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집현에서의 항일련군 로전사 리민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7월17일 14시24분    조회:382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리민

 

동북항일련군 로전사이며 우리의 경애하는 항일련군 녀영웅인 리민 동지가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우리는 오늘날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친 선렬들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된다.

  (흑룡강신문=하얼빈) 2018년 7월21일 새벽, 동북항일련군의 가장 어린 조선족 녀전사 리민 동지가 별세했다는 비보가 전국에 알려졌으며 그녀의 고향인 집현에도 들려왔다.

  리민 동지는 1924년 11월5일 탕원현 오동하촌 하동툰에서 출생했다. 1932년 가을, 송화강에 홍수가 범람해 주변 마을에서는 곡식을 한알도 거두지 못했으며 백성들은 살길 찾아 뿔뿔이 고향을 떠났다. 당조직은 리석원, 장재중에게 30여호에 100여명에 달하는 부금현 제5구 안방하(현 집현현)난민대를 조직할 것을 지시했다. 난민대는 한달 여동안 기아를 참으며 안방하구의 왕해툰, 하서툰, 초전자툰으로 갔다.극히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 리민은 선후로 남동생과 어머니를 잃었다. 9살도 안된 리민이 가무를 맡아야했다.

  리민의 부친 리석원은 후에 중공안방하구위 조직위원 겸 항일구국회회장을 책임졌으며 후에는 안방하구위서기를 담당했다. 이에 리민의 집은 지하련락처가 되였고 리민은 보초를 서는 보초병에 또 정보를 전달하는 꼬마 통신원 역할을 했다. 한편 리민은 아동단에 가입했다.

  항일선전활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안방하구의 항일구국아동단은 항일전단지를 살포하는 임무를 맡았다. 임 목수가 선전고의 목판을 제작하고 양 동지가 선전고의 제강과 구호를 썼으며 리민과 임덕준이 무우움에서 오소리기름 등잔을 켜고 낮에 밤을 이어가며 전단지를 인쇄했다. 등사기는 지하당이 가목사에서 구해왔다. 전단지를 인쇄한 후에는 아동단원들이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붙였고 집현현, 사강, 복리툰, 소가전 등지에 살포했다.

  1935년 음력 11월의 어느 오후, 아동단원들은 리민의 부친 리석원의 소차에 앉아 집현진으로 갔다. 날이 어두워지자 2명이 한 조가 되여 전단지를 붙였다. 키가 작은 리민은 허리를 굽혀 뒤잔등에 전단지를 올려 놓고 풀을 바른 뒤 등을 전선대에 가져다 대는 방법으로 전단지를 붙였다. 어둠이 깊어가자 날은 더욱 추워져 풀이 얼어붙어 전단지를 더는 붙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길을 따라 전단지를 살포했다. 점포와 가정집을 만나면 대문 틈사이로 전단지를 밀어넣었다. 이렇게 그들은 량식도매소에서부터 매매가(买卖街)까지 전단지를 살포했다. 전단지를 모두 살포한 뒤 리민은 지하당원인 최수림 집에 가서 하루 묵었다.

  이튿날 집현진은 들끓었다. “어제 밤 항일군이 들어왔다오. 도처에 전단지가 붙어있소...”, “항일군이 이미 시내 전체를 점령했는지도 모른다오...” 삼삼오오 모여 항일군이 도시를 점령했다고 의론하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감돌았으며 모두 이를 정말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실은 꼬마 항일구국아동단원들이 한 일인줄을 그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시민들의 이런 얘기를 들은 아동단 단원들은 더없이 기뻤으며 자신들이 항일구국을 위해 이렇게 큰 일을 할수 있는줄 몰랐다.

  1936년 가을이 지나 류충민 동지가 부금현위서기를 맡았으며 조명구 동지가 안방하로 파견되여 왔다. 그때 당시 항일련군 대부대는 완달산 칠성립자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대량의 물자지원이 필요했다.

  류충민 서기는 아동단선전대의 역할을 아주 중시했으며 그는 아동단에 모금활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을 지시했다. 구위에서는 아동단에게 첫 모금지점으로 화력툰을 지정해주었다.

  선전대가 화력툰의 공터에 도착하자 마을의 남녀로소들이 모여들었다. 리민은 연설에서 “고향분들이여, 우리는 소년 항일선전대입니다. 우리는 항일구국의 목적으로 여기에서 공연을 하려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아주머니 여러분, 항일군은 현재 전방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일본군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중국인으로서 한족, 조선족이 함께 손에 손을 잡고 마음과 마음을 합쳐 항일군을 지원하고 군민합력하여 일본침략군을 물리쳐야 합니다...”

