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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와의 전쟁 진두 지휘자 김녕일 원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7월2일 11시42분    조회: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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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김녕일

      새중국이 육성한 조선족원사들-3

  중국공정원 원사 바이러스연구 전문가 김녕일 박사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김녕일 원사.

  바이러스 연구 분야에서 30여 년간의 고심하고 꾸준한 연구를 거쳐 선두주자로 활약하는 중국 군사수의대학 박사생 지도교사 김녕일박사 역시 새 중국이 육성한 조선족 원사이다.

  1956년 3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의 한 평범한 교사가정에서 태여난 김녕일은 중국인민해방군 유전자공정 중점실험실 주임, ‘973’ 수석과학자, ‘863’계획 주제 전문가, 동물바이러스학 전문가 연구원, 박사생 지도교사이며 2015년에 중국공정원 원사로 되였다. 김녕일은 또 전국 동물방역전문가위원회 위원, 중국인민해방군 의학과학기술위원회 위원, 중국 축목수의학회 상무리사, 중국 축목수의학회 동물전염병학 분회 리사장 등 사회적 직책을 겸직하고 있다.

  김녕일의 30여년간 바이러스 연구력사를 두루 살펴보면 그는 숙명적으로 바이러스와 천생연분을 맺은것 같다.

  대학입시 회복을 맞아

  1977년, 무려 10년 동안 중단되였던 전국 대학입학 통일시험이 드디어 회복되였다. 김녕일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듯 한 없이 기뻤다. 어릴 때에는 동네의 구석구석을 누비는 개구쟁이였지만 대자연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현상에 대해 남달리 호기심이 많은 김녕일은 물리교사인 아버지에게서 문제의 답을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부모님의 엄격한 훈육하에 공부를 잘 하기로 정평이 났던 김녕일은 청화대학과 길림대학 등 국가 명문대학을 지원했다. 그런데 숙명적으로 바이러스와 갈라질 수 없는 인연을 맺은 탓이였을가, 종국적으로 그는 연변농학원 수의(兽医)학과에 입학하게 되였다.

  하향시절 대학생이 되여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였던 김녕일은 목적을 이룬 셈이였다.

  1982년 연변농학원을 졸업하고 학교에 조교로 남은 김녕일은 학문을 연구하면서 젊음의 패기와 발굴할 수 있는 잠재력에 강렬한 자신감을 가졌다. 김녕일은 대학졸업이 최종 목적이 아님을 새삼스레 느꼈다. 대학생이 흔치 않아 사회적으로 대학생을 높이 우러러 보던 그 시절 대학교 교사는 더구나 선망의 대상이였다. 하지만 김녕일은 불과 반년 만에 사표를 내고 군사수의대학에서 석사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유감스러웠다면 시초의 목표를 대학으로 정한 거지요. 목표가 너무 낮았습니다.” 김녕일의 말이다. 필경 옥수수밭에서 정할 수 있는 목표는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석사공부를 하면서 김녕일은 바이러스학 분야에 몰두하게 되였고 점차 전염병과 면역을 결합한 연구를 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학문연구에는 한계가 없다. 오직 최고만이 있을 뿐이다. 과학이 발달됨에 따라 최고도 부단히 갱신된다. 이같은 도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김녕일은 자연스럽게 박사과정을 밟았다.

  “성공을 위해서는 목표를 확실하게 세우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꾸준히 자신을 업그레이드해야 해요”

  사실 학문에 대한 열망은 그가 일찍 하향지식청년으로 농촌에 내려갔을 때부터 싹트고 있었다.

 

 

김녕일 원사가 연구팀과 함께 바이러스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바이러스 연구에 날개를 달다

  김녕일은 일찍 1985년부터 새로운 백신 개발에 종사하면서 유전자와 관련한 각종 소프트웨어의 배합기술을 습득하고 있었다. 석사,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그의 연구는 날개를 단듯 거침이 없었다.

  김녕일은 선후로 국가과학기술부 ‘863’과 ‘973’과제, 자연과학기금 중대 프로젝트, 국가 걸출 청년기금 프로젝트. 국가 과학기술 돌파, 총 후근부 걸출 청년기금, 농업부 중점 프로젝트, 길림성 중점 프로젝트 등 30여개 과학연구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1982년 이래 김녕일은 독성 바이러스성 병원 분리(烈性病毒性病原分离), 바이러스분자 류행병학(病毒分子流行病学), 바이러스 게놈 복제(病毒基因组克隆),바이러스구조 유전자기능 및 표달 조절 통제(病毒结构基因的功能及其表达调控),바이러스 활성 캐리어시스템 플랫폼 구축(病毒活载体系统平台构建),바이러스 유전자공정 재조합 백신(病毒基因工程重组疫苗),인간과 동물 공환 바이러스 예방 퇴치(人兽共患病毒病防治),쾌속 진단과 생물첨단기술 상관 제품 개발(快速诊断和生物高技术相关产品开发)등 연구분야에서 돌출한 기여를 해 분자바이러스학, 동물전염병학 등 학과 선두주자로 립지를 굳혔다.

