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77개 항일렬사기념비 수건한 퇴직로당원 김춘섭: 기념비는 령혼이 있어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8월25일 08시11분    조회:660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춘섭
 

인민넷 종합보도: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에서 김춘섭의 이름을 말하면 사람들은 기념비를 련상하는 외에 엄지손가락도 함께 내민다. 10년 동안 60여세의 이 퇴직로당원은 여러곳을 돌아니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77개 항일렬사기념비를 수건하였다.

왕청현 명월저수지를 따라 동쪽으로 올라가면 하나하나의 묘비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깊은 산속에 있는것이 바로 중국공산당 동만특위소재지-소왕청항일근거지이다. 항일전쟁시기, 연변지역의 제일 큰 전장으로서 왕청현 경내에는 105차례의 전투가 일어났다. 김춘섭은 현인대 상무위원 부주임에서 퇴직한후 현의 후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을 맡았다. 그는 많은 아이들이 력사를 모르것을 발견하였다.

"항일렬사들은 우리의 곁에 있으나 많은 아이들을 모르고있다"고 김춘섭은 말했다. 이중에는 적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 중공왕청현위 서기 김상화, 자살로 평화의 소원을 표달하고 유격대에 대량의 탄알을 남겨준 일본공산당원 스케오 등이 있지만 아이들을 전혀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의 마음속에 비수가 꽂히기라도 한듯 마음 아팠다.

어느 한번, 고향으로 내려가던중 김춘섭은 중공동만지역특별위원회 서기 동장영의 묘에 들렸다. 이 작은 무덤은 20, 30개의 돌로 둘러싸여있었고 잡초로 뒤덮여있었다. 그는 그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동장영은 안휘에서 이 먼곳 동북까지 와서 항일을 하면서 27세에 희생되였지만 변변한 기념비마저 없었다." 그때부터 김춘섭은 현지에서 희생된 항일 렬사의 묘비를 수건하려고 결심했다.

왕청현은 국가에서 중점적으로 보조하는 빈곤현이기에 기념비를 수건하려면 가장 힘든것이 자금부족이였다. 김춘섭은 매 단위, 매 기업에 직접 가서 자금을 모았다. 매번 모금하러 가서 가장 많이 한 말이 바로 "이 땅에서 희생된 600여명의 렬사들을 대신해 감사드린다"였다.

자금을 모으기 힘들었기에 돈을 쓸 때는 각별히 신중할수 밖에 없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김춘섭은 직접 기념비를 설계하고 시공했다. 김춘섭은 제한된 자금으로 더 많은 기념비를 건축하기 위해 현에서 몇백킬로메터 떨어진 채석장에만100여차례 다녀왔다. 그는 당날 갔다가 당날로 돌아왔으며 배가 고프면 차에서 물을 마시고 빵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렬사묘비의 부지는 당시 렬사가 희생되였거나 혹은 전투했던 곳으로 선정했는데 대부분이 산골짜기에 있어 차도 들어갈수 없었다. 로동자를 찾으면 돈도 많이 들어 김춘섭과 후대관심사업위원회 몇몇 로동지들은 직접 팔을 걷고 나서서 미장이 일을 했다. 밀림의 풀숲에서 그는 야생진드기한테 물리기도 하고 말벌에게 쏘이기도 했다.

시공의 편리를 위해 그는 원래의 로부하에게서 지게차 한대를 빌렸는데 그것으로 일도 하고 산을 오가는 교통수단으로도 사용하여 차비를 많이 절약하였다. 하지만 지게차의 조종실에는 두사람밖에 탑승하지 못하였기에 김춘섭은 두말 하지 않고 담요를 걸치고 버킷에 앉았다. 그때 산의 온도는 령하 20, 30섭씨도에 달했다.

2010년 김춘섭은C형 간염에 걸려 정기적으로 인터페론을 맞아야 했는데 그 과정은 아주 고통스러웠다. 그때가 바로 동장영렬사릉원 건설의 가장 중요한 시기였고 시공날자를 지체해서는 안되였기에 김춘섭은 저녁에 주사를 맞고 아침에는 평소대로 현장에 가서 시공을 조직했다. 식욕이 감퇴되고 온 몸이 가렵고 머리가 한웅큼씩 빠졌다... 13개월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흘렀지만 시공에는 하루도 영향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당신은 살고싶지 않은가?"라고도 물어봤더니 김춘섭은 "동장영은 27세에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 렬사들과 비하면 이런 병이 무슨 대수인가!" 라고 대답했다. 2011년 6월, 동장영렬사릉원이 준공되였다. 이때 김춘섭의 체중은 72kg에서 60kg으로 내려갔다.

동장영렬사릉원의 면적은 270평방메터이다. 김춘섭은 이 면적은 동장영이 27세의 젊은 생명을 항일투쟁과 민족해방의 신성한 사업에 바쳤음을 상징한다고 했다. "동장영렬사생평비"와 "중공동만특위소개비"의 길이는 321센치메터인데 이는 동장영 렬사가 1934년 3월 21일에 희생되였음을 상징한다.

