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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류학생15] 섬나라에 자리잡은 《진달래뿌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2월23일 10시35분    조회: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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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회에서 연변의 브랜드로 알려진 《축구》,《김치》와 관련된 대표인물들에 대한 취재 계속으로 7월 21일 저녁, 필자는 《진달래》의 대표인물로 동경에서 13년간 《진달래》음식점을 차리고있는 신혜영사장과 식당에 모인 재일조선족들을 만났다. 
 
동경에서 코리아타운이라 불리는 신오오구보거리에서 필자를 반기는듯 우리 글로 울긋불긋 반짝이는 《연길랭면》, 《양꼬치구이》 등 간판들을 보노라니 한결 기분이 좋았다.
꽃병에 꽂은 연변 룡정의 진달래 
취재를 계기로 한 만남이지만 이번 기사의 취지에 비추어 《진달래모임》으로 작명한다.
 
이날의 모임에는 최매화(1986년생, 동북사범대학 졸업, 2010년 동국대학 교환생으로 일본에 진출, 동경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따고 현재 일본방송국 계렬회사에서 편집으로 보도사업에 종사, 또한 <사랑>기금회를 설립하여 고향의 빈곤가정학생들을 지원하고있다.), 김철(1999년에 길림농업대학 졸업, 2001년에 일본에 류학, 현재 주식회사JIT사장), 신혜영(1965년생, 흑룡강성 녕안병원에서 근무하다 1996년에는 한국, 2000년에 친척방문으로 일본에 왔다가 언어학원을 다닌후 2002년부터 진달래음식점을 꾸렸다. 슬하에 2남 2녀가 있음), 리태권(주식회사 ZORUHARA 사장, 현재 월드옥타 일본치바지회 부회장, 신혜영사장의 남편), 김정남(1972년 화룡서 출생, 치치할경공업학원 졸업, 연변과기대에서 연수를 마치고 리비아에서 2년간 컴퓨터 관련 업무에 종사, 1999년에 일본에 진출. 상무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2002년부터 재일조선족 사이트 <쉼터>를 운영, 주식회사ASIC를 경영하고있다), 한승호(청화대학을 졸업하고 2000년에 일본류학, 쯔쿠바대학에서 박사공부를 하고 현재 일본국립대학인 전기통신대학의 부교수, 공학박사이다.), 오광호(청화대학 졸업, 박사공부를 하는 과정에 독립하여 현재 벤처기업을 운영), 오무송(1999년 동북사범대학 졸업, 2000년에 일본류학, 현재 케이오대학 전임강사 법학박사) 등 8명이 한자리를 했다. 
 
《진달래》음식점에 들어서며 왼쪽벽을 보니 눈익은 장백산천지 그림이 걸려있고 방에도 우리 민족의 전통민속그림들이 걸려있었다. 그림을 그린 화가 역시 일본에서 활약하는 재일조선족 장경호였다. 연길출신인 장경호는 2008년 12월 신일본미술협회가 주최하고 일본문화청과 동경도의 후원으로 개최된 제32회 신일본미술전시회에서 작품《추상(追想)》을 내놓아 최우수상 문부과학대신상을 수상한 화가였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진달래는 연변의 주화입니다. 저는 이번 기사의 제목을 <섬나라에 자리 잡은 진달래뿌리>로 달겠습니다. 재일조선족들의 삶의 현장을 그대로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만나면 반갑고 갈라지면 또 만나고싶은 사람들이라 시원한 호프에 맛갈스러운 양고기뀀과 웃음을 안주로 한 풍성한 대화였다. 대화는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넘쳐흘렀다. 
 
《진달래》와 《쉼터》
 
일본의 주택정원이나 공공시설물의 발코이는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되다보니 “정말 아름답구나”는 탄성이 무의식중에 터져나온다. 그래서 필자는 번번히 행보를 멈추고 이름모를 꽃들에 샤타를 누른다. 동행자들이 “그 사진을 언제 다 보는가?”고 투성이 따른다. 
 
