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재한조선족 성공시대] (32) 이림빈 신강양꼬치 대표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월23일 09시53분    조회:1500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이림빈
인터뷰하는 이림빈 신강양꼬치 대표
인터뷰하는 이림빈 신강양꼬치 대표(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조선족 출신 사업가인 이림빈 신강양꼬치 대표(47)가 23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신강양꼬치 선릉역점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23 newglass@yna.co.kr
 
흑룡강성 교사 출신, 한국온 지 사흘 만에 공장서 오른손 잃는 불운
노숙자 거쳐 식당업 시작…마포·강남 진출하며 '코리안 드림' 이뤄
"한국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회의 땅…동포청년들 과감하게 도전하길"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27살 중국동포(조선족) 청년의 '코리안 드림'은 한순간에 산산이 깨지는 듯했다.

경기도 안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 차디찬 기계에 눌려 오른손을 잃었다. 교사직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건너온 지 불과 사흘 만에 일어난 끔찍한 사고였다.

하지만 청년에게 시련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었다. 절망과 원망이 뒤섞인 암흑기를 견뎌내고 결국 왼손 하나로 다시 일어섰다. 20년이 흐른 지금은 서울 곳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거듭났다.

그는 지난 2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고난의 연속이었다"면서 "이제 와 되짚어보니 오히려 힘든 시절을 겪으면서 삶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국 흑룡강성 출신인 그는 길림사범대를 나와 교사로 일했다. 빠듯한 살림살이 탓에 해외 이민을 고민하던 중 "그래도 한국에 가면 언어가 통하고, 기회가 많이 생긴다"는 소문에 1997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으로 밟은 한국 땅은 너무나 가혹했다. 경기도 안산의 공장에서 일한 지 사흘 만에 프레스 기계에 오른손을 잃으면서 그의 삶은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었죠. 병원에 누워있는데 만사가 귀찮고, 원망스럽고…. 옆 침대 환자가 저하고 비슷한 부상을 당했는데, 하루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하더라고요. 남의 일 같지 않았죠. 그나마 가족을 떠올리며 가까스로 버텼습니다. 결국 몇 달 만에 한 손을 잃은 채로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죠."

이 대표가 다시 한국으로 온 건 3년 뒤인 2000년이다. 주변의 도움으로 병원에 다니며 다친 손목을 2차로 치료했다. 그제야 막연하게나마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른손이 의수(義手)인 중국 동포에겐 작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엔 중국 동포들이 공사장 막노동이나 목수 일을 많이 했거든요. 그마저도 제겐 불가능한 일이었죠. 하다못해 전단을 돌리는 일도 어렵더라고요. 당장 잠잘 곳이 없어서 노숙자 생활도 했습니다. 그래도 일자리 찾는 걸 멈추지 않았어요. 나쁘게 말하면 무식했고, 좋게 말하면 용감했죠."

간신히 붙잡은 기회가 인생 역전의 발판이 된 것은 오로지 땀방울 덕택이었다. 2000년 금천구 독산동에서 10평짜리 식당에 테이블 4개를 놓고 '아침 10시에 출근해 밤새 장사를 하고 다음 날 아침 8시에 퇴근하는' 치열한 나날들을 보냈다.

인터뷰하는 이림빈 신강양꼬치 대표(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조선족 출신 사업가인 이림빈 신강양꼬치 대표(47)가 23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신강양꼬치 선릉역점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23 newglass@yna.co.kr

"식당은 비좁았지만 목표는 크게 갖자는 생각에 가게 간판을 '동북아 식당'으로 달았죠. 낮에는 중국 요리를 팔고, 밤에는 술과 안주를 내놨어요. 손님이 단 한 명 뿐이라도 절대 문을 닫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빚도 갚고, 밥벌이도 되고…. 무엇보다 경험이 쌓이더라고요. 그때 배운 노하우가 지금까지도 제겐 가장 소중한 자산이죠."

사업을 점차 확장해가다가 2007년 지금의 '신강 양꼬치'를 차렸다. 주 고객층인 중국동포를 따라 대림동에 터를 잡은 것이 주효했고, 2년 후엔 근처에 중국식 샤부샤부 가게도 열었다.

중국동포를 대표하는 청년 사업가로서 한국 사회와의 접점을 넓히는 데도 앞장섰다. 2008년 '중국동포한마음협회'를 출범시키고 초대 회장을 맡아 영등포구 자율 방범대, 이웃돕기 바자회, 요양원 봉사단 등을 이끌었다.

그런 와중에도 마음 속에서는 여전히 승부 근성이 꿈틀댔다. 고심 끝에 조선족 밀집지를 벗어나 서울을 대표하는 '맛집 1번지'인 마포에 '신강 양꼬치' 2호점을 냈다. 2012년의 일이다.

