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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전선’에서 그는 여전히 백성의 아들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12월6일 14시44분    조회:8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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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충직한 아들로, 백성의 곤난을 해결하는 해결사로, 그리고 범죄를 타격하고 사회안정을 수호하는 수호신으로 손색이 없었던 전국공안 1급영웅모범 김광진, 그는 금년 1월부터 당과 인민의 수요에 좇아 주인민검찰원 검찰장의 중임을 떠메고 ‘보이지 않는 전선’이라고 일컫는 반부패 최전선에 섰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비리가 만연되고 갈수록 심화되고있음은 누구나 느끼고있다. 하루아침에 모든 비리를 깨끗이 철저히 척결하기는 어렵지만 썩고 부패해진 환부가 드러난만큼 이를 도려내는데 주저해서는 안되는것이 검찰의 역할이고 의무이다. 염증과 같은 사회의 온갖 비리, 그 크고작은 염증들에서 어느 환부가 가장 요해처환부가 될지는 몰라도 김광진검찰장이 이끈 주인민검찰원이 우선 ‘도려’낸것은 바로 나라의 재산을 후려내고 백성의 리익을 침해한 악덕경영인이였다. 금년 3월 20일 주인민검찰원은 원 왕청현노지구금광종업원들이 련명으로 이 기업 리사장 리개문이 공금탐오혐의가 있다는것을 검거고발하는 사건을 접수하였다. 백성의 목소리는 곧 명령과 같다. 주 검찰원은 즉시 주인민검찰원 반탐오국과 왕청현검찰원의 해당일군들로 조직된 전문조사조를 내오고 사건조사에 착수하였다. 초보적인 조사를 거쳐 국가자산이 엄중하게 류실된 사건임이 발견되였다. 이 기업은 2000년말 파산을 신청하였는데 연변경위자산평가유한회사에서는 이기업의 모든 건축물가치를 19.8만원(장부에 기입된 원 가치는 1100여만원이였는데 평가회사에서 대부분 건축물가치에 대해 령으로 평가하였음)으로 평가하였다. 2001년 3월 왕청현법원은 이한 가치평가결과에 좇아 인민페로 45만원에 곡모한테 판매하였다. 곡모가 경영한 금광은 년평균 1000만원가량의 생산가치를 창출해내였다. 이에 검찰측은 엄중한 국유자산류실혐의로 원 왕청현 노지구금광 리사장 리개문에 대한 조사를 진행, 리개문이 임직기간 수뢰하고 뢰물수수한 행각과 기업파산의 기회를 리용해 국유자산을 점유한 일부 범죄사실이 밝혀졌다. 조사가운데서 검찰은 또 원 주황금관리국 국장 장소증이 뢰물을 접수한 범죄혐의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에 조사를 진행하였다. 주검찰원이 엄격하게 집법하고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하자 원래 이 기업에서 일하던 85명 종업원은 대형뻐스를 타고 주인민검찰원에 찾아왔다. 그들은 ‘인민을 위해 공정하게 집법하는 검찰’이라고 쓴 기발을 들고 일제히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였다. 이들은 오늘의 이 공정을 위해 옹근 3년간이나 주래신래방국, 국가황금관리국 등 부문을 찾아다니며 문제를 해결해줄것을 호소했지만 여직 해결을 보지 못했던것이다. 그들은 ‘검찰원이야말로 우리 백성들의 수호신이다!’고 높이 웨쳤다. 백성들에게 ‘김광진’이라는 세 글자는 ‘공정집법’이라는 말과 같고 약세군체와 백성의 리익을 대표하고 대변하며 백성의 곤난을 해결하는 해결사와도 같다. 금년 6월 26일 오후 화룡시삼림공안국에 련행된 화룡시림업국의 종업원 만동리가 24시간후 병원에서 숨졌다. 만동리의 가족들은 만동리의 시신에 난 상처자국을 근거로 만동리가 경찰의 부당한 ‘심사’로 인해 숨졌다고 인정하고 사건관련 경찰 3명을 엄벌할것을 견결히 요구하였다. 이 사건은 주당위와 주정부의 깊은 중시를 불러일으켰는바 주정법위원회와 화룡시삼림공안국 해당책임일군들은 만동리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시신을 연길로 운송해 해부할것을 제기했지만 만동리의 유가족들은 이들의 처리방법을 믿지 못하겠다며 시신해부를 거절하였다. 28일 오후 유가족들은 주인민검찰원 김광진검찰장이 직접 이 사건을 처리해줄것을 요구하면서 “우린 김광진만을 믿겠다. 그 외 직위가 아무리 높은 령도든, 권위부분이든 믿지 못하겠다. 김광진이 어떻게 처리하면 그대로 접수하겠다”고 하였다. 도리대로 하면 이 사건은 주검찰원의 관할범위에 속하는 사건이 아니며 삼림공안국이나 삼림검찰원에서 해결할 일이였다. 하지만 사건의 성질이 특수함을 감안해 주당위 상무위원이며 주정법위원회 서기인 왕수곤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성당위 상무위원이며 주당위 서기인 등개에게 회보, 등개서기의 특별비준으로 김광진검찰장은 그날 저녁 7시 화룡에 도착하였다. 김광진검찰장이 차에서 내리자 만동리의 20여명 유가족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명관이 왔다며 울음을 터뜨렸고 만동리의 16살난 아들은 김광진의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설음을 토해냈다. 영화에서만 연출되던 이 감동적인 장면에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가슴도 뭉클해났다. 