 

  리민의 연설이 끝나고 공연이 이어졌다. 그들은 《항일소년선봉대가》, 《전쟁이 시작되였네》, 《국민당은 어떻게 되였는가》를 부른데 이어 《어머니, 울지마세요》를 불렀다. 아이들의 공연은 아주 진지했으며 선전대의 노래를 들은 촌민들은 너도나도 눈물을 흘렸다. 아동단원들의 노래에 어른들은 피가 들끓었으며 촌민들은 “이렇게 어린 아이들마저 항일구국을 위해 뛰여 다니는데 우리가 그냥 보고만 있을수 없지않느냐!”며 집으로 달려가 식량과 말린 채소들을 가져왔다. 기부된 식량과 물자는 그날 밤 운수대의 령도들이 밤을 새워 칠성립자 항일련군의 밀영으로 운수했다고 한다.

  그후 류충민서기는 직접 선전대를 거느리고 류세발툰(현재 집현현 홍련촌)으로 가 모금공연을 했다. 선전대가 온 것을 본 타작을 하던 촌민들은 일을 멈추고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음력 11월16일, 날씨는 맑았지만 추위는 매서웠다. 선전대의 연설과 공연을 본 농민들은 여러가지 지원 물자를 가져왔다. 옥수수쌀, 좁쌀, 수수쌀을 가져왔으며 량식을 내놓지 못하는 가정에서는 잎담배, 말린 당콩, 말린 가지 등 말린채소를 가져왔다. 어떤 가정에서는 옷, 헝겊신, 우라신(靰鞡鞋)을 내놓았는데 촌민들은 항일전쟁 지원에 성심을 다했다.

  농민들의 높은 열정에 비록 추운 겨울날 로천공연이지만 선전대 대원들은 땀을 흘리며 열연했다. 마침 이때 동쪽 초소로부터 집현진 방향으로 적의 기병대가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보고를 받은 류충민서기는 당장에서 분산 철퇴할 것을 결정했다. 류충민서기는 임춘식, 장운봉 등에게 북쪽으로 철거할 것을, 특파원 조명구에게는 리민, 장영화 등을 인솔하여 서남쪽 필가산으로 철퇴할 것을 지시했다.

  바람이 일고 큰눈이 천지를 뒤덮을 듯 내렸지만 그들은 풍설 속에서 칠성립자 항일련군의 후방근거지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들이 어두컴컴한 수림속으로 몸을 숨겼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눈보라는 갈수록 세차 밀영지를 아예 찾을 수 없었다. 바람은 크고 쌓인 눈은 깊어만 갔으며 춥고 배가 고파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침 이때 신비탈 아래에 농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음씨 착한 늙은 량주는 항일련군이라는 말에 그들을 집안으로 안내해 옥수수죽과 짠지를 내놓아 그들을 대접했다.

  식사를 하고 나니 자정이 넘었고 내리던 눈은 멎었으며 밝은 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백성들에게 더는 페를 끼치지 않기 위해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반짝이는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북으로 향했다. 송화강을 건너 유격대를 찾아 헤매던 12살 리민은 끝내 영광스러운 항일련군 전사가 되였다.

  그후부터 안방하구의 적군은 경비를 강화했으며 촌마다 특무를 두고 감시했는데 형세가 긴장했다. 이에 선전대는 더는 공개적으로 모금활동을 진행할수 없었다. 형세가 준엄했지만 지속적으로 적을 타격하기 위해 아동단은 지하활동을 펼치고 주구, 한간, 특무를 제거하는 공작을 펼치며 항일투쟁에 힘을 보탰다.

  리민 동지는 별세했지만 그의 정신은 길이길이 남으리라.

  동북항일련군 로전사이며 우리의 경애하는 항일련군 녀영웅인 리민 동지가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우리는 오늘날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친 선렬들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된다. 영렬들의 확고부동한 리상과 신념, 초심을 잃지 않고 사명을 깊이 새기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분투해야 한다.

