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방초선이 부른 노래 영원한 애창곡으로 남으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2월20일 08시24분    조회:630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방초선

<붉은 해 변강 비추네> ,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 등 군중들이 즐겨부르는 노래로

우리 나라 저명한 조선족 녀고음가수 방초선, 어릴 적부터 노래하기 좋아하고 춤추기 좋아하던 그는 15세에 입대하여 문예전사로 되였다. 그는 선후로 나라를 위해 많은 영예를 안아왔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깊은 함의를 알게 되고 꾸준히 노래실력을 키워온 그는 달콤한 사랑도 찾았다. 방초선은 조선족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한 사람중의 한 사람으로 되였다.

그가 부른  <처녀의 노래>,  <붉은 해 변강 비추네> ,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 등 노래는 사람들이 즐겨부르는 애창곡으로 되였다.

외국노래를 부르는 처녀애

1932년 조선 함경북도 김책시에서 출생한 방초선은 여덟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 길림성 왕청현으로 이주했다.

방초선의 아버지는 유격대에 참가하면서 진보적인 사상을 접촉하게 되였다. 집에 올 때마다 방초선에게  <단결가>,  <홍기가> 를 배워주었다. 가정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방초선은 어릴 때부터 노래하기 좋아하고 춤추기 좋아했으며 일본류학을 다녀온 아버지로부터 많은 외국노래도 배웠다.

1947년 봄, 중국인민해방군 길동군분구 장병들이 왕청현 류수하 마을에 내려와 촌민들과 함께 군민친목모임을 가진 날이였다. 그번  모임에서 방초선은 마을의 대표로 외국노래  <탄식소야곡>과  <런던단조>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도 노래를 잘 불러 부대 한  관계자가 부대 문공단원으로 참군할 것을 제의했다.

그 때부터 방초선은 부대 문공단에서 활약하며 유일한 독창가수로 자리를 잡았다.

이듬해인 1948년 료심전역 장춘해방전쟁에서 방초선은 가장 년소자로 16세 나이에 전방에서 전우들과 함께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을 부르면서 전투사기를 올려주었다. 전쟁터에서 방초선은 문예선전의 역할과 위력을 알게 되였고 선전대원이 된 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여겼다.

방초선은 “장춘해방전쟁 때 포탄이 늘 우리 곁에서 터졌는데 우리는 엎드렸다가는 일어나 걷고 걸어가다가는 엎드리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매일 참호를 다니며 노래했는데 어떤 날에는 50수의 노래를 불렀다.” 며 제일 처음 전사들에게 노래를 부를 때 모두 10수를 불렀는데 전사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더라고 회억했다.

전선에서 돌아온 방초선은 선진사업자로 되였고 ‘동북해방기념메달’도 탔다.

1949년, 길동군분구문공단이 연변가무단으로 체제바꿈을 하고 방초선은 그 이듬해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첫돐 기념공연에 참가하게 되였다. 방초선은 중남해 회인당 무대에서 국가지도자들이 앉은 자리에서  <베짜기노래>를 불렀다.

그 후 방초선은 여러번 당과 국가 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다. 1962년 주은래 총리는 방초선이 노래와 춤에 뛰여나니 동방가무단에 전근하면 더 큰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친히 동방가무단의 지도자를 소개해주었다. 그러나 방초선은 연변가무단의 수요로 고향에 돌아왔다.

결정적인 한해

1957년은 결정적인 한해였다. 방초선은 문화부로부터 모스크바 제6기 세계청년련환축제 음악콩쿠르에 파견되였다. 당시 학교도 다니지 못한 방초선이 성악지식을 알리 없었다.

그러나 방초선은  <처녀의 노래>를 불러 110개 나라 가수 가운데서 두각을 드러내며 은상을 받아 나라를 위해 영예를 따냈다. 이번 경력으로 방초선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귀국 후 방초선은 연변가무단의 배려로 중앙음악학원 간부연수반에서 공부하게 되였다. 마침 우리 나라 이름난 녀고음 가수이며 성악교육가인 곽숙진이 해외류학을 마치고 귀국, 방초선은 곽숙진의 첫번째 학생으로 되였다.

지난 세기 70년대 방초선은 한어로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  <붉은 해 솟았네>  등 노래를 불렀는데 이 노래들은 군중들이 즐겨부르는 노래로 되였고 전국 각지에 널리 퍼졌다. 방초선은 각지에 다니며 공연하고 국내외에서도 여러번 독창음악회를 가져 큰 호평을 받았다. 또한 조선족음악을 전파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달콤한 사랑

1959년 9월, 중앙음악학원 신입생 무도회에서 방초선은 처음 남편 왕개평을 알게 되였다. 1960년 12월에 결혼한 이들은 음악세계에서 함께 57년을 살아왔다.

왕개평과 방초선은 서로 지지하면서 프로계획을 짜고 가극창작, 성악교육에서 꾸준히 개척해 많은 후대를 양성했다. 방초선의 이름은 《중국예술가사전》, 《중외녀성명인사전》 등에도 올랐다.