김광진은 그들의 손을 잡고 일일이 일으켜세웠다. “이 사건은 어느 개인이 처리할 문제가 아니고 반드시 림업관리부문의 집법기관에서 처리해야 할 사건입니다. 사건은 규정된 법적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될겁니다 그러니 화룡삼림공안국과 화룡삼림검찰원을 믿고 법적절차에 따르십시오.”김광진은 자신도 화룡에서 사업한적 있으니 있는 힘껏 도와드리겠다고 약속하였다. 김광진의 약 2시간여의 내심하고 반복적인 설명과 설복 끝에 유가족들은 마침내 마음을 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혈육을 잃은 고통에 극도로 상심한 이들은 정상적인 절차를 순순히 따라주지 않았다. 그들은 삼림공안국의 법의가 시신해부를 하는것을 거부해나섰다. 이에 김광진은 내가 법의를 청해온다고 해도 또 이 법의를 청해올것이라며 차근차근 타일렀다. 그러자 유가족들은 김광진검찰장이 시신해부의 전 과정을 동참해줄것을 요구하였다. 김광진은 2명의 유가족과 함께 현장에서 4시간 남짓이 걸린 시신해부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일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되였다. 순박하면서 법률지식에 어두운 백성들은 오직 김광진만 찾으면 해결못할 일이 없는줄로 안다. 그들은 김광진이 무슨 신이라도 되는듯 만사에 형통한줄로 알고있다. 하지만 영웅 김광진도 보통인간과 마찬가지로 혈육의 정에 약하고 능력과 힘이 닿지 못하는 때가 있다. 정에 약한 김광진의 이런 약점을 리용해 사람들은 때론 그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통해 그에게 어려운 부탁을 해온다. 자신의 마음이 아픈것보다 혈육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것이 더 가슴아픈 김광진은 그래서 때론 자기 가슴을 쥐여뜯고싶도록 안타깝지만 당과 인민의 리익이 무엇보다 중요한 그에게 있어서 검찰사업에 충성하고 법률에 충성하는 신념만은 철석같다고 주인민검찰원 정치부 김창석주임은 말한다. 법률은 그 누구나 어겨서는 안되는 철칙이고 법률앞에서는 사람마다 평등하지만 세상에는 절대적인 평등이란 있을수 없다. 백성들이 희망하는 평등, 백성들이 기대하는 절대적인 공정, 백성들의 요구하는 이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자신의 능력제한을 느끼는 김광진, 칠척의 단단하던 체구가 병들기 시작하고 젊던 이마엔 어느새 깊은 주름살이 자리를 잡았다. 주름살의 깊이만큼 그의 마음도 무겁고 압력 또한 크다. 20여년 해왔던 공안사업이 총칼이 비발치는 전장이였다면, 그래서 때론 상처입고 피를 흘렸다면 이제부터 시작인 검찰사업은 ‘보이지 않는 전선’이라 하겠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어떤 암류가 화산이 되어 폭발할지, 김광진은 늘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갈등과 압력, 고통을 느낀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괴로운 병에 시달리며 약에 의해서만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수 있다. 한면으로는 끝없는 사건들을 처리하고 또 한면으로는 여러 면에서 오는 온갖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전우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배려를 잊지 않는 그는 강철같은 영웅의 기개를 가진 사나이이지만 또 자상하고 세심하고 잔정이 많은 사람이다. 검찰원 공소과 일군들은 원래 검찰제복이 한 벌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주 씻어입기도 곤난했었다. 이쁜옷 못 해입힌 자식이 가슴아프고 안쓰럽듯 김광진 마음 역기 그랬다. 이에 그는 특별히 옷 두벌을 더 갖추게 하였으며 직원식당의 음식이며 위생에 대해서까지 자상히 요구를 높였다. 또한 음력설을 앞둔 섣달그믐날 저녁이면 손수 물만두를 빚어갖고와 단위의 각 부문을 돌면서 전우들과 음식을 함께 나누며 혈육의 정을 쌓아갔다. 단위 직원이 병원에 입원하면 아무리 바쁘더라도 꼭 병문안을 가고 직원들의 가족에 결혼, 사망 등 좋은 일 궂은 일에도 어김없이 참가하여 작은 일에서부터 직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였다. 친혈육과 같은 사랑을 주는 동시에 그는 검찰대오건설을 엄격히 틀어쥐고 사업성적으로 영웅을 평가하고 공평과 정의로 백성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작은 일에서 결코 소홀이 하지 않고 큰 일은 절대 놓치지 않은 김광진은 ‘2005년 감동연변 10대 걸출한 인물’의 한사람으로, 연변을 감동시키기에는 족하고도 남음이 있다. ‘김광진’이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백성들은 마음이 따뜻하고 든든해지며 범죄자들은 가슴이 서늘해진다. 강정숙 최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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