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림성호가수의 예술인생을 뒤돌아본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3월30일 13시12분    조회:774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딸과 함께 부르는 사랑의 메아리

연변TV 뉴스종합채널에서 올해 정월 초하루날 저녁에 방송한 2008년 음력설야회에서 연변가무단의 저명한 남저음독창가수 림성호선생이 딸 림경진가수와 함께 부른 노래 《하고싶은 말》이 시청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쥐면 부서질가 불면 날아갈가 애지중지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의 서운한 심정, 사랑하는 님을 따라 시집을 가면서 부모님의 키운 정에 목메여하는 딸의 애잔한 심정을 여실하게 그려낸 가사내용도 그렇지만 실생활에서의 아버지와 딸이 그것도 바다건너 연변과 일본에서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그 자체가 시청자들을 감동의 도가니에 몰아넣은것이였다.
성장한 딸을 두고있는 부모라면 적어도 한두번쯤은 귀를 기울인적 있는 가요 《하고싶은 말》은  최근년에 새롭게 선을 보인 노래가 아니라 림성호선생이 20년전에 창작하고 연변TV를 통해 여러차나 방송된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 지금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있는것은 아마도 출국바람으로 실생활에서 리별의 아픔을 겪고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서일것이다.

이 노래를 창작하게 된 과정을 되돌아보며 림성호선생은 《딸자식 둘만 키운 저로서는 딸을 시집보내면서 서운해하는 부모들의 심정을 알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 마음을 담아 노래를 만들었구요.》라고 이야기한다.

친척, 친우들이 딸을 시집보내면서 서운해하는것을 볼 때마다 림성호선생은 《나도 이제 저렇겠지…》라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든지 친정부모의 애잡짤한 심정을 반영한 노래를 창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키워왔다. 그러던 1988년, 림성호선생은 딸 림경진과 함께 록음테프를 만들게 되였는데 취입할 노래를 선정하고보니 각기 부른 노래는 많지만 부녀간이 함께 부른 노래는 한수도 없었다. 《딸애와 둘이서 만드는 테프인만큼 함께 부른 노래가 꼭 있어야겠는데…》 이런 생각을 굴리던 선생은 잔치날 아버지와 딸이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노래를 창작하여 딸과 함께 부르면 인기를 끌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가사도 적어보고 음악구상도 초보적으로 해보았다. 미구에 절반농사를 마친 선생은 당시 테프의 가사주필을 맡은 연변문련 김경련주석에게 자기의 구상을 털어놓았다. 김경련주석은 림성호선생의 구상을 긍정하고나서 가사를 알심들여 수정해준외 제목도 《하고싶은 말》이라고 달아주었다.

림성호선생이 작곡하고 딸 림경진과 함께 부른 이 노래는 북경영화촬영소에 가서 록음할 때 벌써 주위의 가수와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았고 이 노래를 담은 테프는 발매된지 1개월만에 연변과 동북3성에서 몽땅 팔리였다.

연변TV 뉴스종합채널에서는 1991년 《3.8》부녀절에 이 노래를 매주일가로 방송하게 되였는데 촬영당시 현장에 모신 녀성모범들과 어머니들이 노래가사를 듣고 눈물을 흘리였고 노래가 TV를 통해 방송되자마자 주내각지에서 40∼50통의 편지가 선생한테로 날아들었다. 그후 이 노래는 요청무대에서 요청편지를 자주 받는 노래의 하나로 되여왔으며 어느곳에 가든 선생을 알아보고 《아가야》노래를 부르던 가수라며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래와 인연을 맺기까지

1937년, 한국 전라남도 순창에서 림씨가문의 여덟째로 태여난 림성호는 세살때 부모님과 함께 개척단을 따라 《눈물젖은 두만강》을 건너 안도현 량강촌에 정착하였다.

목청이 유달리 웅글져서 소학교시절부터 《양철통》이라는 악의없는 별명을 달고있은 그는 락천적이고 노래를 즐기는 아버지가 축음기를 사놓은 덕분에 어려서부터 레코드판을 돌리면서 노래와 접촉할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

안도현초중에서 바리톤, 트럼베트 등 악기를 다루고 관악대 대장으로 활약한 그는 연변1중에 진학해서도 악대대장, 학생회 문예부장 등 직을 맡고 자신의 흥취를 키워갔다. 그러던 1954년 봄, 중앙교육부에서 연변에 와서 시찰을 하게 되였는데 주에서는 문예써클활동이 잘되는 여러 중소학교에서 문예종목을 추천하여 회보공연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때 연변1중에서 추천한 종목이 남성중창과 림성호의 독창이였다.

공연을 하루 앞두고 연변가무단의 김태희단장과 정진옥, 김성민선생이 연변문화극장에 와서 공연종목을 심의하게 되였다. 림성호의 차례가 되여 《문경고개》를 부르는데 절반가량 불렀을 때 무대아래에서 한분이 《됐어요!》라고 말하는것이였다. 노래가 심의에 통과하지 못한줄로 착각한 림성호가 돌아서서 퇴장하려는데 얼굴이 동그스름한분이 올라오면서 그를 불러세웠다.

