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의학계의 별로 뜨는 조선족장군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8월16일 10시36분    조회:717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얼마전 기자는 지인의 소개로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80주년을 맞는 기회에 중국인민해방군 총병원 (이전 해방군 301병원)의 이비인후과 주임의사인 한동일박사를 만났다.

소박한 농민의 아들 끈질긴 노력가

찾아간 날 약속한 시간이 한시간반이나 기다려서야 문진을 끝내고 들어오는 한박사를 만날수 있었다.

박사이고 군병원의 주임의사이면 의례 희끗희끗한 머리, 도수 높은 안경, 청진기를 목에 건 모습이리라 상상하였는데 뜻밖에도 자그마한 체구에 감실감실한 얼굴의 중년사나이가 나타날줄이야.

언전가 책에서 박사란 한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이지 천재는 아니고 기억력도 별로라 하더니 한박사가 그에 맞는 형의 인텔리였다. 인터뷰 당일에도 수차 전화를 걸어 시간을 약속하였고 지금 진찰중이라면서 30분후에 사무실에서 만자고 대답하였지만 기자가 도착하니 사무실을 나와 퇴근할려고 하였다. 그것도 사무실안에 열쇠를 그냥 둔채로. 《원래 기억력이 나빠서….》하는 그의 변명에 우리는 《하하!》 하고 한참 웃었다.

생김생김과 같이 한동일박사는 길림성 길림시교외의 한 농가에서 자라 의학원공부를 마치고 다시 박사원고시에 합격하여 해방군 병원의 지도교수 아래에서 열심히 배우고 림상경험을 쌓아 박사학위 흭득과 함께 그 병원 이비인후과에 의사로 일하게 된 끈질긴 노력가였다.

잡지사의 인터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그의 사양에 한참이나 설득하여 겨우 마주 앉게 되였으며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건 의사의 모습을 찍겠다는 요청에 그냥 이대로가 좋다면서  동의하지 않아 그런대로 사진도 한장밖에 담을수 없었다.

배움에는 소수민족이라는 말이 없다

한동일 박사는 1953년 중국 길림성 길림시교외의 한 조선족농민의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고중시절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고향에 내려와 생산로동에 참가하였다. 그때에도 대학 공부를 하고 의사가 되려는 마음에 거의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공부를 견지하였으며 80년대초 문화대혁명이 끝나면서 독학으로 길림중의학원에 입학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상해병원에 배치되여 의사로 일하면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은 더욱 높아 계속 공부하였으며 5년만에 박사원 고시에 합격하여 당시 해방군 301병원 이비인후과 주임의사인 장홍염박사의 제자로 되였다. 1987년 그의 박사론문은 그해 처음으로 제정한 청년과학자상 의학자부문에 입선되였다. 이 분야에서 조선족수상자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속있는 의료사업과 국내외세미나 론문발표로 명성이 진동

상해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던 1992년, 한동일 박사는 선진의술을 배우기 위하여 자체 비용으로 일본 동경대학 의학연구소에 가 연구사 겸 보조의사로 3년간 일하였다.

그후 해방군병원 이비인후과 의사로 사업하면서 림상치료에 몰두함과 동시에 주 2회씩 있는 전문교수 문진을 계속 견지하였다.

이와 동시에 전국에서 진행되는 세미나와 일본, 미국, 에스빠냐, 한국, 오스트랄리아에서 진행되는 이비인후과 전문의사 세미나에 참가하여 수많은 론문을 발표함으로써 그의 명성은 국제적으로 더욱 알려지게 되였다. 2001년 서울에서 진행된 이비인후과 림상전문가 포럼에 참가하였을때 중국조선족박사라는것이 알려져 서울대학에서 《중국의 의료현실》이라는 제목의 특강도 하게 되였다. 한동일은 이미 《이비 현미 신경외과 측루외과》부문에서 전국에서 유일한 권위자이다.

