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3개 나라서 공부한 연변의 김명교, 석사는 하버드에서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6월1일 11시30분    조회:564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명교

초중은 연변 2중, 고중과 대학은 한국, 석사는 미국서

세계 최고의 명문대 하버드대학교 졸업식이 5월 25일, 매사츄세츠주에 있는 보스턴 케임브리지에서 자긍심에 찬 졸업생들과 축하 메시지를 전하는 친지들로 축제의 분위기속에서 성황리에 펼쳐졌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동아시아 지역학’을 전공한 연변의 수재 김명교양이 자랑스럽게도 세계 각국에서 모여 온 여러가지 피부색을 띤 수재들과 어깨 나란히 석사과정 졸업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하버드대 석사졸업식에서의 김명교

김명교는 1992년에 아버지 김홍일과 어머니 리미화의 딸로 연길에서 태여났다. 길림대학 물리학과를 함께 졸업한 부모들이 1997년에 한국으로 류학가는 바람에 김명교는 다섯살 때부터 11년간이나 부모님의 빈자리를 느끼며 유년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성격이 활달하고 씩씩하며 진취심이 강한 김명교는 연변 2중 초중부를 훌륭하게 마치고 연변 2중 고중부 통지서를 받았다.

그 사이 김명교의 아버지는 어렵게 학비와 생활비를 장만하면서 서울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삼성전기에 취직했다. 딸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놓고 2008년에 명교를 한국에 전학시켰다.

학제가 다르다 보니 김명교는 한양 외국어고등학교 고중 1학년 후학기부터 중국의 교육제도와는 커리큘럼(교육과정)이 완전히 다른 고중생활을 시작했다. 중국어학교를 다니면서 조선어문 기초는 닦아놓았지만 한국의 고중국어를 따라 가기에 버거웠고 특히 한국사는 완전히 공백이였다.

중국에서의 뛰여난 학습성적이 한국에서는 밑바닥을 헤매는 신세였고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 다른 문화배경속에서 자라온 교우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자존심이 떨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김명교는‘연변소녀’의 자존심을 내걸고 2년반 동안의 각고 끝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힘들었던 고중시절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2011년 김명교는 한국 명문대의 문을 자신있게 두드리고 하버드 석사공부까지 마치게 되였다.

김명교가 하나하나, 한단계한단계 계단을 톺아오른 과정을 들어보도록 하자.

필자: 연변에서 공부한 기반이 한국 연세대 진학에 도움이 되였는가?

김명교: 한국 연세대학 언더우드국제대학교는 2005년 연세대의 독립학부로 설립되였습니다. 다양한 문화배경을 가진 여러 나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대학입니다. 특히 미국 대학교의 커리큘럼을 도입한 한국 최초의 국제대학으로서 모든 전공과 교수가 영어로만 진행됩니다.

부모님께서 저에게 한국에서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는 특수한 교육환경을 마련해주셨기에 언더우드입학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저의가 중국 연변에서 성장했다는 다문화적 배경이 언더우드입시에서 무엇보다도 매력적이였음을 뒤늦게야 알게 되였습니다.

새옹지마라고 그처럼 힘들었던 고중시절이 오히려 저의 인생에서 역전을 꿈꿀 수 있는 기회와 발판이 되여주었습니다.

필자: 대학시절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점이라면?

김명교: 저의 개인적인 자질이나 호기심들이 언더우드와 적성이 맞아서 4년동안 즐겁게 학문에 열중할 수 있었고 학생회, yearbook(연감), 주말 브런치(오전 중간의 식사) 행사 등 다양한 동아리행사에 적극적이고도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은 것 같습니다.

그중 가장 소중한 성과라면 저의 사고력의 향상과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더우드는 중국에서부터 한국으로, 국가와 사회가 바뀐 환경에서 ‘정치외교’를 전공으로 선택한 저에게 새로운 지적인 사고의 세계를 펼쳐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받아온 중국이나 한국 교육과는 달리 언더우드에서는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최대한 키워주고 장려하는 리념하에 정확한 답이 없는 질문들을 던져줌으로 하여 저의 사고의 자유와 령역을 무한히 넓혀주었습니다.

필자: 사춘기에 한국에 전학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해 본적이 있는가?

김명교: 처음 한국에 갔을 때 저는 사춘기 소녀의 예민성으로 한국사회에서 느껴지는 연변사람들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때문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혹시라도 뻐스에서 연변사람들의 억양만 들어도 자신이 부끄러워지면서 피하고 싶었고 제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이 알가봐 두려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과중한 학업 부담 때문에 그 이상 깊게 고민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해서 비로서 그때 왜 부끄러워 했는지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고 개인적으로 정말 의미있는 시간들을 가지게 되였으며 중국의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하게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중국에서 온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3D업종에 종사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였고 국가란 무엇이며 민족이란 무엇인가에 물음표를 던지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부모와 함께

필자: 명교양의 인생에 특별한 영향력을 준 사람은 ?

