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불굴의 혁명가 걸출한 교육가 림민호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8월26일 13시19분    조회:803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림민호선생은 중국조선족의 불굴의 혁명가이며 걸출한 교육가이며 중국조선족 대학교육의 요람인 연변대학 초대 제1부교장이다.

연변대학교정의 정문에 들어서면 중앙도서관 동쪽화단중앙에 청동색 반신동상이 하나 서있다.  연변대학 초대교장 림민호선생의 동상이다.

동상을 받친 검정색 단 정면에는"림민호(1904-1970)"라고 새겨져있고 뒤면에는 다음과 같은 짧은 비문이 새겨져있다.

"림민호, 조선족, 중국공산당 당원, 1904년 조선 회령에서 태여났고 1923년에 혁명에 참가하였다. 모스크바 동방대학을 졸업했고 연변대학의 중요한 창건자의 한사람이며 처음으로 사업을 주관한 부교장이다.연변대학교직공과 졸업생. 1989년 4월 1일"

불굴의 혁명가 림민호선생은 어릴때부터 웅대한 포부를 지니고 룡정에 와 공부를 하였다. 그 계기는 바로 저명한 룡정3.13만세운동 당시 조무래기친구들과 함께 구경을 왔다가 천주교성당의 종루에서 종을 울리는 유명소년이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여기서 북간도청년운동의 선구자로 성장하였으며 1926년 1월에는 쏘련의 동방중심지 울라지보스또크에서 열린 고려공산청년회 중앙본부회의에도 참가하였다. 1926년 6월에는 조선공산당에 가입하고 1928년 9월부터 동아시아의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들을 위하여 전문 공산당간부를 양성하는 모스크바 동방대학에서 맑스—레닌주의 혁명리론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그후 그는 조선의 함흥에서 적색로동운동에 종사하였고 일본경찰에 체포되여 서울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40년에 풀려나 고향에 돌아왔다가 농사도 짓고 돈화림산작업소에 취직하기도 하였다. 1945년 일제의 투항을 맞게 되자 조직을 되찾아 그해 10월에 중국공산당에 참가하였다. 1946년에는 돈화현 부현장, 민주동맹 위원장에 피선되였고 10월에 연길에 와 《길림조선인민보》조문판 책임주필을 력임하기도 하였다.

림민호선생은 1948년 12월 연변대학교준비위원회 부주임으로 전근되면서 이때부터 연변대학의 창립사업을 총관하게 되였다. 1949연 3월 20일 연변대학이 창립되자 부교장 겸 당총지서기직을 맡고 일상 사무를 주관하면서 그후 20여년간 초창기 간고한 창업과 발전을 령도하였다. 그는 당의 교육방침을 참답게 관철하고 근검하게 연변대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육과 교수개혁을 단행하였고 연변대학정신을 수립하기 위하여 로심초사하면서 연변대학의 건설과 발전에 마멸할수 없는 기여를 하였다.

림민호선생은 인재양성에 십분 중시를 돌리고 항상 인재에 의거하여 대학교를 꾸려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국외류학, 국내연수 등 방식으로 수많은 교원골간을 양성하여 학교발전의 초석을 든든하게 다졌다. 그의 전략적안목과 "인재기본"의 건학리념은 오늘도 훌륭한 귀감으로 되고있다.

림민호선생은 초창기부터 시종 국내외교류와 합작에도 알힘을 넣었다. 그는 선후로 수많은 교원과 학생들을 조선의 김일성종합대학, 모스크바대학에 보내여 공부를 시키고 북경대학, 중국인민대학에 보내여 연수를 시켰다. 그리고 교류와 합작을 통하여 대학교경영의 보귀한 경험을 쌓았다. 그는 다년간의 대학교경영실천가운데서 우량한 건학전통을 개척하고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문화의 융합과 창조로 연변대학의 귀중한 정신적자산을 마련하였다.

