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항일련군 최년소 녀전사 리민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3월12일 08시47분    조회:227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리민

 

 

    리민은 1924년 흑룡강성 라북현 오동하촌의 한 애국자 가정에서 태여났다. 

 

    부친 리석원은 일제에게 빼앗긴 땅에서 살기싫어 20세기 20년대에 중국 동북에 망명해왔으며 애국계몽운동과 의병운동을 겪으면서 민족독립과 항일의 뜻을 굳혔다. 그러다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항일련군 제6군 제1사에 참가해 후근처 처장까지 지냈고 1938년에 희생된 것으로 전해진다. 

 

    리민의 오빠 리운봉 역시 항일련군 제6군 제1사 6퇀의 정치부 주임으로 있었고 1942년에 희생되였다. 

 

    1936년 동북의 항일전쟁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 겨우 13살인 리민은 항일련군에 참가했다. 그는 리조린 장군이 거느린 항일련군 대오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녀전사였다.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리민은 취사원, 보급원, 선전원 등 많은 일을 했다.   

  

    1937년,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면서 항일의 의지를 불태우던 리민은 중국공산주의 청년단에 가입하였고 1939년에는 중국공산당원이 되였다. 

 

항일련군 녀전사들

 

1로군 경비려 부분 장병들

 

    그 어려웠던 시기를 회억하면서 리민은, 세상에 그 어느 전쟁도 동북의 전장처럼 처절하고 참혹한 전쟁은 없을 것이라며 동북항일련군은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수십만 일본침략군과 14년동안이나 생사판가리 싸움을 전개해왔다고 말했다. 

  

    1941년 리민은 쏘련의 동북항일련군 주둔지에서 의학을 배웠고 또 특종병 훈련을 받았다. 특히 녀병으로 가장 일찍 락하산부대에서 락하산 훈련을 받았다. 

 

    쏘련에서 특종병훈련을 하던 시절 리민은 오빠 리운봉의 전우인 진뢰를 알게 되였고 얼마후 그들은 혁명적 부부로 되였다.  

 

    해방후 이들 부부는 계속 흑룡강에서 당 조직의 령도사업에 종사하였으며 진뢰는 흑룡강성 당위원회 부서기, 흑룡강성 성장까지 지냈고 리민은 리직전 흑룡강성 정치협상회의 부주석으로 있었다. 

 

쏘련 경내 주둔지에서

부분적 항일련군 장병들

 

 리민 진뢰 부부

 

    해방후에도 리민은 항일련군의 빛나는 사적을 널리 선전하기 위해 힘썼고 항일련군의 사적을 후대에게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항일전쟁이라하면 우리는 흔히 과거 력사교재에서 1937년부터 1945년까지 8년 항전이라고 배웠다. 이런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고 판단한 리민은 수차 관련부문에 요구하여 항일전쟁은 1931년 9.18사변후부터 계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그의 주장은 접수되여 중국의 항일전쟁은 8년이 아니라 14년이라는 공식 표현을 쓰고있다. 

 

    그외에도 리민은 퇴직후에도 항일련군 렬사들이 싸웠던 전적지를 찾아다니며 기념비를 찾아보면서 항일련군의 정신을 후대들에게 전수하고 선전하였다. 

 

    리민은, 전쟁에서 희생된 병사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고많다면서 중국인민은 이들을 절대 잊어버리지 말아야하고 또 이들이 적어놓은 피어린 항쟁의 력사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2018년 7월 21일 리민은 95세로 빛나는 한생을 마쳤다.

