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재한조선족 성공시대] (26) 신선영 선영식품 대표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12월12일 08시09분    조회:992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신선영
김밥 배달·세차·식당 서빙·사우나 청소 등 안해본 일 없어
만두공장 취직했다가 회사 인수, 7년만에 연매출 10억대로 키워
다문화 봉사단체 설립·운영 "피눈물 흘려봐서 봉사에 더욱 매진"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한 건물 2층에 사단법인 다문화가족지원연합회 사무실이 있다.

이 단체의 신선영(여·56) 회장은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서 '원보'(圓寶)라는 브랜드의 중국식 만두와 순대를 제조·유통하는 선영식품의 오너 경영인이다.

전국에 중국 식품을 파는 마트나 중국 식당 가운데 이 회사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고 한다. 서울과 경기지역의 200여 개 업체에는 냉동탑차 4대로 직접 납품하고 나머지 지역은 12개 업체가 대행을 한다. 연 매출액이 10억 원을 훌쩍 넘기면서 경기도 광주에 물류센터도 세웠다.

지난 9일 오전 인터뷰를 위해 그를 만난 곳은 성남이 아닌 수원이었다. 오전에는 성남에서 자동차로 40분을 달려 연합회 사무실에 들렀다가 오후에는 수원역 앞에 있는 중국동포복지센터를 찾아 고령의 중국동포(조선족)를 돌보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생활 패턴 때문이다.

신 대표는 지난해 6월 경기지역 중국동포들의 맞춤형 교육과 일자리 제공, 법률·노무·세무 등의 무료 상담지원, 기타 행정지원 서비스를 위해 연합회를 설립했다. 사비를 털어 중국동포복지센터를 연 것은 지난 9월의 일이다.


'원보' 만두 제조판매하는 선영식품 신성영 대표

그는 "이들 단체의 운영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때까지 '수원생활'을 더 해야 할 것 같다"며 "아들과 딸이 사업을 도와주긴 해도 오후에는 출근해 직접 해야 할 일이 많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형편"이라고 했다.

본업을 오히려 뒷전으로 제쳐놓는 이유에 대해 그는 '선천성 퍼주기 바이러스' 탓으로 돌렸다.

"중국에 있을 때부터 그랬어요. 동포가 힘들다면 막 나서서 해결해줬고 한국 와서도 마찬가지죠. 동네 사람 사고가 났을 때도, 나쁜 일이 터졌을 때도 달려가 도와줬어요. 그러니까 무슨 문제만 생기면 전화가 와요. 지금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만도 1천500개가 넘어요. 대부분 한두 번씩은 도와준 사람이에요. 오지랖이 넓은 팔자여서 그런가 보네요."

헤이룽장(黑龍江)성 자무스(佳木斯)시에서 나고 자란 그는 대학을 졸업해 교사가 되기를 바란 부친의 뜻과 달리 고교를 마치자마자 미용 공부를 했다. 공부보다 장사에 관심이 많았기에 졸업 이듬해인 1978년 시내에 미용실을 차렸다. 수완을 발휘해 미용실을 키워가면서 조선족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등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1992년 남편이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나가면서 변화가 왔어요. 미용실을 꾸려나가는 일도 재미가 없어졌어요. 그러던 차에 광저우에 있는 아버지 친구의 아들이 좋은 사업이 있다며 전화가 왔어요. 자무스시 생활을 접고 중국돈 1만위안을 챙겨 달려갔는데 알고 보니 다단계였어요. 돈 많이 벌어오겠다고 호기 있게 말하고 고향을 떠나왔으니 돌아갈 수가 없었죠. 친구들에게 긴급히 SOS를 쳐 돈을 빌렸고, 5층 건물을 임대해 '조선족 호텔'을 차렸습니다."

호텔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나갔지만 대책없는 '퍼주기'가 발목을 잡았다. 조선족 노숙자나 광저우에 진출했다가 망한 한국인들을 데려다 재우고 밥 먹이고, 심지어 돈까지 빌려주면서 서서히 경영에 구멍이 났다.