몇년동안 김춘섭이 가장 많이 간 곳은 바로 렬사릉원이다. 매번 기념비앞에 설 때마다 그는 손으로 만져보면서 "기념비는 차거운 돌이 아니라 령혼이 있다. 기념비에는 중화민족의 강인하고 불굴의 혁명정신과 위대한 추구가 응집되여있다"고 말했다.

10년간 김춘섭은 더 많은 기념비를 선렬들이 당시 피로 물들인 토지에 세웠을뿐만아니라 더우기는 력사에 대한 존중과 렬사에 대한 경의를 사람들의 가슴속에 새겨넣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재외동포 출신 첫 임원…"관심·애정·사랑을 보여줘야" "재외동포 대변하고, 올인할 수 있는 상황 만들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김영근(59)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의 이름 앞에는 '재외동포 출신'이라는 이력이 붙는다. 경기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가기...
  • 2015-12-05
  • “음악외 다른 진로를 생각해본적 없어요!” 연변군중예술관에서 독창가수, 사회자, 민요지도일군으로 활약하고있는 전예정씨, 1일 그녀를 만났다. 어려서부터 꿈이 가수였던 그녀는 지금까지 한번도 다른 진로를 생각해본적이 없다. 비록 자신의 “직업”(?)이 힘들 때도 있지만 “힘들면 그 고비...
  • 2015-12-04
  • 목포 출신 어머니가 평양으로 시집을 갔다. 아버지는 남다른 주먹을 휘둘렸다고 한다. 그 부모님이 헤리룽장성에서 중국과 함께 항일투쟁을 했고 본인은 그곳에서 태어났다. 자라나면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그는 공부만이 살 길이라 독려한 어머님 덕에 지금은 조선족 계열중 가장 성공한 CEO로 거듭나고 있...
  • 2015-12-03
  • 박건일교수의 "내가 알고있는 한락연" 좌담회 북경에서 개최    (흑룡강신문=하얼빈) 11월 27일 중국사회과학원 박건일교수의 "내가 알고있는 한락연" 좌담회가 북경에서 개최되였다. 민족출판사 사장 우빈희, 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 리춘일, 룡정한락연연구회 박호만 회장, 연변대학 북경학우회독서회, 북경애심녀성...
  • 2015-12-02
  • 국내 70%의 영화제작사, 발행사가 운집해있는 북경, 아시아에서 가장 큰 영화제작기지인 북경에는 해마다 수많은 영화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든다. 그중 박준희감독(61세)은 흔하지 않은 조선족이다. 지난 10월말, 북경 향산에서 야외촬영지 사전답사를 끝마치고 돌아온 박준희감독을 저녁 늦게 만날수 있었다. 반갑게 손을 ...
  • 2015-12-02
  • 사무실에서 취재를 받고 있는 박규주 총경리 칭다오부원전자 박규주 총경리 일가견   (흑룡강신문=하얼빈) 장학규 특약기자=칭다오부원전자유한공사 박규주 총경리는 일견에도 성격이 시원시원해보였다. 둥글넙죽한 얼굴에는 지성미가 다분히 풍겼으며 스스럼 없는 어조에는 항상 유머감각이 슴배어있었다.   칭다오 방...
  • 2015-11-27
  •   “올해는 왕년에 비해 여러번 고향을 찾게 되네요. 얼마전 훈춘 방천에서도 공연이 있었구요. 나이가 들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지는듯 해요. 어디에 가든지 고향만큼 좋은 곳은 없다는 생각이 더욱 들구요.” 중국조선족교향음악회 참가차 고향땅을 다시 밟게 된 김미아씨, 음악회 참가는 마...
  • 2015-11-27
  •   메조소프라노 최경해(녀)는 중국조선족교향음악회에서 가장 나어린 배우이다. 그녀는 지난해 중앙민족대학 음악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중앙가극원에 합격되였다. 이번 음악회는 스승인 중앙민족대학 음악학원의 림정교수와 중앙가극원 공연부 리영태주임의 추천으로 참가하게 되였다. 음악회에서 최경해는 “까...
  • 2015-11-27
  • 젊은 나이에는 미국에서 장애인교육학전공의 가난한 류학생으로 불리웠고 그후에는 고아 5명을 입양하여 자식을 마음으로 낳은 박사라 불리웠다. 그리고 또 한때에는 대전 한성대학교를 설립한 초대총장으...
  • 2015-11-26
  • 지난 11월 초, 중국 조선족 처음으로 한국 서울특별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된 “사단법인 GK희망공동체” 허을진 대표를연길에서 만났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허을진이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된데는 조선족을 위한 그의 사심없는 로고와 한국사회에서의 역할이 뚜렷했기때문이였다. 허을진은 안도...
  • 2015-11-26
‹처음  이전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 8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