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실크로드에묻힌 조선족화가 한낙연3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1월2일 09시31분    조회:1053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1947년 비행기 추락사고 국공내전이 한창이던 1947년 7월 30일, 실크로드에 세워진 도시 우루무치를 떠나 란저우로 향하던 국민당소속 257호 비행기가 자위관상공에서 악천후를 만나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광활한 중국대륙의 오지에서 일어난 추락 사고는 자칫 긴박한 내전 상황 속에서 중국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영원히 묻힐 뻔했다. 하지만 그 비행기에 한낙연이 탑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국문화계는 큰 슬픔에 잠겼다. 당시 한낙연의 나이는 49세. 예술가로서 한창 성숙된 작업을 선보일 나이에 당한 그의 조난 소식은 중국 언론뿐만 아니라 영국의 ‘더 타임스’등 외신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보도할 정도였다고 한다. 얼마 후 수색대가 비행기의 잔해를 발견했으나 그의 주검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으나 그는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실크로드에 남아 있는 고대유적발굴에 전심전력을 쏟아 부은 그의 염원대로 자신이 사랑하던 그 땅에 영원히 묻힌 것이다. 주검도 없이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는 평소 그를 알고 지내던 많은 인사가 참여했다. 화가이던 그의 장례식에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석하는 것이야 당연했지만, 국민당과 공산당 양쪽의 인물들까지 참석하자 자세한 속내를 모르는 사람들은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장례식에는 당시 국민당서북행영의 주임이던 張治中과 부주임 陶峙岳장군이 보낸 만장이 걸려있었고, 한낙연이 불의의 사고로 숨졌다는 소식을 접한 周恩來도 “그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중국에서 중요한 한 부분을 잃어버렸다.”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이렇듯 어느 한쪽이 아니고 국민당과 중국공산당 양쪽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그의 죽음에 슬픔을 표시했다는 것은 꽤나 의례적이다. 더구나 당시 정국이 중국대륙의 주인이 누가 되냐를 두고 국공내전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무렵이란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중국의 유명한 교수인 盛成은 한낙연을 가리켜 ‘중국의 피카소’라고 했다. 그것은 그만큼 중국 미술계에서 한낙연의 공적이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의 사후에 쏟아진 찬사와 달리 그는 살아있을 때 중국 중앙화단에서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림에만 매달리는 다른 화가와 달리 좁은 화폭 안에서 살아가는 화가로 만족하지 않고 항일운동과 혁명 사업에 투신해 혁명가로서의 임무에 더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흐름과 상관없이 그림 자체에만 몰두하는 화가가 아니었다. 아니, 자신이 발 디디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올곧게 그려내려 했던 사실에 비춰볼 때 더 넓은 의미의 화가라고 부를 수고 있을 것이다. 젊을 때부터 혁명 사업에 뛰어 든 그를 두고 현재 중국역사학자들은 ‘동북지구 중국공산당 초기 창시자의 한사람’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지만, 예술평론가들은 그를 ‘조선족을 대표하는 위대한 세계적인 예술가’라는 또 다른 호칭으로 되새긴다. 한 사람을 두고 이렇듯 평가가 다른 까닭은 그가 살아온 인생이 그만큼 다채롭다는 방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이런 호평과 달리 정작 그의 모국인 이 땅에 그의 이름이 전해지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1993년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한낙연 유작전’이 그가 화가로서 이 땅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나 마찬가지다. 살아서는 단 한 번도 해방된 조국의 땅을 밟지 못한 한낙연, 대신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유작이 이 땅을 밟아본 것으로도 그는 지하에서 기뻐할 것이다. 청춘을 조국의 광복에 바쳤지만 일제 패망이후에도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는 대신 중국대륙에 머물렀던 한낙연,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실크로드의 모래먼지 속에서 잠자코 있던 고대 석굴 벽화가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던 것이다. (계속) [*신동아] 통권554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잡지 《좋은 아침》 조선족인물렬전 코너의 장식때문에 많은 조선족 유명인사들을 만나 취재하면서 과학기술분야에서 성공한 민족의 과학자들이 그렇게 많은 분야에 골고루 많음에 실로 긍지를 가지게 된다. 특히 기업인들은 개혁 개방의 무드를 타고 짧은 시일에 부를 이루고 그를 바탕으로 사회에 공헌을 한 유명인들이라...
