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연변서 조선족을 위해 한족이 나서게 하라!”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2월19일 10시23분    조회:759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정인갑

조선족을 위한 정인갑교수의 독특한 일가견





정인갑프로필
1947년 8월 료녕성 무순시에서 출생.
1969년-1975년 군 복무.
1976.10-1978,ㅣ “연변문예”(현 연변문학)편집.
1982,1 북경대학 중문학부 졸업.
1982.1-2007.8 중화서국에서 근무, 편집부 주임.(정년퇴직)
현재 청화대학 중문학부 객좌교수, 한국 황하문화원 원장, 한국 한중미래재단 리사장,  중국음운학연구회 리사, 중국사서(辭書)학회 회원 등 많은 직무를 맡음.
저서로는 “고문관지 역주”(공저), “경전석문 색인”,”세계관광가이드- 한국”, “천하명승 금강산”. “중국문화.COM”(한국) 등. 13종의 사전, 자전의 편찬에 참여.
번역작으로 “開創21世紀新韓國”, “奇語日本”, “全球化時代的文學与人”(합역),”明成皇后”(대만), “나의 아버지 등소평”(한국), “김정일과 양빈”(한국) 등.


 지난 1월 24일 오후 기자는 한국 국립부경대학교 예동근교수와의 인맥으로 서울의 한 커피점에서 정인갑교수를 인터뷰했다. 정교수는 요즘 병치료로 여러 병원을 다니다 보니 오후 3시가 넘었는데도 점심식사를 못하고 기자를 접대했다.

신문지면에서는 서로간 구면이라 만나고보니 반갑고 할말이 많아 마이던 커피도 버리고 다른 조용한 커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인갑교수는 학식은 물론 활동마당이 넓고 인맥관계가 국경이 없는 마당발이였다. 특히 조선족을 위하는 일이라면 밤낮이 따로 없이 발벗고 나선다. 연변의 문화사업을 위하여 여러번 협찬을 조직했고 연변의 경제발전을 위하여 많은 조언은 물론 외국매체를 동원하겠다며 자보해 나섰다. 

우리 민족의 후대양성을 위하여 북경시삼강(두만강, 압록강, 송화강을 뜻함)소학교를 설립하고 10년간을 운영하면서 북경에 진출한 중국의 조선족과 북경에 있는 조선인과 한국인들의 자녀들을 받아들였다.

 민족사와 세계사를 곁들며 연변과 조선족의 오늘과 래일을 담론하는 정교수의 주장은 긍정적이고 랑만적이였다.

 ”로총각공정”을 벌리자

“현재 조선족사회에 존재하는 문제중 심각한 문제의 하나가 조선족농촌의 많은 로총각과 외톨이들이 결혼을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화두를 떼는 정교수는 몇년전부터 “로총각공정”을 구상하였다. 

조선족녀성들이 출국이나 내지 진출은 농촌총각(외톨이)들이 결혼을 못하는 현상을 초래하고 조선족인구의 마이나스성장에 위기를 조성했다. 

당년에 재해가 들면 정부나 해당부문에서 나서서 외지의 쌀을 사들이고 심지어 고추흉년 에 타지방의 고추를 사들이느라 야단을 쳤다. 그런데 지금 조선족총각이 결혼을 못해도 신세타령만 할뿐 현장, 향장, 촌장들이 나서지 않는것이 문제다.

그래서 정교수는 외지에서 쌀,고추를 구입해 들이듯이 중국 극빈지역의 타민족녀성을 영입하는 “로총각공정”을 구상했다.

“로총각공정”은 정교수가 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 높은 간부한테서 계발을 받았단다. 

그에 따르면 중국 강절(강소성, 절강성) 등 지역의 농촌에서도 로총각문제가 존재하는데 그들은 중국 극빈지역처녀들을 대량 영입하더라며 우리도 이 방법을 대면 좋겠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정교수는 연변의 모모한 조선족간부를 만나 이 방법을 제의하며 인식을 통일하고 정부와 민간을 동원할것을 제의했고 달마다 사업추진여하를 차문하였다. 심지어 국영기업과 사영기업가들을 찾아서 변통적으로 이 일을 추진해 볼것을 권장하였다.

문제는 주선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첫발만 떼면 극빈지역에 소문이 퍼져서 내동생, 내친구, 우리 친척 녀성들을 소개할것이니 말이다.

국가민위간부가 하는 말이 극빈지구 처녀들의 부모에게 2000원을 드렸더니 생전에 이만한 거금을 처음 쥐여본다면서 그렇게도 기뻐하더란다.

“로총각공정을 벌리면 내가 첫 사람으로 2000원을 후원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정교수는 하면 되는 일을 움직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조선족명절을 만들자

명절이란 국가나 사회적으로 정하여 경축하는 기념일이다.

