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봉령- 국가녀자아이스하키 주력선수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3월7일 08시06분    조회:1981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빙설우에 피여난 한떨기 진달래   
국가녀자아이스하키팀 조선족 김봉령선수 일화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는 말이 있듯이 각고의 노력으로 빙설에서 꽃을 피우는 조선족처녀가 있다. 그녀가 바로 국가녀자아이스하키(冰球) 주력선수인 김봉령선수로 이번 할빈 대동회에서 중국녀자아이스하키팀이 준우승이란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팀 전체 골 50% 가까이 넣은 공신이다. 

1982년 할빈에서 출생한 김봉령은 어린 시절 당시 국가녀자아이스하키팀 초대감독으로 계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이스하키에 점차 흥취를 가졌다. 16세에 할빈체육학교 아이스하키전문반에 입학한 그녀는 일년뒤인 1998년 국가팀에 입선되여 본격적인 훈련과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가아이스하키팀은 '투자가 많이 들어가고 실적은 별로'인 체육팀으로 락점되여 경비가 유난히 딸렸다. 하여 중국녀자아이스하키팀의 대부분 대원들은 편제도 없는 '림시공'으로 매달 천원도 안되는 훈련보조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다. 편제가 없다보니 선수상해보험을 제외하고 사회보험과 주택공적금도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부분 선수나 감독까지 다른 직업으로 바꾸는 '하해붐'이 일었다.

''제가 아이스하키선수로 된것은 돈을 많이 벌려는 목적이 아니였어요. 아이스하키는 소시절부터 저의 꿈이고 인생의 길동무였어요. 때문에 그 어떤 곤난이 있어도 포기할수가 없었어요.'' 김봉령선수는 이렇게 단호히 말했다.

일년사시절 차디찬 얼음우에서 온종일 수십번 넘어지고 부딪쳐 상하면서도 불굴의 노력을 거듭한 결과 김봉령은 팀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김봉령은 팀을 도와 아이스하키 최고 영예전당인 1998년 일본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4위,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盐湖城)동계올림픽에서 7위를 따냈다. 당시 국내에서 아이스하키운동을 하는 녀선수가 2,30명에 불과하고 리그전도 없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성적은 대단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경기에는 희로애락이 따르는 법이다. 국가녀자아이스하키팀은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동계올림픽 입장권을 놓고 2004년 11월 14일 스위스와 쟁탈하던중 비겨도 출전자격을 갖게 되였지만 경기종료 6초만에 한골을 먹어 탈락된 비운을 가졌다. 당시 관중석에는 이미 열광적인 팬들이 '올림픽에 참전하게 되였다'는 프랑카드를 흔들었지만 경기결과는 념원과는 무관했다.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감각을 느꼈다는 김봉령은 주위에서 지켜보는 눈들이 무섭고 국가녀자아이스하키에 관한 뉴스들이 두려웠다. 이때 국가녀자아이스하키팀이 해산된다는 소문도 무성하고 인심도 흉흉하여 저조기에 들어섰다.

국가팀과 더불어 2년간 '암흑세월'을 보내던 김봉령은 2006년 팀의 다른 한 주력선수인 손예와 함께 핀란드 한 직업구락부에서 기량을 다지고 귀국했다.

2008년 4월 할빈에서 열린 녀자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A급팀에 머무는데 성공하고 같은해 11월 9일 상해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자격경기에서 일본팀을 2:0으로 완파하고 2010년 캐나다 밴쿠버동계올림픽출전자격을 따내 국가녀자아이스하키팀은 재차 부활되였다. 

현재 팀에서 가장 오랜 자력을 갖고 있는 김봉령은 평소 흥취가 인터넷 채팅이다.그녀는  6년간 련애한 국가남자아이스하키팀의 운개선수와 돌아오는 5월에 결혼할 예정이며 결혼뒤  곧 캐나다에 가 집중훈련을 받아 래년 밴쿠버동계올림픽을 맞게 된다.   