1980년부터 2003년 사이 왕개평과 방초선은 전국 각지와 미국, 카나다, 일본, 한국 등 나라에 가 부부 음악회를 가졌고 80차례의 순회공연을 했다.

2015년에는 10대 ‘80’후 가수음악회에서 왕개평과 방초선은  <꽃은 왜 이리도 붉을가 >를 부르며 행복한 로후생활을 자랑했다.

중국민요/길림신문 편역 홍옥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44
  • 살아있는 전설 인생을 녹여 연극을 만든 허동활선생   허동활선생은 연변의 연극사에서 영원히 지지 않는 저녁노을로 불리우고있다. 연극사업에 평생을 몸담고 배우로부터 연출, 연출로부터 단장에 이르기까지 중국조선족의 연극과 맥박을 함께 해온 허동활선생이 걸어온 연극인생을 더듬어본다. 연극과의 인연 허동활...
  • 2012-05-30
  • 《우리 노래 100년에 깃든 이야기》 집필자 시인 석화선생 인터뷰 시인 석화선생. [길림신문 안상근]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 기념문집》에 선정된 《우리 노래 100년에 깃든 이야기》 제1권이 오는 6월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된다. 연변대학예술학원 남희철교수가 기획하고 김성희교수가 자료 수집 및 제공을 ...
  • 2012-05-18
  •   일본 동경 선-갤러리 관장 마크티얼썬(오른쪽) 과 함께 기념촬영을 남긴 심학철(가운데). 채색사진의 천연원색에 대한 재현으로 하여 세계 그 어디에서도 채색카메라촬영이 보편화되고있는 현실이다. 이속에서 중국조선족사진작가 심학철(40세)은 흑백사진의 《칼라보다 더 부드럽고 섬세한 세계》를 구축하여...
  • 2012-05-14
  •   최근 중국공산당탄생 90돐 맞이 기념선집《새시기 중국공산당인 우수격언선집》에 연변의 원로작곡가 동희철옹(85세)의 4수의 격언이 등재되였고 편집부로부터 우수격언증서와 메달이 전달되였다. 《명곡앞에서는 총을 든 적들도 무력해진다.》 《총탄은 사람의 육체는 해칠수 있어도 인간의 령혼은 정복할수 없다....
  • 2012-05-08
  • 《기억속의 60년》-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 특별기획(12) ―중국조선족 대중가요의 참신한 변화를 시도해 온 작사가 석화선생을 만나   우리 둘이 정답게 손에 손잡고 높은 산 험한 봉을 맞받아가면 칼벼랑은 비켜서고 넓은 길 펼쳐지리 아, 사랑은 용감히  아름다운 처녀야 사랑은 용감히 &n...
  • 2012-04-27
  • 단편영화 《먼 곳은 어디에》 촬영을 지도하고있는 김혁감독. 북경의 3월은 바야흐로 신록의 푸른빛을 대지에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수도 북경의 신흥문화관광점으로 부상한 《798》의 유룬스당대예술중심촬영장에서 20대 조선족영화감독 김혁(金赫,29세)은 한창 《먼 곳은 어디에》라는 단편영화를 촬영하고있었다....
  • 2012-04-26
  • 겨레의 감동을 불러일으킨 음악인생 음악인생 60여년에 노래 500여수 펴낸 동희철선생을 찾아서   60여년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직전부터 음악교원사업에 종사하면서 수많은 음악인재를 양성하고 수많은 명곡들을 지어 세인을 감화시켜 존경을 받는 음악인이 있다. 바로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음악부 주임사업을 하다가 ...
  • 2012-03-31
  • 연변음악교육의 견증인 라혜주선생을 만나 연변주창립초기 제1대 음악교원 수백명의 음악전문인재 배양 87세 고령에도 피아노치기는 빠질수 없는 일과의 하나라는 라혜주선생. 올해 87세(1926년생)인 라혜주선생은 1952년 연변조선족자치구 창립 경축대회에 참가한 일원으로 력사의 견증인이다. 당시 연변사범학교에서...
  • 2012-03-26
  • 80고령에도 창작활동을 견지 500여편의 작품 창작 왕청2중 교정에 세워진 《첫수확》노래비앞에서 [길림신문 2012-02-28] 지난 세기 60~70년대에 지식청년들에 의해 널리 불려지면서 조선족가요계를 풍미한 노래중의 하나가 바로 《첫수확》이다. 40, 5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열창되고 있는 이 노래의 작사자는 김세형(80세)...
  • 2012-02-28
  • 연길시제2고급중학교 음악교원 강철산의 이야기       소학교시절부터 노래를 배우면서 아련하게 가수를 꿈꾸어오던 어린 소년은 중학교시절에 기타에 흠뻑 빠졌다가 고중에 진학한후에는 손풍금을 배워가지고 음악학원에 입학했고 졸업후에는 음악교원으로 되였다. 비록 교원생활 10여년이 흐른...
  • 2011-12-2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