빌려준 돈을 떼이고, 적자가 이어지자 1999년 호텔업을 접고 자무스시로 돌아왔다. 하지만 빈손 귀향은 자존심을 많이 구겨놓았다. 그때 선택한 것이 남편이 있는 한국이었고, 2000년 10월 양말공장 연수생으로 서울땅을 밟았다.

사단법인 다문화가족지원연합회를 설립해 운영하는 신선영 회장
사단법인 다문화가족지원연합회를 설립해 운영하는 신선영 회장

 

하지만 한국 생활은 남편의 배신으로 시작됐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는 사이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던 것이다. 낯선 서울에서 중국에 두고 온 딸(당시 16살)과 아들(13살)의 학비를 벌어야 했지만 당장 입에 풀칠도 쉽지 않은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는 한국에 온 바로 다음 날부터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 있는 김밥집에 취직해 배달일을 했다.

"식당에 걸려 있는 동네 지도를 한번 훑어보고는 머리에 스캔한 뒤 여기저기 김밥을 날랐어요. 시장에 있는 상인들이 주요 고객이었는데 그분들이 아주 친절했죠. 저도 고향 분들 대하듯 잘해줬고요. 그러다 시장 안에 가게가 났다는 정보를 듣고는 해장국집을 냈어요. 아침 일찍 해장국 끓여 그동안 잘해준 시장 상인들에게 공짜로 제공했지요. 너무 행복했어요."

그것도 잠시, 사람을 잘 믿는 그는 해장국집을 하며 번 돈을 사기로 몽땅 날렸다. 그러나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기에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택시회사에 나가 세차 일을,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식당 서빙을 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온몸 여기저기서 이상 신호가 왔지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사우나 청소부로 직업를 바꾸는 것이 전부였다.

정신없이 일하느라 비자 만기가 지난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국적이 필요한 그는 '누구라도 좋으니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주변에 부탁했고, 다행히 성남에 사는 지금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2004년 삼양동에서 성남으로 터전을 옮긴 그는 만두 공장에 취직했다. 가맹점도 많이 낸 잘 나가는 회사였지만 그가 일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동업자 간 분쟁이 일면서 부도가 났다. 그는 2009년 자금을 긁어모아 회사를 인수했고, 상호도 자신의 이름을 따 '선영식품'으로 바꿨다. 그러고는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회사를 키워 나갔다.

이 회사는 현재 샐러리만두, 부추만두, 배추만두, 배추절임만두, 삼선만두, 훈둔 등 6종류의 만두와 찹쌀 순대를 만들어 '원보'라는 브랜드로 전국에 판매하고 있다. 배짱과 담력 그리고 신용을 무기로 그는 7년 만에 선영식품을 재정이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회사가 자리를 잡게 되자 동북재정대학을 졸업하고 중국 광저우의 삼성전자에서 회계일을 하던 딸과 하이난대를 졸업한 아들을 한국으로 불렀다. 현재 생산라인은 딸이, 유통은 아들이 책임을 지고 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그는 성남에 재한동포활동실을 세워 조선족들의 자립과 생활을 지원했다. 지금은 이 활동실이 다문화가족지원연합회 성남지회로 이름을 바꿔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연합회는 경기지역에 11개 지회를 두고 있다.

재한동포상인연합회 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평택시에 '원보주점'도 운영하고 있다.

"진짜 맨주먹으로 성공했어요. 피눈물 나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더 봉사에 매달리고 있어요. 저도 제가 어디까지 봉사를 할지 모릅니다. 저는 전생에 인어공주였대요. 그러니까 퍼줄 팔자지요. 앞으로 우리 동포들을 위해 이렇게 살 겁니다. 그리고 동포의 자존심을 살리는 일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중국동포의 자존심을 살려주고 싶다"는 신선영 회장

