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8월12일 09시57분    조회:673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 “윤정석소년아동문화재단리사장 윤진씨 

 

아버지의 생전숙원을 이어 그 첫 발자욱을 뗀것 같아 기쁜 마음입니다

2회 윤정석아동문학상 시상식 참가차로 일본의 현해탄을 날아 연변으로 온 윤진씨는 평생을 아이들을 위해 혼신을 바쳐온 아버지- 윤정석선생의 뜻을 이어나가련다고 그 의지를 내비쳤다

윤정석선생은 조선족 어린이잡지, 어린이신문, 어린이방송은 물론 동극, 동요, 동시, 아동소설, 동화를 망라한 아동문학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한 저명한 청소년언론이며 아동문학가이다.

올해 2회째를 맞고있는 윤정석아동문학상은 고 윤정석선생의 이름으로 명명되여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선생의 문학정신을 발양하며 새 세기 조선족아동문학을 더욱 높은 차원에로 끌어올리는데 그 취지를 두고있다

윤정석 선생의 장남인 윤진씨는 어려서 성악을 배워 도문시가무단에 입단, 무대에 섰다가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입시를 보고 연변대학에 입학했다. 졸업후 연변대학 외국어학부에서 몇년간 교편을 잡고있다가 1989년 일본으로 출국했다.

원체 자비로 류학공부를 할 예정이였으나 당지의 모 식품회사의 사장이 그의 순발력을 보아내고 굳이 회사사업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을 내밀었다. 망설임끝에 그분의 요청을 수락하고 식품업을 주로 하는 그 회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식품회사에서 5년여 몸담그고 있다가 회사에서 나온 그는 자신의 손으로 창업해볼 새로운 타산을 뼈물렀다. 지금의 일본사회에는 재일교포 64만여명, 그중 연변에서 간 이들만도 5천여명이 되지만 10여년전의 일본한인사회에서 중국에서 건너온 한 조선족인이 회사를 차린다는것은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말을 빈다면 처음에는 겨우 손바닥만한 회사를 차리고 이국에서의 창업의 첫 보조를 밟았다. 작은 회사인지라 고용일군도 달랑 한명을 두고 집은 오사까에 있으면서 교도에 터를 잡은 회사로 출근해야하는 창업의 길은 고단했다

식품 전반을 아우르는 그의 신명(信明)상사는 그렇게 창업을 시작해서 10년의 간거한 창업을 거쳐 이제는 도꾜, 나고야, 후꾸오까 등지 그리고 중국의 대련, 상해등지에도 지사를 가진 일정한 규모의 주식회사로 발전했다.

일본에서 간거하게 창업하면서 일본녀인과 만나 아들 두명도 보았고 중국에서 데리고 간 맏딸애는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아 일본의 유명한 레코드회사인 에이페크회사에 뽑혀 가수의 길을 걷고있다

적수성가(赤手成家)로 일떠서 가정도 행복하고 회사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일본에서의 생활에 적응되여 갔지만 윤진리사장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응어리진 덩이가 하나 남아있었다. 바로 아버지가 생전에 늘 내비쳤던 숙원이였다

윤진씨는 어려서 아버지가 문화대혁명의 동란속에 옥고를 치를때 밥을 나르며 옥바라지를 했을정도로 아버지와의 감정이 깊었다. 당시 힘들어 하셨던 아버지가 옥생각을 품을가 밥을 전해줄때면 아버지의 기색부터 읽었다는 윤진씨다. 아버지가 안도 만보로 개조를 내려갔을때도 가족과 함께 내려가 전기도 들어오지않는 그곳에서 3년여를 보내며 어린나이에 아버지와 함께 땔나무를 하러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윤진씨의 인상속에 아버지는 말쑤가 적고 무뚝뚝하신 분이였다. “아버지는 늘 창가에 앉아 말없이 줄담배를 피워물고 무엇인가 고민하는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어릴적에는 아버지가 지으신 노래를 주변의 아이들이 너나없이 부르기에 그저 글쓰는 이로만 알아오셨던 아버지, 작가로서의 언론인으로서의 지조를 지키고자 절필까지 하신 아버지가 당시 얼마나 어려운 큰 산을 넘어오셨는지 이제야 알듯하다는 윤진씨다

간혹 명절이 맞띄워 윤진씨가 귀국하면 모여 앉은 자리에서 아버지는 장남의 손을 잡고 이제 회사가 조금이라도 번창해지면 연변을 위해,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힘이 될만한 일을 좀 해달라고 여러번이나 당부하셨다. 아버지는 년세가 들어갈수록 이전에는 당시 상황의 제한으로 많은 일들을 펼치지 못했다면서 그로서 애석해 하곤했다. 아버지의 이 간절한 당부를 윤진씨는 잊지 않았고 마음에 깊이 새겨두고 있었던것이다

하여 귀국의 기회를 타서 그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유익한 일을 찾으려 행동반경을 구하던중 전 중국조선족소년보 사장이며 현임 연변청소년진흥회 회장인 한석윤선생을 만난것이였다. 뜻이 맞았던 두 사람은 재빨리 의기투합되였다. 윤진씨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명명한 아동문학상을 설치하고 매년 40만엔을 기부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로서 윤정석 아동문학상이 아버지가 타계하신 15년만에 그이의 탄생일을 맞아 드디여 세상에 고고성을 올린것이였다.

