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녕파의 조선족 창업자 - 하하결구(哈哈洁具) 김철준 사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5월10일 07시50분    조회: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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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김철준

새 터전을 개척하는 사람들, 녕파(닝보)편(5)

“무엇보다도 인연을 키우고 보자, 인연, 신뢰가 중요하다” 

“우리 회사 총괄할래? 난 미국갈래, 여기 내 지금 해놓은 재산이 천만원정도 되는데 이거 네가 다 가지구할래?” 

“한 회사 한 곳에서 꾸준히 오래 있어야만 인연도 키워지고 정도 들고 그러는데…돈은 누구나 다 부족해요. 그런데 어떻하나 빠른 시간내에 빨리 버느라하니깐 자꾸 옮기고 찾아다니고 쫓아다니고 그러지요.”  

“제품의 품질 관리가 우선이다”

녕파의 조선족 창업자 

녕파에서 만난 또다른 조선족 기업인은 녕파 하하결구유한회사(宁波哈哈洁具有限公司) 김철준(金哲俊)사장이다.  

김철준 사장은 회사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공장을 참관시켰다. 그는 공장자리는 이제 막 이사온지라 여러모로 정리가 잘 되지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공장의 주요업무도 다소 변화가 생겨 지금은 위생설비뿐만 아니라 조명등설비까지 취급한다고 했다.

하하결구유한회사

회사 김철준 사장

회사에서 새로 취급하는 조명등설비

제품을 설명하는 김철준 사장 

수공으로 작업하는 로동자들 

잘 포장되고 있는 세멘기구 부품

위생설비 부품 

교외에 있는 공장을 보고나서 녕파의 조선족과 한국인이 자주 찾는 한식점 “대장금”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철준 사장은 이곳에서는 자기집에 온거나 마찬가지로 스스럼 없었다. 식사시간이 아닌지라 조용한 자리를 정하고 우선 김철준 사장과의 본격적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녕파에 오게 된 계기?]

[김철준]: “그때 친척이 닝보에 계셨는데 한번 놀러오라, 상해 이쪽에 한번도 와 보지 못했으니깐 한번 놀라와 보라, 여기 합당한 무역이나 장사나 할것이 있겠는가 보면서 겸사겸사해서 와보라 했습니다. 우리 연길에 있을 때는 연길이 중국의 중심이 돼 보이고 연변주위에 붙어있는 것이 중국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나와보니까 결국 중국의 제일 북쪽에, 제일 동쪽에 있는 작은 도시인줄 았습니다. 그러니깐 여기오니 눈이 퍽 떴지요. 전에 연길에서, 작은 우물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서로 부대끼고 하다보니 그냥 요만한 울타이였는데 여기 나와보니까 개방하고, 도처에서 건설하고, 무역이 활성화되고… 여기 닝보는 중국의 네개 큰 심수항이고 큰 콘테이너 차들이 막 다니고하는걸 보니까 ‘와~ 세상에 이런 세상도 있구나~.’ 그래가지구 ‘먼저 찾아보자 내가 할만한 일이 뭐 있는가?’고, 이전에는 뭐 입만 가지고 다니던 사람이 이곳에 와 처음에는 삼성중공업이라구 조선공장이 있는데 거기에서 총무쪽 일을 보았습니다. 뭐 다른 기술은 없었으니깐요. 총무 그런 일 3년정도해보니까 이 사람 저 사람, 한 사람 두 사람 얼굴도 익히고 정보도 서로 알고해서 지냈습니다. 그래가지고 차츰차츰 하다보니까 한 10년이라는 시간을 기초를 닦았다고보지요. 인연을 키우고 쌓는데 10년 시간이 걸린거지요.” 

[닝보에 와서 고생했던 일은 없었어요?]