ghwang@yna.co.kr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560
  • 진달래랭면 총경리 허미화 향후에도 서비스업으로 성공할터 청도시성양구에는 많은 한식점과 조선족음식점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은 택시기사들마저 알아주는 명소로 되였다. 길림성돈화시 역전 앞에서 랭면집을 경영했던 엄마 지부전의 영향으로 허미화(79년생)총경리는 어려서부터 음식업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갖게 되였...
  • 2011-11-01
  • [길림신문 2011-10-28  장춘영 기자]  조선족의 전통복식문화를 리드해가는 연길시성월민족복장공장 공장장 최월옥 최월옥(崔月玉)프로필 1947년 8월 룡정 동불사 출생 1967년-1984년 룡정현 동불사진 동불남촌 부녀대장, 부녀주임 1984년-1990년 연길시서시장 개체호, 북청당지부 선전위원 1991년-현재 연길시...
  • 2011-10-28
  • 세계경제인대회 준비하는 옥타 말레이시아 지회     “동남아의 허브인 말레이시아는 특성상 컨벤션이 자주 열리는 편이죠. 하지만 이번처럼 규모가 큰 행사는 처음이예요. 말레이시아 내에서도 관심들이 아주 높습니다” 이순구 말레이시아 지회장은 세계경제인대회 준비가 한창인 지난 28일 재외동포...
  • 2011-10-17
  • [흑룡강신문사 2011-10-13 길림성특파원 윤운걸]   -중국연변조선족전통음식협회 회장 김순옥을 찾아서 김순옥(金顺玉)프로필       1980년 7월-1984년 9월 연변대학 법률학부 법학사 1984년 7월-1986년 9월 상해 화동정법대학원 헌법학 전공 1984년 7월-2003년 2월 연변조선족자치주 법...
  • 2011-10-14
  • -글로벌한민족녀성경제인련합회 김순자리사장을 만나 [길림신문 2011-10-11 장춘영 기자]글로벌한민족녀성경제인련합회 김순자리사장 한민족녀성경제인들의 위상을 세계적차원으로 부상시키기 위해 자신의 힘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고있는 조선족녀성기업인이 있다. 그가 바로 글로벌한민족녀성경제인련합회의 김순자리사...
  • 2011-10-11
  • [길림신문 2011-10-09 전춘봉 기자]○ 연길진달래민족음식유한책임회사 최기옥리사장을 만나 연변의 수부 연길시 도심에 자리잡은 연길진달래민족음식유한책임회사(이하 진달래회사로 략칭)는 20여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음식업계의 굴지 기업으로 국내외에 명성이 자자하다.특히 이 회사의 브랜드 음식인 《진달래 랭면》은...
  • 2011-10-10
  • [인터넷료녕신문 2011-09-27 리덕권 기자]  흑룡강성 오상시 시골출신인 최영복(1953년 생)씨는 자신의 총명과 지혜, 그리고 특수인연으로 자기의 운명을 바꾼 인물이다.   1970년 초중도 마치지 못하고 귀향한채 호미자루를 잡았던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생산대의 출납, 기공원, 회계에서 공청단 서기직을...
  • 2011-10-08
  • 재한조선족 상인 김영복사장의 이야기   (흑룡강신문=서울 2011-09-01)라춘봉 특파원=“재한 조선족들은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에서 염가의 노동력을 판다”는 인식이 한국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 내려 있지만 특유의 센스와 지혜로 성공적인 상인으로 주목 받는 조선족들이 늘고 있다. 한국에서 음식점, ...
  • 2011-09-01
  • 조선족출신의, 하나은행 구로동 지점의 김순연대리가 중국인전용창구를 전담하며 최선을 다해 실적을 높인데서 은행 내부는 물론, 중국인(동포포함)고객들의 칭찬을 자자히 받고 있다. 중국 흑룡강 할빈 출생인 김순연 대리는 목단강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000년에 부로를 따라 모국에 온 후 2004년에 하나은...
  • 2011-08-31
  • [료녕조선문보 2011-08-23 김창영 기자] 참다운 인맥으로 쌓아올린 성공의 금자탑 료녕성 철령방정종이박스유한책임회사 오광훈리사장을 만나본다 오광훈리사장 오광훈(吴光勋) 프로필 1969년 1월 13일 철령시 출생 1987년 9월-1991년 7월 대련리공대학 1991년 10월-1996년 8월 철령시 은주구민정국 1996년 8월-1997년 4월 ...
  • 2011-08-2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