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백의 영웅 리화림녀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월12일 08시51분    조회:867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편집자의 말 :  금년은 조선족로홍군이며 항일투사인 리화림녀사의 서거 10주년이 되는 해이다.(리화림녀사의 서거소식은 본지 1999년 2월 13일자에 보도된바 있다.) 리화림은 생전에 대련시의 유일한 로홍군으로 그의 일생은 혁명적일생이며 전투적일생이였다. 그는 당에 충직하고 인민에게 충직하였으며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위하여, 공산주의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생의 정력을 바쳐왔다. 그는 조선족으로서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도 조선족을 잊지 않고 전 재산인 5만원을 원 려대경비구 련락부 부부장인 김도영씨를 통해 대련시조선족학교에 기부하였다.

  그의 서거 10주년을 맞으며 본지는 리화림녀사의 생전 사진 몇폭을 게재하면서 그의 생평을 기리고 단편적으로나마 조선족의 혁명전통과 혁명력사를 되새겨보는것은 단순한 시간적인 공간을 뛰여넘어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전통과 정신을 후세들에게 이어줄수 있다는데서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교양적가치가 있지 않을가 한다. 참고로 그의 전기적생애는 본지 2003년 11월에 “투사 리화림의 한생 겨레가 잊을수 없는 한 녀인”이라는 제목으로 련재된바 있다.

 

리화림은 대련에 있는 유일한 조선족 로홍군이며 항일투사이다.

  리화림은 1905년 1월 6일 평양의 한 애국자가정에서 태여났다. 열네살때 “3??”운동에 참가했으며 스무살때 “조선공산당”에 가입했다.

  1930년에 민족해방의 길을 찾아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온 리화림녀사는 상해에서 김두봉의 알선으로 “한국림시정부” 주석 김구(백범)가 령도하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1932년, 한인애국단은 두차례 큰 테러작전으로 침략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세인을 놀래웠다. 1월 8일에는 리봉창의사가 입고다니는 “훈도시”에 작탄 두개를 감추어가지고 왜놈의 소굴 도꾜로 건너가서 일본천황 히로히도를 요격하여 혼비백산시킨바 있는데 당시 김구의 명을 받고 리봉창의사의 그 특제 “훈도시”를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리화림녀사이다. 4월 29일, 일본천황 생일날 윤봉길의사가 상해에서 일본인들이 소위 저들의 상해공략승리를 경축하는 홍구공원의 회의장에 들어가 사열단에 폭탄을 던져 시라가와대장 등 수십명을 사상시켰는데 리화림은 홍구공원사건을 앞두고 윤봉길의사와 같이 공원으로 사전의 정탐을 나간바 있다.

  그는 1932년 가을 광주로 가서 중산대학 의학원 부속병원에서 견습간호원으로 일하면서 방청생으로 공부하였고 1935년에는 중경으로 철퇴하였으며 이듬해 3월에 또 “조선의용대”본부가 있는 계림으로 갔다.

  국민당이 소극적으로 항일하는 형세하에 조선의용대는 팔로군의 항일근거지로 가야만 전도가 있다는 견해로 합치되여 1941년 7월 적의 겹겹한 봉쇄선을 뚫고 태항산근거지로 갔다. 근거지생활은 간고하였고 적들의 진절머리나는 소탕속에서 전사들은 군사훈련도 하고 정치문화학습도 하였다. 당시 의용군부녀대 대장 겸 의사로 있은 리화림도 사회과학원 간부양성반에서 반년동안 배우면서 전투생활을 하였다.

  1943년 12월 30일 “조선의용군”이 태항산에서 내려와 혁명의 성지 연안으로 갔다. 리화림은 연안에서 렬화충천하는 대생산운동에도 참가하고 군정대학 교장 수하에서 자료간사사업도 하였으며 조선의용군 무정총사령의 파견을 받고 중국의과대학에서 공부도 하였다. 1945년 1월, 나이가 많은 그는 여덟살이나 줄이고 의과대학 20기 학원으로 입학한 그는 일심으로 공부에 전력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왜놈이 무조건 투항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기쁨에 옷깃을 적시였다.

  리화림은 1946년 11월 21일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그후 그는 국내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시기 가렬처절한 포화속에서 부상병을 구하느라 땀도 흘리고 피도 흘렸으며 전후에는 새중국 의료보건사업에 정력을 몰부었다.

  1952년 와방점(崑렛듦) 후방병원 기술과 과장으로, 심양의사학교 부교장으로, 국가교통부 위생처 기술과장으로 일하였으며 1956년 중앙당학교를 졸업하고는 연변위생학교 교장, 연변조선족자치주 위생처 부처장, 위생국 부국장으로 일하였다. 문화대혁명시기 억울한 루명을 쓰고 별의별 박해를 다 받다가 1978년에 중앙조직부의 도움으로 애매한 루명을 벗고 연변자치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 기관당위 상무위원으로 있었고 대련시정부시찰원, 대련시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으로 활약하였다.

  무정한 세월에 인생길은 저물었어도 혁명에 바친 리화림녀사의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어 1984년에 리직휴양한 뒤에도 나라사업에 열성을 다하였다.   리화림은 사람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소박한 가장집물에 1950년대부터 입어오던 옷을 입어가면서 아껴먹고 아껴써서 알뜰히 모은 로임 2만여원을 1985년 한번에 당비로 바쳤으며 1986년에는 아동작품작가들을 장려하고 복리사업에 쓰도록 1만2천여원을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아동문학상기금회에 기부하였다.

  1999년 2월 10일 14:30분에 리화림녀사는 95세의 년세로 대련에서 서거하였다. 리화림은 림종전에 자기의 전재산인 5만원을 대련시조선족학교에 기부하겠다는 유서를 남기였다. 후에 김도영부장이 유서대로 5만원을 대련시조선족학교에 전하였다.

