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욕심꾸러기《일군》의 참된 삶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1월31일 10시26분    조회:922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조선족학자 임범송교수를 만나다

작년 12월 26일, 연변인민출판사에서는 43만자나 되는 조선문대형도서《심미비평론》을 출판하였다. 이 책의 출판으로 하여 저자 임범송교수는 흥분된 자신을 걷잡기 어려워했다. 그럴만도 하다. 70세 고령인 임범송교수는 자식들이 유럽려행을 다녀오시라는 권고도 마다하고 《인생의 마지막》 저서출판을 실현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임범송교수가 펼쳐낸 24번째 책(민족도서로 15번째, 비평심미로 4번째)이다.

12월 27일, 필자는 임범송교수를 만나 대담하였다.

다섯번째 기쁨

《작자의 기쁨이란 자기의 문장이 발표되고 출간되는것이지요. 이를 통해 인생의 가치가 실현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화두를 떼는 임교수는 이 책의 출간으로 하여 작년만도 다섯가지 기쁨을 안아왔단다. 기쁨의 첫째는 작년 4월에 장백산잡지사 《중국조선족비평문학 금상》을 수상한것이요. 둘째는 길림신문사 김정애기자의 임범송인터뷰(《과학탐구와 문학비평 그 평행선 달려》 길림신문 7월 8일)가 연변대학을 감동시킨것이며 셋째는 8월 중국작가협회의 초청, 부부동반으로 북대하에 자리잡은 중국작가협회활동중심에서 처음 작가 신분으로 한족들과 함께 휴양향수를 받은것이며 넷째는 11월 18일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문화광장》프로에서 《두만강의 아들 석학 임범송》을 50분간 방송하여 집중적으로 자신을 형상보도한것이다.

상기 모든것은 임범송교수가 사회, 인류, 후대, 세계문화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는 상징으로 기쁨이 아닐수 없단다.

개천에서 난 《룡》

1934년1월 28일, 임범송은 룡정시 백금에서 출생하였다. 일찍 홀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란 그는 집에서 40리 떨어진 용신학교와 70리 떨어진 지신초중을 다니면서 매달 어머니가 얻어다 주는 쌀 여섯말을 등에 지고 다니며 하숙집생활을 했다. 어머니 몰래 도보로 연길에 가서 시험을 쳐 연변사범학교에 입학했고 번마다 집으로 다닐 때면 길에서 밥을 빌어 먹으며 140 리 길을 걸어서 오가야 했다. 한번은 밤 걸음에 범을 만나 목숨까지 잃을번 하면서. 고중을 다니던 3년간은 돈이 없어 교과서를 한권도 못 사면서도 3년 최우등생으로 졸업했고 동북사범대학에 입학한 후 공부가 하도 출중한데서 1년 앞당겨 졸업하고 본 학교 교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임범송은 백금의 첫 중학생, 첫 대학생, 첫 대학교수다. 그의 한족말 수준은 대학을 다닐 때까지 말이 아니였다. 한번은 동학들이 그더러 밥그릇과 수저를 사라는 말도 못알아 들어 근 반시간이나 손시늉을 하였고 또 한번은 중국혁명사를 강의받을 때 교원의 질문에 대답할수 없어 그 교원이 반장에게 임범송이 벙어리가 아니냐고 묻기까지 하였단다. 이런 《벙어리》임범송이 《과학탐구의 길》에서 한눈 팔지 않고 분투한 덕분에 연변대학 중문학부의 유일한 조선족교원으로 한족말로 교수를 할수 있었고 국내외 학술무대의 떳떳한 거물로 부상되였다. 임범송은 진정 개천에서 난 《룡》이다.

수재란 천운이 준것이 아니라 본인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대학교의 《코기러기》

임범송교수는 1963년에 동북사범대학에서 연변대학으로 전근된 후 지금까지 교편을 잡고 연구생도사로 활약하고있다. 그는 선후로 학부 주임, 연변대학 학보 부주필, 연변대학도서관 관장, 연변대학출판사 사장(주필 겸) 등 직무에서 열과 성을 다 바쳤다.

