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경종 러시아·CIS 총연 회장, ‘포스트 임기’ 언급한 배경과 또 다른 로드맵
▲ 이경종 회장이 본지를 방문,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허겸 기자) |
“동포사업은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임기를 내려놓더라도 지속해나갈 계획입니다.”
임기 4년차에 접어든 이경종(56) 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 한인회 총연합회 회장은 “고려인과 한인의 간극을 좁히는 사업을 일생 동안 지속해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사업의 연속성에 역점을 두고 본지와의 내방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 회장이 던진 화두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구(舊) 소련권은 이미 신-구정주자 간의 동질성 회복과 연대가 오랜 과제로 인식돼 왔다. 러시아·CIS는 개방을 전후한 이주 시점에 따라 디아스포라 세대의 성격이 크게 구분된다. 개방 이전은 고려인, 이후는 한인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을 통틀어 ‘카레이스키’라는 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선 이주 세대와 후 이주 세대 간에는 적지 않은 이질감이 겉으로 드러나고 있다. 문화 사회적 차이에서 나아가 국가에 대한 인식에서도 다른 가치관이 노정된다. 가까스로 민족적 정체성을 공유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융합하는 교류의 장은 시쳇말로 일회성 행사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이 회장은 “단발적인 행사 위주의 만남은 지속성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가 사안의 심각성이 나날이 더해진다고 보는 근거다. 양측 간 융합이 한인 연대의 시발점이라 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어떤 방법이 있겠는지 묻자, 이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제스처로 여겨졌다. 곧이어 턱을 약간 끌어당긴 채로 “간극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대한 모범답안은 없다”고 했다. 뜻밖이었지만 솔직한 뉘앙스가 풍겨졌다. ‘이게 문제인 것은 알지만 지금 내게서 정답이 나오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동포사회의 한인회장은 한국의 자치단체장과 흡사한 면이 많다. 역사가 일천한 한인회는 여전히 내정자를 추대하거나, 위원 가운데 호선하지만 대체로 많은 지역에서 한인회장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따라서 선출직 의원이면서 동시에 정무직 기관장의 특성을 지닌다. 이경종 회장은 한인회 연합단체의 수장으로 선출됐기 때문에 굳이 비유하자면 지위가 한 단계 격상된 광역자치단체장 정도로 볼 수 있다.
외견상으로 이 회장에게는 무게감 있는 직위가 따라다닌다. 10개국 23개 단체를 총괄하는 총연합회 회장에다 전 세계 한인회장들의 결속력이 극대화되는 세계한인회장대회의 공동 의장이다. 전 세계 한인회의 대소사를 빠짐없이 챙겨야 하는 의무감이 부과될 법한 자리다.
그에게 ‘한인 화합의 로드맵’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무리가 아닐 수도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해 이경종 회장은 “모범답안이 없다”고 답한 것이다. 기자가 차라리 솔직했다고 여긴 까닭도 이랬다.
다소간의 정적이 흐른 뒤 이 회장은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는 모범답안이 없다고 밝힌 이유를 제시했다. 그리고 ‘포스트 임기’와의 관련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처음부터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총연 회장을 그만두더라도 (고려인-한인 간의) 동질성 회복 사업을 변함없이 이어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죠.”
이 회장은 험로가 예상된다고 했다. 쉽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고 거듭 못 박았다. 그는 그러나 “앞으로 10, 20년 저와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유대감 복원에 초점을 맞추고 함께 걸어갈 것”이라고 재차 확인했다. 돕는 이들이 없으면 없는 대로 가겠다는 식이다. 이른바 ‘마이 웨이’도 불사하겠다는 말이다.
이날 이 회장은 역설적이게도 현직 회장으로서 ‘포스트 임기’를 언급하며 또 다른 취임 일성을 남긴 셈이 됐다. 한 가지 달라 보이는 점이라면, 일생이라는 단어였다. ‘여생을 바치겠다’는 말과는 어감이 달랐다.
이 회장은 이 일 말고도 많은 일들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다고 했다. 그 일들을 모두 다 하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심지어 “어떤 일을 하는데 직위가 필요하면, 그 직위를 쟁취해서라도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고려인과 한인 간 융화, 디아스포라 운동 곧 ‘한인 연대’의 시작”
누군가 앞뒤 단락을 자르고 이 얘기만 듣게 된다면 이 회장을 대단한 정치적 야심가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속내는 달라 보였다. 사업의 연속성을 강조하는데 주안점을 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가 연속성이라는 테마를 새삼 화두 삼은 속사정은 무엇일까? 이 회장은 신중하게 말했다.
