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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에서의 항일련군 로전사 리민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7월17일 14시24분    조회: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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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리민

 

동북항일련군 로전사이며 우리의 경애하는 항일련군 녀영웅인 리민 동지가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우리는 오늘날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친 선렬들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된다.

  (흑룡강신문=하얼빈) 2018년 7월21일 새벽, 동북항일련군의 가장 어린 조선족 녀전사 리민 동지가 별세했다는 비보가 전국에 알려졌으며 그녀의 고향인 집현에도 들려왔다.

  리민 동지는 1924년 11월5일 탕원현 오동하촌 하동툰에서 출생했다. 1932년 가을, 송화강에 홍수가 범람해 주변 마을에서는 곡식을 한알도 거두지 못했으며 백성들은 살길 찾아 뿔뿔이 고향을 떠났다. 당조직은 리석원, 장재중에게 30여호에 100여명에 달하는 부금현 제5구 안방하(현 집현현)난민대를 조직할 것을 지시했다. 난민대는 한달 여동안 기아를 참으며 안방하구의 왕해툰, 하서툰, 초전자툰으로 갔다.극히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 리민은 선후로 남동생과 어머니를 잃었다. 9살도 안된 리민이 가무를 맡아야했다.

  리민의 부친 리석원은 후에 중공안방하구위 조직위원 겸 항일구국회회장을 책임졌으며 후에는 안방하구위서기를 담당했다. 이에 리민의 집은 지하련락처가 되였고 리민은 보초를 서는 보초병에 또 정보를 전달하는 꼬마 통신원 역할을 했다. 한편 리민은 아동단에 가입했다.

  항일선전활동을 추진하기 위하여 안방하구의 항일구국아동단은 항일전단지를 살포하는 임무를 맡았다. 임 목수가 선전고의 목판을 제작하고 양 동지가 선전고의 제강과 구호를 썼으며 리민과 임덕준이 무우움에서 오소리기름 등잔을 켜고 낮에 밤을 이어가며 전단지를 인쇄했다. 등사기는 지하당이 가목사에서 구해왔다. 전단지를 인쇄한 후에는 아동단원들이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붙였고 집현현, 사강, 복리툰, 소가전 등지에 살포했다.

  1935년 음력 11월의 어느 오후, 아동단원들은 리민의 부친 리석원의 소차에 앉아 집현진으로 갔다. 날이 어두워지자 2명이 한 조가 되여 전단지를 붙였다. 키가 작은 리민은 허리를 굽혀 뒤잔등에 전단지를 올려 놓고 풀을 바른 뒤 등을 전선대에 가져다 대는 방법으로 전단지를 붙였다. 어둠이 깊어가자 날은 더욱 추워져 풀이 얼어붙어 전단지를 더는 붙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길을 따라 전단지를 살포했다. 점포와 가정집을 만나면 대문 틈사이로 전단지를 밀어넣었다. 이렇게 그들은 량식도매소에서부터 매매가(买卖街)까지 전단지를 살포했다. 전단지를 모두 살포한 뒤 리민은 지하당원인 최수림 집에 가서 하루 묵었다.

  이튿날 집현진은 들끓었다. “어제 밤 항일군이 들어왔다오. 도처에 전단지가 붙어있소...”, “항일군이 이미 시내 전체를 점령했는지도 모른다오...” 삼삼오오 모여 항일군이 도시를 점령했다고 의론하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감돌았으며 모두 이를 정말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실은 꼬마 항일구국아동단원들이 한 일인줄을 그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시민들의 이런 얘기를 들은 아동단 단원들은 더없이 기뻤으며 자신들이 항일구국을 위해 이렇게 큰 일을 할수 있는줄 몰랐다.

  1936년 가을이 지나 류충민 동지가 부금현위서기를 맡았으며 조명구 동지가 안방하로 파견되여 왔다. 그때 당시 항일련군 대부대는 완달산 칠성립자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대량의 물자지원이 필요했다.

  류충민 서기는 아동단선전대의 역할을 아주 중시했으며 그는 아동단에 모금활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을 지시했다. 구위에서는 아동단에게 첫 모금지점으로 화력툰을 지정해주었다.