1981년 임범송교수의 참여로 《문학개론》, 《미학개론》(1986)이 출판돼 중국조선족 100년사에 우리 글로 된 문학과 미학리론이 없던 력사에 종지부를 찍었고 1988년에는 임범송교수의 주필로 대학교과서로는 첫 《미학》이  길림교육출판사에서 출판되였다.

10여년간 문예리론을 교수하던 임범송은 《문화대혁명》 후 전국통일의 문학리론교재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1978년에 대학문학리론 교과서를 새로 편찬할것을 전국 대학교에 발기, 이 발기는 복단대학, 북경대학, 중산대학, 중국과학원 문화연구소를 비롯한 전국 대학교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하여 임범송교수는 교과서 편찬집필조 조장을 맡고 전국 14개 대학교의 100여명 문예리론 교수와 연구원들을 조직하여 전국을 돌면서 조사연구와 학술문제연구토론을 벌였다. 3년후인 1981년에 끝내 《문학리론기초》가 상해문예출판사에서 출판되였다. 이 책은 국가교육부의 비준을 거쳐 《전국대학통일교과서》로 되였다. 이 책은 최근까지 280만책 출판, 1985년 교육부의 지시에 따라 이 교과서의 수정본과 《참고자료》가 발간되였다. 이렇게 임교수는 전국 대학교 새 통일교과서 편찬에서 일익을 담당했다.

1989년 한국 나라사랑출판사에서 《문학개론》을, 1990년 한국문화사에서 《미학개론》을 출판, 발행하였다. 임범송교수는 중국 북방대학의 《코기러기》였다.

연변의 《뻐꾸기》

임범송교수는 연변대학과 연변을 세계에 홍보하는데 남모르는 기여를 하였다. 그는 중한수교 5주년과 10주년을 맞이하여 성보호텔 정영채회장과 손잡고 중국연변조선족 원로문화예술인 모국방문 대표단(1997)과 연변경제문화 대표단(2002)을 조직해 연변을 한국에 크게 홍보하였다.

1991년  임교수는 강의 초청을 받고 한국에 가 한국의 17개 대학과 연구소를 다니며 중국문학과 중국미학에 대한 강의를 하였다. 책의 저자가 직접 와서 강의한다기에 강의는 번마다 학생, 석사, 교수, 박사 수강생들로 만석, 알고 보니 모든 수강생들이 자기가 쓴 《미학개론》을 갖고있었다. 임교수의 저서 《인간과 미》는 1990년 한국문화출판사에서 출판, 한국중앙대학 황희영교수는 《사회주의국가 학자로서 서방의 고전미학과 유물론의 미학리론을 비교하면서 미학원리를 천명한것은 긍정할바다》고  임교수를 높이 평가하였다.

임교수가 한국을 대상해 쓴 《한국시화연구》(1997년 출판)는 향항에서 열린 동방시화 국제학술세미나에서 한국 서울대학, 충남대학 등 대학의 저명한 교수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임교수는 우리 민족의 고전시화를 더욱 깊이 연구하기 위해 중국, 한국, 일본의 5개 대학과 함께 국제동방시화연구학회설립을 발기, 1997년 한국 대전에서 설립행사를 가진 뒤 15명 리사의 일원으로 추대, 대만서 열린 회의에는 중국, 한국, 일본, 영국, 미국, 싱가포르 등 나라의 80여명 동방시화연구일군들이 참가하였다.

2005년 대만 고응에서 열린 세미나때였다. 회의 주최측에서는 《연변대학 임범송》을  《한국 연변대학 임범송》이라고 소개했다. 이에 임범송은 곧바로 연단에 올라 자신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의 연변대학이라고 성명하고 연변과 연변대학을 국제사회에 널리 홍보하였다.