“제가 로컬 한인회를 (한인회장으로서) 맡았을 때 고려인 300명 정도를 모신 적이 있어요.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야 했지만 저의 철학과 맞아 떨어지는 사업이었죠. 그런데 임원들 사이에서 ‘우리끼리 단결하기도 벅찬데 꼭 해야만 하나’라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기도 했었죠.”
이경종 회장은 ‘한인 연대(solidarity)’에 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고 원인을 지적했다. 그는 한인 디아스포라 운동의 모토를 한인 연대로 보고 있다. 그는 “요즘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네트워킹 한다는 뜻”이라며 “교류의 폭을 넓히고 접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원론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고려인과 한인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한인회가) 만듭니다. 통상 화합의 장을 마련한다고 표현들 하죠. 겉보기에 그럴듯해 보이고 멋있어 보이기까지 하지만 실질은 행사하고 끝나는 속성이 강하다 보니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가 일회성 행사가 전 세계 한인 네트워킹에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일회성’이라는 힐난은, 주로 한인회 움직임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시각에서 나오는 것이 보통의 경우다. 하지만 전 세계 한인단체의 수장으로서 이런 언급을 한 것은 그 자체로 화젯거리가 될 만 하다.
그러곤 정부 사업으로 화제를 돌렸다.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며, 도중에 맥이 끊기고 마는 사업적 속성은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가 하면 지속적일 수 없습니다. 임기직, 선출직 공무원은 할 수 없는 일이죠. 중요한 대북정책도 여야가 틀을 만들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회장은 정부 정책의 성과를 일정 부분 인정했다. 그러나 그 깊이에 대해서는 적지 않게 우려해왔음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그는 “한호 수교 25주년, 사반세기 동안 노태우 정권부터 시작했던 정부의 북방정책의 결과가 상당 부분 긍정적인 성과를 거뒀다”면서도 “실제적인 면에서 본다면 외부에서 틀을 깨고 들어가 관계가 개선 됐을 뿐 실질적인 삶 속에 들어가는 부분은 깊이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정부가 지원하는 한글학교 또는 교육원 프로그램을 빗대어 거론하기도 했다.
“교육원 수강생들을 보면 고려인 자제들이 더 많이 왔으면 좋겠는데 러시아 현지인들이 더 많이 옵니다. 의외로 그런 양상을 띠게 되죠.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익히는 것이 분명 좋은 측면이긴 합니다만 본래 의도했던 것과 많이 다른 결과가 나오는 현상은 한계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업가이든 맥이 끊기는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것이 영리 목적의 사업이든, 비영리 목적에서 비롯된 자선사업이든, 일관된 흐름을 타며 분위기를 다져가는 일에 주최 측은 대체로 흡족함을 느끼게 된다.
이 회장의 발언만 놓고 본다면, 민간은 깊이가 얕고 요식행위에 머물러 있으며, 임기직 공직자에 의존하는 정부는 연속성이 없고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것. 사정이 이쯤되다 보니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구상하고 있는 것인가’ 자연스럽게 질문이 뒤따랐다.
그는 ‘월드와이드 한인네트워크’라고 답했다. 곧이어 ‘한인 커뮤니티의 전략 거점’이 필요하다고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민간계층이 스스로 깨어야 합니다.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때로는 지지고 볶더라도 10년, 20년 눌러앉아 살아가는 이들이 스스로 해법을 찾고 장기적으로는 그 노하우들을 월드와이드로 확산시켜야 합니다.”
이야기가 봇물 터진 듯 급물살을 탔다.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그의 오랜 생각을 드러냈다.
그는 향후 10년 간 러시아·CIS 지역의 핫 키워드는 ‘문화’와 ‘경제’라고 했다.
이경종 회장은 먼저 CIS 고려인 지역의 색다른 특성을 언급했다. 그는 “고려인 지역은 공산당 서기장이 실각하거나 죽기 전까지 계속 임기를 맡는 조직 문화가 있다”며 “우리 만큼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각자의 관심 영역을 서로 나누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 프로파겐다가 녹아드는데 음악, 스포츠 같은 문화적 틀을 이용한다”고 밝히고 “동포사회도 이런 문화적 현상들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며 문화적 도구를 화합에 적극 활용할 뜻을 전했다.
이 회장은 경제 측면에 좀 더 비중을 두고 말했다. 그는 “30, 40대의 차세대 그룹은 이제 막 결혼을 하고 직장을 갖고 자녀들이 한 둘 있고,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시기”라고 봤다.
이어 “이들에게 일거리가 있고 돈 벌 거리가 있다면 공통의 관심을 이끌 수 있다”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틀이나 장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곧 한인 연대”라고 설명했다.
