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종환씨 무용수 가수 영화배우 연출 등을 두루 경험한 예술박사
1995년 중국장백산풍토인정관광절대형문예공연 예술총감독.
2000년 중국연변조선족민속관광박람회대형문예공연 예술총감독.
2002년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50돐 대형음악무용공연 부총연출.
2003년 겨울철 장백산 빙설절개막식공연 예술총감독.
2005년 연변조선족자치주민속관광박람회 광장무용공연 예술총감독.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60주년기념대합창콩클 합창지휘…
무릇 연변 주내에서 펼쳐지는 대형문예공연때마다 행사를 기획하고 공연장에서 직접 로련한 솜씨로 진두지휘를 하면서 공연을 멋지게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27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화려한 군중문화사업을 이끌어온 연변군중예술관 부관장 리종환씨이다.
리종환씨에게 있어서 최대의 인생전환점은 축구선수로부터 무용배우로의 변신이다. 그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뛰여난 자질이 있었는데 일찍 룡정시체육학교 축구팀에서 뽈을 찼고 후에는 흑룡강성청년팀과 장춘시축구팀에서 선발선수로 활약했다. 1968년중학교를 졸업한 리종환씨는 당시의 연길현 동성공사 태평3대 집체호로 내려갔다. 그는 손풍금을 다룰줄 아는 당지의 농민과 집체호의 청년들을 주축으로 과외문예대를 꾸리고 온돌 공연, 밭머리공연을 하여 농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1969년말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해체되였던 룡정시문공단이 다시 획복되여 리종환씨는 시험에 합격되였다 당시 고자성, 리승숙, 최인호, 최연숙 등 재능있는 예술인들이 연길현문화관에 있었는데 리종환씨는 그들에게서 다방면의 예술재능을 배우면서 문공단의 주력으로 활약했다. 그는 15개 종목공연에서 19개 종목의 주역을 맡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하냥 축구선수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리종환씨는 북경체육학원시험에 응시했는데 합격되였다. 그러나 문공단의 골간인 그를 룡정시에서 놓아줄리 만무하였다. 리종환씨는 막무가내오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그의 축구선수의 꿈은 철저히 깨지고말았다.
1972년말, 리종환씨는 길림성삼림경찰부대문공단에 창작일군으로 전근하였다. 길림성삼림경찰부대문공단은 당시에도 성내에서 큰 예술단체였다. 그때 리종환씨는부대위문공연을 1년에 180여차나 하는 기록을 세웠다. 1974년 리종환씨는장춘영화촬영소에 가 “창업”“평원유격대”“산채의 불씨” 등영화의 보조역을 밭기도 하였다.
길림성삼림경찰문공단이 해체되자 리종환씨는 도문시문화관에 배치받았다. 무용보도원인 리종환씨는 농촌문화실을 세울 타산으로 월청향 걸만촌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농촌청년들을 위해 무용강급반을 꾸렸다. 그는 또 수남촌에 4년간 점을 잡고 문화실을 세우고예술지식을 전수하면서 촌민들과 어울려 일했다. 그때 마을사람들은 녀성들을 위주로 문화예술보급을 하는 그를 “부녀대장”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는 수남촌의 청년들로 공연대를 조직해 문예공연을 하였다. 1982년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30돐때 그의 지도를 받은 촌민들로 구성된 수남촌공연팀 200여명이 도문시광장무용콩클에서 공연해 절찬을 받았다. 그때맺은 정이 너무 아쉬워 어떤 농민들은 리종환씨의 집에 그가 즐겨먹는 시루떡을 한임 지고 오기까지 하였다.
리종환씨는 우리 민족예술의 후대양성을 위해 1979년에 도문시과외예술학교를 설립하였다. 물론 무보수였다. 도합 80여명의 학생을 받아들여 배양한 결과 32명이 예술학교와 전업예술단체에 들어갔고 기타 학생들은 공장 사업단위의 골간으로 활약하였다. 하여 도문시문화관은 전국소년아동예술양성선진단위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후 그가 도문시문화관 문예부주임을 맡았을 때였다. 전 주 연극공연에서 장막극 “이웃사이”를 무대에 올려 유일한 과외단체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물론 이극의 주요배우는 리종환씨였다. 1985년 그는 도문시문화관 부관장으로 발탁되였다. 그해 그는 36살의 나이에 연변대학 중문학부에 붙었고 1988년 도문시문화관 관장으로 임명되였다. 4년간의 공부를 마친 그는 도문시에 돌아와 태평양음향사와 손잡고 1990년부터 3년간 연변에서 맨 처음으로 3집으로 된 우리 노래 카라오케테프를 만들었다. 그리고 드라마 “몽당치마”“란세의 불행한 연분”을 기획 제작하였다. ·993년 리종환씨는 도문시 군중예술관 관장, 서기직과 문화국 부국장직을 맡았는데 공연팀을 이끌고 로씨야 공연을 하였다. 현, 시급 문화관이 외국공연을 하기는 연변에서 처음이였다.
1994년 리종환씨는 연변군중예술관 부관장으로 임명되였다. 이때로부터 그는 주내 대형문예공연때마다 총감독, 총연출을 맡으면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나갔다. 현재 그는 성룡의 “룡의 자손 마음 연변행”문화예술교류행사의 기획에 참여하였고 또 연변 제4회경찰예술절 총감독을 맡아 문예공연을 기획하고있다.
그는 선후로 십여차의 국가급 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예술관 시각”“예술심리”“미와 예술” 등10여편의 론문도 발표했다.
“군중문화사업은 어느 한 예술전업을 전공해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닙니다. 다방면의 폭넓은 지식과 실천이 중요하지요. 군중문화사업은 다재다능해야 합니다. 저는 예술단체에도 있었고 문화관에서 오랜 실천을 경험했기에 지금 자신의 소임을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변군중예술사업을 위해 27년 혼심을 몰부어온 리종환씨의 의미심장한 말이다.
(김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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