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종환 대중문화예술에 혼신 다바쳐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1월11일 09시30분    조회:978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리종환씨 무용수 가수 영화배우 연출 등을 두루 경험한 예술박사 1995년 중국장백산풍토인정관광절대형문예공연 예술총감독. 2000년 중국연변조선족민속관광박람회대형문예공연 예술총감독. 2002년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50돐 대형음악무용공연 부총연출. 2003년 겨울철 장백산 빙설절개막식공연 예술총감독. 2005년 연변조선족자치주민속관광박람회 광장무용공연 예술총감독.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60주년기념대합창콩클 합창지휘… 무릇 연변 주내에서 펼쳐지는 대형문예공연때마다 행사를 기획하고 공연장에서 직접 로련한 솜씨로 진두지휘를 하면서 공연을 멋지게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27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화려한 군중문화사업을 이끌어온 연변군중예술관 부관장 리종환씨이다. 리종환씨에게 있어서 최대의 인생전환점은 축구선수로부터 무용배우로의 변신이다. 그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뛰여난 자질이 있었는데 일찍 룡정시체육학교 축구팀에서 뽈을 찼고 후에는 흑룡강성청년팀과 장춘시축구팀에서 선발선수로 활약했다. 1968년중학교를 졸업한 리종환씨는 당시의 연길현 동성공사 태평3대 집체호로 내려갔다. 그는 손풍금을 다룰줄 아는 당지의 농민과 집체호의 청년들을 주축으로 과외문예대를 꾸리고 온돌 공연, 밭머리공연을 하여 농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1969년말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해체되였던 룡정시문공단이 다시 획복되여 리종환씨는 시험에 합격되였다 당시 고자성, 리승숙, 최인호, 최연숙 등 재능있는 예술인들이 연길현문화관에 있었는데 리종환씨는 그들에게서 다방면의 예술재능을 배우면서 문공단의 주력으로 활약했다. 그는 15개 종목공연에서 19개 종목의 주역을 맡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하냥 축구선수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리종환씨는 북경체육학원시험에 응시했는데 합격되였다. 그러나 문공단의 골간인 그를 룡정시에서 놓아줄리 만무하였다. 리종환씨는 막무가내오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그의 축구선수의 꿈은 철저히 깨지고말았다. 1972년말, 리종환씨는 길림성삼림경찰부대문공단에 창작일군으로 전근하였다. 길림성삼림경찰부대문공단은 당시에도 성내에서 큰 예술단체였다. 그때 리종환씨는부대위문공연을 1년에 180여차나 하는 기록을 세웠다. 1974년 리종환씨는장춘영화촬영소에 가 “창업”“평원유격대”“산채의 불씨” 등영화의 보조역을 밭기도 하였다. 길림성삼림경찰문공단이 해체되자 리종환씨는 도문시문화관에 배치받았다. 무용보도원인 리종환씨는 농촌문화실을 세울 타산으로 월청향 걸만촌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농촌청년들을 위해 무용강급반을 꾸렸다. 그는 또 수남촌에 4년간 점을 잡고 문화실을 세우고예술지식을 전수하면서 촌민들과 어울려 일했다. 그때 마을사람들은 녀성들을 위주로 문화예술보급을 하는 그를 “부녀대장”이라고까지 불렀다. 그는 수남촌의 청년들로 공연대를 조직해 문예공연을 하였다. 1982년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30돐때 그의 지도를 받은 촌민들로 구성된 수남촌공연팀 200여명이 도문시광장무용콩클에서 공연해 절찬을 받았다. 그때맺은 정이 너무 아쉬워 어떤 농민들은 리종환씨의 집에 그가 즐겨먹는 시루떡을 한임 지고 오기까지 하였다. 리종환씨는 우리 민족예술의 후대양성을 위해 1979년에 도문시과외예술학교를 설립하였다. 물론 무보수였다. 도합 80여명의 학생을 받아들여 배양한 결과 32명이 예술학교와 전업예술단체에 들어갔고 기타 학생들은 공장 사업단위의 골간으로 활약하였다. 하여 도문시문화관은 전국소년아동예술양성선진단위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후 그가 도문시문화관 문예부주임을 맡았을 때였다. 전 주 연극공연에서 장막극 “이웃사이”를 무대에 올려 유일한 과외단체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물론 이극의 주요배우는 리종환씨였다. 1985년 그는 도문시문화관 부관장으로 발탁되였다. 그해 그는 36살의 나이에 연변대학 중문학부에 붙었고 1988년 도문시문화관 관장으로 임명되였다. 4년간의 공부를 마친 그는 도문시에 돌아와 태평양음향사와 손잡고 1990년부터 3년간 연변에서 맨 처음으로 3집으로 된 우리 노래 카라오케테프를 만들었다. 그리고 드라마 “몽당치마”“란세의 불행한 연분”을 기획 제작하였다. ·993년 리종환씨는 도문시 군중예술관 관장, 서기직과 문화국 부국장직을 맡았는데 공연팀을 이끌고 로씨야 공연을 하였다. 현, 시급 문화관이 외국공연을 하기는 연변에서 처음이였다. 