  김녕일은 1990년부터 1996년 사이 선후로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学) 바이러스연구소와 한국 서울대학 유전공학연구소에서 외국 연구진들과 합작연구를 진행했다.

  김녕일은 ‘길림성 인간과 동물 공환병 예방 통제 과학기술혁신센터(吉林省人兽共患病防控科技创新中心)’와 ‘길림성 바이러스 재조합 백신 연구개발 공정연구센터(吉林省病毒重组疫苗研发工程研究中心)’를 설립하여 많은 인재를 육성했고 혁신적이고 활약적인 연구팀을 육성했으며 팀을 이끌어 30여년 간 ‘중요 동물바이러스병 예방 통제 관건 기술연구와 응용’시스템(重要动物病毒病防控关键技术研究与应用系统)을 구축하여 중국 동물바이러스병연구와 예방 통제 수준을 국제 선진수준에로 업그레이드시켰다.

  김녕일은 이 같은 뛰여난 연구 실적이 해당 부문의 인정을 받아 2012년 국가과학기술진보 1등상, 길림성 과학기술진보 1등상 2개 항목, 전군 과학기술진보 2등상 3개 항목, 3등상 4개 항목, ‘허량허리(何梁何利, 허산헝(何善衡), 량추쥐(梁銶琚), 허텐(何添), 리궈웨이(利国伟) 4명 홍콩기업가 돌출한 성과를 낸 중국과학기술사업자를 장려하기위해 공동 기부해 설립한 기금회를 말함.) 과학기술진보상’을 수상했고 정부 특수수당금을 향수하며 중국인민해방군 총 후근부 과학기술 은별(科技银星), 전군 우수교사, 제3회 ‘전국우수과학기술사업자’ 등 영예를 한몸에 지녔다.

  국내 외 과학잡지에 400여편 론문 발표

  김녕일은 자신의 연구성과를 론문으로 써 국내 외 유명 잡지에 실었다.

  김녕일은 기실 원사를 신청할 때 이미 발표한 690여 편의 론문을 줄여서 400여 편으로 기입했다고 한다. 론문 수자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떠들썩하게 제 자랑을 늘여놓는 것 같아서 그랬단다.

  세계 3대 과학저널인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셀(Cell)’에 자신의 론문을 싣는 것은 모든 과학자들의 하나같은 목표이다. 김녕일은 상기 과학저널에 유수의 론문을 게재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선진국의 매력적인 유혹을 물리치고 조국의 품으로

  1990년 김녕일은 일본 교토대학 바이러스연구소에서 일본학자들과 함께 에이즈 백신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그가 일본과학자들과 함께 공동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은 것은 론문발표를 통해 알려진 그의 연구수준 덕분이였다. 우두(牛痘)에서 추출한 바이러스에 에이즈 유전자를 넣어 만든 바이러스가 에이즈병의 예방에 가능한가를 검증하는 프로젝트이다. 이에 앞서 일본의 박사 2명이 이 과제를 연구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녕일은 연구 프로젝트에서 나타한 문제점을 하나 하나 집어냈다. “백신을 만들 때 외래의 바이러스 유전자가 들어가면 어떻게 높은 효률로 그것을 발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걸려 있었습니다.”

  나중에 김녕일은 HIV-1,HIV-2유전자를 리용하여 다종 구조단백질, 면역조절 단백질을 대량 발현시키는데 성공했다. 일본학자들과 공동연구 프로그램이 거의 끝날 무렵 연구소는 소장과 동일한 급여를 주고 주택을 무상 제공하는 등 월등한 대우를 주면서 김녕일을 수석과학자로 초빙할 의향을 밝혔다. 하지만 김녕일은 단연 포기하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과학에는 국계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성공을 위해서는 제한된 시간과 정력을 조국에 투자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한국 서울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후학의 육성에 전력

  생명과학에 대한 연구는 멈출 수 없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인류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야 할 영원한 과제로 되고 있다.

  학문연구외에도 김 교수는 후학의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근 500명의 석사, 박사생을 육성, 제자들에게 아주 엄격한 스승으로 정평이났다. 그는 제자들에게 과학에 대해 신중하고 증거에 립각한 진실한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과학을 존중해야 한다. 과학은 그 어떤 거짓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김 교수가 제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원사는 공식적인 정년퇴직이 70세이다. 김 교수는 나중에 퇴직하게 되면 학문에서 대를 이을 더 많은 후학을 육성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저는 한 인격체가 완성, 승격되려면 꼭 학문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김 교수가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인격체이다.

  김녕일은 정녕 그 어떤 백신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학문연구이라는 ‘바이러스’에 깊숙이 감영된 원사였다.

  흑룡강신문/특별취재팀 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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