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17세 가녀린 몸으로 부상병 지켜내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1월17일 09시38분    조회:160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명숙
항미원조 참전군인 김명숙


리직 후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는 김명숙 로인.


4일, 연길시 하남가두에 살고 있는 항미원조 참전군인 김명숙(82세) 로인을 만났다. 그녀가 입대하게 된 계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달랐다고 한다.

김명숙 로인은 “가부장적인 아버지한테서 벗어나고 싶었고 또 그렇다고 시집 가서 평범한 인생을 보내는 것도 싫었습니다. 혁명하려는 일념 뿐이였고 말하면 동의하지 않을 게 뻔하니 알리지 않고 몰래 참군했습니다.”라고 입대하게 된 계기를 말했다.

마을에서 민병으로 있으면서 일정한 지식을 쌓았고 마을 공작대에서 선전을 하면서 혁명의식을 가지게 되였다. 가족 몰래 참군하다 보니 바꿔입을 옷도 없고 한창 입대수속을 하는 과정에 뒤늦게 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찾아왔다. “어머니는 나의 옷깃을 잡으며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하지만 나의 입대의지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김명숙은 1947년 후방병원에서 호리원으로 군인생애를 시작했다. 호리원들에게 주어진 물품은 이불 한채에 옷 한벌이였다. 환자를 호리하느라 매일 3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매일 피가 묻은 환자의 옷과 이불을 씻어야 했다.

“겨울에도 강가에서 맨손으로 환자가 입었던 옷을 씻어야 했습니다. 맨손으로 씻다가 손이 시리면 맨발로 밟았습니다. 손과 발이 꽁꽁 얼어들었습니다.”라며 간고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먹을 것도 풍족하지 않아 땅에 파묻었던 량식을 찾아내 먹으면서 허기를 달랬고 그마저도 부족할 때는 부상병들에게 양보하고 나면 늘 배가 고팠다. 그는 “우리 모두 얼어죽을 각오, 적탄에 맞아 죽을 각오, 굶어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라며 모두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제대군인 단체활동 사진을 전해받고 있는 김명숙 로인(오른쪽 사람)

입대 4년 후 1951년 그는 중국인민지원군으로 항미원조 출국작전에 참가했다.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다리가 폭격으로 무너져 많은 전우들이 다쳤고 그 뒤로도 전우들의 희생은 멈추지 않았다.

“전우들이 수도 없이 희생되였습니다. 슬퍼할 새도 없이 폭격이 지난 자리에 인차 들어가 환자를 구해내와야 했습니다.”

전쟁형세가 점점 긴장되였고 인원이 부족하여 어느 한번은 17세 김명숙과 19세 또 다른 녀성호리원이 부상병 호리를 책임지게 되였다.

“잠결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깨여나 보니 글쎄 물이 집에 들어왔고 가마가 물에 둥둥 떠다녔습니다.” 밤새 큰비에 낮은 지대에 있던 초가가 물에 잠겼던 것이다.

“부상병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보니 움직이지 못하는 부상병들이 점점 불어나는 물을 보면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구해주길 기다렸는데 달랑 녀자 두명이 온 것을 보고 부상병들은 더 세게 울었습니다.”

부상병들을 달래고 나서 둘은 먼저 중상자를 업고 허벅지까지 오는 물속을 걸어 산 우로 피신했다.

“미끌고 보이지 않아 몇번이고 넘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3등공을 수여받았습니다. 지원군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정전 후 3.8선에 가 포로교환 사업에도 참가했습니다. 당시 그 정경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납니다.”라면서 눈물을 훔쳤다.

김명숙은 1955년 2월 입당했고 1958년 귀국했으며 부대에서 결혼을 했고 제대 후 산동성을 거쳐 연변에 안착했다. 1979년 리직한 김로인은 사회구역에서 여러가지 활동에 자주 참가하면서 여유롭게 보내고 있었다.

이날도 놀러 온 둘째딸, 증외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로인은 “지금 생활은 예전과 비하면 천지차이나 다름 없습니다. 사회가 얼마나 많이 발전했습니까? 지금까지 살았기에 지금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라고 감격스러워했다.

김로인의 둘째딸 부려화는 “어릴 적부터 군대집 딸이라고 불리웠습니다. 부모님은 우리 세 자매를 엄하게 요구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라고 교육했습니다.”라면서 “외손녀가 크면 외조모의 이야기를 꼭 들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연변일보 글·사진 한옥란 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3
  • 건군절을 며칠 앞두고 필자는 중국인민해방군 공군대좌 리광남을 만나 함께 식사하고 주숙하는 기회를 만났다. 리광남은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장비부 고급공정사, 전문기술대좌다  리광남(1950년출생)은 1970년에 참군, 1995년 대좌계급을 수여받았다. 그는 선후로 과학연구항목 수십건을 완수하여 1, 2, 3등 공을 각각...
  • 2012-07-30
  • 연변일보   암을 선고받고도 자기의 일터를 꿋꿋이 지켜온 녀성이 있다. 딸로서 엄마로서 또한 수감인원들의 “큰언니”로서 병마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씩씩하고 충실하게 보내는 그가 바로 돈화시간수소의 유일한 녀경찰 김해옥(46세)씨이다. 수감인원 관리사업에 몸 잠가온 9년간 그녀는 녀성 특유의 섬세...
  • 2012-07-27
  • [인터넷료녕신문 2011-12-13 리덕권 기자]정학철 조선 한국 노래 중국어번역에 혼신을   음악사이트에 100여수의 조선, 한국 노래를 번역해 올려                       국내 최대의 음악사이트인 “...
  • 2011-12-13
‹처음  이전 1 2 3 4 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