  /박영학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원제: 매편의 기사 모두 작품처럼] 《훌륭한 기자, 편집이 되려면 우선 신문사업이 신성하고 영광스러운 사업이라는 긍지를 가져야 한다.》 《문화대혁명》이전부터 신문 기자, 편집 사업을 해온 김경석선생은 신문사업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기자, 편집을 하기 어렵다고 력설한다. 김경석선생은 1960년 연변대학 조선언어문...
  • 2005-11-09
  • 중앙 1호문건이 시달되자 농민들의 농사열정이 크게 제고되여 왕년에 버려져있던 묶은 경작지마저 다시 부치고있다. 그런데 경작지 면적에 비해 농촌의 로력이 딸리여 농망철이 되면 모두가 인력난으로 쩔쩔매고있다. 이를 감안한 화룡시 투도진 룡원촌 제2조의 황명선 촌민은 대담하게 7만 5000원의 돈을 들여 종합수확기 ...
  • 2005-11-08
  • [원제: 중국 진출 선진기술 앞세워라] 중국 진출 4년만에 발을 붙였다는 소문을 듣고 방문을 갔더니 대화 첫 머리부터 “중국은 시장이 큰만큼 기회도 많지만 그래도 진출시에는 반드시 선진기술을 앞세우고 들어 와야 한다”며 총화발언을 하는 김인규사장, 그는 건축도료 전문회사인 장춘(주)코미톤건자재유한회사의 주인...
  • 2005-11-08
  • [원제: 인생은 끝없이 일하면 사는것]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큰 사업이 아니더라도 창업이란 얼마나 신고스러운 일인지 잘 알고있다. 그리고 우리는 쉽사리 창업의 마음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넉넉한 퇴직금에 자식들마저 잘 되고있어 아무런 뒤근심이 없다 할수 있는 퇴직자가 창업에 뛰여든다면 리해를 하지...
  • 2005-11-08
  • 상해 미술 전문학교 우등졸업 한낙연이 중국공산당에 입당할 당시 중국국민당과 공산당은 항일이란 큰 목표 아래 국공합작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한낙연에게 상부로부터 특별한 임무가 부여됐다. 그것은 국민당에 위장 입당해 대외적으로는 국민당으로 활동하라는 지시였다. 물론 중국공산당당적은 비...
  • 2005-11-07
  • 10월 21일 오전, 도문시 량수진 량수촌 21촌민소조의 조장 문영금씨로부터 시동생 최동원일가에 대한 소개를 듣고 그들을 찾았다. 《정말 그들처럼 착실하게 살면 외국에 돈벌러 가려고 아득바득 할 필요가 없습니다.》 량수촌권복순서기도 문영금조장의 말에 동을 달았다. 《부부가 손잡고 올해 논과 밭을 5헥트를 다루고있...
  • 2005-11-07
  • [원제:12살 연변소년 리소명 하버드대학생으로] 어린시절부터 《대통령》이 꿈, 올 대학입시서 660점 6월에 있은 전국고등학교입학통일시험에서 12살밖에 안되는 연변조선족소년 리소명이 66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따낸 뒤 7월 그리고 8월에 있은 2차례의 하버드대학 중국류학생선정시험에서까지 계속 우수한 성적을 확보해...
  • 2005-11-07
  • [원제:비룡실업의 진로밑에 깔린 《문화감각》] 박성룡총경리의 남다른 속궁리를 적어본다 1997 년 3 월18 일에 중국광전부의 허가를 받고 길림성광전청에서 전문 국내외 위성설비판매설계설치허가증을 취득하여 설립된 길림성비룡실업유한회사(간칭)는 현재 중국내에서 유일하게 국내외위성방송설비 판매, 설계,설치, 권한...
  • 2005-11-05
  • [원제:력사를 알아야 자존심 지킨다] [img count='1' img] 20여년간 조선인혁명가들을 조사연구해온 최룡수교수를 만나 9월중순, 길림대학 조봉빈교수로부터 중앙당학교 최룡수교수가 쓴 글을 받았는데 그것은 혁명과 예술을 결합시킨 한락연의 사적을 담은 글이였다. 그 글에서 우리 민족혁명가들의 사적을 발굴하기 위해 ...
  • 2005-11-05
  • [원제: 79세로인 웅변대회에 참가해] 발표시간: 2005-11-03 오후 3:33:10 주당위 선전부 문명판공실에서 주최한 전주 선진사적 웅변대회가 어제(2일),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있었습니다. 이는 올해 67세에 나는 훈춘시교육국 새일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인 량조희가 전주 선진사적 웅변대회>에서 한 말입니다. 전...
  • 2005-11-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