[김철준] “어려웠다하면 첫째는 기술도 없고 사람도 없고 고향을 갑자기 떠나 타향에 오니 그때는 딸애도 장모장인님집에 맡기고 왔거든요. 그러니 저녁이면 그냥 달만보면서 ‘언제 될까?’ 애도 보고싶고 그러지요. 달만 보면 ‘그래 이젠 돈을 빨리 벌어 집에 가야지 가야지...’ 그랬는데 그것이 1년, 2년, 3년,  4년 어렇게 하다보니 차츰차츰 고향하구는 소식이 점점 멀어지고 이쪽의 소식이 점점 많아지고 그랬지요, 고향하고 타향의 천평이 기울러지고, 고향인 거기 가도 딱히 만날 사람없고 있다해도 정작 가보면 시간이 맞지 않아 자리에 없고 못만날 때도 있고… 이렇게 20년 되니까 이젠 가도되고 안가도되고 이렇게 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선민족이니까 그리고 민족의 ‘수도’가 연길이니까 앞으로 그쪽으로 뭐 쪼금 유익한 일도 좀  해야되겠다는 생각은 있지요. 그러니까 닝보에 와 가지구 고생한 일이라면 그저 그런거지요. 다른건 남과 다 마찬가지지요, 뭐 매일 취직도하고 출근도하고 그런건 고생이라고 할수없고 별로 고생한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처음엔 돈고생이랑 많이 하셨겠는데요?]

[김철준] “사람은 다 눈 높이가 있어요. 많이 벌면 많이 쓰고 적게 벌면 적게 쓰고. 글쎄 뭐 모르겠어요 지금  억만장자 사람도 돈이 부족하고 천만장자도 돈이 부족하고 지금 뭐 10만원 있는 사람도 부족하고 다 부족해요.  례하면 유치원 소학교 다니는 어린애들은 한 1,2원정도면 만족하고 중학생들은 10원정도 가지고 나가면 족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적게 벌면 적게 쓰면서 살았지요, 별로 돈 고생이라고 하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사업계획은 없었어요, 있었다면?]

[김철준] “사업은 그전에 계획을 잡았었는데 여기 와보고 아직이라고 생각했지요, ‘먼저 사업이구뭐고 생각하지말고 먼저 인연부터 키우자, 인연, 주위의 사람들을 내 옆에 묶어세우고 그사람들한테 나는 어떤사람이라는걸 심어주고...’ 그렇게 인연부터 키웠어요. 인연, 인연을 키우는데 10년이 걸렸어요. 한국사람을 만나면 다 친구로하고 그사람들 밥 한끼 사면 나도 한끼 사고 그사람들한테 절대 페를 끼치지 않고 그사람들한테 신세를 지지 않고. 그래서 꾸준히 10년 정도 지나다보니, 맡은 일을 하면서 지내보면 나중에 어떤 평판을 들었는가하면 ‘저사람, 저친구하고 같이 일 해도 된다’. 그래서 여기 진출해가지고 일하던 회사들, 뭐 관리가 안된다거나 혹은 일이 너무 많아가지구 그럴때가 있지요. 그러면 친구가 전화와 가지고 ‘야 우리 회사 총괄할래? 난 미국갈래, 여기 내 지금 해놓은 재산이 천만원정도 되는데 이거 네가 다 가지구할래?’. 이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니깐 믿고, 신뢰하는 인연이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믿을만한 사람한테는 자기집 키도 줘가지고 ‘야 얼마동안 나가니 집 좀 살펴달라’고 부탁합니다.” 

[인연키우는 일, 지금 젊은이들에게도 그것이 먹힐가요?]

[김철준] “지금와서 종합해 보면 그게 맞아요, 인연을 키우고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아니면 지금 막 졸업해가지고 사회에 진출한 청년들을 보면 좀 조급하지요, 빨리 돈을 벌어야되지, 빨리 결혼해야되지, 빨리 남들처럼 자가용도 끌구 다녀야지, 조급하지요, 조급하니깐 일이 생기는 거지요, 사람과 사람지간에, 회사하고 개인지간에 우리 쉽게 례를 들면 ‘发财心切’ 빨리 벌고 싶으면 은행을 털거나 쪼끔 여유가 있으면 도적질하여 그것을 다시 팔아서 돈을 만들고 아니면 차라리 신근하게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해서 로임을 타거나. 급하면 사고가 납니다. 급하니깐, 그러니깐 청년들 보면 좀 조급해하는 친구들 많더라구요, 그리고 한 회사 한 곳에서 꾸준히 오래 있어야만 인연도 키워지고 정도 들고 그러는데 이 회사에서 한 일년, 반년,  2년하다가  또 다른 회사에 가서 일년이년하고 이렇게 자리를 자꾸 옮기니깐 나갔다가도 칭도에 있는 친구보고 전화를 해서 ‘야 닝보에 니 배운 지식, 니 배운 기술로는 잘 쓰이는데, 야 거기서 5천원 받고있어 여기서 7천원 받을수있는데?’, 그러면 저쪽에서 ‘그래?그럼 네 알아봐’하고 그냥 건너옵니다. 그리고는 또 이곳에서도 이것저것 마음이 내키지 않아하다가 광주의 친구와 통화를 하고 그쪽에서 ‘야 왜 닝보에 있니 꽝저우에 오지’하면 또 그쪽으로 달려갑니다. 이런 친구들이 많다구요. 그게 지금 우리 청년들 보면 극복해야할 큰 문제인것 같애요.”  