대학생시절에 정인갑은 북경시조선족대학생활동을 조직하느라 중앙민족대학에 자주 드나들며 보고 들을라니 다른 민족학생들은 국가에서 민족명절을 쇠주는데 조선족은 민족명절이 없다보니 국가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외목”에 설어워 하였다. 이에 정교수는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 편지를 써 북경시에서 “9·3”을 쇨것과 "9.3"에 북경시조선족운동회를 조직해줄것을 간절히 제기했다.  1981년 5월에 스웨덴의 한국인교수(조승복)가 북경대학을 방문할 때 많은 조선족유지인사가 모였다.그 모임에서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부주임(萨空廖)이 “좋은 소식을 알린다.”며 올 “9·3”에 북경시조선족운동회를 거행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 법률담당 사장(司長)이 당장에서 “9·3은 연변의 지역명절이지 조선족명절이 아니다. 북경에서 9·3을 쇠는것은 불법이다.”고 하기에 변론끝에 끝내 9월 14일에 “북경시민족운동회”로 거행되였다. 

명절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성탄절, 구얼방절(古尔邦节)은 종교적명절이고 물뿌리절(泼水节)과 나달묵(那达慕)절은 타이족과 몽조족의 명절이며 8.15는 연변의 로인절이고 9.3은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절이다.

물뿌리절(泼水节)과 나달묵절은 시쐉반나와 내몽고는 물론 기타지역의 타이족과 몽고족도 함께 쇠지만 9.3은 지역명절이므로 연변의 기타 민족들은 함께 쇨수 있지만 타지역의 조선족들은 쇨수 없다.

 정교수는 하루속히 연변조선족명절만이 아닌 200만 범조선족의 명절이 나와 전 중국의 조선족들이 해마다 유쾌히 조선족명절을 쇠기를 기대했다.

 “고향가”가만 아닌 “글로벌가”를

정교수는 나라의 개혁개방으로 중국의 조선족들이 도시진출, 해외 진출을 하다보니 농촌의 민족마을과 조선족족학교가 사라지고 자치주의 조선족 인구비례가 줄어드는 “위기”에 처했다는 리유로 조선족의 지성인들이나 언론에서 “고향에 살리라,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만가(挽歌)를 부르는데 비춰 역발상으로 “회향”가, “회농”가가 아닌 “산업가”, “도시진출가”, “글로벌가”를 부를것을 주장했다. 

조선족사회의 현실은 “위기”이자 도약이라는 정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농업민족이 상업민족으로, 농민이 도시민으로 되는것은 사회발전의 추세다.

생명공학과 유전자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최초 발원지는 아프리카다. 그렇다면 오늘의 세인들이 “아프리카에 살리라, 아프리카로 돌아가리라”를 불러야 하는가?
우리 민족의 발원지는 알타이산맥주위라고 한다. 그중 동부로 이동한 부족이 퉁그스족으로, 동퉁구스족의 일부가 우리 민족으로 되였다. 일제 강점시기 우리는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이민하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알타이에서 살리라(돌아가리라)”“조선에서 살리라(돌아가리라)”를 부르지 않는다

민족문제는 수량문제가 아닌 어떻게 발전민족, 선진민족으로 되는가가 중요 문제다. 유태민족은 나라를 잃고 부동산 권한의 제한을 받아 장사를 위주로 2,000여 년을 살아오며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총명한, 유능한 민족으로 되었다.

 ” 6.25”이후 조선반도의 인구는 2700만 밖에 되지 않았으나 60년 사이에 7000만으로 발전하였다. 수량의 발전은 시간문제다.

연변의 발전은 내지나 해외에 진출한 사람들이 돈을 벌어들인 노력의 결과가 성적의 반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세세 대대로 농사짓던 땅을 버릴 수는 없다. 우리의 터전을 유능한 조선족이 임대를 맡고 농장을 꾸리고 리향한 원주민들이 농장지분을 가지며 농장의 농장주가 타민족의 농업로동자를 고용한다면 그 터전은 우리 민족의 것으로, 조선족마을이 산업화에로 나가게 될것이다. 우리는 “회향가”를 부르자며 탁상공론을 할것이 아니라 수십년, 수백년을 내다 보며 민족이 발전민족, 선진민족으로 되느 대계를 세워 글로벌 시대에 조선족공도체를 만들어야한다.

 조선족을 위해 한족들이 나서게 하라.

기자가 지난해 12월 20일에 연길서 진행한 “감동중국걸출조선족”시상식을 곁드니  정교수는 참 좋은 일을 했다, 그런데 그 좋은 일을 왜서 조선족들이 나서 해야 하는가고 반문하였다. 정말 옳을 반문이라 하겠다.

정교수는 조선족을 위해 한족들이 달아다니게 해야 한다는 정교수는 이런 실례를 곁들면서 그 도리를 설명했다.

