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민족음악의 발전은 뿌리에서 길을 찾아야…”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월26일 10시11분    조회:701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최삼명
       

        올 양력설에 즈음해 친척 방문때문에 연길을 찾은 작곡가 최삼명옹(86세)은 여든의 고령임에도 정정한 모습이였다. 15세때 고향인 흑룡강성 밀산에서 동북민주련군에 참군할 때가 1947년 5월 25일이라고 짚어낼만큼 기억력도 녹쓸지 않았다.

  누가 배워주지 않아도 퉁소, 저대, 바이올린을 다룰수 있을만큼 음악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던 최삼명옹은 어렸을 적 민가를 통해 우리 음악을 접해왔다고 했다. “내가 장악한 민가는 조선 류학 당시 음악대학의 교수들보다도 많았다”고 그는 회억했다.

  참군 후 중국인민해방군 후방병원 제3소에 배치받은 그는 2년간 부대의 행사때마다 음악반주 등을 하여 인기를 모았다. 1949년 11월에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당시 중국에서 유명한 할빈의 로신문공단 제2단의 바이올린 연주원 겸 관악대튜바연주원으로 되였다.

  1950년 1월 로신문공단의 28명 조선족예술인들은 연변문공단과 합병했다. 당시 최삼명옹은 바이올린과 비올라 연주원이였지만 처녀작 동요 <병아리>를 《아동가곡집》에 발표하는 등 작곡에도 두각을 내밀기 시작했다.

  1955년 국가류학생 신분으로 조선국립음악대학에 파견받았을 때 전공을 악기로부터 작곡으로 바꾸었으며 해방후 서양음악리론과 조선전통음악을 체계적으로 장악한 첫패의 음악인으로 되였다. 그는 작곡학부에서 조선민요를 1년 배운 후 민족음악학부에서 3년간 조선민족전통음악인 판소리를 배웠으며 이 시기 창작한 교향시 <해란강>, 현악4중주 <행복>은 조선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4년간의 류학생활을 마치고 최삼명옹은 선후로 연변예술학교 작곡교연실 주임, 연변가무단 창작평론실 주임으로 있으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내 음악이 아름답고 깊이가 있다면 내가 민족음악을 깊이 파고들었기때문이다. 민족음악이 발전하려면 자신의 뿌리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최삼명옹은 시대의 요구와 우리 민족의 구미에 맞는 음악작품들을 많이 창작해냈다. 그의 음악작품들은 선률이 아름답고 민족풍격이 짙은 것이 특징이다. 문화대혁명 직후 우리의 음악이 중국의 기타 쟝르의 음악의 영향속에 자신의 특징을 잃은 가운데 그가 창작한 <사과배 따는 처녀>와 <내 고향 오솔길> 등은 조선족음악의 발전방향을 개변시킬만큼 영향력있는 작품이라고 일컬어진다.

  “민가에만 머물러 있으면 우리의 음악은 발전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군중이 어떤 것을 좋아할가 늘 고민하면서 창작을 시도했다. 다정스럽고 단맛이 나는 이 노래들을 다행히 군중들이 좋아해줘서 고마울따름이다.”

  최삼명옹은 이날 우리 민족의 유명한 음악인들과 두터운 교분도 회억하며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우리 나라 가극창작의 ‘리정비’로 일컬어지는 가극 <아리랑>이 바로 안국민, 허원식, 최창규 등 작곡가들과 함께 창작해낸 것이다. 당시 최상명옹은 연변가무단 창작평론실 주임이였고 그들은 세 번 실패 끝에 이 작품의 음악창작을 완성했다. <아리랑>은 1990년 문화부 ‘우수작곡상’과 ‘우수종목상’, 1991년 문화부 제1회 ‘문화대상’, ‘문화음악상’, ‘조선평양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상’을 따냈다.

  최삼명옹은 일찍 정률성과 합작을 한적도 있다고 회억했다. 당시 연변가무단 방죽송이 정률성이 종이에 적은 선률을 전해줬고 그것을 받아 최삼명옹이 함께 작곡을 한 적이 몇번 있었다고 한다.

  최삼명옹은 평생을 중국조선족음악사업에 몸담그고 살아왔다. 그의 주요작품으로는 교향시 <해란강>, 현악사중주 <행복>과 , 관현악조곡 <장백봉화>와 대형조선족가극 <아리랑>, 가무극 <친선의 물결>, 무용음악 <장고춤>과 <논물 관리원>, <물길따라 천리길>, <내 고향 오솔길>, 화극음악 <장백의 아들>과 <심청전>, 영화드라마극음악 <첫봄>, <연변의 봄>, <민들레> 등 1000여편이 있다. 작품집 《최삼명작곡집》과 《내 고향 오솔길》을 펴냈고 ‘대형가극 <아리랑>을 론하다’ 등 20여편의 론문도 발표했다.

  최삼명옹의 30여편의 음악작품은 국가급 문화상, 우수상, 1등상 및 성과 주급상을 수여 받았다. 그중 드라마 <민들레>는 라지오텔레비죤방송부 준마상 3등상을, 무용 <논물 관리원>은 1979년 건국 30돐 경축 헌례공연에서 문화부 음악창작 1등상을, <장고춤>(음악창작)은 1998년 문화부 20세기 중국경전작품상과 1999년 20세기 ‘예술금상’을, 가곡 <내 고향 오솔길>은 1981년 길림성 극종목평가상 창작 1등상을, 무용 <과수원은 나의 집>은 작곡 1등상을, 드라마 <서양홍>은 음악창작상과 길림성 공산당 창건 70돐 기념 현례공연에서 우수작곡상을 받아안았다.

