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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아바이》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3월17일 08시29분    조회:6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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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세 최근갑옹 15성상 땀바쳐 오로지 민족의 뿌리찾기에 전념 룡정에 10개의 유적비 세워

한겨울 같은 혹한이 뼈속에 스며들던 지난 3월 13일, 룡정시 동남교외의 합성리 《3.13》반일의사릉에서는 룡정시와 연변 각지에서 온 지명인사 150여명이 모여《3.13》반일운동 87주년기념추모행사를 펼치고있었다. 찬바람에 백발을 흩날리면서 한 로인이 격앙된 목소리로 추모연설을 하고있다.

《한개 민족으로서 자기 민족력사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지키지 못해 잃어버린다면 그 민족자체도 나중엔 멸망되고말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자랑찬 우리 력사를 아끼고 지켜나가고 홍보하면서 룡정사람이라는 드높은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선렬들의 혁명정신을 본받아 맡은바 사업을 잘함으로써 룡정의 현대화건설을 위하여 더 큰 기여를 합시다.》

이 로인이 바로 룡정에서《비석아바이》로 이름짜한 최근갑(81세)옹이다. 1990년, 룡정시《3.13》기념사업회가 발족된후 오늘까지 줄곧 회장직을 맡아오면서 수많은 유적지를 발굴, 기념비를 세워 룡정의 관광사업을 위해 업적을 쌓았고 후대양성의 터전을 마련해놓은것이다.

《1989년 한국 동아일보 문화부 부장 리영철씨가 <3.13>반일운동좌담회에 참가하고저 왔을 때 이 묘소에 대해 물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였는데 하반년부터 찾기 시작했습니다. 반년간 32명의 로인을 방문하면서 수십차의 답사를 하던중 합성리의 방청화(당시 81세)로인에게서 우연히 <만세묘지>가 있었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희생된 사람들을 묻은 묘소라는것이였습니다. 그 로인을 앞세우고 고증한 결과 과연 우리가 애써 찾던 묘소였습니다. 하여 1990년 4월 10일에 확정하고 5월 19일에 연변 각지 유지인사들이 모여 추모회를 열게 되였습니다.》

최근갑선생은 아직도 묘소의 단서를 발견하고 찾아내던 당시의 격동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있었다.

최근갑선생은 정년퇴직전의 전공은 건축이였다. 그는 연변의 도시와 저수지 건설에 공헌한바가 크다. 그것은 1944년 룡정은진중학교 토목건축과를 졸업한 덕분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력사에 이렇게 집착하게 되였을가.

《1989년 10월, 내가 룡정시대외경제문화교류회 회장으로 있을 때 우연하게 연변대학 교수 박창욱선생과 서울인하대학 윤병섭교수가 나를 찾아와 룡정의 <3.13>을 아는가, 독립만세묘지를 아는가고 묻는것이였습니다. 그 모든걸 나는 전혀 모르고있었기에 부끄럽지만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간 가슴속으로부터 수치감이 치밀어오르더군요. 저의 아버지도 독립운동에 참가했다는 <죄목>으로 서대문감옥에서 3년간 옥고를 치른 량반이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일본노화교육을 받으면서 민족심도 어지간히 다져봤고요. 이런 내가 자기 민족의 력사에 까막눈이니 수치스러울수밖에요.》

하여 시작한것이 력사유적발굴이였다. 력사란 당대에 발굴하고 조명하지 않는다면 세월의 흐름속에 사라지게 되며 잊혀지게 될것이다. 마땅히 우리 민족 력사를 발굴하여 력사책에 올리고 형식이 부동한 혁명유적지를 복원하여 혁명전통교양의 기지로 만들고 관광유람지로서도 가능하도록 하게 해야 한다는것이 당시의 생각이였다.