《김태희선생, 내가 연변에 와서 이렇게 좋은 〈베스(남저음)〉는 처음 만났소.》

무대아래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난 그분은 자기가 정진옥이라며 자아소개를 하는것이였다. 당시 《처녀의 노래》 등 가요를 즐겨들으면서 작곡가 정진옥의 이름을 벌써부터 알고있은 림성호는 앞으로 훌륭한 성악가가 될수 있다는 그분의 칭찬에 날듯이 기뻤다.

그후 정진옥선생을 찾아다니며 음악지식과 시창능력을 키운 림성호는 심양에 가서 레코드제작을 위한 록음에 참가할 행운을 얻었고 거기에서 방죽송선생의 계발을 받고 장차 음악대학에 가서 체계적으로 배워 훌륭한 성악가로 자라날 결심을 굳히였다.

1956년 8월에 연변가무단을 이끌고 전국음악주간에 참가하게 된 정진옥선생은 대학시험준비에 한창인 림성호를 불러다 합창대에 가입해줄것을 간곡하게 청들었다. 이리하여 림성호는 전국음악주간 및 그후의 전국순회공연에까지 참가하고 그 다음해인 1957년에야 상해음악학원에 응시, 끝내는 300여명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입학통지서를 받아안았다.

보람찬 노래인생

예술의 전당 상해음악학원에서 림성호는 당시 중국성악계의 중견이고 프랑스와 이딸리아에 류학가서 음악을 전공한 거초지교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음악지식을 열심히 배우면서 자질향상에 전념하였다. 그 보람으로 3학년부터는 선생님들과 함께 부대위문공연도 다녀오고 정강산, 로산 등지에 나가 음악창작도 하고 공연에도 참가할수 있게 되였다.

대학 5학년에서 공부할 때인 1962년에 상해음악학원 부원장이며 성악학부 학부장인 주소연교수의 추천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정대표단과 예술단을 영접하는 외사문예야회에 참가한 림성호는 조선민요 《청진포배노래》를 불러 환영을 받았고  제3차 《상해의 봄》예술절에서는 《아름다운 연변》을 불러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본과졸업생 36명중 6명만 선발하여 참가시키는 졸업음악회에서는 유일하게 재청을 받으면서 탄탄한 노래실력을 과시하여 중앙악단에 배치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당시 연변가무단 부단장이였던 정진옥선생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주당위 서기인 주덕해동지를 찾아가 연변에 꼭 수요되는 인재인 림성호가 연변가무단에 배치되게끔 해달라고 지청구를 들이댔다. 나중에 림성호는 중앙민족사무위원회, 중앙문화부의 노력으로 연변가무단에 호적을 붙이게 되였다.

연변가무단에서 정식으로 노래인생을 시작한 림성호는 1963년 8월말에 펼쳐진  제1차장춘음악주간에서 합창 《싸우라 흑인형제》중의 독창부분을 열창해 소문을 놓았다. 당시 중앙인민방송국에서는 이 노래를 특별록음했고 국제방송프로에서는 가사내용을 6가지 언어로 번역하여 방송했으며 연변에서는 또 중앙지도자들이나 중요한 외국손님을 영접할 때마다 이 합창을 무대에 올리였다.

그후의 나날에 림성호는 가극에 출연하고 독창을 부르는외 판소리, 서도민요 등 민족음악을 배우기도 하면서 조선민족의 우수한 성악가로 성장할수 있는 기반을 착실하게 닦아나갔다.

동란의 년대에 애착하는 노래도 마음껏 부르지 못하던 림성호는 1978년에 와서야 다시 특유한 남저음독창으로 무대에 나설수 있게 되였다. 이때로부터 그는 새봄을 맞는 기분으로 외국가요, 조선민요며 연변노래들을 실컷 부르면서 노래인생을 아름답게 장식해나갔다.

1979년, 연변가무단에서는 공화국창건 30돐을 맞으면서 전국문예콩클에 참가하게 되였는데 림성호는 그번 공연에서 독창 《연변인민 주총리를 그립니다》를 불러 장내를 눈물의 바다로 만들었고 《까투리타령》 등을 불러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받았다. 뒤이어 산서성 태원시에 가서 펼친30일간의 공연에서도 림성호의 독창은 거의 번마다 련속 6수까지 불러야 할 정도로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태원TV에서는 림성호가 부른 노래 7수를 곁들인 특별프로를 제작방송하기도 했다.
    
1981년에 있은 제2차장춘음악주간에서 림성호는 《볼가의 배노래》 등 노래를 불러 대성공을 거두었고 1984년 길림성예술단의 성원으로 조선방문공연에 참가했을 때는 《조선은 하나다》 등 조선가요를 불러 조선관중들의 절찬을 받았다.

