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학교예술교육에 땀을 쏟는 정열의 교원-임창범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08년5월2일 06시06분    조회:1094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룡정고중 임창범교원의 24년의 예술지도사업 성과 주렁

성시범보통고중(우리 주 4개)인 룡정고중은 예술교육에서 주렁진 성과를 따내 명성을 떨치고있다. 이 학교 예술교육이 이같이 명성을 떨칠수 있은데는 학교지도부의 현명한 교육리념과 적극적인 지지외에 다년간 예술지도에 혼신을 쏟는 정열의 사나이 임창범교원의 피와 땀이 흥건히 슴배여있다.

성예술교육선진일군, 제1, 2차 전국중소학생예술전시공연 우수지도상의 영예를 안고 중국조선족명인록에 수록되였고 성음악과골간교원으로 활약하는 임창범교원은 언제나 자신의 영예보다 우리 민족의 예술을 사랑하고 이어가려는 제자들이 있어 너무 자랑스럽다며 긍지에 차 말한다. 현재 연변관중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함미자가수도 임창범교원이 다년간 알심들여 가르쳐온 자랑스러운 제자이다.

룡정시 삼합진에서 태여난 그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남다른 흥취를 가졌던 임창범교원은 소학교 때 우연한 기회에 연변음악계의 원로 허세록선생을 알게 되여 스승으로 모시고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였는데 그는 그때로부터 음악의 세계에 함뿍 빠져들었다. 작은 동네에 바이올린소리가 밤늦도록 울려퍼져 동네사람들의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그는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듯 쉼없이 련습했고 꼭 성공하고야 말리라 강한 의욕을 불태웠다.

1983년, 임창범교원은 한껏 부푼 꿈을 안고 음악교원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음악과가 주요과목이 아니여서 학교나 학부모들이 중시하지 않았고 학생들도 별로 흥취를 느끼지 않는 현실이 싸늘하게 그를 맞아주었다. 잠시 고민하고 방황했지만 그는 인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학생들의 흥취를 불러일으키는데로부터 착수하여 교수안을 주밀하게 짜고 특히 특장생발굴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입이 닳도록 예술교육의 중요성, 전면발전의 중요성, 예술특장생의 우세를 설명했고 학생지도에 혼신의 정력을 쏟았다. 그가 지도한 학생들이 각종 경연에서 줄줄이 상을 타오고 그의 교수가 인정을 받자 학생과 학부모들도 차츰 그를 신임하고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였다.

룡정시 신안소학교, 제5중학교에서 사업하는 기간 그는 학교 예술단을 꾸리고 예술전문학급의 담임을 맡는 등 활약을 보였고 그가 지도를 맡은 학교취주악대는 수준급 합주실력을 갖추어 각종 행사 요청이 쇄도하군 했다.

1996년, 룡정고중에 전근해온 임창범교원은 당시 고중에 음악교과서가 없는 상황에서 자체로 교수안을 짜면서 고중실정에 맞는 음악교수의 길을 모색, 학생들의 지대한 흥취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음악감상과교수에서 우리 나라의 우수한 음악유산과 우리 민족의 전통음악에 대해 강의하면서 순서점점하여 량호한 효과를 거두었는바 전문가들로부터 우리 주 고중음악교수에서 새로운 시도를 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학교예술지도에 이같이 심혈을 몰붇고 성과를 이록해낸 비결에 대해 물으면 그는 그저 "사랑"이라는 한마디로 일축한다. 음악에 대한 사랑, 학생에 대한 사랑, 교단에 대한 사랑...그동안 그는 방학이나 휴식일을 별로 쉬여보지 못하고 늘 써클지도에 땀동이를 흘려왔다.

지금까지 그의 지도를 받고 상해음악학원, 광주음악학원, 심양음악학원, 한국 서울대학 국악과 등 국내외 명문예술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200명이 넘으며 그중 상당수는 이미 예술전문학교, 예술전문단체에서 중견으로 활약하고있다. 2004년 2월 그가 거느린 룡정고중예술단은 우리 성을 대표하여 인민대회당에서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보공연을 펼치기까지 했다.