현재 그는 해방군총병원이비인후두경외과 주임, 현역 소장, 중화의학회이비인후두경외과학회 부주임위원, 전군 이비인후두경외과 전문위원회 주임위원, 《중화이비인후두경외과》 잡지 부주필, 《중화이비과학잡지사》 주필 등 책임을 맡고 있으며 그의 이비인후 전문분야에 관련한 사업은 광범하기 그지없다. 그만큼 그 분야의 전문가여서인가 보다.

그런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주일마다 평균 3차의 수술에 참가하며 화, 목요일의 교수전문가 문진도 견지한단다. 《기억력이 나빠서》하는 소리가 일리는 있었다.

금년 4월 27일에는 20여년간 모주석의 담당간호사로 있었던 오씨의 50년 청각장애를 한번의 수술로 고쳐내여 본인과 가족의 감사신을 받았고 병원에서는 그것을 이비인후과 문에 정성껏 붙여놓고 있었다.

지금까지 3년동안 련속 국가교육위원회 중점연구항목으로 해방군병원 이비인후과가 결정되여 한박사의 책임하에 해년마다 3~4차례의 강습반을 조직하여 전국의 이비인후 의사들에게 교육 및 림상치료 경험을 쌓게 하고 있다. 이것도 전례없는 아주 특이한 일이라 한다.

머지않아 아들도 의학박사 된다
  
한박사와 북경의 모회사의 직원으로 있는 부인사이에는 외동아들이 있는데 금년에 26살난 그는 북경협화의학원 정형외과를 석사로 졸업하고 현재 협화병원 정형외과의사로 일하면서 박사원과정을 다니고 있단다. 지금이라도 박사논문을 제시하여 통과할 자신이 있으나 박사원과정은 반드시 3년을 거쳐야 한다는 규정으로 2009년에야 박사학위를 받게된다고 하였다. 그날도 2건의 수술과 오후 4시간동안의 문진에 매우 심신이 피로한 한박사였지만 아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정신이 분발되고 열정에 차넘쳤다.

기자가 만난 날도 일찌기 집으로 퇴근하려고 아예 다른 스케줄을 잡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외부활동이 많다 보니 세 식구가 마주앉는 날이 바로 명절날이라고 하였다. 가정에 무척 애정이 많은것 같았다.

중국의학의 현상태

해방군병원과 중국의 의료에 대해 소개하여 달라는 말에 해방후 중국인민해방군 후근부의 결정에 의해 해방군병원은 5년전 301병원과 해방군 304 병원을 합병하여 명실상부하게 협화병원과 동등한 종합적인 실력을 가진 중국의 일류급 병원으로 되였다고 한다.

최근에 군인환자가 매우 적은 현실에 맞게 중앙에서는 일반 환자도 병을 치료하게 하여 환자의 90%가 일반시민들이란다.