  • 2007-12-12
  • 년초 약속대로 6꼴을 뽑아 다소 마음의 안위가 된다는 문호일. 올해 팀이 뽑은 16꼴(페널티킥 3꼴 포함)에서 14껨 출전으로 6꼴을 뽑으며 250만원의 몸값으로 자리 지킴을 하고있는 문호일을 일전에 만났다. 언제봐도 소탈하고 꾸밈이 없는 그는 외지생활의 힘들었던 에피소드들을 말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우리 말이 통...
  • 2007-12-11
  • 해남성 삼아시 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 상거한 '전원몽과수농장'은 산기슭을 따라 주위 어디를 둘러보나 한폭의 거대한 수묵화를 방불케하는 록색의 바다이다. 과수가지에  매달린 무수한 열매들은 수확의 계절이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준다. 1998년 관광팀을 따라 해남의 삼아에 왔던 김용선씨는 1주일 체류기...
  • 2007-12-11
  • 지난 11월 27일 저녁 여섯시 20분경, 중앙인민방송국 조선말방송에서는《고향소식》프로가 라지오전파를 타고 흘러나오고있었다. 《신빈현정부에서는 새농촌건설에서 향진간부들의 봉사성역할을 향상시켜 착실하게 새농촌건설을 추진하고있습니다…》 이런 변화발전하는 고향소식을 육성으로 지구촌에 전한 주인공이 ...
  • 2007-12-06
  • "고객 한명의 뒤에는 10명, 100명, 1000명 지어 거대한 시장이 있을수 있습니다. 한명의 고객을 잃으면 하나의 시장을 잃는셈이지요." 정리실업이후 생활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창업에 나서 1000여만원의 자산을 이루어낸 룡정시삼신전자업종 김인길경리의 경영리념이다. 1980년, 부대에서 제대한 김인길씨는 룡...
  • 2007-12-05
  • —연변무용가협회 최은희비서장의 조직행보  제6회 전국무용“련꽃상”,  “대지의 춤”컵민족민간무용콩클의 16명 회원평심위원중 유일한 조선족평심위원이 있었다. 귀주위성TV를 통해 생방송되는 콩클공연에서 평심을 당당하게 소화해낸 이가 바로 중국무용가협회 리사이며 연변무용가...
  • 2007-11-30
  • 김경훈씨에 "한민족 정체성 확립 노력" 인정(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중국 연변대학교 조선언어문학학부 김경훈(47.조선족) 교수가 23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민족청년회의가 주는 제5회 한민족청년상을 받았다.한민족청년회의 김정기 회장은 이날 시상식에서 "김 교수는 한민족 후대양성과 민...
  • 2007-11-27
  • 올시즌 연변팀서 가장 무서운 잠재력을 보여준 선수다. 1989년 8월 21일생, 신장 174센치, 포지션: 미드필드. 연변팀서 가장 나어린 선수다. 년초 고훈감독이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선수는 천부적인 자질을 갖춘 선수”라고 극찬하던 장담이 시즌을 경과하며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어린 나이에 비해 경기를 ...
  • 2007-11-26
  • 축구라면 발벗고 나서서 돕는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연길남해목욕쎈터 리호산경리다. 다년간 직업적으로 사우나를 경영해온 연길남해목욕쎈터 리호산경리는 축구선수들한테 매우 필요한 목욕장소를 무상으로 제공해 호평이 자자하다. 특히 연변에서 그 수준이 정평이 나있는 조기축구팀인 연길앞으로축구팀은 리호산경리에 ...
  • 2007-11-26
  • 연길시 하남소학교에서 학습하고 있는 리규한 학생, 이번 사단법인 한국기원 초청으로 한국행을 하게 된 또 한명의 행운아다. 리규한 학생 역시 2006년 3월 연길시 천재바둑도장에 입학, 7월 7일부터 김광재 원장한테서 바둑재능을 익히면서 올해까지 1년 푼한 기간 주와 시 및 길림성 바둑경기에서 수차나 상을 받아안은 바...
  • 2007-11-2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