  “물 마실 때 우물 판 사람을 잊지 말라”고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한생을 분투하여온 리화림의 빛나는 생애는 우리 민족의 자랑과 긍지이며 우리가 평생 본보기로 배우고 기념해야 할 분이다.
 

1955년부터 1956년 7월까지 중공중앙당교에서 학습할 때 동학들과 기념사진을 찍고있는 리화림(중간).

1962년 리정(중간사람)장군이 연안에서 사업시찰할 때 함께 찍은 사진. 오른쪽으로 두번째가 리화림녀사. 당시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위생국 부국장임.

1982년 리화림녀사는 대련시 조선족 인대대표, 정협위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리화림녀사가 그의 축수를 위해 온 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리화림녀사는 사회주의건설에 적극 참가하였다. 사진은 식수활동에 참가하고있는 리화림.

∧ 1989년 10월 8일 대련시로년절 1주년기념활동에 참가한 리화림녀사가 김도영회장(왼쪽)과 함께 조선의용군행진곡 가사를 읽고있다.

인터넷료녕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근년들어 도문시의 교육은 전 주, 나아가서 전 성적으로도 충분한 인정을 받고있을뿐만아니라 인민군중의 긍정을 받고있다. 도문시의 교육이 이같은 승전고를 울릴수 있은데는 실정을 실사구시하게 파악, 분석하고 개혁의 좌표를 면바로 정해 파격적으로 사업을 내민 도문시교육국 김춘옥국장의 사업담략과 패기, 넘치는 열...
  • 2007-10-26
  • 글을 쓰려고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운다. 2007년10월16일 새벽4시50분, 연변의 웃음의 설계사 최인호는 뇌출혈로 고별하셨다. 향년 61세이다. 세상 뜨시기전 닷새전 나는 우연히 거리에서 최연출님을 만났다. 당금 점심시간이라 나는 식사하러 가자고 청들었다. 《지금 낚시협회 동료들이 차에 앉아 기다린다》고 하면서 다...
  • 2007-10-26
  • 올해 9월 새학기를 맞으며 림금순(47세)은 룡정시룡정실험소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였다. 25년간 그녀는 학급담임교원으로부터 교도주임, 부교장 등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온 교육자이며 수많은 우수교원과 학생들을 양성해낸 원예사이며 또 지구급, 성급, 국가급 영예들이 수두룩한 모범인물이다. 그녀 사전에는 《락후생》 《...
  • 2007-10-25
  • 청도 성양구에서 투자자문, 부동산개발 및 분양대리, 중개업소 인터넷개발사업에 진력하고있는 최대 부동산정보업체인 월드부동산을 이끌고 나가는 두 조선족 젊은이가 있다.  그들이 바로 양선모(24살)사장과 박학룡(24살)리사이다. 양사장과 박리사는 처음부터 부동산과 인연을 맺었던것은 아니였다. 리공학을 ...
  • 2007-10-24
  • 《중국은 저의 제2고향입니다…》 해마다 중국땅을 넘나들며 중국조선족청소년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면서 중국을 《제2고향》으로 간주하던 민홍기회장(72세, 중국조선족청소년장학회 회장)이 2년만에 또다시 중국땅을 밟았다. 지난해 1월, 심한 뇌경색으로 병상에 누워있으면서도 중국조선족청소년들에 대한 사...
  • 2007-10-24
  • 엄선된 량질콩에 남산지하수를 사용하고 서슬로 초를 뿌려 두부를 앗으면 구수한 전통입맛을 떠올리게 하는 재래식 남산두부가 만들어진다. 연길시장 곳곳에서 찾아볼수있는 남산두부는 크기부터 넉넉하고 하들하들하여 먹음직하고 군침이 돈다. 연변에서 가장 일찌기 규모화 두부생산기업을 꾸리고 《남산두부》라는 두부브...
  • 2007-10-23
  • 어제날 조선족촌의 빈곤한 농민의 아들 오늘날 경뇨도전립선절제술의 선두주자 현재 할빈의과대학 제2부속병원 비뇨기외과에서 활약하고 있는 리철훈(李哲勋,45세)의사는 뛰여난 의술과 후한 인심으로 의사와 환자들가운데서 인기가 많다. 1963년에 녕안시 향수촌의 평범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리의사는 1985년 녕안...
  • 2007-10-19
  • 연길시조선족문화예술중심 국가1급연주원 박미화는 당시 옥류금과의 만남이 실로 뜻밖이여서 꿈만 같았다고 한다. 1979년, 전 주 중학생음악콩클이 연길에서 있었다. 당시 왕청현의 한 중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한편 가야금을 열심히 익힌 박미화는 콩클에서 그간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당연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 2007-10-19
  • 지난 9월 13일 저녁, 은천시 녕하회족자치구대회당, 샨데리야불빛이 휘황한 장내는 우리 나라 소수민족구연예술의 축제한마당이였다. 제3회전국소수민족구연콩클시상식이 바로 이곳에서 거행되는것이다. 저명한 가수 장대위(蒋大为)가 수상자명단을 공포했다. 장대위가 《최우수배우상 세번째분, 조선족 장미...
  • 2007-10-19
  • 중국 최대 자동차부품생산기지의 하나인 장춘시에 신용과 기술력을 밑바탕으로 동업계의 선두를 향해 달리고있는 한 자동차부품생산업체가 있다. 장춘시동원플라스틱자동차부품공장, 이 회사는 조선족 기업가 최석원(58세)공장장이 1994년에 4만원의 종자돈으로 손수 일떠세운 회사로서 지금 장춘제1자동차그룹에서 생산되는...
  • 2007-10-1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