비록 윤진리사장의 사업체가 일정한 규모를 보이고있지만 구라파, 동남아 지역의 유명 식품업체가 시장을 충격하고 올 년초 중국과 일본사이의 랭동교자사건을 거치면서 일본의 식품업체는 간거한 일로를 걷고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더라도 아버지의 이름과 뜻을 이어 윤정석 아동문학상을 조선족 아동문학의 비전을 위한 큰 상으로 키워나가겠다고 윤진리사장은 굳은 결의를 보여주고있다.

 


본사기자
 

"종합신문"08/7/12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근년들어 도문시의 교육은 전 주, 나아가서 전 성적으로도 충분한 인정을 받고있을뿐만아니라 인민군중의 긍정을 받고있다. 도문시의 교육이 이같은 승전고를 울릴수 있은데는 실정을 실사구시하게 파악, 분석하고 개혁의 좌표를 면바로 정해 파격적으로 사업을 내민 도문시교육국 김춘옥국장의 사업담략과 패기, 넘치는 열...
  • 2007-10-26
  • 글을 쓰려고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운다. 2007년10월16일 새벽4시50분, 연변의 웃음의 설계사 최인호는 뇌출혈로 고별하셨다. 향년 61세이다. 세상 뜨시기전 닷새전 나는 우연히 거리에서 최연출님을 만났다. 당금 점심시간이라 나는 식사하러 가자고 청들었다. 《지금 낚시협회 동료들이 차에 앉아 기다린다》고 하면서 다...
  • 2007-10-26
  • 올해 9월 새학기를 맞으며 림금순(47세)은 룡정시룡정실험소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였다. 25년간 그녀는 학급담임교원으로부터 교도주임, 부교장 등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온 교육자이며 수많은 우수교원과 학생들을 양성해낸 원예사이며 또 지구급, 성급, 국가급 영예들이 수두룩한 모범인물이다. 그녀 사전에는 《락후생》 《...
  • 2007-10-25
  • 청도 성양구에서 투자자문, 부동산개발 및 분양대리, 중개업소 인터넷개발사업에 진력하고있는 최대 부동산정보업체인 월드부동산을 이끌고 나가는 두 조선족 젊은이가 있다.  그들이 바로 양선모(24살)사장과 박학룡(24살)리사이다. 양사장과 박리사는 처음부터 부동산과 인연을 맺었던것은 아니였다. 리공학을 ...
  • 2007-10-24
  • 《중국은 저의 제2고향입니다…》 해마다 중국땅을 넘나들며 중국조선족청소년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베풀면서 중국을 《제2고향》으로 간주하던 민홍기회장(72세, 중국조선족청소년장학회 회장)이 2년만에 또다시 중국땅을 밟았다. 지난해 1월, 심한 뇌경색으로 병상에 누워있으면서도 중국조선족청소년들에 대한 사...
  • 2007-10-24
  • 엄선된 량질콩에 남산지하수를 사용하고 서슬로 초를 뿌려 두부를 앗으면 구수한 전통입맛을 떠올리게 하는 재래식 남산두부가 만들어진다. 연길시장 곳곳에서 찾아볼수있는 남산두부는 크기부터 넉넉하고 하들하들하여 먹음직하고 군침이 돈다. 연변에서 가장 일찌기 규모화 두부생산기업을 꾸리고 《남산두부》라는 두부브...
  • 2007-10-23
  • 어제날 조선족촌의 빈곤한 농민의 아들 오늘날 경뇨도전립선절제술의 선두주자 현재 할빈의과대학 제2부속병원 비뇨기외과에서 활약하고 있는 리철훈(李哲勋,45세)의사는 뛰여난 의술과 후한 인심으로 의사와 환자들가운데서 인기가 많다. 1963년에 녕안시 향수촌의 평범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난 리의사는 1985년 녕안...
  • 2007-10-19
  • 연길시조선족문화예술중심 국가1급연주원 박미화는 당시 옥류금과의 만남이 실로 뜻밖이여서 꿈만 같았다고 한다. 1979년, 전 주 중학생음악콩클이 연길에서 있었다. 당시 왕청현의 한 중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한편 가야금을 열심히 익힌 박미화는 콩클에서 그간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당연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 2007-10-19
  • 지난 9월 13일 저녁, 은천시 녕하회족자치구대회당, 샨데리야불빛이 휘황한 장내는 우리 나라 소수민족구연예술의 축제한마당이였다. 제3회전국소수민족구연콩클시상식이 바로 이곳에서 거행되는것이다. 저명한 가수 장대위(蒋大为)가 수상자명단을 공포했다. 장대위가 《최우수배우상 세번째분, 조선족 장미...
  • 2007-10-19
  • 중국 최대 자동차부품생산기지의 하나인 장춘시에 신용과 기술력을 밑바탕으로 동업계의 선두를 향해 달리고있는 한 자동차부품생산업체가 있다. 장춘시동원플라스틱자동차부품공장, 이 회사는 조선족 기업가 최석원(58세)공장장이 1994년에 4만원의 종자돈으로 손수 일떠세운 회사로서 지금 장춘제1자동차그룹에서 생산되는...
  • 2007-10-1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