  특출기여로 인해 그 또한 성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수여받았고 ‘연변진달래문예상’ 공로상과 ‘민족문화사업특출기여인물상’ 을 수상하기도 했다.

  “내가 창작한 음악들은 거의 다 노래로 불리거나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지금도 세계적인 수준의 교향악을 쓰고 싶은 마음이다. 간단한 일은 아니다, 악대도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기때문에 감히 환상해본다.”

  그러면서 최삼명옹은 우리도 하루빨리 교향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렵다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간단하고 쉬운 것으로부터 시작해 차츰 수준을 높여야 한다, 노력없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최삼명, 남, 조선족, 중공당원, 1932년 3월 출생. 1947년 5월 사업에 참가, 중국조선족 저명 작곡가, 1급 작곡가, 중국음악가협회 길림 분회 상무리사, 연변음악가협회 부주석, 중국음악가협회 <음악창작> 객원 편찬위원 등 력임

    연변일보 리련화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44
  • 생명으로 음악을 한 박학림과 그의 학림악단 중국조선족의 저명한 작곡가 박학림선생이 거느린 연변학림악단 설립 10주년 기념공연(7월 7일)이있은 지도 달포가 지났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후 그 자리를 뜰념 하지 않고 감개...
  • 2017-08-23
  • 재한 조선족 서예가 일목 신현산씨의 서예 인생   (흑룡강신문=하얼빈)채복숙기자=웅건하고 박력감 넘치는 한자 행서, 오밀조밀하고 정교로운 한글 판본체... 그의 글씨는 항상 개성이 넘친다는 평판을 듣는다. 최근년간 한국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조선족 서예가 일목 신현산(62)씨, 그는 스스로도 묵향에 취해 40년을...
  • 2017-07-25
  • 南熙哲 光辉灿烂的艺术人生 —访南熙哲先生   郭笑宇       南熙哲,朝鲜族, ,朝鲜民主主义人民共和国准博士学位,1958年8月21日出生在美丽的吉林省磐石市明城镇石山村。他历经了文革的浪潮和改革的春风的洗礼,在那个风云变幻的年代,作为一名地地道道的农民的孩子,他毅然选择用艺术改变...
  • 2017-07-16
  • 소식을 듣고 필자가 달려간 곳은 합창단 련습실. 합창련습에 열중하고 있는 오륙십대 어르신들. 보아하니 그냥 여유를 즐기려고 시간이나 떼우기 위해 취미생활로 부르는 아마추어 수준은 절대 아닌것 같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합창련습을 하고 있는것일가?   ▲합창단 련습실에서 진달래합창예술단 합...
  • 2017-07-01
  • 박은 예로부터 우리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생활도구로 널리 사용되여왔다. 물을 떠마시거나 술을 마실 때, 그리고 쌀을 퍼낼 때에도 우리 조상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박이 쥐여져있었다. 박을 던지거나 밟아 깨뜨림으로써 잡귀를 쫓아내는 주술적 풍습도 가지고 있어 박의 크기는 작지만 쓰임새는 아주 컸다. ...
  • 2017-06-12
  •                올해 2월 24일, 중국 중앙텔레비전방송국 제3채널 '무용세계' 프로에서 소고춤을 추는 한 청년의 무대를 우연히 접했다. 조선족인 듯한 모습에 끌려 필자는 자막정보에 따라 중앙민족대학교 무용학원을 찾았다.     소수민족 최대 문예공연 무대에...
  • 2017-06-06
  • [문화] 명작의 공간 장률 감독은… “아무나 찍는 게 영화” 큰소리치다 입문 단편 ‘11세’로 베니스 초청받아 장률(사진) 감독은 재중동포 3세로서 영화감독이 되기 전까지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대에서 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러던 중 어떤 사태에 연루되어 해직당한 후 10년간 ...
  • 2017-06-02
  • 인민화보 왕자인(王佳音) 기자 =늦봄을 지나 초여름이 다가오는 계절, 베이징(北京)은 벚꽃이며 복숭아꽃 해당화가 어지러이 피었다지더니 금세 푸르른 녹색으로 물들었다. 순식간에 여름이 훌쩍 다가온 느낌이다. 올해는 박웅규 작가가 중국에 온지 11년째 되는 해이다. 체크무늬 티셔츠에 니트카디건, 단정하게 탄 가...
  • 2017-06-02
  • 나이 50에 변신에 성공 아시아투데이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조선족 출신의 트랜스젠더 무용가 김성(金星·50)은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한때는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단한 유명세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직업적으로는 전성기가 끝났다고 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능...
  • 2017-05-06
  • “우리 소리와 친숙해진다는것이 참 쉬운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신세대들에게는 더욱 그런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1996년에 연변가무단에서 장고연주자로 퇴...
  • 2017-04-21
‹처음  이전 5 6 7 8 9 10 11 12 13 14 1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