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화룡시예술단 구연배우 허상권씨의 실적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3월17일 14시17분    조회:835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예술에 도취되여 반평생

누군가 예술의 최고경지는 미치는것이라고 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일반사람들이 리해조차 하기 어려운 거동을 보일수 있겠는가? 그 미치는 경지속에는 꾸준한 탐구가 있고 끊임없는 노력이 슴배여있으며 그것은 결국 알찬 성과로 이어지게 된다.

1946년 10월 2일 화룡현 화룡진 동가촌(지금의 화룡시 룡성진 동가촌)의 한 농가에서 외독자로 태여난 허상권씨는 예술에 도취되여 반평생을 살아왔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오늘에도 그 예술의 끈을 부여잡고 석양빛갈을 화려하게 장식해가고있다.

1980년대 후반기 연변텔레비죤을 통해 《알이 터졌다》는 한마디로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3로인 《경로원의 기쁨》에서 김상옥선배, 석봉숙배우와 함께 등장해 폭소를 선물했던 《꺽다리령감》, 바로 그 《꺽다리령감》 허상권씨의 연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시종일관하게 웃음을 몰고다니며 우리 민족 구연무대의 한자리를 튼튼히 지키고서있다. 《경로원의 기쁨》을 비롯해 《로인축구대》, 《기자가 오던 날》, 《혼인광고》 등 소품과 3로인 400여편을 소화하며 지금까지 4000여차의 공연에 참가해온 허상권씨는 류수같이 흘러간 지난 반평생을 돌이켜보노라면 사뭇 그 감개가 무량하다.

어려서부터 예술에 남다른 흥취를 가졌던 허상권씨는 중학시절부터 크라네, 바이올린 등을 연주하며 학교악대에서 활약했고 진대회, 현대회, 주대회에 참가해 무용, 표연창, 악사 등 여러가지 장끼를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장차 예술인이 되려는 꿈으로 가슴을 부풀리던 그는 어디에서 예술단이 공연한다고 하면 빼놓지 않고 죄다 달려가 구경하면서 배우들의 연기를 흉내내보군 하였다. 바로 허상권씨가 20세때였다. 당시 그는 이불짐을 메고 두만강지역에 가서 길닦기일을 하고있는데 연변연극단이 장막극 《산촌의 소나기》를 화룡에서 공연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맹랑하게 큰눈이 내려 허벅지까지 빠지는 바람에 며칠째 뻐스가 통하지 못할줄이야. 바로 그 장막극을 구경하지 못해 애간장을 태우던 허상권씨는 공연 마지막날 드디여 마음을 먹고 도보를 단행, 200리 산길에서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대골령, 소골령을 넘어 화룡시가지에까지 도착했는데 이미 공연이 시작되여 극장 앞문을 닫아버렸었다. 너무도 맹랑해서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행여나 하고 뒤문에 달려가 두드렸더니 마침 리영근선생이 문?열어주어서 허상권씨는 오매에도 보고싶던 장막극을 구경하게 되였고 따라서 오늘까지도 당시 문을 열어주신 리영근선생에게 감사한 마음을 금할수 없어하고있다. 이처럼 《연극이라면 미친것 같다》는 뒤소리까지 들어가며 공연구경을 다니고 자신 또한 농촌무대에서 활약하며 장끼를 발휘한데서 마침내 그의 꿈은 현실로 이어지게 되였다. 

1980년도에 화룡예술단에서 대형가극 《흥부전》을 무대에 올리게 되였는데 당시 예술단에는 배우가 부족한 상황이라 마당쇠역을 맡을 배우가 없었다. 하여 대외에서 배우를 초빙하게 되였는데 각종 농촌대회에 참가해 장끼를 보여주었던 허상권씨가 예술단 책임자들의 눈에 들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구연무대에 발을 붙인 허상권씨는 김상옥, 량균 등 로선배들의 연기를 본받아 학습하는 한편 조선에서 처음으로 《춘향전》의 변학도역을 맡았던 조선인민배우 황철선생이 저술한 저서 《화술과 분장》을 열심히 탐독하며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았다. 

