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박정복의 사업과 가정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3월18일 09시17분    조회:943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감초맛인생

성우, 소품배우, 연기자로 다재다능한 박정복의 사업과 가정

2008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음력설야회 소품 《새해아침》(박춘우, 박정복, 리원표 출연)에서 자식을 위해 억척스레 돈을 버는 전형적인 조선족어머니로 등장하여 한족훈둔장사 박춘우와 사랑을 나누는 농익은 연기를 선보인 박정복에게 시청자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다.

박정복은 《팥죽련정》, 《각설이를 면했네》, 《로무시장에서》, 《까치가 울던 날》, 《행복한 가정》, 《촌장선거》, 《래일을 위하여》, 《주정뱅이안해》, 《뜨물주정》 등 수십편의 소품에 출연하여 순박한 조선족아줌마의 모습을 형상적으로 그려냈는데 그중에서 김동현과 함께 출연한 소품 《주정뱅이안해》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고 그는 《남편한테 고양이오줌을 먹인 안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였다. 또 원로소품배우 리영근과 함께 가슴 찡한 황혼의 사랑을 그린 소품 《팥죽련정》은 시청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박정복이 생동한 연기와 함께 후더분한 마음씨를 고스란히 전할수 있는데는 귀맛당기는 석쉼한 목소리가 한몫을 톡톡히 하고있다. 사실 박정복은 소품으로 시청자들과 만나기전에 일찍 그만의 독특한 목소리로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직 집집마다 텔레비죤을 갖추지 못하고 방송을 많이 듣던 나날 박정복은 방송극, 방송소설로 청취자들을 매료시켰다. 1981년 처음 연변방송예술단의 성우로 입사하여서부터 지금까지 박정복은 이미 천여부의 방송극에 출연하였고 수백회에 달하는 방송소설도 랑독하였다. 지금도 대중들은 《매화사건》, 《강자는 누구인가》, 《인정없는 사위》등 80년대 인기방송극을 잊지 않고있다.

성우로서 인정받고있는 박정복의 어릴 때 꿈은 결코 화술이 아니였다. 1962년 화룡시 투도진 룡원촌의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박정복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아주 즐겨 불렀고 앞으로 이름있는 가수로 될 꿈을 키웠다. 농촌에서 살았기에 성악공부를 따로 할수 없었지만 행운스럽게 초중에 붙은 해에 연변가무단의 정혜숙선생이 그가 다니는 룡수1중의 음악교원으로 내려왔다. 정혜숙선생님은 노래를 잘 부르는 박정복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하여 박정복은 눈에 띄우는 진보를 가져왔고 수차례 문예콩클에서 1등상을 받기도 하였다. 1981년 대학입시에서 연변예술학교 성악학부를 지망했다가 락방의 고배를 마셨지만 행운의 신은 그에게 다른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그해 연변방송예술단에서 연길을 상대로 성우를 모집했는데 박정복은 친척의 추천으로 시험을 보게 되였고 1등이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되였다. 비록 어려서부터 키웠던 꿈은 아니였지만 영화해설을 하는 큰오빠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화술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던 박정복은 출근한지 나흘만에 방송극 《천사와 준마》로 데뷔신고식을 치렀다. 입사할 때 20살 꽃나이였지만 박정복은 젊은역보다는 할머니, 어머니의 역을 더 잘 소화해냈다. 석쉼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자애로운 형상에 너무나 잘 어울렸던것이다. 결국 그는 어머니, 할머니역으로 27년간 한우물을 파왔다.

당시 방송이 전성기여서 청취자들로부터 인기가 대단했지만 그래도 배움에 목말랐던 박정복은 1983년 연변예술학교 연극학부시험을 보았는데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였다. 1985년 연변예술학교를 졸업한 박정복은 연변연극단에 배치받았다.

졸업하던 해 9월 3일 박정복은 자신을 5년간이나 기다려준 조영건과 결혼식을 올렸다. 1981년 연변방송예술단에 출근할 때 박정복은 친척집에서 다녔다. 이웃에서 살던 조영건네 식구들이 늘 박정복의 친척집에 와서 텔레비죤을 시청하였기에 인연은 아주 자연스럽게 맺어졌다. 농촌에서 자랐기에 조금은 촌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소박하고 순수한 매력이 있다면서 박정복에게 뜨거운 사랑을 주었던 조영건은 박정복이 예술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박정복은 그런 남편이 더욱 존경스럽고 미더웠다.