1994년 리종환씨는 연변군중예술관 부관장으로 임명되였다. 이때로부터 그는 주내 대형문예공연때마다 총감독, 총연출을 맡으면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나갔다. 현재 그는 성룡의 “룡의 자손 마음 연변행”문화예술교류행사의 기획에 참여하였고 또 연변 제4회경찰예술절 총감독을 맡아 문예공연을 기획하고있다. 그는 선후로 십여차의 국가급 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예술관 시각”“예술심리”“미와 예술” 등10여편의 론문도 발표했다. “군중문화사업은 어느 한 예술전업을 전공해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닙니다. 다방면의 폭넓은 지식과 실천이 중요하지요. 군중문화사업은 다재다능해야 합니다. 저는 예술단체에도 있었고 문화관에서 오랜 실천을 경험했기에 지금 자신의 소임을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변군중예술사업을 위해 27년 혼심을 몰부어온 리종환씨의 의미심장한 말이다. (김인선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심양기계대학을 나오고 연변의 한 대기업에서 기계공정사로 중용받던 최금철(45세)씨, 상해리공대학 화공전업을 졸업하고 역시 연변늄업 화학공정사로 활약하던 김홍녀씨(42세) 부부가 성보청사의  2층57호매대에서 청바지장사를 한지 이미 만 3년철을 잡는다. 그동안 그들부부는 현대마케팅전략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 2007-07-17
  • 《바이올린 신동》으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리고있는 다섯살짜리 한인소녀가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최유경(5세, 미국명 엘리 최)양은 6월 28일 저녁 필라델피아 《만 뮤직쎈터》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에 앞서 《현악기 국제음악페스티벌》 입상자자격으로 바이올린을 연주...
  • 2007-07-16
  • 장원수선생은 룡정시룡정중학교 체육교원이다. 그는 국가급 심판원이며 길림성 《특장전시 10대 최우수교원》이다. 꾸준한 학습 고심한 연구 장원수교원은 다년간 축구코치 사업을 맡아하면서 《소년축구훈련》, 《과학화축구훈련》 등 잡지들을 꾸준히 학습하고 축구훈련지도에 유익한 VCD들을 반복적으로 보고 연구하면서...
  • 2007-07-12
  • 해빛찬연한 지난 6월29일 오전, 기자는 주청도 대한민국 총령사관 김선흥총령사를 찾았다. 제남으로 향발해야 하는 와중에도 김선흥총령사는 한시간을 내여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인자한 얼굴에는 후더운 미소가 흘렀고 길게 뻗은 덩실한 코마루와 날카로운 눈매에는 완력과  결단으로 점철됐을 지난 력사가...
  • 2007-07-09
  • 단동시 부동산업계에는 요즘 《피여나는 꽃봉오리》로 불리는 《미녀스타》 한명이 신선한 경영전략으로 동업계와 매체의 주목을 끌며 인기를 모으고있다. 바로 단동백양(佰陽)건설그룹 판매총감 박심찬(녀, 28, 애명 향분)이다.그가 부동산업계에 발을 들여놓은것은 어쩌면 우연이라고 할수 있었다. 2002년에 상해교통대학...
  • 2007-07-06
  • 오늘 우리는 더없이 비통한 심정으로 김호근선생을 추모하게 되였습니다. 김호근선생은 2007년 7월 2일 아침 4시 15분 의외의 사고로 59세를 일기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벗이며 자애로운 선배를 잃었습니다. 김호근선생은  1948년 1월 5일, 화룡의 가난한 교육가의 가정에서 태여났습니다. 소...
  • 2007-07-06
  • 장춘시 홍기가 부금로에 자리잡고있는 안동슈퍼는 장춘에서 규모가 제일 큰 한국상품 전문점중의 하나, 이 슈퍼의 주인 리광록사장은 꾸준한 장인정신으로 경영에서 매 일보를 다져가는 참다운 당원사업가다. 경영에 앞서 신뢰를 줄 때 고객은 따라준다 리광록사장의 창업스타드는 지난세기 90년대 초반에 시작된다. 그는 상...
  • 2007-07-05
  • 300딸라로 아메리칸드림을 일군 전설적인 인물인 미주 한인회 남문기회장(54세)을 만난것은 지난 6월 25일 연길 백산호텔에서였다. 미주 한인 최대의 부동산기업인 뉴스타부동산그룹 및 부동산경제채널 KNT CEO이자 로스안젤레스 한인회장인 남문기회장은 22일 세계서울한인회장대회에 참석한후 투자고찰의향으로 잠간 연변...
  • 2007-07-05
  • 시작되는 순간부터 뭔가 가슴이 벅차오른다. 보고 있노라면 광야를 말 타고 달리는 여인의 강인한 모습이 그려진다. 또 그 여인의 힘차게 뛰는 심장 고동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풍고(風鼓)춤이 주는 느낌이다. "광대한 평야를 바람처럼 질주하는 기마민족이었던 여인족의 기상을 살려 한국여인의 내면에 흐르는 강...
  • 2007-07-04
  • 안해에 대한 남다른 사랑동희철선생의 평범한 가정이야기                  프로필1929년 4월 13일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남상동에서 출생1934년 중국 간도에 이주1944년 연길간도사도학교 본과 입학1946년 중국인민해방군 길...
  • 2007-07-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