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제17차 당대표 흑룡강성 녕안시인민법원 동경성법정 김계란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10월10일 13시30분    조회:856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그녀는 16년간 민사사건 1200여건 처리. 그중 잘못처리하거나 기한을 초과한 사건이 한건도 없었고 진정소송을 한 사건이 한건도 없으며 재심이거나 재판결을 한 사건이 한건도 없으며 규률을 위반한 사건도 없었다.

중요영예: 《전국 3.8기수》
              2005년 《중국 10대 걸출한 법관》
              2006년 《전국 우수공산당원》
              2007년에는 17차 당대표로 당선되는 등 40여가지 영예

간력: 김계란, 녀, 1957년에 흑룡강성 녕안시 경박향 오풍촌에서 출생. 1976년에 입당, 선후로 녕안시 경박향 오풍촌 부녀주임, 녕안시경박향녀성련합회 간부, 녕안시 동경성진 단위서기, 규률검사위원회 위원으로 있었다. 1990년에 녕안시인민법원 동경성법정에 전근, 서기원, 조리심판원, 심판원을 담임.

당대표로 당선된 소감 《기층법관에게 준 큰 영광》

기자가  17차 당대표로 된 소감에 대해 물으니 김계란은 이렇게 말했다.  《기층인민법정의 보통법관으로서  큰 영광을 느낀다. 이는 녕안시의 광범한 당원과 고향인민들이 나에 대한 신임이다. 동시에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진다. 나는 당대표의 직책을 잘 리행하여 기층에 심입하며 깊이있는 조사를 진행하여 당원과 인민군중들의 의견과 요구를 진실하고도 적극적으로 반영하련다》. 그는 《당과 인민의 신임을 저버리지 않고 자기를 엄격히 요구하며 두 어깨에 놓인 장엄한 사명과 신성한 직책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여 당원의 선봉모범역할을 남김없이 발휘하겠다》고  다짐했다.

기자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후의 사업과 생활상의 변화를 물었을 때 김법관은 이런 말을 한다. 《매체를 통해 나의 이름이 알려진후 전에 비해 나를 아는 사람이 더 많아졌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원래의 일터, 원래의 직무에서 사건(민사분규)를 처리하고있으며 여전히 월요일에 목단강으로부터 차를 타고 동경성으로 출근하며 금요일에 집에 돌아오군 한다. 변화가 있다면 사회생활이 좀 많아지고 법률자문을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뿐이다》.

현재 2명의 빈곤가정 학생을 돌보고있는 김계란은 《 한 공산당원으로서 나는 곤난에 처한 백성들을 있는 힘껏 도와주련다》고 말한다. 그녀는 《조선족으로서 나는 민족을 사랑하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면서 《인민의 법관으로서 나는 법률의 공정성과 정의를 수호하는것을 내 인생의 분투목표로 삼는다》고 말한다.

7번이나 수술대에 오른 녀법관

김계란(50세)은 흑룡강성 녕안시인민법원 동경성법정 심판원이다.

16년간 법정에서 사업하면서 그는 여러가지 민사사건 1200여건을 심리하였는데 90% 이상을  조해방식으로 사건을 처리한 기록을 세웠다.

그중 잘못처리하거나 기한을 초과한 사건이 한건도 없었고 진정소송을 한 사건이 한건도 없었으며 재심이거나 재판결을 한 사건이 한건도 없었을 뿐더러  규률을 위반한 사건도 없었다. 그 비결이란 단 한가지 《공정》이 였다.

장기적인 과로와 불규칙적인 생활로 김계란은 맹장염, 복막염, 유선종양, 담결석 등 질병에 걸려 선후로 7차례나 수술대에 올랐다. 1998년에는 중말기유선암 진단을 받았지만 시종 락천적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사업의 열의를 불태워갔다.  

법관에게 감동되여 실토한 당사자

일부 사건들은 단지 증거만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어렵다.  매 당사자들이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김계란은 신고를 마다하고 깊이있는 조사를 진행했다.

2001년 8월, 김계란이 민간차용분규사건을 접수했는데 원고는 피고가 6000원 빚을 주지 않았다며 차용서를 내놓았다. 그러나 피고는 언녕 빚을 다 갚았으며 당시 원고는 안해가 옷을 씻을 때 차용서를 씻어버렸다면서 차용서를 내놓지 않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 사건은 원고가 내놓은 차용서로 피고가 원고에게 6000원 빚을 돌려주는것으로 판결할수 있었다. 그러나 김계란은 100킬로메터밖의 림장에 가 원고의 전 처 부씨를 찾았다. 그때 암에 걸린 김계란은 화학치료를 받는터라 극심한 고통을 참아가며 조사를 진행했다. 부씨는 자기와 관련되는 일이 아니라며 조사를 거절하는것이였다. 이튿날, 날밝기전 김계란은  또 부씨를 찾아갔다. 아픈 몸으로 아침 일찍 찾아온 김법관을 본 부씨는 마침내 진실을 밝혔다. 《차용서를 씻어버린적이 없으며 그것은 그 사람이 꾸며낸 일이다》고.

휘장에 한점 부끄럼없이

《나는 보통당원이다. 기층법관으로서 부패에 대한 백성들의 꾸짖음을 들을 때마다 나의 마음은 괴롭다. 나는 다른 사람은 관제하지 못하나 나 자신은 관제할수 있다.  법관사업을 해오면서 일부 사람들이 나에게 돈, 선물을 주는 일이 있었고 일부는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뜻으로 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당사자들의 술 한잔, 돈 한푼, 선물 하나도 받은적이 없다.》 김계란의 떳떳한 말이다.

