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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로 빚어가는 창업의 무지개꿈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3월6일 07시59분    조회:8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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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두깨》 녀인ㅡ오희란

비공유제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지지하고 민영기업을 적극 부축일데 관한 당중앙의 정신을 참답게 관철시달하며《전민창업》활동가운데서 민영기업인들이 자기의 위치를 옳바르게 선정하고 창업분위기를 형성하게 하기 위한데 취지를 두고 본지는 부동한 인물, 부동한 품목, 부동한 차원으로 소자본창업성공사례들을 싣는다.

참신한 생활을 창조하기 위해 창업의 꿈을 이룩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ㅡ편집자

오희란녀성은 연길시《홍두깨》칼국수전문점 총경리이다. 허나 오희란녀성을 《홍두깨》녀인이라 부름은 단지 그녀가 《홍두깨》칼국수음식점의 보스라는데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그녀의 창업, 분투, 성공의 매 한발자국, 매 한단계, 매 하나의 성과에는 《홍두깨》 정신과 특성이 진하게 슴배여있기때문이다.

창업치부에 뛰여든 많은이들이 흔히 그러하듯 오희란녀성의 창업의 칠색무지개꿈도 로무송출의 이국땅에서부터 몇차례의 결실을 맺지 못한 실천에까지 이어졌고 오늘의 고심의 탐구의 길로 계속 이어지고있다.

2004년 5월, 오래동안의 고심과 탐색을 거듭하던 끝에 오희란은 남편 강수학씨와 함께 마침내 《홍두깨》칼국수전문점을 꾸리기로 결정하였다. 다년간의 고심과 탐색하에 선정한 항목이 《홍두깨》칼국수라니?! 어찌보면 당시 이 항목 선정은 뭇사람들에게는 상례를 벗어난 의외의 선택이 아닐수 없었다.

연길시에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거의 음식점이 줄지어있어 경쟁이 치렬하므로 경영하기가 어렵고 밀가루음식이 워낙 우리 민족의 비전통음식이기에 밀가루음식력사가 유구한 타민족을 초월하기 어렵고 《보조》역을 하기도 시원찮은 칼국수를 《주역》으로 큰 경영성과를 올리기 어려우며 우동, 짜장면, 볶음면, 칼국수 등 품종이 다양하여 새 품종 개발이 어려운것이다. 하물며 음식점경영에서 한차례 고배를 마셨음에야. 그러므로 《홍두깨》칼국수전문점설립의 결책은 그야말로 《어두운 밤에 홍두깨 내미는》 격이였다. 그러나 오희란녀성과 남편 강수학씨의 사로는 랭철하고도 명확하였다. 음식업 수량이 많고 경쟁이 치렬함은 이 업종이 규모, 자금, 품목 제한을 크게 받지 않고 자금류통과 리윤회수가 빠른 등 우세와 매력이 있기때문이고 특히 육수물과 조미료를 곁들이기에 새 품종 개발의 잠재력이 크며 타민족의 전통음식이지만 우리 음식의 민족특색과 한국에서 익힌 칼국수기술을 결합한다면 《청출어람, 이승어람》의 효과를 거둘수 있다는것이다. 하기에 이들은 아무런 동요와 주저도 없이 음식점내부장식 초시작부터 《홍두깨》칼국수란 간판을 밖에 떳떳이 내걸었다.

그러나《만사는 시작이 어렵다》고 영업시초부터 이런저런 애로가 막아나섰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밀가루소재의 차이로 한국칼국수는 쫄깃쫄깃한데 비해 이들의 칼국수는 탄성과 끈기성이 차하였다. 만약 이 문제를 제때에 풀지 못한다면 시든 꽃잎파리가 매력을 잃듯 이들의 칼국수는 손님들의 버림을 받아 요절될수밖에 없었다. 하여 오희란녀성과 강수학씨는 《배수작전》의 용기로 공략전에 뛰여들었다.

낮에는 《면스프》와 함께 매일 수십차의 연구와 시험을 거듭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도 한밤중까지 연구와 시험을 계속하였다. 매일 직접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몇십근의 밀가루를 반죽하고 국수오리를 만들고…하고나면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나른해나는 육체적고달픔에다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이 안겨주는 심리상의 압력도 컸었다. 하지만 이들의 념두에는 오로지 밀가루뿐이였다. 수백차에 달하는 끈질긴 분투끝에 이들은 마침내 탄력과 끈기성이 뛰여난 주룩주룩 먹는 재미와 쫄깃쫄깃 입맛을 돋구는 합당한 밀가루를 선택배합해내였고 명실에 부합되는 홍두깨칼국수를 만들어내여 손님들의 찬사를 받았다. 하여 몇달후부터 점차 점심에 초만원을 이루던 손님이 저녁에도 초만원을 이루어 줄을 서서 기다려 먹는 기꺼운 정경이 나타났다. 바로 《홍두깨》식의 굳센 의지가 《홍두깨》칼국수의 성공기틀을 마련하였다.

일시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어렵지만 장구한 성공을 거두기는 더 어렵고 성공의 차원에서 발전승화의 비약을 이룩하는것은 더더욱 어려운것이다. 오희란녀성과 강수학씨는 창업에 대한 지적투자와 혁신을 시종일관하게 추진하여왔다. 오희란녀성은 《홍두깨》음식점 개업전인 2000년 7월 한국음식작식기법학습을 목적으로 두번째 한국행을 하였고 칼국수밀기, 해물탕만들기 등 음식작식기법을 얻어왔다. 귀국후 《홍두깨》칼국수 경영을 시작한후에도 오희란녀성과 강수학씨는 주내외 지어는 산서에까지 가 학습, 고찰하였으며 해마다 과학서적구매에만 몇천원씩 투자하였다.

경영에 대한 전략적안목과 아이디어는 창의력에서도 도드라지게 나타나고있다. 오희란녀성과 강수학씨는 그저 남의것을 그대로 옮겨놓는것이 아니라 장점을 흡수하는 토대에서 새롭게 창조하기에 전력하였다. 10여가지 반찬을 담을수 있는 밀차를 만들어 손님들이 임의로 구미에 맞는 반찬을 선택할수 있도록 하였고 최근에는 사발면개발과 함께 6∼7가지 맛의 육수물을 개발하고 가스렌지로를 설치한 밀차에 밀고다니며 부페식봉사를 하고있다.

《홍두깨》녀인 오희란과 남편 강수학씨의 《홍두깨》식의 굳센 의지와 《홍두깨》식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홍두깨》칼국수전문점의 쾌속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짧디짧은 2년사이 《홍두깨》칼국수전문점은 2개의 영업분점에 영업면적이 초창기 100여평방메터로부터 1000여평방메터로 확대되였으며 90여명의 일군을 둔 상당한 규모를 갖춘 체인식경영체계를 형성한 음식업체로 발돋움하였다.

리련복기자llf@ybrb.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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