이경종 회장은 2년 임기의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 옥타) 차세대위원장을 지난 1월까지 겸임했다.
그는 “임원으로서 꾸준히 활동해온 옥타는 재외 한인들의 경제활동의 틀을 갖고 있는 유일한 집단”이라며 “이것을 좀 더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지역적 니즈에 연계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옥타 멤버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비전이라고 언급한 뒤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력은 인적, 재정적 동원 능력 합친 파워…돈 만으론 안 돼”
요약하자면 30, 40대 젊은 층을 문화, 경제라는 연계 고리를 만들어 개방 이전과 이후의 젊은 세대들이 서로 엮이고 연결될 수 있도록 한다는 복안이다. 그는 “이것이 장기적인 틀이고, 단기적으로는 공연, 역사탐방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신-구정주 세대 간의 간극을 좁혀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총연이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자 총연 회장에서 물러나더라도,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연속적으로 이어나가겠다는 사업의 요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포괄적으로 같이 할 수 있는 민간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목에서 리더십에 관한 이경종 회장의 철학이 나왔다.
우선 그는 동포사회에서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을 밀고 지지하는 분위기가 안 되는 사례를 문제로 지적했다. “밀 사람 밀고 다음 내 순서 기다리면 되는데 그게 안 됩니다. 다들 원론적인 얘기라고 하지만 이건 결국 실력의 문제이죠.”
이 회장은 “지극히 주관적인 사견이지만, 돈이 많은 게 실력이 아니고 말을 잘해 영향력이 있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면서 “펀딩할 수 있는 인적, 재정적 능력, 관계 자원들을 동원하고 파워를 형성할 수 있는 영향력이 곧 실력이며 이게 모여야 리더십이 되는 것”이라고 나름 규정했다.
미국 뉴헤이븐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그는 재미 시절 겪은 일들과 더불어 총연 및 옥타 행사 차 최근 미국을 다녀왔을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미주 동포사회는 이미 한 명을 밀고 다음 차례를 기다릴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컨센서스가 안 되는 것이죠.”
그는 미주 사회가 머지 않아 재편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 회장은 “한인 커뮤니티를 벗어나 소위 말해 주류사회가 그렇게 해왔으니까 배우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가 가진 자원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포괄적인 자원을 인정받으려면 공개적으로 검증이 필요합니다.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가 미주사회에 있으니까 한인사회도 점점 그렇게 바뀌지 않겠는가 보는 것이죠.”
다시 전략 거점으로 얘기가 돌아왔다. 미주 사회가 프로세스를 중시하며 한 단계씩 향상되는 것은 모든 재외 동포사회가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며, 그런 성장 잠재력을 더욱 북돋우는데 한인 커뮤니티의 전략 거점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회장이 민간 리더십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경종 회장은 “정부가 분석하고 접근해도 좋지만 그분들이 그렇게 못하니까 민간 차원에서 CIS에 전략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역 거점을 몇 군데 정하고 사업과 문화를 집중 육성하면서 한 거점을 중심으로 점점 확대해나가자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가 동포사업을 장기 프로젝트로 여기고 이임 후에도 주력할 뜻을 밝힌 이유는 이렇게 압축될 수 있었다.
러시아·CIS는 150년이 넘는 동포 이주의 역사를 갖고 있다. 연혁이 장구한 만큼 단절과 괴리감이 상상을 초월한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간극을 좁힐 방법론을 연구하는 것과 동시에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한 역사적 배경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이 회장은 강조했다.
그는 특히 러시아·CIS의 100년과 중국 조선족(중국동포)의 100년을 직접 비교하며 오늘의 판이한 결과가 나오게 된 배경을 집중 설명했다.
러시아·CIS는 사할린과 대륙의 상황이 크게 달랐다. 스탈린 정권에 의해 1937년 강제 이주한 동포들은 언어와 언어로부터 연결되는 문화를 잃지 않고 살아갔다. 사할린 출신들은 대부분 조선어를 한다.
반면 대륙, 즉 중앙아시아에 사는 동포들은 언어 유지가 어려웠다. 소비에트 정권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인들은 유동성이 큰 집단으로 분류됐다. 진주하는 군대의 성격에 따라 깃발을 달리 내걸 수 있는 계층으로 정권이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소비에트는 리더십을 가질 만한 한인들은 투옥, 유배, 숙청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거하거나 분산시켰다.