하지만 예술의 길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화룡예술단은 농촌마을들을 돌며 많은 공연을 했는데 도구는 소수레에 싣고 배우들은 도보로 이 마을 저 마을 걸어다니며 공연하다보니 너나없이 지칠대로 지쳐 공연이 끝나자마자 굳잠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에 당시까지만도 문화생활이 결핍했던 농촌관중들이 예술단의 공연을 보고 즐거워할 때면 허상권씨는 마음이 뿌듯해났고 따라서 피로도 가신듯 사라지군 하였다. 그러던 1984년도에 중앙문화부 정교부부장이 문화사업차로 연변에 왔다가 화룡에 가서 화룡예술단의 공연을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엄지손가락을 내드는것이였다. 따라서 정교부부장의 배치에 따라 그해 화룡예술단은 인솔자까지 20명 배우진이 4개월간 전국순회공연을 펼치는 영광을 가지게 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화룡예술단이 해마다 농촌마을을 돌며 수백차씩 온돌공연을 펼쳐온 까닭에 모든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허상권씨 역시 가정일에는 손댈 여가조차 없었고 따라서 집안의 모든 일은 그의 안해 유채순씨의 몫으로 떨어졌다. 예술단에 발들여놓기전 현기관지식청년공장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유채순씨와 소개로 만나 사랑을 맺은 허상권씨는 한평생 안해에게 빚지고 사는 심정이라고 밝혔다. 슬하에 아들딸 3남매를 키우며 80고령의 시부모까지 모시는 상황에서 집안의 기둥인 남편이 늘 공연때문에 밖에서 떠돌다보니 가정의 중임을 떠멘 유채순씨의 고생은 이루 다 말로 할수 없을 정도였다. 한때 재정경제의 불황으로 화룡시에서 로임을 제때에 내주지 못하게 되자 유채순씨는 심양, 장춘 등지로 다니며 그릇장사를 하여 집살림에 보탬을 하기도 했다. 그런 안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면서도 허상권씨는 언제든 공연하러 나갈 일이 있다고 하면 모든것을 제쳐놓고 달려나가군 했다. 그처럼 가정을 버릴 정도로 예술에 《미쳐》버린 허상권씨를 두고 현재 화룡예술단에서 구연배우로 활약하고있는 최중철씨와 홍미옥양은 《예술에 대해서 허상권선배는 하냥 깨끗한 마음이며 언제나 정식이고 진심》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모든것을 다 버릴수 있어도 예술만은 버릴수 없다는것이 허상권씨의 페부에서 우러러나온 말이다.

예술에 도취되여 반평생을 살아온 허상권씨, 그는 자신만 예술에 《미친》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그 《미치는 경지》에 열심히 끌어들이고있다. 다시 말해 허상권씨가 양성해낸 제자는 선후로 근 20명에 달한다. 그중 현재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공부하고있는 김미령양은 올해 음력설야회에 소품 《선물》로 관중들과 대면하게 된다. 그 김미령양에 대해 허상권씨는 기자의 취재를 접수하는 앞에서도 《앞으로 졸업후 어디에 배치받든 열심히 하여 반드시 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가 되여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퇴직한 몸임에도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대신 예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으로 언제 어디에서 부르든 서슴없이 달려가는 허상권씨, 지난해 8월에 설립된 화룡시민간예술단 업무단장을 맡고 오늘도 열심히 뛰고있는 허상권씨에게는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바로 1980년대 《알이 터졌다》는 대명사의 《경로원의 기쁨》이후로 연변의 구연무대에서 사라졌던 3로인을 재생시키는것, 한때 연변조선족 특유의 구연종목으로 자리매김했던 3로인이 사라져가는데 대해 허상권씨는 가슴아픈 심정을 토로하면서 《이는 우리 선배들이 만들어 물려준 문화유산중의 하나로서 절대 없어져서는 안된다. 반드시 다시 살려내야 한다》고 강조하고있다. 하여 그 자신이 솔선수범으로 올해 연변텔레비죤음력설야회에 선을 보이게 될 구연종목이 바로 《고백》이라는 제목의 3로인이다.