[잘하는 젊은이들도 있을텐데요?]

[김철준] “물론 리해는 갑니다. 학교를 다니느라고 부모님 돈을 많이 썼지, 또 간혹 녀자친구도 생기고하면 돈도 써야하는데 돈은 누구나 다 부족해요. 그런데 어떻하나 빠른 시간내에 빨리 버느라하니깐 자꾸 옮기고 찾아다니고 쫓아다니고 그러지요. 물론 잘하는 애들도 있습니다. 우리 닝보에 있는 조선족들 교화 혹은 매하구, 연길 그쪽에 온 친구들 많은데 곰곰히 살펴보니까 거의다 한곳에서 오래동안 있었어요. 7년, 8년, 10년. 나중에 그 회사가 불경기가 되여 대량으로 생산하기는 좀 버겁다하면 좀 적게 생산해야한다고할때는 회사 문닫고 오다를 그런 친구들에게 줘가지고 ‘야 회사 규모는 이젠 줄여가지고 무역삶아 적게 하자, 니 같이하자’ 그럽니다. 다 그렇게 해가지고 하다보니까 하다하다 나중에 사장은 그냥 한국중국,중국한국 왔다갔다하고 중국애들이 여기서 회사 챙겨가지고 오다가 오면 그걸 맡아하군 합니다. 그런 무역회사가 많아요. 그러니까 그 전에 있던 사장들도 어느정도 ‘이놈 하고는 일해도 된다’, 그러니깐 이 사람들도 하나하나 제절로 회사하고 보면 지금 다 그렇습니다.”  

[녕파에서 현지 한족들과 신뢰를 쌓고 인연을 키우는데는 어떤 비결이 있는지요?]

[김철준] “칭도(청도)나 따랜(대련), 이쪽은 조선족이 많으니깐 대우를 잘 봤지 못하는것 같아요. 하지만 이곳 닝보쪽에는 조선족이라면 그냥 한국사람과 똑같이 취급합니다. 그리고 우리 납품업체들도 공장에 가면 한국사장이라하지 조선족사장이라 하지 않습니다. 닝보쪽은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가 엄청 좋아요, 사기 치는 사람도 없고, 뭐 다 열심히 일하고 또 한국에서 오다를 받아서는 중국공장에 주니까 다 사장들이지요, 언젠가 주택하나 구하려구 신분증을 보여주니까 국가안전국에 가서 허가 받으라는거지요, ‘왜 그러냐?’하니까 ‘너 외국사람은 허가 받아야한다’는 거지요. 그래 답답해서 ‘잘 보라, 여기 민족란에 조선이라고하지 않았는가? 우린 조선족이지 외국인이 아니다.’했어요. 그제서야 수긍하는것이였습니다. 이 정도로 현지사람들은 조선족과 한국인을 구별못합니다. 왜냐하면 여긴 조선족이 적으니깐말입니다. 우리민족을 보면 옛날부터 못살아도 깔끔하지요. 생활형편이 어려운건 리해하지만 깔끔하지 못한건 리해 못합니다. 그런 전통이 있어그런지 조선족은 여기와서도 깔끔하고 성실하게 살기때문에 닝보사람들 다 좋아합니다. 간혹 중국사람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 모두 외국손님 왓다고 잘 대접합니다.” 

[현재 공장운영상황?]