 

중국조선어방송넷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5
  • 류건봉(1865-1952, 산동성 안구현 사람)은 청나라가 1909년 12월에 안도에 지방행정기구인 현을 세운 후에 임명한 제1임 지사--오늘날의 현장이다. 류건봉기념비는 안도현 명월구에서 장백산으로 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다. 맞은 켠 송전탑 밑으로 뻗은 도로가 안도 외곽에서 직접 장백산으로 통하는 관광도로이다.   ...
  • 2013-06-13
  • 석정 윤세주   일본군의 40만 병력과 최후결전 1 1994년 "황포동학회"에서 주최한 황포군관학교 건교 70주년을 기리는 자리가 있었고 "황포군관학교 건교 70주년 기념장"을 수여하는 의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문학거장 고 김학철선생님은 “우리들의 교관이였던 석정(석정은 호,이름은 윤세주)렬사의 ...
  • 2013-05-29
  •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 (18) 조룡호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초창기 지도자의 한분이다. 조룡호는 항미원조전쟁시기로부터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시기에 이르기까지 파란많은 려정을 연변의 제반사업 발전을 위해 헌신한 덕망높은 로지도간부이다. 조룡호는 장기간 당의 민족정책을 참...
  • 2013-05-17
  •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 (17) 최채 《민족을 생각하지 않는 민족간부는 자격이 없다.》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민족간부이며 조선족의 자랑스러운 아들, 영원한 민족간부 최채의 불후의 명언이다. 최채는 1914년 11월 23일 조선 황해도 신천군의 독립운동가 최중호와 어머니 류중현 녀사의 장남으로 태여났...
  • 2013-05-16
  • 대형계렬기획보도-《중국조선족 백년백인》(16)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며 우수한 민족사업 지도자 문정일은 1914년 음력 3월 20일에 조선 함경도 회령군에서 태여났다. 문정일의 원명은 리운룡이다. 문정일은 일찍 1940년 1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선후로 조선의용군 제2지대 분대장, 중공연길현위 부서기, 현장...
  • 2013-05-14
  • 주덕해(1911-1972), 그의 원명은 오기섭(吴基涉),그는 1911년 음력 3월 5일, 로씨야 원동 연해주 우쑤리스크부근의 산간마을에 한 가난한 조선족농민의 아들로 태여났다. 1920년 3월부터 길림성 화룡현 수동촌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청년기부터 선후로 흑룡강성의 동녕, 동경성, 림구, 밀산 등 북만일대에서 항일에 투신하면...
  • 2013-05-13
  • 중국의 영화황제 김염     김염 프로필 원명 김덕린, 1910년 4월 한국 서울에서 태여남, 1912년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 김필순을 따라 두만강을 거너와 중국 통화에 정착을 했다가 후에 치치할로 이주, 1927년 상해로 간다. 이듬해 《카먼》등 극에서 조연을 맡으면서 연극인으로 기량을 선보인다. 1929년 손유...
  • 2013-05-10
  •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13)   각 책들에 다르게 실린 리홍광의 초상사진. 《우리의 하늘에 높이 걸려서 승리의 군기(軍旗)를 비춰주는 홍광 돌격하라! 우리의 제1로군! (高悬在我们的天空中 普照着胜利军旗的红光 冲锋呀我们的第一路军)》 항일전쟁시기 동북인민혁명군의 총지휘였던 양정우장군(19...
  • 2013-05-06
  • 남만 중국공산당조직 최초의 조직자 리동광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12) 리동광동지는 남만 중국공산당조직의 최초의 조직자이고 지도자이며 항일련군 제1군과 남만항일근거지 창설자의 한사람이다. 리동광(李東光)은 양정우, 리홍광과 함께 남만유격대를 창건하였으며 남만의 《5.7》봉기를 조직하고 지...
  • 2013-05-02
  •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11)   1938년 10월, 1000여명의 일위군과 가렬처절한 격전을 벌이다 마지막까지 적들에게 굴복하지않고 차디찬 우스훈하에 뛰여들어 장렬히 최후를 마친 《팔녀투강》(八女投江)의 영웅적 전설이 있다. 그8명 녀전사들속에는 2명의 조선족녀전사가 들어있는데 그중의 한 사람...
  • 2013-04-2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