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 결산대회로 열리는 탁구 종합선수권은 학생부터 실
업선수까지 자격을 갖추면 모두 참가할 수 있다. 종합선수권자는
따라서 그해 최고의 선수로 봐도 된다. 말이야 학생도 참가할
수 있다지만 지금까지 우승자는 거의 대부분 실업팀에서 나왔다.
문영여중 3년 때 종합선수권자에 등극한 이에리사(태릉선수촌장
)씨의 경우는 워낙 돋보였던 스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남자부에서 고교생이 이 대회 챔피언에 오른 적이 있다.
주인공은 부산 광성공고 3년생이었던 안재형이었다. 안재형은 19
83년 대회 결승에서 당대 최고수 김완을 누르고 정상에 올랐었다
. 안재형 말고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고교생 종합선수권자가 되
지 못했다.
이렇듯 선수로서 뛰어난 업적을 쌓았던 안재형이지만 일반인들은
안재형하면 우선 자오즈민(焦之敏)과 함께 떠올리게 된다. 1989
년 당시 미수교국이었던 중국의 탁구 스타 자오즈민과 안재형의
국경을 뛰어넘은 결혼은 너무나 쇼킹한 ‘사건’이었기 때문이었
으리라.
지난 98년 소속팀 동아생명의 해체 여파로 은퇴한 후 지금은 한
국체육대학 초빙교수로 있는 안재형(41)을 지난 17일 만났다. 원
래는 안재형의 집에서 자오즈민(42)과 함께 인터뷰할 계획이었지
만 사업을 하는 자오즈민이 중국 체류 중이어서 문화일보로 그가
찾아왔다.
중국 광저우(廣州)에 관광 갔던 한 문학계 인사의 기행문을 보니
그곳 관광 안내원이 ‘중국 사람은 탁구를 잘 하고 한국 사람은
낚시질을 잘 한다’라는 농담(탁구 스타 자오즈민이 안재형의
낚싯밥에 걸려 시집을 갔다는 의미)을 했다고 하던데. “중국에
서는 아직도 우리 부부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습디다. 지난 5
월 상하이에서 열린 개인전 세계선수권에 갔다가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탁구중계를 듣고 있더군요. 그래서 탁구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서 대화가 길어졌는데 저희 부부 이야기도 하더군요. 그는
‘자오즈민이 중국에서 사업을 한다는데 부부가 그렇게 떨어져
살아도 되느냐’고 나에게 묻더라고요. 물론 그 기사는 내가 외
국인이고 안재형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죠.”
중국어는 자오즈민과 연애하면서 시작했는지. “그렇죠. 85년 말
인편으로 편지가 오갔는데 처음에는 중국식당 화교에게 번역을
부탁했죠. 펜팔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86년쯤 사랑으로 발전하면
서 87년부터 필사적으로 중국어를 배웠어요. 지금은 부부싸움도
중국말로 하고 중국 택시기사도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모를 정
도는 됩니다.”
자오즈민과의 첫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제가 국제대회
에 첫 출전한 것은 84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아시아
선수권인데 대회를 앞두고 대만에서 2주간 전지훈련을 했어요.
그때 예쁘다, 사랑한다는 등의 중국어 몇 마디를 익혔죠. 선수권
이 끝나고 환송파티에서 중국 팀이 마침 옆에 있어 자오즈민에게
장난삼아 대만에서 배운 말을 써 먹었어요. 그 때 중국 여자선수
중에서는 ‘병훈이 엄마’가 가장 나아 보였거든요. 그러다 85
년 세계선수권에서 재회했는데 나를 보고 반가워하더군요.”
자오즈민이 한살 더 많은데. “처음 필담을 나눌 때 자기는 63년
이라며 내 나이를 묻기에 2년을 속여 62년생이라고 했죠. 결혼
후에야 내 나이를 알고 깜짝 놀라더군요. 그 때 사실대로 밝혔으
면 아마 결혼 못했을지도 모르죠.”