김명교: 언더우드에서 저의 인생의 멘토이신 Chad B. Denton 은사님을 만나게 되였습니다.

박학다식하시고 년륜과 권위가 있으신 챠드 은사님은 제가 지적으로 문화적으로 인간적으로 성숙되여 가는 과정을 지켜봐 주신 분입니다. 저로 하여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을 가지게 하고 제 자신이 아주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 멘토입니다. 제가 인격적으로 존경하고 선망하는 멘토 은사님의 고무와 격려는 저의 꿈에 힘 있는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은사님께서 아마 제가 하버드를 지망할 때도 강한 추천서를 써주셨기에 오늘의 이 자리가 있게 되였습니다( 웃음) .

필자: 하버드 석사과정 진학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학비와 생활비는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김명교: 언더우드는 세계적인 안목을 가지고 하버드대학을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멘토교수님의 적극적인 격려와 같은 환경에서 공부한 선배들의 선례를 통하여 저는 희망을 보았고 분발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였습니다.

4년동안의 노력은 저를 배반하지 않더라구요. 저는 2014년 하버드에 지원하면서 하버드 법인재단인 ‘Harberd Yenching Institute’에 장학금 신청을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면제받을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였습니다. 2015년 2월에 하버드에 입학하였습니다.

또한 부모님과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공간적으로 독립한다고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웃음) .

필자: 하버드대의 가장 뚜렷한 장점은? 최고 명문대의 위상을 지켜갈 수 있는 비결은?

김명교: 하버드의 장점은 학생들의 현재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 예측하고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처럼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지원하는 학생을 믿어주고 억소리 나는 경제적 자금을 아낌없이 지원해 준다는 것은 미래지향적이며 교육본질에 대한 존중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하버드는 꾸준히 동문들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 보내주는 기부금으로 막강한 경제력을 확보하고 세계 최고의 교수진들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그 학문적 권위와 문화적 위상을 굳건히 지켜가고 있다고 봅니다.

필자: 수재들 사이의 경쟁이 치렬할텐데 이겨내는 비결이 있는가?

김명교: 대학원에 와서는 더 이상 주위 학생들과 횡적인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연구분야에서 자신이 정해 놓은 높은 기대치와 도전을 하게 됩니다. 저는 대학교시절부터 흥취를 가지고 있던 ‘동아시아 지역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자신의 가능성에 도전해 왔습니다.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다보니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해 불만족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고 초조하고 우울한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자기만의 시간과 흥취를 누리고 장려하는 교육문화권에서 성장하지 못했던 탓에 저는 주위의 다른 학생들처럼 운동이나 게임같은 취미생활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줄 모릅니다. 저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보다 현실에 가까운 기대치를 조률하면서 긍정적인 마음과 자세로 연구에 림했습니다.

필자: <연변조선족 이주>를 주제로 석사과정 졸업론문을 쓰게 된 계기는 ?

김명교: 론문은 저의 특수한 교육배경으로부터 관찰, 조사한 3개국‘문화려행기’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중국 변경지대에 살고 있는 우리 조선족이 겪는 주요 정치적, 사회적 변동 그리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수가 70만명에 달한다는 점에 대한 사회의 몰리해, 미국인들이 중국조선족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버드에 와서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로 우리 조선족의 이주와 조선족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버드라는 무대를 통하여 미국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야망으로 석사론문을 쓰게 되였습니다.

필자: 해외에 있는 조선족들을 상대로 인터넷설문조사를 진행할 때 필자도 적극 호응하고 싶었다. 애로사항은?

김명교: 저는 우선 작년 여름방학에 석사론문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하여 고향 연변을 답사하였습니다. 80년대 초의 개혁개방이 연변의 경제문화사회사업에 어떠한 변화를 주었는지에 초점을 두고 민족별, 직업분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관찰, 조사해보는 것이 저의 목표였습니다. 연변의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난 애로사항에 부딪치면서 저는 한달남짓한 사이에 연변에서 발로 뛰면서 해당 부문을 찿아가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동분서주하였습니다.

금년 2월 연변의 경제, 사회상황이 연변 조선족이주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탐구, 연구하고저 디아스포라(흩어진 상황) 해외 조선족들을 대상으로 심도깊고 폭 넓은 인터넷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60대이상은 컴퓨터사용에 익숙하지 못하여 응답하지 못하는 애로사항들도 있었습니다.

필자: 앞으로의 계획은?

김명교: 고향 연변과 우리 민족에 대한 애착과 사랑으로 나름대로 혼신의 정력을 몰부어 졸업론문을 완성하였습니다. 좋은 연구결실이 맺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계속하여 중국 국내 소수민족, 즉 사회적 소수집단들의 인구류동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 이 면의 연구가 하버드에서는 미개척지로 남아있어 지도교수님이 없습니다.