이경종 회장은 “개인적으로 분석해 보면 당시 좌든, 우든 조직적으로 무장항쟁을 해오던 한인들이 관동군에게 밀려들어온 뒤 소비에트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며 “그분들이 문화 정체성을 지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지키고 싶어도 ‘소비에트화 전략’ 때문에 할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인들 가운데 블라디보스톡을 중심으로 살아온 20만 명 정도가 가장 큰 피해에 노출됐다. 이 회장은 “국권회복을 위해 애쓰던 분들인데 지도자들이 숙청 되다 보니 후대에 정체성이 전승이 되지 않았다”며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신구 간의 갈등과 괴리는 어떤 특정 계층의 무지 또는 의도적인 외면 때문이라기보다는, 역사가 흐르는 대로 휩쓸려가다 보니 그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경종 회장은 “불행하게도 조선족과 러시아·CIS지역의 역사적 차이는 오늘날 한국 정부 및 기업, 민간 차원의 협업 측면에서 전혀 다른 차이를 가져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조선족들이 한국어를 몰랐다면 그렇게 큰 기회(이 회장은 ‘이용했다, 이용당했다’ 다양한 말들이 무성하지만 큰 밑그림으로 본다면, 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 편집자 주 - )를 부여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양쪽 지역에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흐름과 오늘날의 결과를 지켜보면, 과연 한국 정부가 재외국민 더 나아가 재외동포 정책에 있어서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둬야 하는지 상당 부분 시사해준다”고 했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대외정책을 입안하는 당국 또는 정책결정권자들이 놓치거나 깊게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라고 말했다.
“정부 동포정책은 미주, 일본 중심…다른 지역은 사각지대”
이와 함께 이 회장은 정부 정책의 지역적 불균형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이경종 회장은 “한국 정부의 재외동포 정책은 미주와 일본 중심으로 되어 있다”며 “정부 예산의 지역별 비율과 전문가 집단의 수를 보면 다른 지역은 사실상 사각지대에 해당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이 같은 지적은 한글학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예산 지원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12월 재외동포재단이 자체적으로 실시해 올 1월 공개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CIS지역의 한글학교 1곳에 평균 미화 2860달러가 지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건이 비슷한 오지인 중남미의 평균 7671달러, 아프리카.중동의 평균 8731달러에 비해 각각 37%, 33%에 불과한 수준이어서 국가적,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재단 검사역은 “러시아·CIS 지역은 1937년 강제이주를 당했고, 현재는 현지의 민족주의 대두로 인해 제2의 이주 압박을 받고 있어 사회, 경제적 여건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열악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형평에 매우 어긋 난다”는 소견을 밝혔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CIS지역 동포들이 한국어교육 등 모국의 지원이 더 필요한 상황임에도,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한글학교 운영비 가이드라인을 변경하는 등 과감한 ‘맞춤형 지원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날 이 회장의 인터뷰는 사전 기별 없이 진행된 ‘내방 인터뷰’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쟁점 인터뷰의 형태가 됐다. 그는 구체적인 복안을 갖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보따리를 풀어놓지 않았을 뿐이었다. 언론에 털어놓을 말이 많았던 것이다.
특이한 점은 통상 정치인의 속성을 다분히 갖고 있는 한인회장으로서는 언급해서는 안 되거나 금기 시 될 법한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 마치 사업가가 ‘영업 비밀’을 송두리째 쏟아냈다는 비유가 가능할 정도였다. ‘마땅한 화합 방안은 없다’, ‘목표를 위해 직위를 쟁취 하겠다’, ‘한인단체 행사는 일회성이다’ 뿐만 아니라 현직 단체장으로서 일찌감치 ‘포스트 임기’ 구상을 밝힌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이 회장의 말들이 계속 맴돌았다. 더불어 겹치는 잔상이 있었다. 이임 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전직 한인단체장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일부 한인단체장들은 의전 상 VIP 대접을 받다 자리에서 물러난 뒤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며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우울증은 재임 시절 헌신과 봉사보다는 명예와 자리보전에 급급했을수록 더 강하게 찾아온다는 확인되지 않은 말들도 동포사회에서는 실제 나돌고 있다. 여담이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부터라도 한인회장 후보 공약에 ‘포스트 임기’ 사업 구상 정도는 들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사업은 당락과 무관하게 일생을 바치고 싶다”는 파격적인 공약처럼 말이다. 후보자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퇴임 후 정신 건강을 위해서일 수도 있는 일이다.
끝으로 이 회장은 공맹사상의 중용(中庸)을 빗대어 ‘월드와이드 한인네트워크’의 가능성을 내다봤다.
“중용은 힘들고 어려운 부분까지도 감안하고 끌어안아야 하는 개념이죠. 중간, 즉 미디엄만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그건 수학일 뿐 정치도 철학도 아닙니다. 서로 불편한 부분이 있더라도, 싫더라도 서로 모이다 보면 언젠가 강력한 한인 연대가 구축될 날도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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