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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사는 인생이 아름답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4월2일 09시47분    조회:7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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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권혁만
칭다오미래수처리설비유한회사 권혁만 사장

  프로필

  이름:권혁만(43)

  1971년 생, 흑룡강성 녕안시 출신

  전 칭다오조선족기업협회 청양지회장

  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 제9대 신임회장

  칭다오미래수처리설비유한회사 사장

  상하이미래환보기술유한회사 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이수봉 박영만 기자 = 만물이 소생하는 화창한 봄날, 칭다오시 청양구 사무실에서 권혁만사장을 만났다. 젊음의 패기가 흘러넘쳤다. 그리고 어떠한 역경속에서도 살아남을수 있겠다는 강한 이미지를 주었다.

권혁만사장은 "굶어보아야 세상일을 안다" 며 '상선약수'를 강조한다. 권사장이 오수처리 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본사기자

  권사장은 동년시절 진절머리 나도록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가난이 미웠고 바로 그 가난을 뿌리쳐 보려고 대학시절에 창업에 나섰다가 쓴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그것이 지금도 그에게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 권사장은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조선족 젊은이들로 구성된 미래축구팀을 후원해왔다. 그러다가 경영이 예전 같지 않아 지난해부터 축구팀 후원을 중단했다. 지금은 축구팀을 간혹 '관심'하는 정도이다. 권사장은 그것이 못내 가슴아파 했다.미래수처리 회사의 한해 매출액은 1500만위안선에 달한다.

  권사장은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으로 노자의 사상에서 물을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여기어 이르던 말로 널리 전해지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좌우명으로 내세웠다.

  굶어보아야 세상 일을 안다

  권사장은 어린시절 째지게 가난한 생활을 보냈다. 어려서는 배를 불린적이 거의 없었고 대학공부를 하던 시절에는 굶기를 밥먹듯 했었다.

  학교를 다닐 때 생활 형편이 어려워 학비는 물론 , 식비마저 내기 어려웠던 권사장은 일찍 비즈니스에 나섰다. 권사장이 기업을 경영하게 된 동기 역시 너무 가난해서였다.

  권사장은 하얼빈에서 대학공부를 하던 시절에 정수기회사와 계약을 맺고 회사 제품을 판매했다. 어린 나이에 판매에 나선 그가 죽도록 고생한것은 뻔한 일이다. 타회사 방문시 문전박대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삼켜야만 했다.


비즈니스에 발을 들여놓은후 그의 생활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돈을 벌게 되자 생활비와 학비 걱정을 하지 않았도 되었고 여유 돈은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들과 형제들에게 보내주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도움을 주는데로 입장이 바뀌었다.

  권사장은 부시럭 돈을 버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회사를 차리고 직접 물처리 설비를 판매한다면 돈을 더 많이 벌수 있는것이 아닌가? 그래서 권사장은 23살의 어린나이에 물처리 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이 됐다.

  권사장은 창업초기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어느 한번은 정수 설비를 가져간지 오래 되었으나 구매 회사에서 결재를 해주지 않았다. 그는 직원과 함께 그 회사를 찾아갔다. 권사장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구매회사 사장은 경영난에 허덕이다 정수 설비를 헐값에 처리하고 그들이 도착하기 전날 저녁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도 모르고 권사장은 구매회사 사장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럭저럭 며칠 지나다 보니 가져갔던 돈은 거의 바닥이 났다. 마지막에는 가두배추 하나를 가지고 둘이서 이틀씩 먹으며 막무가내로 버텨냈다.

  "그래도 그게 인연이었는가봐요. 그 사장님도 얼마나 어려웠으면 그랬겠어요. 기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꾸어 생각하면 이해가 될것 입니다"

  권사장은 가두배추로 끼니를 때우며 기약없이 기다리다 우연하게 지금의 부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성지기 노인이 말을 잃어버린 격이지요. 돈은 날렸지만 인생의 길동무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 사장님한테 감사를 드려야지요" 그러면서 권사장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우리 인생도 그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노자의 말을 인용했다.

  돈과 기회는 믿음에서 온다

  권사장이 1993년 처음으로 비즈니스에 뛰어들면서 골라잡은 품목이 바로 정수 설비였다. 그런 연고로 권사장은 줄곧 물과 관련된 사업을 하게 되었다.

  한편 공업화와 더불어 오수처리량이 늘어나며, 또한 생활이 향상될수록 사람들이 물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것이다. 그래서 오수처리 사업은 발전성이 있을것이다. 권사장의 판단이 적중했다. 중국의 발전 템포가 가속화되면서 오수처리에 대한 요구도 높아졌다. 그만큼 사업 기회가 늘어났다.

  거의 10년간 하얼빈, 베이징 등지를 돌며 오수처리 설비를 판매하던 권사장은 2003년 칭다오의 발전 속도가 빠른 점을 감안하고 칭다오에 '둥지'를 틀고 본격적으로 오수처리 설비의 조립, 생산, 판매에 뛰여들었다.

  창업초기 권사장은 자신이 직접 오수처리 설비가 필요한 기업들을 하나하나 방문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했다. 때론 문전박대를 받기도 했었다. 그런 과정에 권사장은 우선 고객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한국기업들이 조선족기업을 신임하지 않았고 또 현지인들은 이방인 취급을 했다. 따라서 믿음이 부족했다.


