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北에 첫합영회사 세운 천용수회장4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1월24일 13시26분    조회:1170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원제:북한에 최초 합영회사 세운 천용수 코스트 그룹 회장]

“프락치 몰리고, 400만달러 날렸어도 13년 대북사업은 무형의 흑자”

북한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마그네사이트 광산이 있다. 광산을 답사하던 때, 북한 직원들과 호주 출신의 광산 전문가와 함께 찍은 사진.

“천용수는 안기부 프락치”

13년에 걸친 천 회장의 대북사업에서 가장 획기적인 일은 1995년 8월 북한 내 독점사업인 폴리우레탄(스펀지) 제조공장, 삼흥코스트 합영회사를 창립한 것이다. 이 회사는 코스트 그룹과 북한 내각(정무원)이 공동으로 투자해 설립됐으며 1995년 11월 북한 정부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삼흥코스트 합영회사는 자본주의 방식으로 경영되는 북한 최초의 회사다. 또한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서 생산직과 관리직 사원이 모두 북한 출신으로 채워졌다. 국가 전체를 북한식 공산주의로 이끌어가는, 그들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그러다 보니 삼흥코스트 합영회사가 북한 내 자본주의 도입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종이 노릇을 한 셈이다. 북한 당국에선 사업도 사업이지만 자본주의 방식의 회사체제가 과연 북한에서 어떻게 굴러갈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큰 관심사였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그때까지 북한 당국자들은 천 회장의 활동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가 북한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큰 금액의 자본을 투자했고, 회사에서 발생하는 이익금도 재투자가 아니면 사원복지를 챙기는 데 썼기 때문이다.

이는 그때껏 북한에서 사업을 벌이던 조총련계 동포들과는 다른 면모였다. 그들은 북한의 상황이 늘 가변적이어서 단기 승부를 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까닭에 삼흥코스트 합영회사는 1996년 이후 계속해서 모범 합영회사로 선정됐고, 회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조선중앙TV를 통해 네 차례나 방영됐다. 그 또한 북한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사천리로 뻗어나가던 천용수 회장의 대북사업이 덜컹거리기 시작한 것은 북한 진출 4년 만인 1996년. 언필칭 3재(三災)가 끼었는데, 첫 번째는 코스트 평양사무소 지사장이 해고된 사건이었다. 평양 출신의 지사장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그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가 개인적인 비리로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는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벤츠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등 북한 정서에 맞지 않게 처신하고 사치를 일삼았다. 자본주의의 단물을 너무 빨리 맛본 것이다.

일이 한번 꼬이기 시작하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갔다. 두 번째 재앙은 북한 당국이 천용수 회장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나이에 비해서 너무 큰 사업을 한다는 것. 그때 상황을 보면 그럴 만도 했다. 그는 광산지역을 탐사하기 위해 군용헬기를 전세내어 사용하는가 하면 북한에선 상상하기 힘든 큰 액수의 돈을 투자해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천 회장이 북한 광산업에 거액을 투자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북한엔 미국이 눈독을 들일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인 마그네사이트 광산이 있었던 것. 대형 금광이 발견된 멕시코, 호주서부와 지층 구조가 비슷한 북한의 금광은 에너지가 부족해서 개발을 포기한 채 방치돼 있었다.

천 회장이 헬기를 전세낸 것은 막대한 경비를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광산 탐사를 위해 호주에서 데려간 직원과 광산학자가 많을 때는 15명에 달했다. 거기에다 광산학자의 하루 일당을 3000호주달러나 주었다.

남한의 완행열차보다 느린 북한의 기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길 위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엄청난 액수의 보수만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만 해도 북한의 기차는 가다가 멈춰 서는 경우가 빈번했다.

사(私)기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북한 당국자들이 이런 사정을 쉽게 이해할 리 없었다. 급기야 “천용수는 남한의 안기부 자금을 갖고 들어와 사업을 하는 프락치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때서야 비로소 ‘북한 정서’를 체험한 천 회장은 일순간 당황했지만 그런 오해는 쉽게 풀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북한 당국자들을 호주로 데려가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했고, 그는 이를 실행에 옮겼다.

1997년 북한의 차관급(부위원장) 인사를 포함한 관료 일행이 일주일 동안 서부호주에 머물면서 코스트 그룹의 사업 현황을 간접적으로 점검했다. 결과는 불문가지. 그들이 더는 코스트 그룹과 천 회장에 대해 의혹을 품지 않은 것은 물론, 그 일을 계기로 천 회장에 대한 북측의 신임은 더욱 두터워졌다.

