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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영-‘섬나라’의 한그루 낏낏한 불로송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4월17일 14시19분    조회:17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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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섬나라’의 한그루 낏낏한 불로송]

제주도 ‘생각하는 정원’-분재예술원 성범영원장의 30여년 분투사와 주렁진 결실

북방의 이른 봄, 찬 기운이 매섭게 도사리고 있는 3월 30일 오전, 심양국제원예박람회 개막을 한달 앞두고 심양시정부로부터 박물원현장 점검을 부탁받은 한국 로인 한분이 시내에서 15킬로미터 상거한 원예박람원에 나타났다.

현지 매체 20여명 기자와 박람회조직위관계일군의 수반하에 두시간 남짓한 동안 5만평방미터 중심구역내 조성된 세계 여러 나라 분재관, 그리고 다양한 조경시설을 일일이 돌아보며 짧은 기간 어마어마한 일을 해냈다고 연신 찬사를 보낸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여기저기에 옮겨 놓은 아열대식물을 유심히 살펴보며 보온조치가 따라가지 못해 이대로 방치하면 생존하기 어렵다며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하다면 력대 아시아에서 세번째, 중국에서 곤명국제원예박람회에 이어 두번째로 가지게 되는 이번 심양성회 준비현장 검토자 일원의 자격을 부여받은 이 로인은 과연 누구인가.

불모의 돌무지에 건 도전장

지난 60년대 중반, 성범영은 한창 상승기류를 타던 사업가였다. 서울의 여러 와이셔츠가게가 몇해간 줄곧 번창해갔으며 후에는 수출공장을 세울 타산으로 부지도 매입하였다.

1968년의 어느날 일찍 군복무시절 제주에 고향이던 친구로부터 마을에 1500평 되는 귤농장을 처분한다는 편지를 받고 주저없이 이 땅을 샀다. 당시 제주도는 미개척지라 친구가 사는 북제주군 한경면 저지리엔 전기, 수도물마저 없어 보통 사람에겐 이곳 투자가 어처구니 없는 일 같기도 했다. 하지만 시골에서 자라며 어려서부터 나무와 화초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있던 그의 머리속엔 어느덧 이름 못할 래일의 청사진이 꿈틀거렸다.

무엇보다 급선무는 토지규모를 갖추는 일이였다. 회사일이 다망한 가운데도 돈만 생기면 제주도에 내려가 린근의 가시나무밭이나 흙먼지가 날리는 엉성한 돌밭을 한뙈기 한뙈기 사들였다. 선후 스물네번에 걸친 매입으로 후날 3만 3천평방미터의 분재예술원 기반이 마련되였다.

당시 섬에는 중대형 장비가 없었기에 그는 일군들과 함께 삽이나 괭이로 돌을 캐여서는 수레에 담아 옮겨야 했다. 등잔불 신세에 비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썼지만 가지가지 악조건은 결코 꿈을 안은 젊은이의 열정을 식히지 못했다. 1974년에 그는 서울의 회사를 안해에게 맡기고 아에 제주로 옮겨와 거의 광적인 집착으로 매일 땀벌창이 되여서 일에 달라붙었다.

규모확장과 더불어 수입원을 마련하고저 몇해간 소와 돼지를 쳤는데 나중에 3천여마리로 늘자 이를 한꺼번에 팔아 땅과 귀중한 정원수, 분재목구입에 돈을 전부 밀어넣었다.

농장건설중인 지난 80년대초반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으로 적지 않은 정원수가 부러지고 귀중한 수종, 화초를 키우던 세곳 비닐하우스가 통채로 날려가 엄청난 손실을 보기도 했지만 성원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느 한해는 석문(石門)을 짓고 가산을 만드는데 450명 인력이 9개월간 동원, 매일 돌만 대여섯 트럭 실어날랐다. 관광농장허가를 받아서 련못조성과 가산축조에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 동원된 대형장비는 제쳐놓고 돌과 시멘트만 15만톤 사용, 공사의 거창함을 짐작할수 있다.

고된 로동으로 한번은 자다가 밤중에 목이 뒤틀리며 아파나 바닥에서 뒹굴었다. 이튿날 검사하니 당장 위기상황이라 서울로 호송되여 실신한 상태에서 수술대에 올랐다가 50일만에야 나오게 되였다. 그후에도 돌, 나무와 끊임없이 씨름하며 다리, 허리 등을 다쳐 선후 수술을 6번이나 받았다.

‘저 미친놈 나무가 밥먹여 주나’

1987년 어느날 북제주군 관계부처 담당자가 찾아와 그가 키운 분재로 관광농장을 꾸리라는 제의를 해왔다. 한 개인의 힘으론 어처구니 없는 일이기도 했으나 그는 비상한 각오를 다졌다. 공장부지로 서울에 매입한 땅과 아파트에 한창 잘 나가던 회사마저 전부 처분하여 분재원조성에 정진했다.