그런데 이번 길에서 진달래에 대한 재일조선족들의 애착에 감명이 깊다.
 
하긴 우리 선조들은 민족의 꽃으로 진달래, 개나리를 필두로 봉선화, 해당화, 두견화, 모란꽃을 순으로 하였다니 말이다. 성현들은 진달래꽃은 《사랑의 즐거움, 신념, 청렴, 절제》의 뜻을 담았다고 풀이했다. 
 
그래서 진달래를 연변의 주화로 선정했는지…
 
재일조선족 가운데 진달래의 대표적수호자는 그래도“진달래음식점”의 신혜영, 리태권 부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혜영사장의 남편 리태권은 해마다 진달래꽃철이면 고향인 룡정의 진달래꽃을 비행기로 날라다가 주변 조선족사회에 공급한다니 말이다. 
 
“비행기로 몇상자씩 부쳐오는데 매번 운반비용만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일본서 고향의 진달래를 볼 때마다 감정이 부품니다!”
 
진달래꽃병 사진을 보이면서 말하는 리태권의 고향애는 실로 감동적이다.
 
문제는 꽃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모두가 꽃을 가꾸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아름답고 흙을 만지는 사람들의 손길처럼 소박하고 건강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재일조선족사회의 두개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진달래》와 《쉼터》라 하겠다. 이는 또 재일조선족류학생들의 명함장이기도 하다.
 
현재 《쉼터》회원이 12만명 가량 된다. 《쉼터》를 통해 1000여명이 결혼했고 수천명이 취직했다. 《쉼터》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과 손잡고 일본에서 《우리노래 대잔치》를 조직하여 1000명 가량의 조선족들이 모인적도 있다.
 
김정남사장의 소개에 모두 나서서 말동무를 한다. 
 
“일본에서 진달래를 모른다는것은 쉼터를 모른다는것이고 쉼터를 모른다는것은 진달래를 모르는것이다”, 유사시에 《쉼터》는 조해석(調解席)이요, 평일에는 쉼터의 한마당이다.”, “<쉼터>사이트는 재일조선족대표사이트이다. 쉼터는 과거 재일조선족친목단체인 <천지협회>와 손잡고 <천지장학회>를 설립하고 <중국조선족소년보사>에 수년간 <천지장학금>을 보냈다. 그리고 <길림신문>에서 벌인 <대학생윤영걸이를 살리자>는 행사에 동참하여 성금 20만엔을 모금하여 김정남사장이 직접 연길에 가서 윤영걸에게 주기도 했다, “
 
“쉼터는 일본, 중국, 한국의 조선족들이 즐겨찾는 정보마당, 교류마당, 화합마당으로 세계 조선족들의 명실공한 <쉼터마당>이다.” 
 
“우수한 분들이 우리 가게에 모여서 서로 교류하는것을 보고 식당을 잘 꾸렸다는 생각으로 뿌듯합니다.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를 지켜가며 힘이 자랄때까지 열심히 잘 꾸리렵니다.” 신혜영사장의 감사의 말이다.
 
신혜영사장과의 대화에서 동경에서 《진달래》가게를 경영하면서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일본인 단골손님도 많고 조선족음식점의 브랜드로 일본에서 자리잡게 되였다. 한국음식점이 즐비한 이 지역에 《진달래뿌리》가 깊숙이 박힐때까지 신혜영이 겪어온 고생과 흘린 땀이 얼마나 많았을가. 
 
만남의 자리에서 한승호가 국적문제, 자녀교육 등을 화제로 말문을 열자 화제는 조선민족의 기본에로 모아졌다.
 
재일조선족들의 변화

《진달래모임》의 한자리
 
첫째, 우리는 고용주로 되였다 
 
과거의 류학생아르바이트에서 오늘의 고용주로 변했다. 과거에는 한국인들이 조선족을 고용했는데 지금은 사원모집광고를 내면 한국인이 많이 찾아온다. 조선족들은 그들과 면접할 때 “중국말을 아십니까?”를 묻고난후 채용한다. 
 