그 무렵 천 회장이 맞닥뜨린 세 번재 재앙은 천재지변이었다. 1996년 발생한 북한의 대홍수가 그것. 산사태가 나서 코스트 그룹 소유의 광산은 복구가 힘들 정도로 큰 피해를 당했다.

당시 수해 때문에 발생한 미수금 400만달러는 지금도 미결 상태다. 그러나 천 회장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북측은 “천 회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을 지킨다”며 그에게 강한 신뢰를 내보인다.

(계속)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img count='1' width='400' img] 200 5카이로 세계유도선수권대회 57킬로그람급에서 금메달을 딴 조선선수 계순희가 17일 오후 평양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있다.
  • 2005-09-21
  • 고훈(연변세기팀 감독): 오늘 경기는 아주 어렵게 이겼다. 대방팀이 방어를 견고하게 하고 수시로 역습을 노렸기에 우리를 어렵게 만들었다. 선수들은 난공불락에서 아주 내심했고 끝내 한번의 기회를 잡았다. 지금 한번 승리를 거둔다는것은 정말로 쉬운일이 아니다. 경기에서 위협적인 진공을 많이 했으나 안타까운것은 소...
  • 2005-09-19
  • 주 건설국에서 사업하고 있는 오기준씨가 4만여원을 내 고향마을인 조양천진 다촌에 다리를 놓아주어 촌민들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조양천진 다촌은 16호세대에 50여명의 인구를 갖고 있는 마을인데 교통이 불편했습니다. 촌민들이 외출하려면 마을앞 개울물을 지나야 했는데 다리가 없어 고생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
  • 2005-09-19
  •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끌고 2006년 독일월드컵을 지휘할 딕 아드보카트 감독(58)은 전형적인 네덜란드 스타일의 지도자다. 무엇보다도 경기를 지배하는것을 중시하고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털사커의 교과서를 철저히 적용하고있다. 네덜란드 토털사커의 창시자이자 1988년 유럽축구선수권에서 네덜란드를 사상 처음으로...
  • 2005-09-19
  • 개혁개방이 심화되면서 중국에 와 투자한 외국기업이 날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중국사회, 중국인들과 어울리면서 조화로운 사회건설에 기여하고 있고 서로 융합되고 있습니다. 베이징 석경산구역 영락서구에 자리잡고 있는 베이징신기 세라젬 의료계기유한회사가 바로 그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베이징 석...
  • 2005-09-18
  • [원제:효심 애심 량심이 낳은 휘황-전국우수인민경찰 임장하식 공안국장 김동화를 보다] 안도현공안국, 1995년부터 1999년사이 집체3등공과집체2등공을 세우면서 전국우수공안국과 길림성로동모범집단이라는 휘황을 안아온 전투집단이다. 허나 2001년부터 이 공안국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주적으로나 성적으로 뒤...
  • 2005-09-18
  • 한락연은 1898년 12월 8일에 룡정에서 태여났다. 한락연이 최초로 참가한 항일활동은 1919년 룡정에서 있은 《3 13》운동이다. 이 시기 그는 초기 고려공산당활동에 참가, 《3 13》 시위자들이 들었던 태극기 대부분이 한락연이 만든것이다. 1923년 상해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한락연은 이때로부터 반제국주의, 반봉건주...
  • 2005-09-18
  • 조선족 작가 장혜영의 저서 가 한국의 인문학계렬의 대학교재로 선정되였다. 흑룡강성 출신인 장혜영씨는 5-6년간 한국에서 장편소설 , 을 출판하였고 2002년에 인문도서 를 펼쳐내였다. 장기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경험한 많은것들을 짬짬이 글에 담아온 소설가는 엄연한 로 변신되여 민족문화학과 사회문화학의 시각에서 한...
  • 2005-09-15
  • 조선족민속학자 천수산씨의 일가견- 1952년 9월3일에 연변조선족자치주(설립시는 구)가설립되였다는 의미는 조선족이 진정 이 땅의 주인이 되여 조선족의 전통문화를 계승,발양하고 조선족의 민족전통을 대대로 이어나가자는 것이 근본적인 취지이다. 그리하여 많은 유지인들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단순히 길림성에만 국한되...
  • 2005-09-15
  • 조선족 최군 흑룡강성 '10대걸출한 쳥년'후선인에 당선 흑룡강성 고급인민법원 민사제2재판정 재판장 최군(41세)이 흑룡강성 '10대 걸출한 청년'후선인에 당선되였다. 최군은 사업에 참가한 18년래 부지런히 사업하고 고심히 연찬하며 청렴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 전성 법원의 심판수준제고와 량호한 경제법제환경을 조성...
  • 2005-09-1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