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개소…"버려지는 이주민 아기, 외면할 수 없어"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자리한 5층짜리 건물.
말끔하게 새 단장을 마친 건물 안에 크고 작은 방들이 자리했다. 엄마와 아기가 함께 지낼 수 있는 모자원과 영아원, 아이들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그룹홈까지 모두 기댈 곳 없는 이주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다.
'이주여성 위기지원센터'라는 이름으로 다음 달 문을 여는 이곳은 '지구촌사랑나눔' 대표인 김해성(53) 목사가 만든 보금자리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이라면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그가 큰 짐을 하나 더 짊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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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이달 중순 문을 열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한파에 일부 설비가 망가지는 통에 개소일이 미뤄져 다음 달 14일 문을 열기로 했다.
김 목사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주여성의 아이들도 모두 귀중한 생명"이라며 "그들이 함부로 버려지지 않도록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돕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주여성 위기지원센터는 1년 전 김 목사가 받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했다.
15살된 조선족 여자아이가 낳은 아이를 맡아줄 수 없겠느냐는 국내 한 미혼모센터의 연락이었다.
한국 국적자가 아니면 도와줄 수 없다는 미혼모센터의 설명에 김 목사가 뒤늦게 나섰지만, 소녀는 아이를 두고 중국으로 떠나버렸고, 아이는 한국인 지인이 데리고 간 뒤였다.
소녀의 사연을 접하며 김 목사는 사각 지대에 놓인 이주여성 임산부들의 현실과 처음으로 마주했다.
해결책으로 먼저 떠올린 것은 이주민 아기를 위한 베이비박스였다.
김 목사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외국인의 아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런 아이를 보살피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버려지는 생명을 살리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반발에 부닥쳤다.
"입양아 모임으로부터 항의 방문을 받았어요. 그 분들이 '버려지는 아이들의 인권을 생각해 봤느냐'고 하더군요. 입양 후 30~40년 뒤 뿌리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을 때 절망감을 생각해 봤느냐며. 그 말을 듣고 보니 엄마가 아이를 버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이주여성 위기지원센터는 상담과 정기검진, 양육지원 등을 제공하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주여성들의 출산과 양육을 돕는다.
원활한 상담을 위해 15개 언어로 통역을 지원하고, 김 목사가 이끄는 이주민 지원단체 지구촌사랑나눔이 운영하는 어린이집, 학교, 쉼터와도 연계해 지속적인 지원을 할 방침이다.
지원 대상에는 정부의 초기 정착 지원 기간(6개월)이 지난 난민 신청자와 난민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일시적으로 국내에 머무는 것을 허가받은 인도적 체류자 등도 포함했다.
김 목사는 "모두가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방치되는 사람들"이라며 "하지만 이들에게도 자기 뿌리를 지키면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아울러 "당장 생존이 절박한 사람들인데 우리 정부는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정부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촉구했다.
김 목사가 내년 이주여성 위기지원센터와 더불어 힘을 쏟는 일은 협동조합 사업이다.
2012년 이주민 협동조합을 발족한 그는 화장실 설치부터 어린이집 운영, 노동문제 상담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지구촌사랑나눔의 사업도 협동조합 방식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주민들이 가난하고 불쌍한 존재로 남아 있지 않도록 하려면 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계속 커가는 아이들에게 무작정 젖을 물릴 수 없는 일이잖아요. 이들이 서로를 도우며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이주민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일을 해 온 그는 이주민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한국인의 따뜻한 시선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인 범죄가 급증한다고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가해자로 오해받지만 실상 대부분은 사회적 약자에요. 피해를 봐도 신고가 힘들고 권리구제 방법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계속 차별을 당하다 보면 튀어오를 수밖에 없고, 결국 공존할 수 없는 단계로 치달아가게 됩니다. 그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들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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