[김철준] “한국에 삼흥워터링이라구 전문 수도꼭지 금구와 부품들을 생산하는 공장이거든요, 우리가 생산해서 전량을 한국에 보내주고, 한국에서 50% 생산하고 중국에서 50%생산하고, 한국에서 50%생산하지 않으면 원산지 증명이 안 노옵니다. ‘메이딩 코리아’라고 붙이지 못하니 한국에서 꼭 50%하고 여기서 50%해야합니다.  그리고 지금 조률하기는 한국에서 생산해가지고 인건비요 계산해가지고 그래도 한국에서 생산하는게 유리하다하면 한국에서 생산하고 이거 한국에서 하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하면 그 품목은 중국에서 생산하고 이렇게 서로 조률하면서 생산하는데 일년에 한 천만에서 2천만사이의 그 정도의 규모로 합니다. 그러니까 많은건 아닌데 그나마 그정도 생산하는것도 중국업체들에 그만큼의 오다를 주고 그걸 생산하다보면 중국의 전기를 쓰고 물 쓰고 인력쓰고하다보니 중국의 GDP도 그만큼 올라가지요. 천만이래도 17%이면 백 70만정도입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국제 금속가격은 같애요. 그리고 제품 하나 딱 보면 그람수 달고 제품생산한 공예를 보면 ‘이건 대개 가격 어느정도 먹겠다’ 그러면 가격은 아주 투명하지요. 쌀 한근에 밥을 다 지어놓으면 쌀이 얼마들어 가고 수분이 얼마 들어가고 하면 원가가 분명 나오는거지요. 우리 계산하기도 쉽지요. 이것과 같아요.그러니깐 원제품에서도 크게 리윤을 붙이지 않고 중국에서 세금환급(退税)이 있으니, 10% 세금환급인데 천만원이라하면 거기에 10% 세금환급이라면 백만원이 되지요. 그러면 그 돈으로 우리가 회사를 운영하고 로임을 주고 거의 되니까 구태여 거기다 더 붙여가지고 할 필요 없지요. FTA 하니까 한국에 남는게 많지요. 그러면 한국에서 영업 뛰는 사람들이 돈이 많이 남습니다, 이 제품이 중국에서 생산해오기 잘했지, 그리고 영업 뛰고 다른사람에게 뒤지지 않으면 우리한테 오다가 더 오지요. 더 많이 생산해 보내지요. 우리는 혜택이 없는데 한국에서 우리가 제품을 보내면 8%, 10%정도의 세금을 내야하는데 그것이 없어지고 그러니깐 8%,10% 정도 가격이 싸졌지요. 그러면 중국의 경쟁력이 더 커졌지요.  

[공장제품의 우세?]

[김철준] “우리 제품은 100% 특허 허가 제품이니까 타사하고 섞이지 않아요. 우리 제품만 생산해서 하는데 우리 세면대 그밑에 배수하는 곳의 부품 만듭니다. 이런것들은 품질면에서 타사하고 엄청 구별되거든요.  때려 부셔도 망가지지 않고 써도써도 고장나지 않고 그정도로 만드니까, 우리 제품이 20원이라면 타사제품은 10원, 15원대로 팔리지요. 왜냐하면 그들의 제품은 품질관리가 따라가지 못하니까 여기서 물이 새고 저기서 망가지고하니까 그 소비자들이 하는 말이 ‘삼흥의 제품은 비싸지만 그래도 품질은 믿을만하다. 앞으로 쬬끔 더 비싸지만 삼흥의 제품을 쓰겠다.’  그 사람들이 싸구려를 가지고갔다가 도리여 우리제품의 광고로 되였지요.그러니깐 일년에 그제품만 해도 60만개부터 70만개 정도 매일 생산하니까. 우선은 품질에서 승부를 내야지요.” 

[사업을 더 발전시키고 더 키울 어떤 생각을 가지고있는가?]

[김철준] “지금은 본사제품을 그정도로 충족시킨걸로 하고 또 현재 무역쪽으로 사업을 확장하고있어요. 무역은 한국과 중국쪽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원가를 계산해보면서 품목을 선택하지요. 지금은 조명등기구도 하고 방직기계 부품, 컴퓨터로 자수하는 부품 등을 무역해서 한국쪽에 보내주지요. 그런데 이젠 나이도 들고 그러니깐, 그리고 배고픈 시기도 지나가고. 배고프면 이것도해보고 저것도해보고 그러겠는데 그 시기가 지나갔으니 뭐 해도좋고 안해도 좋고 그렇습니다.” 

[녕파에도 조선족협회가 있는데 이면에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할수있고 또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는가?]