박정복은 《녀동생을 먼저 시집보내면서 5년이나 기다려준 남편이 고마와서 나도 지금까지 일편단심 남편만 바라보며 살아왔다》면서 《결혼후 모순이 생길 때마다 변함없는 사랑을 키워온 남편을 떠올렸다》고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그러나 결혼후 잦은 외지공연으로 여러가지 풍파도 있었다. 특히 아들 홍빈이가 태여난후 가정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남편은 박정복더러 집형편이 괜찮으니 전직주부로 있으면서 집안일에만 신경을 써주기를 바랐다. 그렇게도 말리는 남편한테 아들을 맡기고 외지공연을 다녀오는 그의 마음도 편안하지 못했지만 워낙 일욕심이 많은 박정복은 좀처럼 연기를 그만두려 하지 않았다. 한번은 왕청으로 연극 《털없는 개》 공연을 갔는데 남편이 차를 몰고 데리러 왔다. 유치원에 갔던 아들이 눈에 유리쪼각이 들어가면서 눈의 막이 찢겨져서 수술을 해야 되는데 남편은 너무 떨려서 도무지 수술서에 서명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래서 연기중인 박정복을 무작정 잡아끌었다. 어쩌면 아들이 실명의 위험도 있었기에 박정복은 공연도중 A역 로친한테 남은 2막을 부탁하고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왔다. 병원에 와보니 시어머니가 이미 서명을 해서 아들은 수술실에 들어가있었다. 그날 그들부부는 크게 다투었다. 개체업에 종사하여 늘 바삐 보내는 남편은 가정을 위해서 사업을 희생하기를 바랐고 이미 연기의 매력에 푹 빠진 박정복은 절대로 일만은 손에서 놓지 못하겠으니 리해해달라고 사정하였다.

1990년 박정복은 연변연극단 배우실무기량발표에서 1등상을 수상하였다. 시, 소설, 소품 세가지 부분의 종합실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시와 소설은 예술단에서 많이 익혀서 다른 사람들보다 우세였지만 소품에서는 어쩐지 자신이 없었다. 마침 리영근선배가 박춘우를 상대역으로 추천하면서 직접 감독을 맡아 소품 《공원숲속에서》를 연습시킨데서 소품에서도 높은 점수를 따냈다.

자신이 무대공연보다는 화술에 더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박정복은 1993년 연변방송예술단으로 전근하였다. 전근후 외지로 공연다니는 일이 없게 되여 가정의 유일한 모순도 해결되였다. 박정복은 예술단에 있으면서 《김삿갓》, 《해빛속으로》 등 수많은  방송극의 해설을 맡았는데 그중에서 방송극 《쓴웃음》은 성조선말프로 1등상을 수상하였고 4부작 방송극 《동희철의 60년 방송인생》에서 동희철의 안해역을 맡았는데 한국 KBS 시상식에서 특등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영예를 받아안았다. 그는 또 연변TV방송국에서 제작한 TV련속극 《반지》에서 주인공인 어머니역으로 출연하여 가슴 훈훈한 연기를 선보였고 《갈꽃》에서는 정신분렬환자 박홍심역을 생동하게 그려냈으며 《가족사진》에서는 한국식당주인역으로 출연하였다. 이외에도 《교씨가문》, 《초씨네 아홉자매》, 《금분세가》 등 수많은 TV번역련속극에서 어머니역의 배음을 맡았다.

다재다능한 박정복은 훌륭한 어머니로 되기에도 손색이 없다. 아들 홍빈이가 소학교에 입학여서부터 고중을 졸업할 때까지 한번도 학부형회의에 빠진적이 없는 열성엄마이다. 늘 친절하게 대하고 민주적으로 키워서인지 홍빈이는 밝고 건강하게 자란 착한 아들이다. 2006년 장춘공정학원에 입학한 홍빈이는 학교에서 체육부장으로 활약하고있다. 마냥 자랑스럽기만 한 아들도 한번은 엄마속을 썩인적이 있었다. 고중 3학년때 학교에서 담배를 피운 아들때문에 학교로 불리워가서 아들과 함께 결심서까지 썼다. 한창 예민한 시기라 크게 욕도 못하고 앓던중 남편한테 도움을 청했는데 글쎄 흥분한 남편이 아들의 귀쌈을 때렸다. 매를 모르고 자랐던 홍빈이도 놀랐지만 그걸 지켜본 박정복은 더욱 놀랐다. 마음속으로 말한것이 조금 후회되기도 하였다. 다행히 아들은 잘못을 뉘우쳤고 무난히 대학에 입학하여 그들부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남편은 안해를 지극히 관심한다. 외지에서 사업하던 때에도 절대로 두달을 넘기지 않고 집에 다녀갔고 지금은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는 안해를 차로 데려다주어 남들의 부러움을 자아낸다. 갓 결혼했을 때에는 연예인안해를 두어 조금은 부담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안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박정복이 취재를 받는다고 하자 남편은 《조용하게 살면 오죽 좋아? 꼭 그렇게 자신을 내세워 홍보해야 하는가? 되도록이면 취재를 받지 말라》며 말렸다. 박정복이 《내가 일부러 부른것이 아니고 기자가 찾아왔다》고 거듭 말해서야 믿으면서 《될수록 가정에 대해서는 적게 말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사업에서도 가정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성공한 박정복만의 비결은 무엇일가? 꼭 꽃으로 피여나야만 아름다운것이 아니라 꽃을 받쳐주는 잎사귀일지라도 나름대로의 자신감을 갖고 만족하면서 즐기는것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결코 평범하지도 않은 박정복의 감초맛인생에서 보다 많은 웃음을 기대해본다.