화룡시예술단의 구연배우 최중철, 홍미옥과 함께 허상권씨가 올해 음력설야회에서 선을 보이게 될 3로인 《고백》, 과연 20년만에 다시 시청자들과 만나게 될 3로인이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시청자들에게 즐거운 명절의 한때가 될것임을 믿어의심치 않으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연변라지오TV신문   전일봉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허동활선생은 중국조선족연극계의 제1대 원로예술가로서 60여년을 하루와 같이 중국조선족연극예술의 발전에 모든것을 바쳐왔다.장장 60여년의 연극생애에서 배우,연출가로 활약하면서 무수한 예술형상을 창조한 선생은 2007년 4월 《중국연극 100년》축제에서 공화국의 연극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한 리묵연 등 30여명 원로...
  • 2008-11-19
  • 박규찬선생은 우수한 공산당원이며 저명한 중국조선족 교육가, 교육학가이며 연변대학 창시인의 주요한 일원이며 연변대학의 로교장이다. 1918년 7월 7일, 조선 함경북도 길주군의 한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5남매중 셋째아들로 태여난 박규찬선생은 째지게 가난한 환경에서도 서당공부를 시작하여 항상 우수한 성적을 냈으며...
  • 2008-11-17
  • 컴퓨터 프로그램개발에 성공한 한 조선족 괴짜대학교에서 배운 화학섬유전공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컴퓨터 프로그램개발을 독학으로 성공한 한 조선족 괴짜가 있는데 그가 바로  연길시에 자리잡은 무궁화소프트웨어개발회사의 대표이자 중국조선족온라인커뮤니티 연변모이자 대표이며 또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
  • 2008-11-14
  • —연변대학부속병원 신경정신과 주임 오광  신경병학 림상교수, 과학연구사업에 종사한 26년간 연변대학부속병원 신경정신과 주임 오광은 신경정신질병의 진단치료에서 풍부한 림상경험을 루적했고 시종일관하게 매 한명의 환자, 매 한부의 병례를 참답고도 세심하게 대해 명실상부한 신경계통학자형전문가로 부...
  • 2008-11-13
  • 과학기술과 예술의 만남, 미디어아트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한국에서 세계로 향하는 중국동포 인재를 찾아서<3> 손 봉 (숭실대 미디어학과 석사과정) 한국에 유학 나온 중국동포 유학생의 꿈을 들어보는 시간이다. 간혹 자녀를 한국에 유학을 보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되냐는 문의전화를 받는다. 그러면 학교...
  • 2008-11-13
  • “화상대회 벤치마킹 조선족 활용하길” 김문일 옌볜청년기업가연합회 회장 김문일 옌볜청년기업가연합회 회장(35·사진)은 “중국 화상대회가 세계 최대 규모의 행사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중국 최고의 기업들이 참가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상대회가 중소기업들의 대회...
  • 2008-11-13
  • ◆ 2000년 봄 그는 화원조선족향토지관리소 소장직을 사직하고 하남촌 300무의 논을 임대경작하면서 직업농민으로 탈바꿈하였다. ◆ 올해 7월 김정환의 정환농업기계화생산전문회사는 길림성 성당위 왕민서기의 부축 항목으로 되였다.대부분 조선족들이 외국과 도시로 진출하는 이때, 향토지관리소 소장의 직책을 미련없이 ...
  • 2008-11-13
  • 현모량처형의 만능연기자 장미옥재담,소품 등 구연종목은 물론 텔레비죤련속극에서도 배역을 맡고 가수나 사회자로 무대에 오르기도 하면서 이르는 곳마다에서 장끼를 자랑하는 장미옥,독자들은 뭇사람들로부터 만능연기자로 호평을 받고있는 장미옥이 량가 부모님들에게 효도하고 남편과 자식들의 뒤바라지를 잘하면서 원만...
  • 2008-11-11
  • 탁월한 지역우세로 만방을 매료할터 일전에 기자는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이 창립 50돐을 맞아 축제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가운데 이 현 정형일현장대리와 인터뷰를 할수 있는 기회를 가지였다.정형일현장대리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은 중화 10대 명산중의 하나인 장백산의 남쪽기슭...
  • 2008-11-11
  • 中 조선족 미래, 여성이 디자인한다이란 北京애심여성네트워크 회장 각오(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중국 조선족의 미래는 여성이 디자인해 나갈 것입니다."중국 베이징(北京)에 진출한 조선족 여성들의 모임인 '베이징애심여성네트워크'의 이란(50) 회장이 설계하는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장대하다. 지난해 ...
  • 2008-11-0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