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한 미소가 인상적인 연변대학부속병원 심혈관내과 겸 심장쇠약쎈터 주임의사이며 석사연구생 지도교수인 정대식 박사(58세), 기자가 그를 처음 만나게 된 건 병원이 아닌 뜻밖의 장소였다. 바로 지난해 11월말 개최되였던 <청년생활> 제5회 계림문화상 시상식 현장이다. 조선어 컴퓨터 타자법을 익히지 못해 휴대폰 자판으로 한자한자씩 내리적어 편집부에 원고를 교부했다던 그의 수상소감을 듣다보니 우리 문학에 대한 열정만큼은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오래전에 세상을 뜬 아버지를 회억하며 눈물을 보였던 정대식 교수는 가족사랑에도 남다른 애틋함을 보였다. 유머러스한 성격에 딱딱한 의사 이미지가 전혀 없던 그는 마치 문학과 의학을 넘나드는 ‘글 잘 쓰는 의사’라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청년생활> 제5회 계림문화상에서 금상을 수상한 정대식 교수(가운데)
말그대로 그는 직업이 심혈관내과 전문의지만 글짓기콩클 금상을 안은 문학애호가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누구보다 우리 문학에 애착을 느꼈던 그였지만 길림의학원을 진학하게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의료업계에서만 종사하다보니 문학과는 자연히 멀어지게 되였다. 그러다 지난해 청년생활 잡지에 글 <의사의 희노애락>을 발표하였는데 33년간의 울고 웃었던 의사생활을 섬세한 글쓰기 기교로 표현하여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결국 그 작품으로 계림문화상 금상까지 거머쥐게 되였던 것이였다.
“의사는 병을 치료해야 하지만 사람을 치료해야 합니다. 의사의 자그마한 실수나 소홀함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평생 유감으로 남을 수도 있으니 반드시 매 환자한테 신중을 기해야 하지요.”
의사를 찾아온 환자들은 몸이 고달픈 법, 더구나 심혈관과는 생명의 경각을 다투는 응급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진찰시 늘 유쾌하게 진료하는 정대식 교수지만 반면 웃는 얼굴로 환자를 잘 울리기도 한다. 환자에게 병세나 엄중한 후과로 지레 겁을 줘서 울리는게 아니라 마주앉은 환자들로부터 병정황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속사정을 시원히 터놓을 수 있는 시간을 먼저 내여준다. 비록 매 환자당 대략 7분간의 빠듯한 상담시간밖에 주워지지 않지만 자세한 환자상황을 료해한 후 다시 정식 진료에 들어간다는 그만의 노하우는 한개 진료법이다. 그렇게 환자는 가슴에 담아두었던 속사정을 의사한테 터놓으면서 가끔 의사앞에서 어린애같이 울어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진심을 담아 전한 웃음과 용기가 그런 환자들에게는 가장 효과가 좋았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베푸는 친절은 병을 진찰할 때 뿐이 아니였다. 어느 한번은 농촌에서 병 보이러 온 로인 환자가 당일에 심장수술을 해야하는 위급한 상황이 닥쳤는데 수술비용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였다. 환자의 딱한 사정을 헤아린 정대식 교수는 자신의 사비를 털어 일단 그 로인환자를 수술, 사경에서 목숨을 되찾아 주었다. 어려운 환자의 형편으로 아직까지도 그 비용을 돌려받지 못했지만 그는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늘 환자걱정이 먼저다. 그의 환자중에는 혼미상태로 실려온 환자가 있는가 하면 일가친척 한명 없이 외롭게 병원을 찾는 환자도 있다. 그럴때면 정대식 교수는 선뜻이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예약금을 대주어 먼저 진료를 받게 배려했다. 완쾌하여 병원을 나서는 환자들을 볼 때면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는 그에게서 환자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 언제나 최우선이다.
“환자는 병치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의사와의 소통 그리고 의사의 도움, 위안과 보살핌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는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자세히 관찰하며 예리하게 병을 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매 환자마다 살아있는 교과서인 셈이죠. 책에 적혀있는 의학리론도 매우 중요하지만 매 환자마다 갖고 있는 증상과 특징을 잘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지요.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익힌 이 보귀한 의료기술을 다시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되돌려야지요.”