오수처리 설비를 설치해놓고 훌 떠나버리면 A/S 서비스는 누가 책임지나 하는 의문이 앞섰다. 오수처리 설비는 반도체 생산업체 혹은 전자제품 생산업체로 놓고 말하면 필수적인 설비지만 가격이 비싸다. 그러니 구매업체가 이것저것 고려하지 않을수 없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권사장은 "돈과 기회는 믿음에서 온다"며 우선 남들한테 믿음을 주고저 행동에 나섰다. 당시 칭다오에서 고급 아파트 단지로 소문났고 또 한국회사 사장들이 많이 거주하는 천태 아파트 단지에 180 제곱미터 살림집을 사고 사무실도 버젓이 차려놓았다.

  고객들이 오다를 가지고 반신반의로 찾아오면 사무실에서 상담하고 집으로 모셔 식사도 함께 했다. 모든것을 오픈했다. 따라서 믿음이 생겨 고객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회사가 점차 활기를 띠면서 단가가 쎈 오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권사장은 오다가 늘어나자 공장 규모를 확대함으로써 고객들도 미래수처리회사를 믿을수 있었고 권사장에 대한 믿음이 갔다.

  확실한 무엇인가를 보여줄때만이 사람들이 믿게 되는 법이다. 고객 서비스 역시 같은 이치이다. 권사장은 A/S를 한단계 뛰어 넘어 B/S , 즉 베스트서비스로 고객들의 요구를 만족시켰다. 2009년 인터넷 공제시스텀을 개발했는바 미래수처리회사의 사무실 컴퓨터에는 고객들이 사용하는 설비의 정보들을 자세하게 저장해 놓았다. 어느 회사의 어느 설비의 어느 부품을 어느때 교체해야 하며 어느 회사에서 어느 때 무엇이 필요한지를 손금보듯해서 알아서 척척 서비스를 제공했다.

  바로 확실한 서비스와 빈틈없는 고객관리를 앞세워 행동으로 고객들에게 신용과 믿음을 주었다. 나중에 신용과 믿음이 돈과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미래수처리회사의 매출액은 상승선을 긋었는바 2005년에는 최고로 5000만위안까지 치솟아 올랐다.

  곤궁에 빠지기 전에 변화를 꾀하라

  '곤궁한 자는 변화를 꾀하고 변화를 하게 되면 운이 통하고 운이 통하면 살아날 수 있다' 는 중국 속담이 있다. 어릴적부터 한족학교에서 공부했던 권사장은 이 속담에 담긴 참 뜻을 잘 알고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칭다오 지역에 진출했던 일부 한국 제조업체들이 곤궁에 빠지자 동남아 등지로 빠지면서 오수처리 사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권사장은 위기 징조가 서서히 닥쳐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2012년부터 과감하게 영업방식의 변화를 꾀했다.

  2013년 권사장은 상하이의 파트너와 공동 출자해 상하이에 회사를 설립하고 완전 새로운 영업방식을 도입했다. 바로 설비 판매가 아니라 설비를 임대해주는 렌탈방식을 채용했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한푼 투자없이 오수처리 설비를 이용할수 있게 되었고 폐수를 재활용 함으로써 물세를 50% 절감할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것이다.


반면 설비를 제공하는 권사장은 팔리지 않는 설비를 활용할수 있고 물세 절감에서 생기는 이윤으로 설비값을 수금할수 있어 역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현재 상하이의 7곳에 렌탈방식을 도입했는데 투자금액이 2000만위안에 달했다. 권사장은 상하이시의 물값이 높기때문에 이곳을 선택했다며 우선 철저한 신용고찰을 하는것이 전제조건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렌탈사업이 성공하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또한 '고기 무리를 따라 뱃길을 돌린다'는 전략으로 한국기업들이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떠나가자 2012년 베트남에 사무실을 내고 고찰까지 다녀왔다. 그는 시장성은 보이는데 생활환경이 열악해서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물에서 상선약수 삶을 배우다

  권사장은 사훈과 좌우명으로 '상선약수'를 강조한다. 최고의 선은 물과 비슷하다는 말이다. 물은 차별하지 않고 은혜를 베푼다. 물은 생명을 공급한다. 모든것을 받아들여 바다가 되는 것인데 삶의 연륜이 없으면 힘든 일이다.

  권사장은 동년시절을 째지게 가난하게 보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읽을수가 있었다. 그리고 물처리사업을 하면서 상선약수 지혜를 배웠고 삶을 배웠다.

  몇년전 칭다오시 교주에서 기업을 운영하던 한국사장이 부도가 나서 권사장한테 30만위안 빚을 지게 되었다. 당시 적은 돈이 아니었다. 권사장은 법에 기소해서 승소판결을 받았다. 판결문을 들고 한국 가서 통화했는데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서 "잘 되면 찾아오라"는 말만 남기도 돌아왔다. 그 한국사장은 지금도 일어서지 못했다고 한다. 권사장은 오죽했으면 그렇게 했겠냐며 용서해주었다. 그 한국사장은 감동되어 자책감에 지금 오수처리 관련 업체를 많이 소개해 주고있다.

  또다른 한국 회사에서 30년 근무했던 한국인 부장은 100만위안 공사를 하면서 오수처리 설비 대금 10만위안을 들고 한국으로 잠적했다. 신원이 확실한지라 집까지 찾아갔는데 당뇨병 종합증으로 발가락이 썩어 떨어졌다. 빚 받을러 갔던 권사장은 도리여 문병을 하고 돈까지 주고 돌아왔다.

  권혁만 사장은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하라. 그러면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상선약수'를 좌우명으로 삼는 권혁만 사장을 취재하며 '물처럼 사는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의 참뜻을 알수 있었다.

  hljcfb@163.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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