둘째, 우리들의 고객이 변했다
 
재일조선족들이 꾸리는 회사는 보다 안정된 상황이다. 여기에는 사장들이 시장조사를 잘 하기에 《메뉴》가 많아져 그만큼 고객들이 늘어난다.
 
셋째, 조선족술군이 줄어들고 조선족싸움군들도 따라서 적어졌다.
 
넷째, 위치가 변했다. 과거의 아르바이트류학생들이 지금은 사장, 직장인, 대학교 강사, 교수로 주류사회에 진입했는바 조선족들의 위치가 변하였다. 일본 주요 언론에서까지 조선족에 관련해 대서특필하였다. 그리고 지난날에는 고향의 손길을 기대했는데 지금은 고향에 투자하고 사천대지진 등 《사랑으로 가는 길》에 기부하는 등 고향에 사랑의 손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변하지 않은것이 있다면?
 
기본적인 면에서 변함이 없고 음식문화, 술문화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 
 
기본적이란것은 민족감정, 미풍량속, 언어례절, 행복관 등을 말한다.
 
일본에서 살면서 조선족문화를 더 배우고있다. 돈만이 행복이 아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우러러나오는 일을 한다. 일본에서 사는 모두가 잘 살고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자는것이 모두의 바램이다. 
 
이밖에 때때로 맞는 불행과 상처라면 건강과 사회적지위, 가족의 결손이다.
 
우리의 문제점은?
 
지금 조선족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을 하려 하지 않는것이 문제라고 본다. 부모들이 한국에서 보내주는 돈에만 매달려 사는 애들이 적지 않게 있다. 우리 세대는 일자리 찾기가 제일 큰 문제로 되였는데 엔 환률이 떨어졌다고 몇년 일하다가 돌아가기도 한다..
 
조선족 2, 3세들이 자기는 일본인이라며 중국의 흠집만 잡는 애들이 있다. 
 
후세들이 자기만을 알고 기본적인 소통감정이 부족하다. 중국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워줬는데도 일본에 온 후에는 지어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전화를 해라 해도 안 한다.
 
부모와 아이들과의 소통이 적다보니 아이들은 부모사랑을 모르며 지어 거짓말까지 한다. 친구들과 싸울 때면 자신감을 잃는다. 
 
일부 가정에서 일어를 공동어로 하기에 애들은 조선어에 대한 개념이 없다. 김철은 가장 큰 고민이 가정교육이란다. 2세교육에서 어느 학교를 선택할지 고민하다가 일본교육은 집단정신은 있는데 인정이 야박하고 존로애유가 차하여 아이를 한국에 보냈다 한다. 
 
만남의 자리가 끝날 무렵 한승호는 소책을 배포하며 부언한다. .
 
“최근에 우리는 청화대학, 동경대학 졸업생들인 6명 조선족강사를 무어 <청류학당(淸流學堂)>을 설립할 생각입니다”고 했다.
 
당 학당은 일본서 처음으로 조직된 중국 대륙과 대만의 재일류학생을 상대로 한 리과학당으로서 중국 대륙, 대만, 일본에서 활약하는 인재를 양성하려는데 취지를 두었다. 재일조선족들의 또 하나의 자랑의 씨앗이라 본다. 
 
필자가 “이 자리에 앉은 모든 분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까?”고 묻자 약속이나 한듯이 “행복하지요!”로 합답을 했다.
 
이들의 행복은 우연히 찾아온 행복이 아닌, 바다건너 《선진국》에서 정신력과 육체적으로 행복을 가꾸는 당당한 행복의 주인들이며 섬나라에 자리 잡은 《진달래뿌리》로서 열정을 내뿜는 우리 민족의 자랑찬 원예사들이라 하겠다. / 오기활

동경거리에 걸린 조선족간판.


《진달래》음식점의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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