밤이면 늦도록 분재 관련 여러가지 서적을 닥치는대로 뒤지는 한편 분재기술이 앞섰다는 일본에 다니며 열심히 배웠다. 일본을 망라해 어느 나라든 분재는 실내에서 전시하지만 성원장은 제주도 특유의 자연미 투영방식으로 야외분재를 작심하였다. 나무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자연과 호흡하고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야만 진정으로 건강해지고 아름다와질수 있다는것이 그의 주장이였다.

제주도 유명수종이나 화초는 물론 한국의 곳곳을 누비며 진귀하고 기이한 수목과 종자를 사들여서는 지형과 지대를 골라 심었다. 경북에서 200년 수령의 로송을 실어올 때였다. 적재량이 11톤이나 되는 트럭에 나무를 싣고 그대로 배에 실어 바다를 건너 다음 분재원에 이르러 옮길 때는 대형 크레인(吊车)마저 동원하다보니 구경군이 몰리였다.

‘저 미친놈 나무가 밥먹여 주나’하며 수군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해, 두해 내리쬐는 땡볕과 사나운 비바람을 이겨내며 흘린 땀과 경주한 노력은 풍성한 열매로 여기저기 주렁졌다.

단풍나무, 느릅나무, 조선향나무 등과 여러가지 과수를 망라해 수령이 30년에서 500년까지의 160여가지 수종에 근 2만대의 나무들,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공폭포와 호수를 가로지른 돌다리, 가지가지 조경물 그리고 참새, 산비둘기, 갈가마귀 등 부동한 색갈의 날짐승이 숲속에서 우짖으며 관객을 반기여 그야말로 선경을 방불케 했다.

1992년, 7월 30일, 분재예술원은 드디여 개원, 많은 이들이 방문하면서 좋은 반응을 보이자 국내외관광객이 해마다 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풍운조화 예측불능’이라 몇해후 금융위기가 닥치자 방문객의 발길이 거의 끊겼다. 1998년 10월에 성원장은 주거래 은행으로부터 경매통지를 받았다. 수십년에 걸쳐 인생을 도전하며 피땀을 흘려 애지중지 가꾸어 온 분재원 전체가 일조에 황무지로 간주되여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첫번째 경매가 류찰되고 두번째 경매날자가 정해진 즈음 매체에서 특종으로 기사를 다투어 엄청난 반향이 따랐다. 다년간 분재예술원에 관심을 보였던 사회 각계서 물심양면으로 성원을 손길을 보내주었다. 어느 한 지성인은 전화에서 ‘분화예술원은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나라의 문화유산인만큼 맥을 버리지 말고 지켜달라’며 격려도 해주었다.

기사회생의 길이 열리고 또 분재예술원이 오늘에 이르러 ‘동방의 하와이’서 ‘명물’로 부상하기까지 가정의 뒤바라지를 도맡고 버팀목이 되여준 안해의 공로는 말로 표달할수 없다는 성원장.

처음 제주에 땅을 사서부터 남편이 자주 다니다 나중에 본격 일을 벌리는 기간 서울의 셔츠가게는 안해가 두발로 뛰며 떠밀어나갔다. 남편이 첫 수술후 안해는 아이들만 남겨두고 제주도로 내려와 간호하다 나중엔 아예 붙박여 수십명 직원의 세끼 식사를 마련하며 매일 나무에 번갈아 물주는 일, 한때 엄청 많았던 돼지를 먹이는 일에 눈코뜰새 없이 보냈으나 원망이란 한마디 몰랐다. 은행측이 분재원을 경매에 부친 당시 애들마저 당황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너희들 걱정할것 없다. 엄마가 제주도 어느 골목에서든 갈비점을 꾸리면 우리 가족 생계는 문제없다. 모든걸 새롭게 시작하면 되니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네 아빠를 밀어주자.” 안해의 무궁한 힘이자 드팀없는 신념 그 자체였다...

중국과 교류의 ‘농부사자(使者)’

1995년 11월 당시 강택민 중국국가주석이 제주도국제회의기간 수행일군, 여러 매체 기자들과 함께 분재예술원을 방문했다. 예정시간보다 40분 연장된 행사에서 강주석은 시종 진지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자세히 묻기도 했으며 ‘한국우공’의 개척정신을 높이 평가하고나서 성원장내외와 기념사진을 남기였다.

강주석의 방문과 더불어 당시 ‘인민일보’범경의(范敬宜)총편집(현 청화대학 신문언론학원 원장)이 쓴 ‘분재예술원방문기’를 비롯해 CCTV, 신화사, ‘광명일보’등 중국의 권위매체가 잇달아 비중있게 기사를 다루어 분재예술원은 한국보다 중국에서 유명세를 더 타기 시작, 관광객도 급증하게 되였다.