임교수의 발언이 끝나자 대만 중산대학 부총장은 중국에 그렇게 좋은 연변과 연변대학이 있다니 정말 가보고싶다고 하였고 싱가포르의 한 학자는 임교수에게 당신네 대학이 중국 광동성당위 장덕강서기가 졸업했다는 연변대학이냐고 질문하며 장덕강의 간력에서 연변대학을 알게 되였는데 오늘에야 연변대학이 어디에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며 기뻐했다.

지금까지 임교수는 170여편의 론문을 국내외 신문잡지와 한국, 일본, 대만, 상해, 향항 등지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해 우리 조선족과 연변을 널리 홍보했다. 연변의 봄과 진달래를 알리는 《뻐꾸기》로 되여.

참된 삶

지난해 9월23일, 임교수는 뜻밖에 심장병이 발작하여 심장 대수술을 하였다. 9월 29 일, 임교수는 이날 《진달래문예상》 수상식이 있다는 통지를 병원서 접하였다. 심장수술을 한지 딱 일주일이 되는 날이다. 주최측에서는 통지는 했다지만 임교수가 참석하리라고 누구도 생각지 못하였다.  그런데 임교수는 병원문을 나서 집에도 들리지 않고 곧추 수상식대회장에 나타났다. 모든 참가자들은 감격과 격례의 박수를 치고 또 쳤다. 임교수는 이렇게 랑만적인 인간이다. 그야말로 손색없이 명실공한 정신적, 육체적 미학 대가다. 사람들은 그의 인생을 부러워하며 외우고 또 외운다.

《언제나 부지런하고 일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일욕심이 많은 그를 우리 세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새 세대 젊은이들도 따라 배워야 한다.》

《사람은 언제나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남을 생각하면서 살아야만이 사람답게 사는것이다. 평론가이자 학자, 교수인 임범송선생의 오늘까지의 행적은 바로 이런 참된 삶이였다고 생각한다.》

연변대학 부학장 정판룡교수가 임범송교수에 대한 적절한 평가다.

1986년에 당과 정부에서는 임교수에게 성, 주 로력모범의 영예를, 나라에서는 임교수에게 1993년부터 국무원 특수 수당금을 발급하고있다.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남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욕심꾸러기 《일군》 임범송교수, 필자는 진정 그이를 맘속으로 우러러 모신다. 그이의 보람찬 인생은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들의 마음속 등탑과 정신적자양분으로 되여 《임범송계주봉》이 대대손손 이어지리라 굳게 믿는다.

인범송교수략력:

