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지요》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4월3일 11시31분    조회:705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연동훈

조선전쟁참전용사 연동훈,전쟁터에서 사망한 전사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

기자에게 참혹했던 조선전쟁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동훈선생(84세)

청명절을 즈음해 조선전쟁터에서 사망한 중국지원군들의 유해가 최근 조국에 돌아오면서 국제평화의 메세지가 따뜻한 봄기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있다.

4월 1일 기자는 지난 세기 50년대 참혹한 조선전쟁터의 생존자로 남아 지금까지 전쟁에 대한 기억을 어제일처럼 또렷이 기억하고있는 한 로영웅을 취재했다.

로영웅의 성함은 연동훈, 올해 84세였다. 연변농학원에서 리직휴양하고 현재 부청(국)급대우를 향수받으면서 연길에서 만년을 보내고있는 연동훈선생은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전쟁영웅이였다.

《전쟁터에서 사망한 전사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잇지 못하겠다》면서 연동훈선생은 조선전쟁터의 가렬처절함을 이야기했다.

연길현 광석촌태생이였던 선생은 광복후 조선의 김일성종합대학 원산농업대학에 가서 류학공부하고있었는데 그 와중에 조선전쟁이 발발했다. 열아홉 피끓는 젊은이였던 연선생은 결연히 조선전쟁에 탄원해나섰고 평양제1군관학교를 걸쳐 조선전쟁 최전방에서 조선인민군 대대장으로 무수한 전투를 겪었다.

지금도 연동훈선생의 옆구리에는 손바닥크기만큼 큰 흉터가 남아있다. 전쟁중 입었던 상처의 흔적이다. 그 상처를 떠올리면 가장 치렬했던 팔공산전투가 떠오른다.

팔공산은 한국 대구시 동북방향 약 20킬로메터 거리에 있는데 전쟁당시에는 적아쌍방이 서로 다투는 주요거점이였다. 그 당시 조선전쟁의 전반 국세는 적아간의 군사적력량대비가 현저했다.

연선생의 기억으로는 1950년 7월이였다. 그날 해가 지고 어두워질무렵 전투가 시작되였는데 대대장인 연동훈선생의 지휘하에 대대지휘소에서 전화지킬 한사람만 남기고 위생원, 화식원 할것없이 몽땅 전투에 투입시켰다. 탄알과 수류탄마저 거의 떨어진 렬악한 전투환경에서 육박전까지 벌어졌는데 전투도중 연선생은 적탄을 맞고 쓰러진채 의식을 잃었다. 오른쪽 어깨밑에 부상을 입었는데 다행히 심장은 다치지 않았다.

전사들의 말에 의하면 적들은 날이 너무 어두워서였던지 육박전이 겁나서였는지 한창 싸우다가 물러 갔다는것이다. 만약 그 전투가 5분만 더 지속되였다하더라도 전사들은 모두 희생되였을거라고 한다. 정원이 1000여명이나 되던 연선생의 대대인원이 한두달 전쟁을 겪는 짧은 시간동안 거지반 희생되고 몇사람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때 전투를 회억하느라면 부하전사들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눈물이 앞을 가리운다면서 80고령의 연선생은 눈굽을 찍었다.

상처를 입고 그날 저녁으로 안동에 있는 야전병원에 가서 수술치료를 받은 연동훈선생은 그곳에서도 안동시내를 재더미로 만든 적군의 폭격에 상처입은 몸으로 부득불 후방으로 퇴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선전쟁당시 3.8선을 넘어서 제4차, 제5차전역 등 많은 참혹한 전역들이 펼쳐졌는데 이때문에 상당부분 희생자들이 한국경내에서 사망했다.

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 항미원조전쟁관에서 집계한 조선전쟁가운데서의 중국지원군 사망자수는 18만 3108명이다. 한국의 《중앙일보》는 해외에 매장된 중국군인유해가 11만 5217구인데 그중 11만 4000여구는 조선반도에 분산되여 매장되여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인민지원군사령부 전후통보에 따르면 조선전쟁의 제4차전역에서 중국지원군은 적 7만 8000명을 소멸했고 지원군의 상망자수는 4만 2000명에 달한다고 기록했다. 제5차전역에서는 적군의 상망자가 8만 2000명, 지원군 상망자수는 7만 5000명이라고 기록했다.

수자에서 보여주다싶이 조선전쟁가운데서 적아 쌍방간 전투는 매우 치렬했으며 상망자수도 대단히 많았다.

젊은 시절 참혹한 전쟁터에서 목숨걸고 피흘리면서 싸워왔으나 그 희생의 대가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연동훈선생은 한개 력사는 그 당시의 력사로 인식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세월이 흘러도 잊을수없는 전쟁의 참혹한 상처는 선생이 팔공산전투에서 입은 사라지지않은 상처의 흔적처럼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맘속깊이 고통으로 새겨져있었다.

연동훈선생이 팔공산전투에서 입은 관통상 상처의 흔적

리직휴양후 연동훈선생은 인생의 황혼기에 한국행을 여러번 했지만,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라도 전쟁의 기억이 남아있는 팔공산과 그리고 한국내 전적지들을 돌아볼수있었지만 차마 거기로 갈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너무나도 젊고 좋은 나이에 전쟁터에서 생명을 잃고 타향에 묻혀 이름도 남기지 못한 전우들을 생각하면 그들의 대대장으로서 그들을 지켜주지못한 자책감과 미안감에 그들의 무주고혼들을 마주할 면목이 없었다는 량심적인 군인의 자책감에서였다.