1998년 4월 30일, 당시 호금도 중국 국가부주석이 분재원을 돌아보고 연신 찬사를 보내였으며 기념으로 정문의 한켠에 소나무를 심어주었다. 그는 또 오래지 않아 이 분재원방문객이 년간 100만명을 돌파할것이라며 신심을 안겨주었다. 바로 호금도부주석이 제주도를 다녀간 이름해 6월부터 중국은 한국을 자유관광목적지국가로 지정해 분재예술원도 호황기를 맞아왔으며 중국의 국가급, 성, 시급 정부측 대표단의 방문도 줄을 잇게 되였다.

그뒤 중국대외련락부, 국가환경보호국, ‘인민일보’, 국가박물관을 망라한 고위층의 초청으로 선후 북경을 25차 방문, 2002년 5월에는 귀빈으로 조어대(钓鱼台)국빈관에 모셔졌다.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천개현 현프로젝트(千县工程)1주년 기념대회에 참가해 ‘농부의 인생’이란 제목으로 두시간 남짓한 특강을 한것이다. 이날 북경시 시장으로부터 전 시도시록화사업에 고문역할을 맡아달라는 청탁도 받았다.

2004년 9월, 중국 심양시가 2006년 국제원예박람회개최지로 확정되자 그는 심양시 진정고시장의 초청을 받아 현장을 고찰하고 ‘무엇보다 심양의 도시특점에 바탕’하는 내용을 골자로 구체건의를 제기하였다.

이밖에 강소, 상해, 절강, 광동, 길림 등지를 망라해 10여개 성, 시 정부요원, 대학교, 도시록화부문으로부터의 방문과 특강요청이 빡빡하다.

중국지도자와 고위층인사의 잇따른 방문과 이어지는 교류에 ‘농부사자’역할, 제주도 그리고 한국관광산업에 대한 기여로 성원장은 선후하여 ‘한국문화관광부분 전문경영인대상’, ‘외교통상공로패’등을 수여받았다.

금년 2월 북경의 인민출판사는 성범영원장의 간고한 창업사와 인생철학이 담긴 저서-‘생각하는 정원-분재예술원’의 중문판을 발간하고 성대한 출판행사도 마련, 이번 박람회서 그의 분재대표작(박람회기증작품), 분재예술원사진전과 함께 중국독자들과 대면하게 된다.

꿈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특허청 청장은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대한민국이 가장 자부할만한 신(新) 지적재산은 바로 이곳 분재원이다.’

노르웨이 노벨평화상평심위원회대표단 일행과 함께 왔던 노벨박물관 관장부인은 통역을 앞세워 한켠의 조경공사현장을 찾았다. 그녀는 “당신은 정말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하며 두손을 크게 벌려 먼지투성이가 된 성원장을 포옹했다.

분재원을 4차례나 방문한 미국 위싱턴 분재박물관 전임 관장이며 제5회 세계분재대회 공동대회장을 맡았던 잭 서스틱박사는 “분재는 일본이 1위국이고 한국이 2위국이지만 개인이 만든 분재가든(公園)으로는 분재예술원이 세계 제일”이라 평가하며 세계대회유치를 건의했다.

외국인중 분재원을 두세번씩 찾은 분이 많으며 주한 프랑스대사부부는 네번이나 방문했으나 번마다 떠날 때면 아쉬운 표정이란다. 한국녀성과 결혼한 한 독일인은 이곳을 선후 열번 다녀갔지만 자신의 방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며 잡념을 표했다.

“지금까지 저의 구상이 겨우 절반 실현된셈이니 아직도 십년은 더 분투해야 합니다. 해마다 늘어나는 각국 정부측 대표나 단체방문자, 관광객을 대비한 방문자박물관을 세워 그들이 남긴 글과 서예작품을 전시해야 하고 분재교육관을 지어 오는 이들이 분재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얻을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동안 불우학생돕기, 학교와 면사무소록화 등 사업에 여러면으로 지원을 해왔지만 우리 분재예술원이 번창해 가는대로 사회에 대한 보답을 계속 잊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힐튼호텔에서 인터뷰를 마감하는 68세 로인의 대답, 심양시정부 양아주 시장대리는 이번 행차 성원장이 심양국제원예박물원 명예원장으로 위촉됐으며 이제 정식개막행사엔 외국의 정부요원을 망라한 장관급이상귀빈서렬에 유일하게 ‘농부자격’으로 특별초청된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지난 60년대, 배편으로 처음 제주도에 내려 부두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정말 준수한 청년이였다. 지금은 기나긴 세월의 풍상을 말해주듯 흰서리가 머리를 짙게 덮고 눈섭에까지 내려앉았으니 꿈은 여전히 무르익고 있다.

사나운 폭우, 몰아치는 태풍에도 굴할줄 모르는 섬나라 한그루 불로송을 련상케 한다.

림봉춘 특약기자 김명환 기자

j_mh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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