1934년 1월 28일 룡정시 백금향에서 출생. 1960년 동북사범대학 중문학부졸업.1963년 연변대학 중문학부교수, 연구생지도교수, 연변대학 중문학부 학부장, 연변대학출판사 사장 겸 주필, 연변대학도서관 관장 등 직을 력임.성, 주 로력모범, 국무원 특수수당금 받음.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국미학가학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국제동방시화학회 리사. 저서로는 《문학리론기초》, 《문학개론》, 《맑스, 엥겔스, 레닌, 쓰딸린 문예론저선강》, 《인간과 미》, 《미학개론》 등 170여편 론문이 있음. 국내외의 신문잡지와 일본, 한국, 싱가포르, 향항, 대만 등지의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올해 3년째 민물게양식에 전념해오는 북안시 주성조선족향 홍성촌 박만수씨는 현지에서 '선참으로 게를 맛본 사람'으로 불리운다. 그는 그만큼 담찰뿐만아니라 상업두뇌가 빠르고 경영재주가 능란하고 경제수익도 좋다. 올해도 그는 민물게양식 순수입만 해도 10여만원, 여기에 기타 수입까지 합하면 20만원 내다본다. 민간...
  • 2007-09-27
  • ―장편전기 《중한 우호의 전기인물 한성호》 서언(발취) ○ 남영전중한수교의 대업을 위해 로태우대통령의 밀사로 혁혁한 공훈을 세운 화교 한성호박사. 그는 소설이나 신화에서 나오는 인물보다 더 전기적이고 더 신화적인 인물이다. 오곡을 먹고 사는 한 보통사람이 어쩌면 《기인, 기재, 기지, 기적(奇人, 奇才, 奇志, ...
  • 2007-09-26
  • 《 뭔가 일을 해야 한다이, 도시에서 여유있게 보내는것도 좋지만… 난 원체 농민의 아들이여서 시골에서 일을 하구싶구만.》 시골에서 태줄 묻고 자라 시골에 그루를 박은 군인 사나이. 초연이 자욱한 전장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던 그 용맹이 아직도 서려있는 이 장년이 바로 연변군분구 전 부사령원 김문원( 57세...
  • 2007-09-26
  • 소년시절 싸움질로 교도소와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 했던 그, 가족과 함께 중국공농홍군이 걸은 2만5천리 장정길을 각 방면군의 로정으로 다시한번 걸어 세인을 놀래웠던 그, 검은색 중절모를 눌러쓴 갸름하고 길죽한 얼굴에 수염이 더부룩하고 번뜩이는 눈길이 남달리 예리한 그가 바로 올해 47세인 리완빈이다.  길림...
  • 2007-09-21
  • 일전 기자는 동항시에 자리잡은 단동영명식품유한회사 리영명(34)동사장을 만났다. 리영명씨는 《기업인들은 고객들에게 성심과 믿음을 줘야 한다. 그러면 고객들이 저절로 찾아온다》고 자기의 경험을 토로했다. 리영명씨는 한 국가간부의 집에서 태여났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 리홍광부대에 참가하여 항일전투에 참가했고...
  • 2007-09-21
  • 얼마전 기자는 지인의 소개로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80주년을 맞는 기회에 중국인민해방군 총병원 (이전 해방군 301병원)의 이비인후과 주임의사인 한동일박사를 만났다. 소박한 농민의 아들 끈질긴 노력가 박사이고 군병원의 주임의사이면 의례 희끗희끗한 머리, 도수높은 안경, 청진기를 목에 건 모습이리라 상상하였는데 ...
  • 2007-09-21
  • 화남현내마모성용접봉공장과 할빈시대천채색기와공장을 운영하고있는 조선족기업인 천재수총경리는  품질 제일을 고집한데서  회사에서 생산하는 '대천표' 내마모성용접봉(耐磨焊条) 과 압려식채색기와(压滤式彩瓦)는 제품질이 동업종의  앞자리를 차지, 제품은 국내는 물론 국외까...
  • 2007-09-21
  • “조선족 사회에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때가 됐다” 이동춘 연변생태산업연구 유한회사 이사장(51)은 "이번 포럼에 정치인이 아닌 ‘NGO기업인’으로 참석한 것으로 봐 달라"고 서두를 꺼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중국에서는 기부문화가 아직 활성화 되지 않아 순수NGO만 해서는 자생하...
  • 2007-09-20
  • 1  저명한 조선족작곡가 김봉호(金鳳浩)선생을 처음 만나 뵙게 된 것은 아마 2004년 여름도 다가고 있던 초가을쯤으로 기억된다. 내가 연변작가협회에서 주석으로 있으며 문단의 사무를 맡아 볼 때였다. 어느 날 오후, 연변문련 산하에 있는 연변음악가협회의 비서장 류영근(柳永根)씨의 안내에 김봉호 선생이 연변작가...
  • 2007-09-20
  • 리원실은 연길담배공장 공장장조리이며 기술중심 주임이다. 몇년간 그녀는 《장백산》표브랜드담배연구개발에 혼신을 다하여 연길담배공장이 브랜드로 시장경쟁에서 우세를 차지하는 궤도에 오르는데 일조했다. 담배제품연구개발인원은 담배를 피울줄 알아야 할뿐만아니라 담배의 향, 자극성, 잡냄새, 여운 등을 정확하게 포...
  • 2007-09-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