흑룡강신문 김호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올해 45세에 나는 김옥녀는 연변결핵병예방소 부소장이며 주임의사이다.  결핵병예방사업에 종사한 20년간 김옥녀는 결핵병감염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면서 전심전력으로 환자를 위해 봉사했다.그는 또 국내외선진기술을 연구하면서 요추천차, 척추관약물투입, 림파결핵절단제거수술 등...
  • 2008-09-25
  • 올해 47살에 나는 돈화시 사하연진 양가점촌 성신누에양식실험장 총경리인 하효응은 1978년 고중을 졸업하고 촌에 돌아와 130헥타르에 달하는 황페산을 도급맡았다. 그후 그는 이 촌에서 양식기술을 연구하는 한편 기술일군들을 청해 허심하게 배우면서 간고한 노력을 거쳐 누에양식기술을 장악했다. 얼마 안 지나 그는 인...
  • 2008-09-24
  • 올해 38살에 나는 소우리는 연변인민방송국 한어프로 "백성열선"프로부 주임이며 국가1급아나운서이다. 그는 "민생에 귀를 기울이며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부서의 전체 편집인원들을 인솔하여 백성들의 곤난을 해결해주기에 힘썼으며 조화연변을 구축하는데 주류매체의 &nb...
  • 2008-09-23
  • 불쌍한 아이들을 보살피면서 삶의 가치를 실현해가는 한 녀성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화룡시《소망의 집》고아원원장 정영옥입니다.  30년 가까이 유치원교양원사업을 해온 정영옥녀성은 2003년 고아원을 꾸렸습니다. 운수업하는 남편은 힘들게 번돈 100만원으로 <소망의 집> 고아원을 설립하는데 동의했습니다...
  • 2008-09-22
  • 신영성 화백 한국국제아트페어에 출품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20개국의 218개 화랑이 참여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그림 장터인 한국 국제아트페어(KIAF)가 열리는 삼성동 코엑스 인도양홀. 21일 이 곳 I-46에서 전시되고 있는 그림 4점이 관객의 시선을 끌고 있다. 경희대 국제교육원 겸임교수인 신영성 화백의...
  • 2008-09-22
  • 올해 49살에 나는 란옥련씨는 중국길림이동통신 길림유한회사 연변분공사의 총경리이다.다년간의 경영실천과정에 란옥련총경리는 대담히 창의하고 구조를 최적화하여 기업경영과 관리에서 새로운 돌파를 가져왔으며 연변이동통신이 시장경영에서 오래동안 저조기에 처해있던 국면을 돌려세우고 련속 3년간 기업경영의 각항 ...
  • 2008-09-22
  • 올해 31살에 나는  왕한은 길림성 도문변방대대 신화파출소 부교도원이며 당지부서기이다. 그는 장병들의 사상정치사업을 참답게 해오면서 군인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보위하는 책임감을 높여주었으며 경찰과 백성사이 친목을 도모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주둔 지역 백성들의 곤난을 해결해주기...
  • 2008-09-18
  • 당찬 20대의 화려한 인생 도전 올해 26살의 애된 얼굴모습이지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진한 패션감각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 그리고 당당함 그 자체이다. 무대복장설계라는 령역에 도전장을 낸 김지는 2003년 전국중화컵복장설계콩클 우수상, 2004년 전국중화컵복장설계콩클 은상 등 굵고 묵직한 상들을 수상하면서 ...
  • 2008-09-12
  • 천평식 유량채유기 대경유전서 정식 채유 전통채유기에 비해 《뛰여난 성능 우세, 전기절약이 무려 50%이상, 원자재(강재) 50%로 절감》 1조 3석의 우세 세계가 에네르기전쟁으로 아우성인 이때 조선족기업가 김성군씨가 개발한 《천평식유량채유기(天平式游梁抽油机)》가 채유기의 《혁명적인 제품》 으로 주목받으며 8월 ...
  • 2008-09-03
  • 박문요(朴文堯·사진) 돌풍이다. 중국 국적이니 '퍄오원야오'로 표기하는 게 옳지만 우리 팬들은 그냥 박문요라고 부른다. 세계 유일의 조선족 프로기사이기 때문이다. 박 五단은 지난주 도쿄에서 벌어진 제4회 도요타덴소배 세계왕좌전서 오가타(小縣眞樹) 이창호 목진석 셰허(謝赫) 등 동양 3국 맹장들을 차례로 연...
  • 2008-09-0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