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그는 소망대로 서울대학 수의약학원에 입학, 1982년까지 그는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및 박사학위를 따냈다. 졸업후 그는 학교에 남아 교편을 잡게 되였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동안 그의 연구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도사스승이 그가 박사를 졸업하기전에 타계하는바람에 그의 승진의 희망도 수포로 돌아갔고 그의 실험실도 문을 닫게 되였다. 그는 이때로부터 일터를 잃고 다른 학교에 가 객좌교수로 일할수밖에 없게 되였다. 이 사이에도 그는 자신의 리상만은 포기하지 않고 자기의 유일한 집마저 팔고 지방에 내려가 실험농장을 세우고 인공수정소배육분야의 연구에 몰두했다.
1985년, 그는 일본 북해도대학에 연수를 가 당시 국제과학계 복제분야의 유명과학자들과 일부 나젊은 학자들과 접촉을 갖게 되였다. 이런 사람들 몸에서 황우석은 앞으로 복제술이 생물기술의 주류로 될수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1987년, 황우석은 연수를 마치고 서울대로 돌아와 교수직을 맡고 본인의 복제분야의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황우석이 거느리는 과학연구팀은 그후 10여년동안 많은 제일을 창조해냈다. 1999년 세계적으로 맨처음 체세포복제소를 배육해내고 2002년에 돼지를 복제해냈으며 2003년에는 또 세계에서 처음으로 항광우병소를 배육해내고 2005년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복제개인 스나피를 복제해냈다.
《황우석신화》는 2005년말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떤 매체들에서는 그의 연구팀이 소속녀연구원들의 란자를 리용하여 연구에 사용했고 아울러 란자를 제공한 녀성들에게 돈을 주어 론리도덕을 위배했다고 까밝혔다. 그후 그의 연구팀 성원이며 피쯔버그대학 교수 쉘튼이 2005년 론문에 가짜성분이 들어있다고 지적, 서울대에서는 즉각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수사를 진행, 결과 그가 미국과학잡지에 낸 두편의 론문은 모두 가짜인것으로 판정받았다. 황우석은 서울대와 심지어는 한국관련 법률의 응징을 받을 처지에 봉착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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