최근갑선생은 이 생각을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그런데 자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최근갑선생은 카나다, 미국, 일본, 한국, 향항 등 나라와 지역에 있는 룡정의 은진중학교, 대성중학교, 동흥중학교 등에서 공부한적 있는 동창과 동문들을 일일이 방문하면서 기금을 마련했으며 마련되는족족 기념비건조에 박차를 가했다. 그의 노력에 의해 룡정의 사적지들에 끝내 하나하나의 기념비가 세워지게 되였다. 1906년, 리상설이 세운 현대식학당인 서저서숙(현재의 룡정시 실험소학교), 독립운동가양성을 목적으로 1908년에 김약연이 창설한 명동학교(현재의 지신진 명동촌), 1920년에 카나다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은진중학교(지금의 룡정시 동산),《3.13》반일운동대회장인 세전대야(지금의 룡정시제1유치원), 《3.13》반일렬사릉원(지신진 합성리촌 산기슭), 15만원탈취유적지(지신진 승지촌 동량리어구), 1920년 경신년 대토벌 당시 일제가 촌민들을 무차별 대량 학살한 동성용진 장암동참안지(동성용진 인화촌),《5.30》폭동기념비(지신진 승지촌), 김약연공덕비(지신진 명동촌) 등등이다.그러나 이러한 일을 추진하는것이 순풍에 돛단격이 아니였다. 한쪽으로 기념비를 세우면 한쪽으로는 부당하다는 리유로 제거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하여 최근갑선생은 로구의 몸으로 주당위, 룡정시정부를 비롯한 해당부문을 신바닥이 닳도록 드나들며서 교섭도 하고 설득도 하고 《큰소리》도 쳐야 했다. 2000년 12월, 최근갑선생은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전8권),《민족간사》(한문),《영광스러운 력사》(한문) 등 책을 짊어지고 주당위 진개봉부서기를 찾아갔다가 만나보지 못하고 선전부 부부장 마경봉을 만나 열정적인 접대를 받으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최선생은 마부부장에게 《연변의 력사학자들 아니면 성과학원 학자들을 모셔다 진실한 력사를 문의하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아마 그 의견이 후에 채납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제가 세운 비석들은 지금까지는 모두 건재해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사이섬비>, <선구자비> 같은것들은 다 제거되였습니다.》

우선 력사적인 인식이 명확해야 한다는것이 최근갑선생의 신조였다. 사이섬, 즉 간도는 일제가 중국침략을 목적으로 조작한것이기에 기념비를 세운다거나 하는 것이 합당하지 못하며 룡정에서 불린적도 없고 광복전에 들어보지도 못한 노래 《선구자》를 독립운동가로 잔뜩 포장하여 비석을 세운다는것은 력사외곡이기에 부당하다는것이다.

《민족시인 윤동주묘소도 일본의 오오무라씨보다 사실은 우리가 먼저 발견한것입니다.》

최근갑선생은 윤동주묘소를 발견하던 경과를 피력했다.

언녕부터 윤동주와 윤동주시를 잘 알고있던 미국에 살고있는 학자 현봉학선생은 1983년 8월, 재미동포 13명을 인솔하고 중국을 방문할 때 연변의 유지들과 자치주정부 외사처에 윤동주의 유적, 특히 묘소를 찾아줄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때까지 윤동주가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때를 현봉학선생은 《윤동주의 유적지를 찾아서》라는 글에서 이렇게 쓰고있다.

《…다음해인 1985년 7월, 제2차 단체중국방문을 했을 때 나는 오로지 윤동주의 묘소에 대해서만 물었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룡정시대외문화경제교류협회 최근갑리사장, 룡정중학교 유기천교장 그리고 연변농학원 김동식교수 제씨로부터 묘소를 발견했으니 오시면 안내를 해주겠다고 하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밤새 억수로 쏟아진 비때문에 우리가 탄 뻐스는 동산묘지 언덕으로 올라가지를 못했다…》

윤동주묘소를 처음 발견했을 때를 최근갑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묘비는 제대로 세워져있었는데 봉분이 조금 꺼져있었습니다. 그러나 별로 손상을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묘지를 보호하기위해 돌기초를 쌓고 벽돌로 둘레를 해놓았댔습니다.》

2004년 6월, 길림성조선한국학회 회장이며 중국사회과학원 한국연구회 리사인 진룡산일행이 룡정에 와 최근갑선생을 찾아 력사관, 민족관, 조국관에 대한 조사를 6시간이나 했었다. 그때 최근갑선생은《우리 연변의 조선족들은 땀과 눈물로 이 연변땅을 개척하고 건설하고 지켜냈으며 다른 민족보다 몇배나 되는 희생을 냈다. 어느 민족이나 자신의 민족력사관을 정확히 수립해야 한다. 정확한 력사관을 수립해야 조국관, 민족관을 해결할수 있다》고 했다. 그의 견해에 대해 진룡산교수는 동감을 표하면서 만족해했다.

최근갑선생의 그동안의 로고와 애환, 공로로 연변 학술계와 력사계에서는 그를 정답게 《비석아바이》라고 부르고있다.

《할일이 많아요. 내 나이 금년에 81살이니 실컷 살았지만 그나이 꺼꾸로 돌려 18살 청춘으로 우리 민족의 뿌리찾기에 한힘 더 보태고싶습니다. 금년은 연변조선족들의 반일운동시작 100주년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부터 또 뛰여야 할참입니다. 민족을 위해 지금도 할일이 있다는것보다 더 큰 긍지는 없습니다.》

《비석아바이》—최근갑선생은 18살 청년마냥 얼굴에 홍조를 띄우고있었다.

김철호기자 jzg@ybrb.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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