연변라지오TV신문 최설화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주말 또는 휴식일이면 경상적으로 변방파출소에 찾아가 청소도 해주고 옷도 빨아주고  맛나는 음식도 해주는 그녀를 두고 변방경찰들은 우리 누이, 우리 아주머니라고 다정하게 부르고 있다. 그가 바로 훈춘변방대대 영안변방파출소 소장 윤창길의 안해 리화씨이다. 경찰의 안해가 힘들다면 변방경찰의 안해는 더욱 힘...
  • 2007-08-01
  • '민족적 사명감으로 나섰습니다." 단마디로 이렇게 서두를 뗀 할빈경공림펌프유한회사 박성공리사장은 후리후리한 키꼴에 깎은 바위같은 인상을 주는 나젊은 조선족기업가였다. 동북조선족축구련의회 부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박성공씨는 이번 제5회전국조선족중소학생축구운동회에 거금을 협찬했다. "조선족축구...
  • 2007-07-31
  • 7월 27일, 제4회 윤동주컵 장사씨름경기대회가 펼쳐진 룡정시지신진 명동촌에 위치한 윤동주생가 씨름터에서 한국의 유명한 씨름선수이며 천하장사인 리준희(51세)씨와 만나게 되였다. 현재 한국씨름협회 민속씨름위원회 경기위원장직을 맡고있는 리준희씨는 이번까지 두번째로 연변을 방문하게 됐다면서 올까지 4회째 열리...
  • 2007-07-30
  • 지난 7월 중순,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중국전통 약석발마사지 샵 ․ 학원’이 개업을 시작하였다. 넓은 홀과 아늑한 마사지실 ․ 학원에 개업축하 화분들이 놓여있다. 약석발마사지 전문가 이상규씨가 중국동포 최초로 한국에 투자 ․ 운영하는, 발반사요법으로 각종 병환까지 치료를 겸해 발 관...
  • 2007-07-27
  • 20여년간을 부동한 사업터에서 당사업을 해온 한 《평범》한 당사업일군이 있어 당지에서 존경을 받고있다. 바로 단동시석유공사 금산만석유저장고 당지부서기 배월명(53)씨다.고향이 관전현 하로하조선족향 통강촌인 배월명씨는 일찍 1972년 군부대에 입대해 선후하여 3등공 2차를 따냈고 1980년에 윁남자위반격전에...
  • 2007-07-25
  • ㅡ한국 전통음악학회 서한범회장을 만나 일전2007년 중한전통음악교류회차로 연변대학예술학원을 찾은 한국전통음악학회 서한범회장 일행은 연변대학예술학원 음악학부의 사생들과 더불어 전통음악예술교류의 한마당을 성대히 펼치면서 우리의 선률과 가락으로 한민족의 정서와 정을 통합하는 대단원을 이루었다. 이 행사의...
  • 2007-07-24
  • 오성촌 림상록씨 《 5000무 마을토지를  되찾아 최대 농장주가 되는것이 꿈》 류하현 강가점조선족향 오성촌의 림상록(42세)은 일본에서 벌어온 돈으로 지난해 농촌에다 식당을 꾸린데 이어 올해부터는 600여무의 벼농사를 지으면서 고향땅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있다. 오성촌은 518호에 2238명의 인구, 6000무의 논...
  • 2007-07-21
  • 2006년 9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2006년도 세계로봇경연에서 특수공헌상을 수여받은데 이어 올해 금방(7월 1일)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린 2007년도 세계로봇경연에서 1등상을 수여받은 할빈시문화소학교 로봇서클소조가 최근 국내외 매체들에 집중 보도되였다. 그중 두번 모두 최년소 소조성원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하여 큰 ...
  • 2007-07-19
  • 《최고는 아니여도 최선을 다한다.》 이는 연길애득백화유한회사 안마원 최정옥경리의 경영리념이다. 2004년, 오래동안 정부기관에서 사업하던 그녀가 이 안마원 경리로 초빙받았을 때는말그대로 안마란 안자도 모를 때였다. 하다보니 이튿날 9명의 직원이 다른데로 가겠다고 선언했고 몇십명의 직원들은 아예 그녀의 말을 ...
  • 2007-07-18
  • 《우아한 환경,알뜰한 서비스,고객이 만족하는 식단으로 승부를 걸었지요.》 연길애득백화유한회사 한식관의 남청설(38세)경리는 이 한식관이 연길시의 명소로 자리잡게 된 리유를 이렇게 몇마디로 개괄하였다. 2003년 11월,이 한식관의 경리로 초빙받은 그녀는 한식은 비싸서  서민들의 발길을 잡지 못한다는 시장정세...
  • 2007-07-1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