석사를 졸업한 후 저는 우선 뉴욕 할렘에 있는‘데모크라시 프렙 차터 스쿨’공립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앞으로의 연구방향과 커리어(자기능력)에 대해 좀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렵니다.

‘동아시아 지역학’이 저의 전공인 것만큼 미국학생들한테 우리 민족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 또한 가슴 뛰는 새로운 도전이 될겁니다.

일단 기회가 있으면 두려움없이 도전하는 것이 저의 성미입니다. 과감하게 도전하는 과정에서 쌓아가는 경험들은 모두 의미가 있고 귀중한 것이니깐요.

그리고 6월부터 북경대학에서 미국대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면서 9주 동안의 여름방학을 꽉 채우게 됩니다. 한국어 전직교사로 출마하기 전의 의미있는 교사체험이 될것 같아 기대됩니다.

길림신문 / 리화옥 미국특파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사진= 김석봉 변호사가 베이징잉커(광저우)율사사무소 상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수봉 김호 기자   (흑룡강신문=하얼빈) 변호사는 법률로 사회의 병폐를 다스리고 질서를 지켜가며 정의를 신장한다. 어려서부터 많은 꿈을 가진 김석봉(43)씨는 중국 최고 명문대인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아시아 ...
  • 2018-03-27
  • 해바라기장사가 꿈이였던 한 농촌소녀의 성장이야기 새로 나온 건강식품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김기옥 리사장. “왜서인지 어릴 때부터 해바라기장사나 얼음과자장사를 하고 싶었죠. 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항상 반장이 되고 싶었는데 위생위원이나 학습위원밖에 못했어요.” 어린 시절 얼마나 생활이 어려웠으면...
  • 2018-03-22
  •    선전시디바이텍 실업유한회사 이대홍 이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월드옥타 제4대 선전지회장으로 활약하다 지난해 연말에 이임한 선전시디바이텍 실업유한회사 이대홍(56) 이사장은 성격이 활달하고 아주 소탈한 기업인이다.   "개혁개방이 없으면 오늘이 없지요"   우리 특별취재팀이...
  • 2018-03-20
  • 평생영예칭호 수상자 최창규 연변에서는 어디를 가나 봇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춥고 황량한 벌판일 수록 더욱 꿋꿋하게 군집을 이루며 살아가는 봇나무는 아름다운 자태와 굳센 의지가 회자되면서 세인들의 칭송을 받아왔다.   지난 1월 29일에 만난 최창규옹(84세), 그가 창작한 우리 민족의 우수한 관현악곡작품...
  • 2018-03-16
  • ‘2017년 흑룡강을 감동시킨 인물’ 계동현인민법원 려선화 재판장   (흑룡강신문=하얼빈)채복숙 기자=“소송 당사자와 사건에 책임지고 공정 공평하게 일하여 인민이 만족하는 법관이 되겠습니다.”   지난 2월 6일, 흑룡강성위 선전부, 성정신문명판공실, 성총공회, 성부녀련합회 등 단위에서 공...
  • 2018-03-08
  • 30년 넘게 민족무용과 하나되여 군중예술을 보급하고 발전시키는 사업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는 안무가 고성옥(55세)씨를 지난 1일, 그가 부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연길시문화관에서 만났다.   안도현 장흥촌에서 태여난 고성옥씨는 어릴적부터 예술적 재능과 끼가 다분했던 문예소녀였다. 어쩌다 마을에서 하향공연이...
  • 2018-03-07
  •     ▲ 박사학위 수여식을 마친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정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김용선 박사   중국동포 출신인 김용선 중국동포한마음협회 회장이 20일 ‘대림동 중국동포타운 지역 활성화 연구’로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길림성 용정시 태생인 김...
  • 2018-02-26
  • 미국 조지아주 중화침술의사협회 회장,아틀란타 북경중의원 원장 박두봉 인터뷰 박두봉과 부인 고복자씨 설날을 며칠 앞둔 지난 11일, 필자는 조지아주 아틀란타에 자리 잡고있는 아담하고 정갈한 북경중의원을 찾아갔다. 은은히 풍기는 약초 향기를 맡으며 저녁에 열릴 조지아주 중의사협회 음력설련환회 준비때문에 바쁘...
  • 2018-02-24
  •       광둥예지아전자과학기술유한그룹 남기학 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그 것이 배의 존재 이유가 아니다.” 웰리엄 G 쉐드의 명언처럼 대학교수라는 사회 촉망을 받는 유망한 직업을 과감히 버리고 안전한 항구를 떠나 더 넓은...
  • 2018-02-13
  •      일본전승무역주식회사 전동선 이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38세 되던 해인 2006년 연초에 일본 요코하마(横滨)에 무역회사를 설립하고 중국의 건축자재를 일본으로 수입, 매년 1억 위안의 매출을 올리는 일본전승무역주식회사 전동선(50) 이사장은 "개혁개방이 없었다면 아마 우창(五常)거리를...
  • 2018-02-06
‹처음  이전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