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홍상표-벼재배 오리농법의 선두주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월3일 20시09분    조회:990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오리농법의 선두주자 건강식품의 주창자 
 

—'전국농촌우수인재' 홍상표씨를 적으며 

 

'이제 우리 조선족농민들의 벼농사는 유기농법, 오리농법의 재배를 토대로 록색식품, 건강식품의 생산으로 한차원 올라서야 합니다.' 최근  '전국농촌우수인재' 영예를 따낸 탕원현 탕왕조선족향 금성촌의 홍상표(63세)농민이 스스로의 45년간의 벼재배경력을 총화하듯이 한 말이다.

 

2006년 6월 8일 흑룡강 오리농법의 선두주자인 홍상표가 '오리농법현판식'에서 오리를 논에 풀어놓고 있다. /자료사진

고중을 졸업한후 45년간 시종 고향에서 벼농사에 몸담아온 홍상표농민이 전통농업에서 현대농업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것은 아마 1996년부터일이다. 그해 흑룡강성과학위원회의 비준으로 그는 '홍남벼개발연구소'라는 민영과학기술기업을 설립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20여개 벼품종을 배육, 보급하였는데 그런 와중에 새농약과 생물유기비료 실험시범, 선진재배기술 시험도입, 다수확관 돌파 등 면에서 특출한 기여를 하였다.

 

지난세기 90년대초부터 지금까지 그는 해마다 탕왕조선족향의 촌들을 다니며 벼재배 새기술을 강의해주어 향의 벼농사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나이 이미 륙순을 넘어섰지만 홍상표농민은 지금도 매일 날이 희붐히 밝으면 자전거를 타고 포전으로 나가 촌민들의 의문사항을 풀어주고 문제를 발견하고 '처방'을 내여준다.

 

그리하여 많은 농민들이 그에게 달아준 '농민기사'라는 별호는 결국 그를 흑룡강성10대농민기사 명록에 올려주었으며 그때로부터 성로력모범, 성농업과학기술선진사업자 칭호가 따라다녔다.

 

흑룡강성유기벼협회 회장직을 맡은후 그의 주창하에 전성 각 수전지구 향촌간부와 농민기술원들이 참여한 벼생태유기기술연구토론회가 진행되였는데 직접 국내와 한국의 이름있는 벼전문가들을 초청하여 벼재배를 고차원으로 이끄는 면에서 많은 귀감을 쌓았다.

 

무공해, 무오염의 건강식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홍상표농민이 다년간 지향해온 과제였다. 자지방에서 다수확, 우질, 고효의 순수유기쌀을 재배해내는 농업현대화의 새길을 열어보기 위해 2003년에 그는 한국으로부터 '오리농법'을 도입하였다.

 

'오리농법'은 화학비료,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자급비료와 생물유기비료만을 사용하는데 오리의 왕성한 잡식성과 부지런한 활동으로 벼포전의 잡초, 해충을 제거하고 토양을 '후치질'로 식물그루의 분얼을 자극해주고  논을 걸게 만들어주어 순자연의 벼쌀을 키워낸다. 그리하여 '오리농법'은 자원절약형, 환경우호농업의 길동무로 불리운다.

 

홍상표는 '오리농법'을 인입한후 련속 5년간 실험하여 기꺼운 성과를 거두었다. 2004년에 4헥타르에 오리를 1000마리, 2005년에 5헥타르에 오리를 1000마리를 넣으면서 부동한 과제의 시험을 진행하였는데 2005년에 오리농법을 도입한 2헥타르에서 순소득 10만원을 뽑았다. 쌀 1킬로에 20원! 당시로서는 대단한 일이였다. 따라서 그가 재배해낸 '탕왕오리쌀'은 그해 3월에 인차 상표가 등록되여  그에게 커다란 리윤공간을 마련해주었다. 현재 '탕왕오리쌀'은 이미 북경, 상해, 할빈, 대경 등지로 널리 판매되고있다.

 

2007년에는 스스로 13헥타르를 다룰뿐아니라 본향과 주변 향진의 일부 농호들을 '오리농법'으로 이끌어 지난해 8월말에 국가외국전문가국이 주관하고 성인사청, 가목사인민정부와 성외국전문가국이 주최하여 '삼북'(동북, 서북, 화북) 14개 성(시)의 전문가, 학자 400여명이 홍상표의 '탕왕오리쌀'재배기지를 참관, 지도했다. 당시 그들은 '오리농법'기술의 보급응용은 벼재배사상의 제2차 혁명이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2006년 흑룡강성유기벼협회를 발족하여 회장직을 맡아서부터는 전성의 대소 수전현들을 편답하며 홍보하여 현재 탕원, 해림, 계동, 아성, 오상, 연수, 화천, 방정 등 현에서 유기벼재배기지가 초보적으로 형성되였다. 전성의 '오리농법'재배면적도 3000무로 늘어났다.

