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봉령- 국가녀자아이스하키 주력선수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3월7일 08시06분    조회:1984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빙설우에 피여난 한떨기 진달래   
국가녀자아이스하키팀 조선족 김봉령선수 일화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는 말이 있듯이 각고의 노력으로 빙설에서 꽃을 피우는 조선족처녀가 있다. 그녀가 바로 국가녀자아이스하키(冰球) 주력선수인 김봉령선수로 이번 할빈 대동회에서 중국녀자아이스하키팀이 준우승이란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팀 전체 골 50% 가까이 넣은 공신이다. 

1982년 할빈에서 출생한 김봉령은 어린 시절 당시 국가녀자아이스하키팀 초대감독으로 계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이스하키에 점차 흥취를 가졌다. 16세에 할빈체육학교 아이스하키전문반에 입학한 그녀는 일년뒤인 1998년 국가팀에 입선되여 본격적인 훈련과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가아이스하키팀은 '투자가 많이 들어가고 실적은 별로'인 체육팀으로 락점되여 경비가 유난히 딸렸다. 하여 중국녀자아이스하키팀의 대부분 대원들은 편제도 없는 '림시공'으로 매달 천원도 안되는 훈련보조금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다. 편제가 없다보니 선수상해보험을 제외하고 사회보험과 주택공적금도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부분 선수나 감독까지 다른 직업으로 바꾸는 '하해붐'이 일었다.

''제가 아이스하키선수로 된것은 돈을 많이 벌려는 목적이 아니였어요. 아이스하키는 소시절부터 저의 꿈이고 인생의 길동무였어요. 때문에 그 어떤 곤난이 있어도 포기할수가 없었어요.'' 김봉령선수는 이렇게 단호히 말했다.

일년사시절 차디찬 얼음우에서 온종일 수십번 넘어지고 부딪쳐 상하면서도 불굴의 노력을 거듭한 결과 김봉령은 팀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김봉령은 팀을 도와 아이스하키 최고 영예전당인 1998년 일본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4위,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盐湖城)동계올림픽에서 7위를 따냈다. 당시 국내에서 아이스하키운동을 하는 녀선수가 2,30명에 불과하고 리그전도 없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성적은 대단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경기에는 희로애락이 따르는 법이다. 국가녀자아이스하키팀은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동계올림픽 입장권을 놓고 2004년 11월 14일 스위스와 쟁탈하던중 비겨도 출전자격을 갖게 되였지만 경기종료 6초만에 한골을 먹어 탈락된 비운을 가졌다. 당시 관중석에는 이미 열광적인 팬들이 '올림픽에 참전하게 되였다'는 프랑카드를 흔들었지만 경기결과는 념원과는 무관했다.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감각을 느꼈다는 김봉령은 주위에서 지켜보는 눈들이 무섭고 국가녀자아이스하키에 관한 뉴스들이 두려웠다. 이때 국가녀자아이스하키팀이 해산된다는 소문도 무성하고 인심도 흉흉하여 저조기에 들어섰다.

국가팀과 더불어 2년간 '암흑세월'을 보내던 김봉령은 2006년 팀의 다른 한 주력선수인 손예와 함께 핀란드 한 직업구락부에서 기량을 다지고 귀국했다.

2008년 4월 할빈에서 열린 녀자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A급팀에 머무는데 성공하고 같은해 11월 9일 상해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자격경기에서 일본팀을 2:0으로 완파하고 2010년 캐나다 밴쿠버동계올림픽출전자격을 따내 국가녀자아이스하키팀은 재차 부활되였다. 

현재 팀에서 가장 오랜 자력을 갖고 있는 김봉령은 평소 흥취가 인터넷 채팅이다.그녀는  6년간 련애한 국가남자아이스하키팀의 운개선수와 돌아오는 5월에 결혼할 예정이며 결혼뒤  곧 캐나다에 가 집중훈련을 받아 래년 밴쿠버동계올림픽을 맞게 된다.   