그런 그에게도 2021년 어느날 간암 중기이라는 병마가 들이닥쳤다. 강도높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그는 하루 빨리 완쾌되여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일터로 돌아갈 생각에 마음이 급해났다. 불과 몇개월도 안되는 사이 다섯번이나 입원해 5차례나 고통스러운 간암도관수술치료를 받아가며 그는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항암치료과정이 끝나갈 무렵 그는 그는 병원에 다시 복귀의사를 밝혔고 현재도 항암약물을 복용하면서도 드바쁜 진료일선에 뛰여들어 또 다시 의사의 열정을 불태워가고 있다.
“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은 병원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주기적으로 찾아가 진료해야 하는 저의 고향마을에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것도 저의 몫이니까요.”
알고보니 그는 2000년부터 장장 20여년간 그의 고향마을인 룡정시 덕신향 석문촌에 있는 경로원을 직접 찾아 경로원 로원들과 마을로인들을 진료해주고 있었다. 적어도 한두달에 한번은 의료상자를 어깨에 둘러메고 또 다른 한손에는 약주머니를 가득 짊어진채 석문촌 마을을 찾는 정대식 교수는 마치 고향마을에 계시는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조급한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마을 어르신들의 병을 친절히 봐주군 한다.
“농촌에 계시는 분들이라 교통도 불편하고 경제상황도 어려운데다 도움 청할데도 마땅치 않은 로인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로인들을 보고 있노라니 돌아가신 저희 부모님 생각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되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꼬불꼬불한 마을을 지나 경로원을 찾아가는 길에는 가끔 정대식 교수와 동행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그의 외동딸 정홍운(30세)과 정대식 교수의 친누나인 정숙(62세)씨다. 현재 화룡시병원에서 의사로 근무중인 딸 정홍운은 연변대학 의학원 재학시절부터 방학때면 아버지를 따라 이 곳에 봉사활동을 내려왔으며 룡정시덕신향위생소의 주치의사 출신인 누나 정숙씨도 한달음에 따라나서군 했다. 가족으로 구성된 ‘의료봉사단’이 마을을 찾을 때면 어르신들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와 멀리서 온 자식들을 맞이하듯이 얼싸안으며 반기군 한다.
“어릴적부터 아버지따라 병원에 갈 때마다 늘 바쁜 일상을 보내시는 아버지를 보아왔습니다. 특히 환자들이 병이 치료되여 기쁘게 병원문을 나설 때 아버지는 마치 자기일처럼 기뻐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사람을 치료하고 살려내는 일은 이렇게나 보람찬 일이라는 느끼고 저도 나중에 아버지처럼 멋진 의사가 되려고 오래동안 꿈꾸어왔습니다.”
“의사로 근무한지 고작 4년차인 저로서는 힘들 때마다 선배의사이자 아버지께 그 해결책을 여쭤보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 너무나 든든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병을 치료해주어 그들에게 빛과 희망이 되려한다는 딸 정홍운도 포부가 남달랐다.
딸 정홍운과 함께
가끔 휴일에도 밤중에도 경로원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에 부랴부랴 달려가는 정대식 교수는 그곳에서 20여년간 진료비용 한번 받지 않고 무료진찰을 해주었고 로인들에게 보내준 약품만해도 15만원을 훌쩍 넘긴다.
공익활동과 기부라면 늘 앞장서는 그는 또 2008년 문천대지진때와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전염병 재해구에 각각 돈 1,000원과 만원을 ‘특수당비’로 납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의료일선에서 불태워온 30여년간 그는 선후로 수차례 연변대학부속병원 선진사업자, 우수공산당원 및 ‘가장 아름다운 의사’영예는 물론 길림성과학기술성과상,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정부 과학기술정부 진보상, ‘연변 좋은 사람’ 등 자랑찬 칭호를 받아안았다.
“언제봐도 환자들을 따뜻이 대해주고 환자들의 고충을 귀담아 들어주며 진정으로 환자를 생각하고 환자의 립장에서 환자들을 헤아려 치료해주는 따뜻한 심장을 지닌 정대식 의사선생님, 고맙습니다.”
“사시장철 푸른 소나무마냥 변함없는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의 꽃’을 피워가는 고마운 정대식 의사선생님, 멀리 있는 자식들의 보살핌보다도 지극한 관심과 살뜰한 그 사랑에 가슴이 설레이고 목이 메입니다.”
… …
정대식 교수의 친절한 진료를 받고 건강을 되찾은 환자들과 환자 가족들이 기쁜 마음으로 직접 써가지고 온 손편지를 받아들 때마다 그는 또 다시 흰가운 왼쪽 가슴에 새겨진 그 이름을 내려다보며 오늘도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진찰실로 발걸음을 다그치고 있다.
/길림신문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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