후배인 유남규(안재형의 부산 남중, 광성공고 3년 후배)도 자오
즈민에게 관심이 많았다던데. “남규도 훤칠한 자오즈민에게 관
심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87년 일본에서 열린 유로아시아대회에
나는 출전을 못했고 남규가 나갔는데 자오즈민에게 아는 체했더
니 내 안부를 묻더래요. 그래서 포기했대요.”
결혼 결심 후 국제대회에서 자오즈민과 대결을 벌이기도 했는데.
“87년 세계선수권 혼합복식 4강에서 격돌했죠. 나는 양영자와
조를 이뤘고 병훈 엄마는 장자량과 콤비였는데 우리 조가 1-3으
로 졌어요. 그 때 자오즈민과의 사이를 알고 있던 강문수(현 삼
성생명 상무) 코치가 ‘한번 져 달라고 해봐라’고 농담처럼 이
야기했었는데…. 나중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자 자오즈민이 ‘부
탁했으면 져줬지’ 그러더라고요.”
당시 중국과 수교가 없어 결혼을 결심하는 데 고민이 많았을 텐
데. “처가가 있는 헤이룽장(黑龍江)성에는 조선족들이 많이 사
는데 그들이 생활하는 것을 보고, 장인 장모는 조선족에 대한 편
견이 심했어요. 특히 남존여비 사상이 심해 고생할 것이라고 반
대하셨대요. 우리 집에서도 내가 나이도 어리고 국제결혼이라 염
려를 많이 하셨죠. 그렇지만 우리 둘은 주변 여건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죠. 철도 없었고 사랑에 눈이 멀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특히 자오즈민은 하버드대 출신에 가문도 좋은 한족과
혼담이 오갔는데 선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지 모른다고 거절했다
고 하더군요.”
89년 12월 22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국대사관에서 혼인신고를
했는데. “자오즈민이 해외진출을 하게 되면 결혼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 한국 사람을 부인으로 둔 스웨덴 엥비클럽의
회장이 자오즈민을 스카우트하는 형식으로 중국에서 출국시켰죠.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재미교포가 홍콩에서 자오즈민을 만나
스웨덴으로 데려오는 등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첩보전 같았어요.”
자오즈민이 하는 사업은. “중국에서 ‘취안톈퉁(全天通)’이라
는 휴대전화 부가서비스사업을 하는 회사를 운영합니다. 각 성에
지사도 있고 직원이 90여명 돼요. 코스닥 상장기업인 ‘옴니텔
’이 협력사입니다. 옴니텔에서는 자오즈민이 한국말을 잘해 좋
아합니다.”
자오즈민은 이전에도 여러 가지 사업을 했었는데 비즈니스에 원
래 관심이 많았는지. “자오즈민은 천재적인 선수였지만 원래는
탁구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선수생활을 할 때도 다른
분야, 특히 사업에 관심이 많았대요. 시집 온 후 한양대 중문과
에 입학했다가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휴학했는데 복학할 생각을
않더군요. 본인이 뜻이 있었다면 태극마크를 달수도 있었는데. 96
년 고향인 헤이룽장성에서 자판기용 종이컵 사업을 했는데 실패
했고 98년에는 하얼빈에 ‘청와대’라는 한식당을 오픈했는데 처
음에는 아주 잘 됐어요. 그런데 한식당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재
미가 없어져 남에게 넘겼죠. 이번 사업은 성공적인 것 같고. 요
즘은 금요일에 집에 와 일요일이나 월요일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주
말부부로 살고 있습니다.”
내년 쯤 미국에 갈 계획이라고 하던데. “골프를 하는 아들(중 2
년) 때문에요. 미국에 보내 본격적으로 시켜보려고 하는데 내가
미리 미국에 들어가 알아보려고요. 플로리다쪽으로 보낼 계획입
니다.”
힘들게 결혼했던 안재형, 자오즈민 부부는 얼마 전 서울에서 열
린 세계화상(華商)대회에 초청 받는 등 지금은 한·중 친선의 상
징처럼 대우받고 있다. 안재형은 “화상대회도 그렇고 지난 5월
에는 우리 부부가 인천 항만청 홍보대사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각계의 도움으로 어렵게 결혼했는데 이렇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이제야 빚을 갚는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2005.11.26 12: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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