현재 중국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여 10여년사이에 락후한 의료시설에서 벗어나 선진국가의 수준에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중앙병원과 의사들, 지방병원의 의료시설, 의사들의 수준에서 아직까지 차이는 있지만 중앙병원의 시설, 의료진의 수준은 2~3년내에 선진국 대렬에 들어설수 있다고 한다. 특히 로봇에 의한 심장수술은 3년전 해방군 총병원이 아세아에서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그만큼 정부의 의료분야에 대한 투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단다. 선진적인 나라들에는 환자의 발병률이 적고 특수한 질병이 없는 상황과 치료비의 부담으로 3국에서 치료받는 환자들이 많기에 의사들의 수준이 높지 못한 반면 중국은 각이한 병례와 환자가 많아 림상치료에 대비한 중국의사들의 실력은 선진국을 앞선다고 찍어 말하는것이였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1월 26일, 사단법인 한국기원의 초청으로 한국으로 떠난 연길시 중앙소학교 리철화 학생은 2006년 1월 5일 연길시 천재바둑도장에 입학, 7월 7일부터 연길시 천재바둑도장 김광재 원장한테서 바둑에 대한 재능을 체계적으로 학습하며 프로선수로 되기 위한 꿈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리철화 학생의 프로선수로 향한 노력은 ...
  • 2007-11-26
  • 일전 우리 나라 무용계의 최고상인 중국“련꽃상”민족민간무용콩클에서 연변무용가협회가 추천한 남성군무 “서혼”이 수많은 경쟁작품들을 누르고 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기자와 마주한 안무가 김희씨는 이번에 “련꽃상”을 수상하여 우리 민족 무용의 영예를 떨치는데 저그마한...
  • 2007-11-22
  • 2004년 20대후반 젊은 나이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되는 《중국농촌중개인사이트》를 개통하고 2006년에는 소가툰구공청단위, 시, 구농민경제인협회와 중국이동통신협회의 지원으로 자신의 사이트에 《성세금농》(盛世金農)이란 메시지폴랫폼(短信服务平台)을 개통하고 계속해 국내 200여개에 달하는 동류 협회와 기업들...
  • 2007-11-20
  • 2004년 해림시는 현을 성립한후 사상 최초로 해림시특등로력모범을 평선하였는데 많치않은 영예명단에 해림시조선족중학교 교장 정송학의 이름이 올랐다.  1996년 4월에 부교장에 부임하여 1999년 12월에 교장 겸 지부서기직에 있으면서 수년간 목단강시우수교육사업자, 민족단결진보모범, 우수교육사업자기준병, 해림...
  • 2007-11-20
  • 최룡수교수는 잊혀진 조선인혁명가들의 사적을 찾아 중국조선족사회 더 나아가 해외에 이들의 사적을 널리 알린 분이다. 최룡수교수는 미국기자 님.웨일즈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던 조선인혁명가 김산(장지락)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화가이면서 혁명가였던 한락연, 기동항일유격대를 이끌었던 주문빈(周...
  • 2007-11-19
  • 그 몇년동안은 조선말 문학잡지들마다에서 늘 그녀, 최순희의 글만 찾아읽었다. 그만큼 그녀의 수필은 수많은 작가의 작품속에서 유독 필자의 "사랑"을 독차지할만큼 언제나 녀자들의 일상을 잔잔한 유머로 엮어내군 하였다. 그리고 그속에는 늘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겪는 녀자들의 고민과 시끄러움, 아픔을 지혜...
  • 2007-11-16
  • 요즘과 같이 좋은 세월에 농촌에서 도시에 올라와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허다할뿐만 아니라 시내에서 농촌에 내려가 창업과 치부의 꿈을 키우는것 또한 아주 자연스런 일로 되였다. 내몽골 울란호트시 울란하다진 고성촌에서 젖소농장을 경영하고있는 현덕일사장이 바로 그들중의 한사람이다. 1993년 현덕일씨는 호르친우...
  • 2007-11-15
  • <<국제유가 100딸라(원유 배럴당 가격)는 오늘래일의 일뿐이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쉽게 받아들일수 없는 놀라운 얘기다. 하지만 고유가시대의 도래를 준비해 마른수건에서 물을 짜내듯 <<메마른 돌>>에서 기름을 짜내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연변에서  첫바가지의 기름을 퍼 올린 왕청...
  • 2007-11-15
  • 수도 북경의 교통체증해소 최첨단연구소의 책임자로 있는 중국북방공업대학 리정희부교장은 흑룡강 출신의 조선족이다. 근 두달여의 집요한 통화로 겨우 한시간의 인터뷰 허락을 받을수 있었다. 워낙 바쁘게 지내는 분이라 걸려오는 전화를 거의 받지 않는데도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터뷰가 끊길때가 많았다. 학교 사업에 대...
  • 2007-11-14
  • 일전에 기자는 제17차 당대회정신을 깊이있게 터득하고 룡정시의 실정에 근거하여 참답게 관철시달할 문제와 관련하여 룡정시당위 서기 차광철과 인터뷰를 가졌다. 차광철서기는 이번 당대회의 가장 큰 특점의 하나가 바로 백성들이 가장 관심하는 문제 즉 민생문제를 조화사회구축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다룬것이라고 ...
  • 2007-11-1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