24년의 예술지도인생, 그가 흘린 아롱진 땀방울이 이슬처럼 맺혀 예술교육의 향연은 더욱 짙어가리라

김성철특약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장백산 기슭에 뿌리내린 미인송중국전역에 조선민족 문학 알리는 한 상하이지식청년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 = "불의에 물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관용을 베풀면서 살아가고 있는 진설홍 번역가가 돋보인다"라고 연변작가협회 우광훈 작가는 말하면서 "진설홍 번역가는 원작에 가...
  • 2010-03-15
  • 한 녀류작가의 희로애락  연변작가협회 창작실 주임 리혜선에 대한 이야기 련속 두기나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하고있는 리혜선씨 1980년대 중반에 단편소설 《눈내리는 새벽길》을 《연변문예》에 발표한것을 계기로 문단에 발을 들여놓고 지난 25년간 부지런히 글농사를 지으면서 볼거리가 있는 작...
  • 2010-03-13
  • “선생님의 들창가 지날 때마다”, 교정은 물론 전국에  널리 울려퍼지는 노래,   40, 50대는 물론 20, 30대들도 많이 불러온 이 노래는 작곡가 동희철선생에 의해 작곡되고 《20세기 중국소년아동 10대가요 》등재되면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것이다.이미 신문에 나갔는데 또 취재를...
  • 2010-03-12
  • 최영원의 《련환화전기관》을 찾아서 ㅡ조선족이 북경에 꾸린 첫 개인박물관3월 7일, 필자는 일요일 휴식을 리용하여 CCTV의 이름난 아나운서이며 저명한 조선족 수장가인 최영원선생의 첫 공익성적인 개인박물관ㅡ《련환화전기관(连环画传奇馆)》을 찾아 떠났다. 비록 붐비는 뻐스와 지하철...
  • 2010-03-10
  • 中에 조선족 문화 알리기 한평생 “이번 中정협서 박물관 건립 제안” 유일한 조선족 정협상무위원 이승숙 씨“조선족박물관 건립을 제안합니다.” 3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 제11기 3차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전국정협)가 열리는 인민대회당 입구에서 만난 이승숙 위원(67·여...
  • 2010-03-10
  • 반금시 제2인민병원 리홍수원장   반금시 사상 첫 조선족석사연구생 도사로 2002년 35세의 젊은 나이에 반금시제2인민병원 원장에 선임되며 료녕성 의학계의 주목을 끌었던 리홍수씨는 2006년에 중국의과대학 박사과정을 마쳐 반금시 위생계통의 첫 박사로 되였고 지난해에는 료녕의학원 연구생원의 석사연구생도사로 ...
  • 2010-03-09
  • 조선족금융리재의 든든한 뒤심이 되여―중국은행 민족지행 행장 남해금씨의 이야기《조선족들의 금융거래에 편리를 도모하고 상업수요를 만족시키며 민족경제발전에 저그마한 힘이라도 기여하는것이 저의 리상이였습니다. 마침내 그 리상을 실현할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여 가슴이 뿌듯합니다.》 날마다 수없이 드나드는 조선...
  • 2010-03-08
  • 조선족가요계에 떠오른 새별 ― 연변가무단전직가수 강화의 이야기 우리 민요를 불러 묵직한 상을 수차례 수상한 연변가무단 가수 강화― 어려서부터 음악에 싹수를 보이기 시작한 그는 4살때에 이미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에 접근하였고 소학교에서 가수의 꿈을 가지게 되였으며 부모의 지지로 연변대학 예술학원 6년...
  • 2010-02-15
  • 비전을 향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연길시 방생진료소 소장 방산옥 박사에 대한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김해란 기자 = "그는 또 환자들을 방문, 병세를 관찰해 나갔다. 치료효과가 좋은 환자들을 보면서 난치병인 전립선 질병과 골반염증 치료에 대한 희망에 들뜬다. 아울러 전립선 임상과정에서의 전립선액의...
  • 2010-02-11
  • 의술연구와 환자진료에 최선을—연변대학부속병원 소화내과 부주임 임분옥간장, 담낭, 이선, 위장도염증과 궤양, 종양 등 질환을 주로 진단하고 치료하고 있는 연변대학부속병원 소화내과는 높은 의술과 량질봉사로 환자치료에 최선을 다해 사회상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고있다. 여기에는 소화내과 부주임 임분옥박사...
  • 2010-02-1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