 

지금 그의 사고는 앞으로 '벼겨제초법', '우렁이제초법', '메기제초법' 등의 보급에로 무르익어가고있다. 한편 유기농업의 산업화를 념두에 두고 자신이 먼저 탕왕향과 할빈에 쌀가공공장을 조업하는것을 첫포로 조만간에 유기농들을 묶어세워 선진적인 재배, 가공, 류통기제를 축성하고 자체의 홈페이지도 개통하여 도시와 농촌을 잇는 판매시장망을 열뿐만아니라 나중에 가서는 해외시장도 노크할 전망이다.

 

흑룡강신문 김태산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쓸쓸한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려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시작은 텔레비전용 다큐멘터리였다. 중국 옌볜에서 양팔이 없는 지체장애인 최금호씨를 사계절 따라다니며 카메라에 담았다. 방송은 반응이 좋았지만 김광호 감독은 더 인간적인 모습을 담고 싶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다큐멘터리에서 ...
  • 2008-07-04
  • 창립 4주년맞은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 대표 김해성 목사 ‘크레파스와 물감에 살색을 없애야....’ -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료진료 제공“감사하고 또 눈물이 납니다”국내에 하나뿐인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에서 만난 중국 심양이 고향인 김혜숙(52, 여)씨.김씨는 한국에 건너와 애기를 돌...
  • 2008-07-04
  • —현장총지휘 리종환씨를 만나 온몸으로 열심히 지휘하는 리종환씨,  그의 지휘하에 1만명도 훨씬 넘는 무용배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리종환씨는 이번에 자원봉사자로 나서 현장총지휘를 맡게 되였다. 연변군중예술관 부관장으로 대형행사때마다 총연출의 중임을 떠메였던 리종환씨는 퇴직한 몸이지...
  • 2008-06-29
  • 목단강지구 문과장원 - 외교관이 되고싶어요 대학입시 시험에서 659점의 성적, 흑룡강성 문과 장원의 663점 보다 4점이 떨어지는 성적을 따낸 해림시조선족중학교 고3-2반의 남홍옥학생이 목단강지구 문과 장원석에 올랐다. 《어제 저녁 동창들로부터 저의 시험성적을 알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위해 기뻐 했는데...
  • 2008-06-28
  • 환자의 아픔은 곧 의사의 아픔입니다연변대학병원 중의과 김향숙주임의 진찰권을 떼려면 새벽부터 줄을 서 기다려야 겨우 뗄수 있다고 한다. 진찰권이 긴장하다는것은 그만큼 의술이 높아 환자량이 많음을 의미하지만 김향숙주임의사는 "환자들이 병원의 지명도를 보고 찾아온것이지 저 개인을 보고 온것이 아닙니다&q...
  • 2008-06-27
  • 《떼떼부부》가 며느리를 보게 되였다. 즉 《작은 떼떼》가 사귀는 녀자친구를 데리고 부모님께 인사시키러 온다. 그런데 귀가 어두운 어머니는 며느리감을 보고 왕청같은 말들을 늘여놓고 눈이 어두운 아버지는 며느리감을 보고 말한다는것이 로친한테 대고 말한다. 그래서 김광철은 난처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사리밝고 례...
  • 2008-06-15
  • 2년에 국가특허발명 5건 농민발명가 천해룡(53세)씨는 다년간 모색과 연구끝에 지난해와 올 상반년짧은 2년여 기간 ‘다기능 비누곽’, ‘정량분유채취기’ 등 국가발명특허를 3건 획득하고 2건은 현재 신청 출원중에 있다. 흑룡강성 오상시 광휘향의 조선족 농민 천해룡씨는 지난해 5월 ‘다기능...
  • 2008-06-14
  • 박민자 연변가정연구소 소장 통일의 밑거름으로 조선족 활용 기대  “조선족의 중국 이민정착사는 150년이다. 만주 땅을 개간하고 중국을 건설하는데 기여하여 당당한 중국국민의 위치를 확보했다. 하지만 중국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산업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중국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코리안드...
  • 2008-06-13
  • "의사는 무엇보다도 책임감이 있어야 하고 또 배운 리론지식과 실제경험들을 관통시켜야만이 진단의 정확률을 높일수 있다"고 늘 얘기하는  연변대학병원 소화내과 주임 박희서는 시골 아저씨와도 같은 소박하고도 편안한 인상을 주었다. 평소 환자를 진찰하거나 제자들에게 지식을 전수할 때도 항상 차근차...
  • 2008-06-13
  • 중국관계자 중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지난 두 차례의 한중올스타전 때 중국 올스타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방복순(69) 통역이었다. 방 통역의 한국과 인연은 벌써 18년이 넘어간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는 되지 않았지만, 스포츠 교류는 있었던 90년 김학영 국제심판과 중국인 심판의 가교 역할을 맡은 것을 계기로 ...
  • 2008-06-1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