1999년 산동 상인 리씨가 당지의 한 목기공장이 진 빚 3만원때문에 법정을 찾았다. 외지사람인 리씨는 법정에서 당지기업을 감싸줄가봐 김법관에게 3000원을 주면서 좀 봐달라 했다. 하지만 김계란은 당장에서 거절했다. 사건처리가 끝나고  집행금액을 받게 된 리씨는 한묶음의 돈을 내놓으면서 《먼저번엔 빚을 받지 못할가봐 돈을 주었지만 이번에는 감사의 마음입니다. 앓고있으니 이 돈으로 좋은 약이나 사서 쓰십시오》라고 했다. 김계란이 한사코 거절하자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고 리씨는 감탄하는것이 였다.

김계란은 이런 말을 한다. 《기층법정의 법관들은 매일 <자질구레>한 일을 하지만 평범하고 자그마한 일에서 우리는 책임감, 영예감을 체험하기도 한다. 나는 가슴에 단  <천평>휘장의 무게를 깊이있게 알고있다.  나는 당과 인민에게 부끄럽지 않고 마음에 걸리지 않는 합격된 녀법관으로 되겠다》. 

홍옥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미국 뉴욕의 일원지역은 조선족의 급속한 류입으로 어디를 가나 조선족들을 쉽게 접할수 있다. 특히 조선족의 90%이상은 한국인사회에서 생활하며 한인가게에서 일을 하는 관계로 야채장사나 식당, 네일가게(손톱관리) 등 한인들이 하는 곳마다 조선족 직원이 한두명씩은 있다.대부분이 부지런하고 일 잘한다는 평을 받고있...
  • 2006-01-16
  • [원제: 녀자축구팀 로장 손문의 청혼광고] “남자가 나이 들면 장가가기 마련이고 녀자가 나이들면 시집가기 마련”이라고 올해 33살인 손문도 청혼광고를 내 사회상에서 반향들이 크다. 청혼광고의 내막을 보면 본인이 집필한것이 아니고 “상해수요일”신문사의 편집으로 있는 그의 친구가 몸소 기획하고 집필하였던 것이...
  • 2006-01-16
  • 황우석 "용서를 빈다…참담한 심정" 서울대 황우석교수가 12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론문조작에 대해 사과 하고 있다. /외신 한국 황우석교수는 12일 “서울대 조사위에서 발표한 조사결과에 대한 론문과 관련한 허위 데이터 사용은 제1저자인 제가 모두 책임질 부분으로 모두 인정하고 사...
  • 2006-01-13
  • 황우석은 1953년 12월 15일, 한국 충청남도의 한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태여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를 좋아했고 커서 꼭 수의사가 되고야말겠다고 작심했었다. 1972년, 그는 소망대로 서울대학 수의약학원에 입학, 1982년까지 그는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및 박사학위를 따냈다. 졸업후 그는 학교에 남아 교편을 잡게 되였...
  • 2006-01-13
  • 품팔이녀자애로부터 연길시인대대표로 되기까지, 월수입 5000여원의 업주로부터 500여원의 로임을 받는 사회구역위원회서기로 되기까지 갖은 세파를 겪어온 조국영(34살)은 《사회구역사업을 하면서부터 진정으로 인생의 가치를 느끼고있다》고 말하고있다. 1986년 12월, 16살에 나는 조국영은 호북성의 한 편벽한 농촌에서...
  • 2006-01-11
  • [원제: 어머님의 손맛으로 고객 감동] 이제까지 없었던 새 업종이나 서비스를 개척해 큰 성공을 거둬보자는 블루오션전략, 가치혁신으로도 통하는 이 전략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약 성공의 희열을 맛보고있다. 그제날 따뜻한 온돌방에서 온 집 식구가 단란히 모여앉아 먹던 김이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칼국수, 생각만 해도 어...
  • 2006-01-11
  • 일전 북경에서 있은 2005년 중국기획년회 및 제2기《제갈량》기획평의활동에서 연변오늘기획연구소 소장 겸 연변오늘상무광고유한회사 리사장 박준덕이 《2005년 중국10대기획전문가》명예를 받아안았다. 소개에 따르면 박준덕사장은 길림성에서 처음으로 이러한 영예를 받은 사람일뿐만 아니라 조선족가운데서 《기획전문가...
  • 2006-01-10
  • [원제: 전통산업에 인터넷 나래를 달아] 할빈호천과학기술개발회사 오철웅총경리 사업담 “대형국유기업에서 거들떠보지 않는 비표준장비제조의 거대한 시장잠재력을 노리고 접어들었지요." 2000년말 등록자본금 50만원으로 할빈호천과학기술개발회사를 일떠세운 오철웅(43세, 고급공정사)총경리가 밝히는 창업동기이다. 일...
  • 2006-01-10
  • "마음의 고향 한국에 와서 기쁩니다." [세계일보 2006.01.08 13:00:19]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항상 그리워하시는 제 마음의 고향 한국에 오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중앙아시아·러시아 동포청소년 연수단으로 6일 모국을 찾은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거주하는 한국인 4세 라가이 베라양(17). 라가이 양은 고려인들이 한국어...
  • 2006-01-09
  • [원제: 잣왕 조이철의 삼단도약] 장백산자연부원에 의탁해 세계를 도모한다 조이철은 누구? 그의 창업은 어떻게 시작됐나? 조이철, 길림송보생물기술산업유한책임공사의 리사장. 길림성 정우현 사람.올해 47세. 1985년 장춘사범학원 력사학부 졸업. 1990년 경제관리 연수. 1996년 주식회사 길림송보공사 창설. 길림성 특색기...
  • 2006-01-0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