  선전대가 화력툰의 공터에 도착하자 마을의 남녀로소들이 모여들었다. 리민은 연설에서 “고향분들이여, 우리는 소년 항일선전대입니다. 우리는 항일구국의 목적으로 여기에서 공연을 하려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아주머니 여러분, 항일군은 현재 전방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일본군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중국인으로서 한족, 조선족이 함께 손에 손을 잡고 마음과 마음을 합쳐 항일군을 지원하고 군민합력하여 일본침략군을 물리쳐야 합니다...”

 

  리민의 연설이 끝나고 공연이 이어졌다. 그들은 《항일소년선봉대가》, 《전쟁이 시작되였네》, 《국민당은 어떻게 되였는가》를 부른데 이어 《어머니, 울지마세요》를 불렀다. 아이들의 공연은 아주 진지했으며 선전대의 노래를 들은 촌민들은 너도나도 눈물을 흘렸다. 아동단원들의 노래에 어른들은 피가 들끓었으며 촌민들은 “이렇게 어린 아이들마저 항일구국을 위해 뛰여 다니는데 우리가 그냥 보고만 있을수 없지않느냐!”며 집으로 달려가 식량과 말린 채소들을 가져왔다. 기부된 식량과 물자는 그날 밤 운수대의 령도들이 밤을 새워 칠성립자 항일련군의 밀영으로 운수했다고 한다.

  그후 류충민서기는 직접 선전대를 거느리고 류세발툰(현재 집현현 홍련촌)으로 가 모금공연을 했다. 선전대가 온 것을 본 타작을 하던 촌민들은 일을 멈추고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음력 11월16일, 날씨는 맑았지만 추위는 매서웠다. 선전대의 연설과 공연을 본 농민들은 여러가지 지원 물자를 가져왔다. 옥수수쌀, 좁쌀, 수수쌀을 가져왔으며 량식을 내놓지 못하는 가정에서는 잎담배, 말린 당콩, 말린 가지 등 말린채소를 가져왔다. 어떤 가정에서는 옷, 헝겊신, 우라신(靰鞡鞋)을 내놓았는데 촌민들은 항일전쟁 지원에 성심을 다했다.

  농민들의 높은 열정에 비록 추운 겨울날 로천공연이지만 선전대 대원들은 땀을 흘리며 열연했다. 마침 이때 동쪽 초소로부터 집현진 방향으로 적의 기병대가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보고를 받은 류충민서기는 당장에서 분산 철퇴할 것을 결정했다. 류충민서기는 임춘식, 장운봉 등에게 북쪽으로 철거할 것을, 특파원 조명구에게는 리민, 장영화 등을 인솔하여 서남쪽 필가산으로 철퇴할 것을 지시했다.

  바람이 일고 큰눈이 천지를 뒤덮을 듯 내렸지만 그들은 풍설 속에서 칠성립자 항일련군의 후방근거지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들이 어두컴컴한 수림속으로 몸을 숨겼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눈보라는 갈수록 세차 밀영지를 아예 찾을 수 없었다. 바람은 크고 쌓인 눈은 깊어만 갔으며 춥고 배가 고파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침 이때 신비탈 아래에 농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음씨 착한 늙은 량주는 항일련군이라는 말에 그들을 집안으로 안내해 옥수수죽과 짠지를 내놓아 그들을 대접했다.

  식사를 하고 나니 자정이 넘었고 내리던 눈은 멎었으며 밝은 달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백성들에게 더는 페를 끼치지 않기 위해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반짝이는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북으로 향했다. 송화강을 건너 유격대를 찾아 헤매던 12살 리민은 끝내 영광스러운 항일련군 전사가 되였다.

  그후부터 안방하구의 적군은 경비를 강화했으며 촌마다 특무를 두고 감시했는데 형세가 긴장했다. 이에 선전대는 더는 공개적으로 모금활동을 진행할수 없었다. 형세가 준엄했지만 지속적으로 적을 타격하기 위해 아동단은 지하활동을 펼치고 주구, 한간, 특무를 제거하는 공작을 펼치며 항일투쟁에 힘을 보탰다.

  리민 동지는 별세했지만 그의 정신은 길이길이 남으리라.

  동북항일련군 로전사이며 우리의 경애하는 항일련군 녀영웅인 리민 동지가 우리의 곁을 떠났지만 우리는 오늘날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친 선렬들을 영원히 잊어서는 안된다. 영렬들의 확고부동한 리상과 신념, 초심을 잃지 않고 사명을 깊이 새기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분투해야 한다.

  /박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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