"중국 동포는 70만 명이고, 한국인은 4천만 명이잖아요? 그럼 한국인 입맛을 겨냥해 큰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막상 처음 1년은 고생 좀 했어요. 대림동과 마포는 손님들 입맛이 확연히 달랐거든요. 주기적으로 조리법이나 밑반찬 구성을 바꿨더니 넥타이족 단골손님도 생겼고, 가게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주변에서 충분히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지금도 그의 승부는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에 강남구 테헤란로 한복판에 '신강 양꼬치' 선릉역점을 차리고 비즈니스맨의 입맛 공략에 나선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풀리는 것만은 아니다. 동료들과 함께 야심차게 뛰어든 프렌차이즈 사업은 여러가지 상황을 감안해 일단 잠정 보류하고 있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는지 묻자 "큰 고생을 겪었지만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쿨'하게 답했다.

"한국은 변화 속도가 빠른 만큼 기회가 많은 시장이라고 생각해요. 상권도, 소비자 취향도, 유동 인구 흐름도 시시각각 달라지죠. 요즘은 해외에서 'K-뷰티'가 뜨고 있잖아요? 중국 동포는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 화장품 무역업 등에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죠. 대학생인 첫째 딸에게 입버릇처럼 말해요. 어떤 일이든 과감히 도전하라고. 중국 동포 청년들에게도 마찬가지 당부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두 손을 내밀어 인사를 건넸다. 그의 두 손은 똑같이 따스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60
  • 쑤닝 전기 장진둥 회장, 지칠줄 모르는 도전정신으로 신화 일궈내 http://hljxinwen.dbw.cn   2012-08-10 11:14:45             (흑룡강신문=하얼빈) 매장크기 200m² 남짓한 작은 에어컨 도매상을 오늘날 중국 최대 가전판매업체로 일궈낸 이가 있으니 바로 쑤닝(蘇寧)전기의 장진동 회...
  • 2012-08-10
  • 역경 딛고 창업성공 이끈 녀강자 왕청보리수공예품유한회사 리사장, 보리수공예품강습학교 교장 박인자씨의 창업스토리 연변일보 2012-8-9 9:38:20   보통키에 수수한 차림의 박인자(46세)씨와 마주앉은것은 얼마전 그의 회사에서였다. 장애성빈혈로 점적주사를 맞고 왔다는 그녀는 얼핏 보아도 "녀강자"라고는 ...
  • 2012-08-09
  • 금융위기 실패 딛고 선 조선족사나이 편집/기자: [ 김웅견습기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2-08-03 09:56:38 ] 클릭: [ ] -연변가신경제무역유한회사 최중철사장을 찾아 최중철(35살)이 연길시 애단로 흠전빌딩에서 한국KCC금강화학공업 장판무역을 시작한것은 2010년 3월이다. KCC 장판은 친환경재료로 제...
  • 2012-08-03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 3세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한국 증권업계 전산(컴퓨터 관련)인력가운데 유일한 중국인으로 조선족 김성희(33)씨가 현재 대우증권에서 근무하고있다.   최근 몇년 한국증시에 상장하는 중국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한국금융의 중심지 서울 여의도에 중국인 전문인력도 증가하는 추세다.   ...
  • 2012-07-26
  • "조선족에게 南과 北은 `이혼한 부모님`…우리가 오가며 사이좋게 할 것" [특파원이 만난 사람] 표성용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 베이징 등 21개 지부, 회원 3000명 달해…조선족 은행 곧 설립 북한 투자환경 우호적…협력할 사업 많지만 큰 돈 벌지는 못해 표성용 중국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은 "중국...
  • 2012-07-15
  • (흑룡강신문=하얼빈) 마국광기자 , 김유권특약기자 = 레노보그룹(联想集团) 흑룡강성목단강시통달컴퓨터유한회사의 황미영(42세, 사진)총경리는 성공한 기업가, 우수한 인민대표로 인정 받고있다.   1991년 흑룡강건축대학을 졸업한 황씨는 건축설계사 부친이 몸담고있는 건축설계원이 아닌 농촌의 한 개발회사를 선택했...
  • 2012-07-05
  • 연변부림실업유한회사 리철중총경리의 이야기 요즘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기업을 경영하면서 인간의 근본성을 우선시하는 우수한 기업가들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연변부림실업유한회사의 리철중총경리(42세)는 인간우선을 실천하는 기업리념으로 돋보이고있다. 인간우선으로 고차원의 제품을 생산 연길경제개발구 과학기...
  • 2012-06-14
  •     연변더치야구르트회사 최영란경리를 만나     “창업하려면 부단히 자신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 더우기 노력과 인내가 있어야 한다” 이는 연변더치야구르트회사 최영란경리의 창업조언이다. 그녀가 창업에 뛰여들게 된데는 상인이였던 어머니와 먼저 창업을 시작한 언니의 영향을 많...
  • 2012-06-12
  • http://hljxinwen.dbw.cn   2012-06-07 10:53:57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 3세 이야기   —북경 모이자네트워크 김광식 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한국 경희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인 김광식 씨(39)는 북경모이자네트워크과기유한회사의 최고 경영자이기도 하다.   길림성 연길시 출신인 그는 1995년 상하이 ...
  • 2012-06-07
  • “건축관련 사업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도전, 혁신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상거래하는것을 경영리념으로 두고있다.”   이는 아보건축자재회사 심광석경리(41세)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다. 심경리는 1996년 한국에서 11년 동안 인테리어공부를 하고 2007년 다시 고향 연길로 돌아와 아보건축자재상...
  • 2012-05-29
‹처음  이전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