[김철준] “조선족협회는 리영환 회장하고 박영호 부회장이 하고 나는 여기서 그냥 고문으로있으니, 두루두루 도와주는 일을 하지요. 우선먼저 협회를 설립해 닝보의 어르신들에게 활동할수있는공간, 례를 들면 한국의 ‘마을회관’같은거, 그런식의 장소를 마련해드리고 돈도 좀 기부해서 휴식공간을 챙겨야겠다고생각합니다. 여기 자녀들이 아버지어머니 보고싶으면 회관에 찾아가 같이 점심 먹어도 좋고 같이 화투 치기해도 좋구 그게 지금 초보적으로 계획 잡고있는 중이고. 또 어린이들에게 ‘우리는 조선족이다. 조선민족이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야하는가?’하는 이미지를 조끔씩 심어줘야하거든요.그래서 학교도 지금 계획하고있는 중입니다. 그 학생들이 그렇게 많지 못하다보니까 문젭니다. 열명, 스무명인데 거기서 고중생 초중생 유치원으로 나누어 놓으면 차이도 많고 수도 얼마안되지요. 그러니 처음에는 애들 놀이터삶아, 놀음삶아, 조선족애들 모임삶아 해가지고 하다보면 길이 생기겠지요.애들 뭘 원하는가 또 학부모들 뭘원하는가?” 

[한국과 조선어 이중언어문제, 학족학교와 조선학교 다니는 문제,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철준] “제 조카가 연길에 있는데 올해 소학교 5학년정도입니다. 연변방송국에서 소년아동프로 아나운서도 하고, 이름은 박소영이라는 녀자앱니다.처음에 엄마아빠가 중국(한족)학교에 보냈어요.처음부터 학족애들에게 밀리지 않게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서 말렸어요. ‘당장 조선학교에 보내라, 우리가 중국에서 살아갈수있는게 유일하게 우세가 중국어하구 한국어를 다 하는 것인데, 살아가는데 좀 도움이 되고 조선민족이라면 자기민족의 말과 언어도 알아야하구 또 앞으로 민족을 위해 할일도 많은데, 그래도 우리글 배워라, 아니면 일년에 얼마씩 내가 장학금을 줄테니까  조선족학교에 보내라’, 그래서 다시 조선 학교에 보냈는데 소년궁에서 무용을 배워가지고 엄청 잘하고 또 고모가 연변방송국 아나운서여서 어린이 방송프로에도 출연하고있어요. 지난번에 온 가족이 우리 닝보에 왔는데 ‘다 함께 앉아 논의해보자, 앞으로도 주변에 애들 중국(한족)학교에 보내려면 말려라’했어요.....우리 언어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엄청 도움이 됩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겠지만 ‘한족학교에 그냥 보내버리자, 조선글 배워봤자’,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김철준 사장과의 인터뷰는 이 정도로 마무리되였다. 인터뷰가 끝난후 우리는 한자리에 단란히 모여앉아 “대장금”의 음식을 맛보면서 계속 이야기 흥을 돋구었다.

식사중에 하는 말이였지만 김철준 사장은 “돈버는 일은 눈덩이를 굴리는 일”이라면서 생동한 비유를 하였다. 

그는 눈덩이는 봄에 굴려서는 안된다고 했다. 봄은 비록 눈이 계속 남아있지만 굴리다보면 차츰 기온이 올라가 눈이 녹기 때문에 굴릴수록 불어나는것이 아니라 줄어든다고했다. 반대로 가을에 눈덩이를 굴리면 아직 겨울이 아니여서 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아주 작아서 잘 불지 않지만 조만간에 큰 눈덩이로 불어날수있다고 했다. 

김철준 사장은 또 마음은 연변에 쏠리고 연변을 지원하고싶지만 연변에서 사업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당면 연변에서 사업한다는 것은 산에 음식점을 차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고기며 야채며 모두 산아래에서 구해와야하고 또 알심들여 만든 각종 맛좋은 료리들도 다 산아래 장에 가서 팔아야하니 효률이 안난다고한다. 곰곰히 생각하면 그럴법도 하다. 여러가지 국내외 정치환경과 경제환경에 의해 연변의 개방과 개발은 줄곧 많은 제한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건 몰라도 두만강개발만 보더라도 수십년동안 떠들어댔지만 속시원히 바다길이 터지지 못하고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륙로 교통도 아직까지는 제한이 많다. 세계 제일 물동량을 자랑하는 녕파 주산항과는 도저히 비교도 안된다. 때문에 김철준 사장의 비유에 다소 수긍이 가기도한다.  

글, 사진/ 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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