족시키며 민족경제발전에 저그마한 힘이라도 기여하는것이 저의 리상이였습니다. 마침내 그 리상을 실현할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여 가슴이 뿌듯합니다.》 날마다 수없이 드나드는 조선...
  • 2010-03-08
  • 조선족가요계에 떠오른 새별 ― 연변가무단전직가수 강화의 이야기 우리 민요를 불러 묵직한 상을 수차례 수상한 연변가무단 가수 강화― 어려서부터 음악에 싹수를 보이기 시작한 그는 4살때에 이미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에 접근하였고 소학교에서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되였으며 부모의 지지로 연변대학 예술학원 6년...
  • 2010-02-15
  • 비전을 향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연길시 방생진료소 소장 방산옥 박사에 대한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김해란 기자 = "그는 또 환자들을 방문, 병세를 관찰해 나갔다. 치료효과가 좋은 환자들을 보면서 난치병인 전립선 질병과 골반염증 치료에 대한 희망에 들뜬다. 아울러 전립선 임상과정에서의 전립선액의...
  • 2010-02-11
  • 의술연구와 환자진료에 최선을—연변대학부속병원 소화내과 부주임 임분옥간장, 담낭, 이선, 위장도염증과 궤양, 종양 등 질환을 주로 진단하고 치료하고 있는 연변대학부속병원 소화내과는 높은 의술과 량질봉사로 환자치료에 최선을 다해 사회상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고있다. 여기에는 소화내과 부주임 임분옥박사...
  • 2010-02-1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