장경률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일전 길림성 영길현 구전수리전업1국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직하였다는 김기영씨(71)가 불편한 몸으로 기자를 찾아왔다. 두툼한 자료봉투를 꺼내놓으며 털어놓는 사연인즉 독립군의감(醫監)출신인 부친 김환(金煥)의 독립투쟁경력이 해빛을 보게 해달라는것이였다. 본인의 조사자료와 한국, 연변대학 등지에서 수집한 문헌자료...
  • 2005-12-15
  • [원제: 동심에 살던 그 시절이 그리워] 일찍 중국선진생산자의 일원으로 중국군영회(群英會)에 참가하고 소수민족대표로 주은래 등 중앙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던 최윤복로인(76세)은 근 반세기가 지난 오늘이지만 그때의 그 영광이 새삼스럽기만 하단다. 최윤복은 1948년에 화룡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의 어린 나이에 화룡...
  • 2005-12-14
  • 중국 일류 대학생들의 선두인물 권정 김호림ㅣ중국국제방송국 기자 jinhulin@hanmail.net 권정(權靜), 그 이름에 사람들은 거개 생소함을 느낀다. 그러나 북경 대학입시 수석합격자라고 하면 대뜸 “아, 그 애 말이예요”하고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내밀군 한다. 북경에서는 2000년에 아주 드물게 2000년에 대학입시성적 성적...
  • 2005-12-14
  • [한겨레] 말총머리 휘날리며 날카롭게 상대를 쏘아보던 자오즈민. 2.5g짜리 탁구공 하나의 마술로 세계를 제패하며 중국 마녀군단의 선봉에 섰던 그는 1989년 한국 남자탁구 국가대표 안재형(41)과 결혼해 큰 화제를 뿌렸다. 한국과 중국이 적대국이었던 시절, 이 둘은 탁구를 통한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사랑’으로 모두...
  • 2005-12-10
  • 장백조선족자치현 십이도구진 십이도구촌의 리병권농민은 북오미자재배로 치부의 길을 개척하고있다. 올해 49세인 리병권농민은 2003년에 과전현 등지에 가 자비로 북오미자재배기술을 배운후 퇴경환림으로 지난해 촌의 42무에 달하는 다락밭을 도급맡았다. 그는 선후로 9만여원의 자금을 들여 외지로부터 당지 기후에 적합...
  • 2005-12-08
  • [원제:김부인모피복장회사 신장 개업] 조선족 기업가 최명철씨가 총경리를 맡고있는 김부인모피복장회사가 지난 2일 할빈 도외구에서 성대한 의식을 가지고 신장개업에 들어갔다. 40여년이란 오랜 력사를 가지고 있는 김부인모피복장회사는 최근 년간 미국, 한국, 일본 등 나라들을 비롯한 국내외 수십여개 모피복장유명회사...
  • 2005-12-08
  • 한 평범한 가정주부가 연구 발명해낸 “일종 대퇴골괴사치료약물 및 그 제법”이 국가발명특허를 따내여 린근의 주의를 끌고 있다. 훈춘시에 거주하고있는 김영자(50세)는 다년간의 투병중 꾸준히 병마와 싸워가며 자기 몸을 제1실험실로 삼아 마침내 국가특허약물을 연구발명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18살 꽃나이시절에 그...
  • 2005-12-08
  • 가렬처절한 조국해방전쟁에서 두손을 잃었으나 《이 생명 다할때까지 혁명하겠다》는 호언을 남겼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퇴역해 한생을 묵묵히 농업생산에 종사한 이가 있다. 그가 바로 전국군인모범으로 주덕, 주은래의 접견을 받았던 리수봉(78세)로인. 유소년시절부터 심양, 할빈 등 지를 류리걸식하던 리수봉씨는 1945년...
  • 2005-12-07
  • 우리 민족이 북방지역 벼재배력사를 개척한지 120여년이 되는데 그동안 북방입쌀 생산, 발전에 불후의 기여를 하고 많은 시대적과학기술일군을 배태시켰다. 20세기말 특히는 시장경제가 활성화하여 입쌀미질경쟁이 치렬할 때 국가특수대우향수자이며 길림성농업과학원 김윤주(지금 김심인이라 부름)연구원은 세계에서 처음으...
  • 2005-12-06
  • 12월 4일 제5차 《전국법제선전일》을 맞으며 2005년 《년도10대법제인물》 평선결과가 발표되였다. 이들로는 허문유: 료녕성공안청 형사정찰총대 대장 형사경찰의 본보기. 동려화: 공익변호사 약자의 권익 수호자. 진건교: 호남성인대 대표 마음은 언제나 민중과 함께. 중국법률원조기금회: 약세군체를 위해 소송을 걸고 자...
  • 2005-12-0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