흑룡강신문 김호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중한투자무역 법률봉사의 《1번지》북경시금평변호사 사무소 김련숙대표변호사 만나본다 ●  중국의 첫 중한투자무역법률봉사 사무소 설립● 《전국 우수변호사 사무소》를 창설● 《북경시 10대 변호사》 칭호, 전국녀성변호사협회 부회장● 한국대기업과 주중 한국기관과 기구의 법률봉사 전담 북경시금평변호사 사무...
  • 2009-11-26
  • 료리연구가 리숙씨의 음식탐구 스토리연길시중의 수백개소에 이르는 료식업체가운데 휴머니즘경영을 선언하고 유기농,무공해 식재만을 쓰며 고객들에게 알뜰서비스를 제공하는 식당주인이 있다. 그가 바로 연길시 수상시장 청향관의 리숙 경리( 48세)이다.“식당이라 하지만 영리성만 따진다면 그런대로 넘어갈수 있죠...
  • 2009-11-26
  • 국경 ‘보따리장수’서 조선족 제1의 거부로… 태양광발전소 협상차 방한 김춘학 中 금약그룹 회장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시 김춘학(46) 금약그룹 회장. 그는 한국 기업과의 협력 모색을 위해 한국을 자주 찾는다. 헤이룽장성 조선족 제1의 부자로 알려져 있는 그도 처음에는 중·...
  • 2009-11-25
  •  발해만의 “선장”으로 거듭난 사나이 ㅡ대련우련선무대리유한회사 김광일대표 창업기국경 60주년 및 “중조친선의 해”를 맞아 대련우련선무대리유한회사 대표 김광일(41)씨의 야심은 발발하다. 발해만을 근거지로 조선의 광물자원해운사업에 10여년을 매진해온 그는 요즘들어 조선의 항만...
  • 2009-11-24
  • 칼럼을 통해 조선족사회 제반에 대해 바른 말, 쓴 말을 많이 하여 직통배기교수로 유명한 정인갑교수(62)를 만난것은 지난 11월 8일 저녁무렵, 북경 망경부근의 조선족음식점에서였다. 마침 일요일이여서 협회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다녀왔다는 등산복차림의 정인갑교수는 재작년에 정년퇴직한 분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 2009-11-24
  • 중국조선족 제반 사업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 원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 고 주덕해선생 회고■ 호요방: 주덕해동지의 서거소식을 들은 모택동주석과 주은래총리는 《그는 훌륭한 동지였다》고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구 인민정부(연변조선족자치주의 전신)가 성립,  주덕해가...
  • 2009-11-24
  • 내몽골초원에 핀 아름다운 진달래 내몽고자치구 아영기 신발조선족향 향장 윤창길을 만나본다윤창길 프로필: 1964년 출생, 내몽고자치구 아영기 나지툰 제2중학교 졸업; 1982년-1985년 중국인민행방군 51312부대 복역 , 입당 1986년-2001년 아영기인민법원에서 사업, ; 2001년부터 지금까지 아영기 신발조선족향 대리향...
  • 2009-11-23
  • 박성국-마약사범을 벌벌 떨게 한 조선족경찰관천안문광장에서 서로 만나 반갑게 인사하는 조선족경찰을 본 관객이 깜짝 놀라 《천안문광장에 연변의 경찰까지 동원되였나?》하고 말해 주위를 웃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재 북경시에 조선족경찰이 20여명 있는데 지난해에 이들중 13명이 뜻깊은 만남의 장을 가졌다고 ...
  • 2009-11-20
  •  산림개혁의 선두주자 박희춘 우리 성 산림개혁의 모델 제공신빈만족자치현 현임 환경보호국국장 박희춘씨가 신빈현 북사평향 당위서기 재임기간 실시한 “집체림 개인관리소유제”를 골자로 한 산림개혁이 전 무순시에 보급되고 우리 성은 물론 길림성의 부분 시에서도 실시돼 명실공히 산림개혁의 모...
  • 2009-11-20
  • 중국에서 의대 교수가 된 조선족 교포, 신종성 교수님20년 전 연변에서 열린 고려의학회. 우연히 참석한 이 학회에서 한국의 비뇨기과 높은 수준을 보고 무작정 한국 유학길을 택한 조선족 교포 출신의 중국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8년간의 힘든 유학 생활 후 북경의과대학의 비뇨기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 2009-11-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