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우리 나라 무용계의 최고상인 중국“련꽃상”민족민간무용콩클에서 연변무용가협회가 추천한 남성군무 “서혼”이 수많은 경쟁작품들을 누르고 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기자와 마주한 안무가 김희씨는 이번에 “련꽃상”을 수상하여 우리 민족 무용의 영예를 떨치는데 저그마한 힘이라도 보탤수 있어 기쁘다고 하면서 무용 “서혼”의 안무경위에 대해 소개했다.
무용 “서혼”은 연변가무단의 음악무용시극 “천년아리랑”중 3막의 한 무용종목이다. “천년아리랑”창작에서 부연출을 맡은 김희씨는 창작토론회에서 남성의 힘과 기개가 넘치면서도 우아함을 아우른 남성군무를 제의하였다. 김희씨는 학문을 숭상하면서 문화적분위기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의 슬기로운 생활상을 무용작품에 담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것이 무용 “서혼”이다.
“저는 ‘서혼’에서 부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재래의 방법대로라면 부채는 그저 꽃을 상징하거나 무대를 장식하기 위한 소도구에 불과합니다. 저는 생각을 바꾸어 부채에 의미를 부여해 부채살을 쭉 펼치면 책이 되고 거두어 쥐면 붓이 되고 또 붓을 쥐듯 부채 쥔 손을 상하좌우로 률동적으로 휘두르면 획을 긋는것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부채 하나로 세가지 무용형상을 그려낸것이랄가요? 그리고 ‘서혼’에 우리 민족 무용의 내재적인 운률을 표현하려 시도했습니다. 그러면서 호흡적인 률동으로 서생의 도고하고 고상하면서도 살아움직이는듯한 동작을 무용 전반을 관통시켰습니다.”
“서혼”의 창작기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 김희씨는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켰다면서 어릴적 보아오던 책을 손에 들고 삼매경에 빠진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모습이 늘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책과 우리 민족은 갈라놓을수 없으며 더 나아가 지식을 숭상하는 우리 민족에게는 그만큼 문화가 발달될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오늘날엔 지식인으로 통하는 옛날서생의 독서하면서 사색하고 지식을 쌓으면서 세계를 인식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무용작품을 창작하고싶은 욕망울 줄곧 가슴속에 묻어왔다고 했다.
제3회 전국소수민족문예콩클에서 음악무용시극 “천년아리랑”이 우수종목상을 수상했고 부분적 종목상에 “서혼”이 이름을 올렸다. 그뒤 “서혼”은 중국조선족예술상평의에서 장려상을, 이번 전국“련꽃상”평의에서 은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1982년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졸업한 김희씨는 그때로부터 한눈 팔지 않고 꾸준히 무용배우와 안무의 외길을 걸어왔다. 30년이란 긴 세월동안 김희씨는 선후로 연길시조선족예술단 무용배우, 연변대학예술학원 교원, 연변가무단 무용배우 겸 안무로 무용만을 위한 삶을 살아왔고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석사연구생으로 자신의 재간을 갈고 닦기도 했다. 그의 프로필에는 화려한 수상경력이 가득 기록되여있다. 1988년 김희씨는 중남해에서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을 모시고 “장고춤”을 추어 갈채를 받았고 그가 안무한 “한삼춤”이 우리 나라를 대표해 타이국제민간예술절에 참가하기도 했다. 1999년 10월 그가 지도하고 출연에 참가한 군무 “장고춤”이 국경 50돐 경축 대형민족가무 “단결송”문예야회에서 환영을 받았다. 2002년 한국류학시 김희는 독무야회를 가지기도 했고 졸업작품회보회 등에서 “그때그때처럼”과 “길을 여는 소리” 등 자기가 새로 안무한 무용작품을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현재 국가1급배우인 김희씨는 연변가무단 창작평론실 부주임 겸 안무가로 무용창작에서 자기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뿐만아니라 연변대학 예술학원 겸직교수로 후배양성에 심혈을 몰붓고있다.
김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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