1985년 11월,  20여명 중국조선족들로 무어진 예술단의 일원으로 미국방문공연을 떠난 림성호는 그번 공연을 위해 전문 창작된 노래 《반갑구나》를 부르면서 미국에 살고있는 조선족들과 한마음이 될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크게 환영을 받았다.      

연변라지오TV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 전국인대대표 최룡길에 대한 이야기 20세기 90년대초에 러시아 장사를 시작해서부터 장장15년,그사이 길신무역화사를 이끌고 수출입총액 루계 35억달러,화물통과량이 315만톤,지난해 수출입 총액 2.5억달러,나라에 바친 세금액이 3천만원...수자만 들어도 뭇사람들을 놀래우게 하는 주인공이 바로 전...
  • 2006-04-20
  • 재미동포 여고생이 로스앤젤레스 카운티가 뽑은 올해의 자원봉사자에 선정됐다. 19일 미주한인방송 라디오코리아에 따르면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내 라카나다 플린트지지 프랩스쿨 12학년인 제이미 박 양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커시드럴 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2006 자원봉사자상을 받았다. 박 양은 3년째 한인자원봉사자...
  • 2006-04-19
  • 캐나다 일간지 내셔널 포스트가 17일(현지시간) 1968년 이민한 강신봉(67)씨가 운영하는 '김치 캐나다'의 성공담을 A9면에 사진과 함께 크게 실었다. 신문은 이날 '한국으로부터의 선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인은 연 평균 20kg의 김치를 소비하며 한국은 매년 9억달러 정도의 김치를 수출한다"고 먼저 언급한 후 "캐...
  • 2006-04-19
  • 여: 중한 양국은 수교이래 다차원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룩해왔습니다. 또한 양국인민간의 친선도 이에따라 갈수록 두터워지고 있는데요, 그중에는 중한 수교전부터250여회 중국을 방문하실 정도로 중국을 좋아하신다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바로 오늘 사회만화경의 주인공인 김한규 21세기 한중교류협회 회장입니다. ...
  • 2006-04-19
  • 한국원로화가 방유자씨와의 인터뷰 47년전까지만 해도 인가 한채없이 철새만 살았다는 황페한 산골, 지금은 민속문화가 살아 숨쉬는 락원으로 개발되였고 《세시풍속의 전통마을》로 지정돼 안양문화의 전통을 자랑하고있는 그곳이 바로 한국 경기도 안양시 안양동에 자리잡은 《락원마을》의 현주소다. 지난 3월 필자는 한...
  • 2006-04-18
  • 1. 195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10돌을 맞이하여 금방 낙성된 인민대회당에서 경축행사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외국 수뇌자들을 위한 초대공연이 있었다. 이 공연에서 한 조선족처녀의 《물동이춤》, 《농악무》가 관람자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공연이 끝난 후 모택동 주석, 주은래 총리 등 당과 국가 지도자들이 배우...
  • 2006-04-18
  • [원제:‘섬나라’의 한그루 낏낏한 불로송] 제주도 ‘생각하는 정원’-분재예술원 성범영원장의 30여년 분투사와 주렁진 결실 북방의 이른 봄, 찬 기운이 매섭게 도사리고 있는 3월 30일 오전, 심양국제원예박람회 개막을 한달 앞두고 심양시정부로부터 박물원현장 점검을 부탁받은 한국 로인 한분이 시내에서 15킬로미터 상...
  • 2006-04-17
  • 미국 로스앤젤레스 후버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문 민(18, 미국명 브라이언) 군이 야구 특기생으로 서부 명문 스탠퍼드대학에 합격했다. 문군의 아버지 문상열(48)씨는 16일 "지난 주 스탠퍼드대로부터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며 "오는 6월1일 이 대학에 들어간다"고 연합뉴스에 알려왔다. 상열씨는 "스탠퍼드대 입학이 ...
  • 2006-04-17
  •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 최효성 군 니콜라이 루빈스타인 국제콩쿨 수상 ▲ 모스크바에서 출생 구소련동포와는 달리 한국국적의 최초 동포2세 수상자로 또다른 기록을 가지게 된 최효성군. 장래 희망은 세계적인 지휘자. 지난 10일 프랑스 파리 콘서바토리아에서 개최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 국제콩쿨에서 모스크바 중앙음악학...
  • 2006-04-17
  • 재아르헨티나 동포 최운 수필가가 최근 한국의‘현대수필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수필문학상은 1977년에 제정되여 올해 제24회째를 맞은 권위있는 수필문학상이며 재외동포로서는 첫 수상자로 알려졌다. 1939년 서울서 출생한 최수필가는 1986년 아르헨티나에 이주후 한국으로 되돌아갔다가 재이주 하는 우여곡절을 겪고 ...
  • 2006-04-1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