부상입은후 자기의 오토바이를 내여 연동훈선생을 안동병원에 보내며 눈물을 글썽이던 련대장과의 작별의 모습도 아직까지 생생하고 안동야전병원에서 사경에 처한 그의 상처를 수술하고 처치해주던 군의무일군들도 눈앞에 선하다. 그들은 모두 전쟁에서 참혹하게 희생되였던것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과거는 물론 지금도 미래에도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이고 만들어가야하는 세상이지요》연동훈선생의 진솔한 고백이다.

《한국에서도 중국지원군유해를 적극 발굴해서 보내면서 화해와 소통의 좋은 일을 하고있고 적극적인 평화의 노력을 하고있다. 과거 원쑤처럼 서로 싸우던 사이라고 해도 서로 화해와 협력 그리고 상생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또한 나라나 민족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바라고 또 환영하는 세상이 아니겠느냐》면서 로영웅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기술원과 함께 제품품질을 검사하고 있는 박권률 씨(왼쪽).   민족음식문화를 선도해가는 조선족청년기업가 – 박권률 씨‏ (흑룡강신문=연길) 윤완주 특약기자= 중국조선족민속문화도시로 소문난 룡정시에서 서북쪽으로 약 25킬로미터 떨어져있는 로투구진 렴명촌에 가게 되면 부지면적이 1만 7000평방미터, 공...
  • 2013-05-14
  • 대형계렬기획보도-《중국조선족 백년백인》(16)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며 우수한 민족사업 지도자 문정일은 1914년 음력 3월 20일에 조선 함경도 회령군에서 태여났다. 문정일의 원명은 리운룡이다. 문정일은 일찍 1940년 1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선후로 조선의용군 제2지대 분대장, 중공연길현위 부서기, 현장...
  • 2013-05-14
  •     “의학원을 졸업하고 연길시병원정보과에 취직하였던 남편은 자투리시간을 모아 컴퓨터를 자습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120의료응급쎈터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였습니다. 당시 남편이 개발한 프로그램은 의료분야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는데 이를 계기로 2003년에 병원을 사직하고 컴퓨터프로...
  • 2013-05-14
  • -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리미선교장의 이야기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리미선교장 《학생들과 함께 있고 학생들이 기뻐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리미선교장, 1986년부터 교육사업에 종사한 이래 선후로 조선어문교원, 학급담임, 교무주임, 부교장,교장직을 맡아오면서 27년간 시종 강...
  • 2013-05-13
  • 주덕해(1911-1972), 그의 원명은 오기섭(吴基涉),그는 1911년 음력 3월 5일, 로씨야 원동 연해주 우쑤리스크부근의 산간마을에 한 가난한 조선족농민의 아들로 태여났다. 1920년 3월부터 길림성 화룡현 수동촌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청년기부터 선후로 흑룡강성의 동녕, 동경성, 림구, 밀산 등 북만일대에서 항일에 투신하면...
  • 2013-05-13
  • 잭 마 ‘알리바바’ 회장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 일주일 전, 잭 마 회장(48)은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 야외 테이블에서 아침식사를 들고 있었다. 자산이 42억달러로 추정되는 마 회장의 재산은 알리바바가 상장되고나면 더 불어날지도 모른다. 마 회장은 1...
  • 2013-05-13
  • 하루 8시간 연습하지만 내게 음악적 영감을 준 건 셰익스피어 문학이었다 [사람 속으로] 중국 천재 피아니스트 랑랑(朗朗) 더 편리해진 뉴스공유, JoinsMSN 뉴스클립을 사용해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중국에서 태어나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발돋움한 랑랑이 2010년 발매된 ‘랑랑 라이브 인 비엔나’ 앨범 수록곡을...
  • 2013-05-11
  • ㅡ료녕성과학협회 김태원부주석 인터뷰 김태원프로필 1954년 환인현 환인진출생, 1979년 중앙민족대학 중문학부 졸업후 성민위 배치, 이듬해 성위정책연구실로 전근해 선후로 경제처, 농촌처 처장, 1994년 보람점시 시위부서기, 1997년 성위정책연구실 부주임 력임, 2005년 성과학협회 부주석 담임, 성사회과학원 특약연구...
  • 2013-05-10
  • 칭다오 우리어린이병원 오픈한 이계화 원장  김명숙 기자= 칭다오 청양구에 조선족이 운영하는 우리어린이병원이 정식 오픈했다.  원 칭다오시 제8병원 소아과 주임이었던 이계화(조선족, 57세, 길림성 교하시) 원장은 일찍 1977년 대학입시가 회복되는 첫해에 우수한 성적으로 지린(吉林)의학원 의료학과에 입학했다. 졸...
  • 2013-05-10
  • 중국의 영화황제 김염     김염 프로필 원명 김덕린, 1910년 4월 한국 서울에서 태여남, 1912년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 김필순을 따라 두만강을 거너와 중국 통화에 정착을 했다가 후에 치치할로 이주, 1927년 상해로 간다. 이듬해 《카먼》등 극에서 조연을 맡으면서 연극인으로 기량을 선보인다. 1929년 손유...
  • 2013-05-1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