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호씨 일본서 벌어온 돈으로 제조업체를 운영
“해외에서 피땀으로 벌어온 돈 너무나 쉽게 허물어지는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했어요. 이런 허탈감에서 탈출하고 자신의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창업에 도전했습니다. ”일본에서 자신의 신근한 로동으로 돈을 벌어온후 연변취호상무청사유한회사 물업관리를 도맡고 페인트공장, 목탄공장을 운영하고있는 신영호씨(46살)의 말이다.
길림화공학원에서 화공기계를 전공했던 신영호씨는 1983년 대학을 졸업한후 화룡제약공장, 화룡로동국 보이라검험소 등곳을 전전하다 1995년에 일본의 집정재회사에 1년 반동안 연수를 가게 되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연길 모 단위에 취직했던 그는 1999년에 다시 일본에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사정은 처음 일본에 연수왔을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처음 일본에 연수갔을 때에는 여러곳에서 찾아와 일해달라고 청했고 여러 사람들이 쌀이나 남새 등을 갖다주어 생활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나 다시 일본에 갔을 때에는 불경기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잉크탕크만드는 공장에도 취직했었고 포장회사에서 상표붙이는 일도 했으며 땡볕에 간이판자집을 조립하는 일도 했고 지어 묘지에 묘비를 세우는 일도 했다. 상표붙이는 일을 할때는 저녁 잠잘 때도 손가락을 굽히지 못할 정도로 강도가 높았고 간이판자집을 조립할 때는 온몬이 땀투성이가 되었으며 지어 더위먹고 쓰러지기도 했다. 또 비석을 세우는 일을 할 때는 허약한 몸으로 수십킬로그람되는 콩크리트를 밀차에 싣도 산길을 톺기도 했다. 고된 로동에 심신이 더없이 피로해진 그는 일본에 간지 2년반만인 2002년 3월에 결국 귀국을 결심하게 되었다.
고향에 돌아와 피로해진 몸을 얼마간 추스린후 그해 8월 또 광주 모 회사에 입사해 두달간 있었으나 가족형기업이라 발전공간이 없어 고향에 돌아왔다. 일자리는 찾기 힘들고 할 일은 없어 늘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만 마시다나니 몸은 몸대로 상하고 수년간 피땀으로 벌어온 돈도 순식간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여 그는 창업을 결심했다. 2003년에 연변취호상무청사유한회사 물업관리를 도맡았고 2004년 4월,10만원을 투입해 북경에가 기술과 설비를 인입, 연길시오라이페인트공장을 설립했다. 원래 화학공업을 전공했던 그에게 있어 페인트공장은 자기의 적성에 알맞아 관리도 따라가게 되었고 설비가 좋고 기술이 좋다나니 제품의 질도 좋아 대뜸 시장에서 인기제품으로 되었다 .게다가 최근년래 연길시의 부동산업이 호황세를 보임에 따라 공장도 급속히 성장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2005년에는 목탄공장을 설립했다. 페기물인 톱밥을 리용해 만든 목탄은 원가가 낮고 환경보호형제품이라 시중의 각광을 받았다. 특히 연변 주에서 양고기뀀, 불고기업이 호황세를 보이고있는한 제품의 판로는 영원히 보장되여있는셈이다. 올해 12월 12일에는 또 6만원을 더 투입해 단동에서 새로운 목탄생산기술을 도입했다.
해외에서 벌어온 돈으로 창업에 나서 성장일로를 거듭하고있는 신영호씨는 피땀으로 번 돈을 마작판이나 술판에 헛되이 탕진하는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고 또 창업한다 해도 남의 뒤꽁무늬를 따라 맹목적으로 한다면 실패보기 십상이라면서 자기의 적성에 알맞은 자기만의 제품을 창출하기에 노력한다면 치부는 물론 새로운 인생가치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말하고있다.
김명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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