정교수는 총 15권에 달하는 “중화민족백과전서(中華民族百科全書”출판 최종심열을 맡고 몇 년전부터 전국적인 사회조사를 하였다. 2008년 8월, 흑룡강성 동강시(同江市) 허저족(赫哲族)자치향인 가진구향(街津口乡)에 가니 가진구향을 위해 시와 향의 한족간부들이 허저족보다 더 열심히 뛰여 다녔다. 그래서 연변서는 거의 조선족들이 달아 다니는데 여기는 한족이 더 열심히 뛰니 리해가 안 된다고 하니 그들은 “소수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것은 우리 대한족들의 당연한 의무다.”“사(私)적으로 봐도 우리 한족들도 소수민족들게 차례지는 덕을 함께 향수한다. 동강시가 성이나 중앙에 가서 손을 내밀만한 여건이 전혀 없다. 그러나 허저족자치향이라는 이름을 내 걸면 달라진다. 동강시가 발전할 수 있은 것은 많이는 허저족자치향이라는 카드를 활용한데 있다.”며 설명했다. 내몽골, 신강, 운남 등 소수민족 지구에서도 소수민족의 일을 위하여 한족간부들이 북경나들이를 하였다.

력사적으로 보면 장춘은 수도도시였고 연길(연변)은 일찍부터 문화도시로 거듭났다. 그러므로 북경에는 장춘, 연변에서 진출한 훌륭한 한족인재들이 많다. 한때는 돈화시 출신의 한족이 중앙텔레비죤방송국 국장을 담임했고 연길시 북산가 출신의 한족이 중앙선전부부장을 담임했다. 만약 연변에서 언녕부터 한족들이 나서서 그들을 찾아가서 연변을 도와달라고 했다면 아마도 조남기나 리덕수를 찾기보다 힘이 더 있었을것이다.

정교수는 사회적으로도 내가 남의 일을 돕기는 발을 벗고 나서지만 자기 일을 위해서는 체면을 살피게 된다며 조선족을 위하여 한족들이 달아다니게 해야 한단다.

기자는 정교수의 파격적이고 엉뚱한(독특한) 사로(思路)에 완전히 매료되였다. 시계를 보니 약속했던 시간을 훨씬 넘겼다.

“몸이 불편한 몸인데 약속했던 시간을 지키지 못하여 정말 미안합니다,”

“저도 미안합니다. 저녁 술은 좀 하는데 요사이에 몸이 탈이나고(심혈관병) 또 다른 약속이 있으니 오선생과저녁식사를 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정교수는 기자를 전철역까지 전송하면서 앞으로의 만남을 약속하였다.

정교수를 “괴짜학자라”고 할가? 정교수의 주장과 관점을 기자는 처음 듣는것으로 조선족들의 앞길에 넓은 사로와 출로를 펼쳐줄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기활
조글로미디어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ㅡ료녕SK실업부동산개발유한회사 리사장 홍종국씨 “그룹에서 조선족인 저를 이렇게 인정해주고 밀어줄줄 몰랐습니다. 그 기대에 보답하고저 열심히 일하고있습니다.” 패기와 자신감에 벅차있는 홍종국씨(1963년생), 현재 그는 료녕 SK실업부동산유한회사 리사장, 단동SK물류유한회사 총경리를 맡고 단동지역의...
  • 2013-11-19
  • 문주호씨 장백조선족자치현 장백진 록강사회구역에 거주하고있는 문주호(45세)씨의 나무뿌리조각이 국내외에서 각광을 받고있다. 나무뿌리조각공예에 남다른 애착심을 갖고있었던 문주호씨는 20년전인 1992년부터 안해 안춘옥(45세)씨와 함께 부지런히 산과 골짜기를 넘나들며 모양이 각이한 여러가지 마른 나무뿌리를 주어...
  • 2013-11-19
  •  연길윈워터전기유한회사 총경리 박무일씨 창업스토리    연길윈워터전기유한회사 총경리 박무일씨는 20년 동안 순간온수기개발에 몰두하여 창업의 희열을 맛보고있는 창업인이다. 1982년 동북공학원(지금 동북대학) 주물전업을 졸업한 박무일씨는 주물에 남다른 흥취가 있었고 매사마다 끈기있게 달라붙었...
  • 2013-11-19
  • ‘예술구국(藝術救國)’. 이 짧은 문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조성환 선생이 독립운동 동지였던 한흥교의 아들인 항일음악가 한형석에게 ‘예술을 통해 나라를 구하라’며 내려준 훈구다. 먼구름 한형석은 한일강제병합이 강행됐던 1910년 2월 21일에 태어났다. 그러나 불운한 해에 태어난 ...
  • 2013-11-18
  •       전통산업의 재발굴과 문화식품 시대를 선도하다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 리동춘 사장 “21세기는 문화식품시대이다”라고 고취하는 사람이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의 리동춘 사장이다. 그는 우리민족의 전통식품인 된장과 전통술의 재발견을 통해 ‘오덕 장로주&rsqu...
  • 2013-11-15
  • [화제집중] 장경률 연변일보 론설위원(전 편집국장)과 펼친 담론 장경률 선생은 지난 11월 3일 동포세계신문사를 방문해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면 한국에서 중국조선족의 존재와 역할을 두고 인터넷상에서 쟁론이 벌여졌다. 이 쟁론에 화두를 던진 장경률 길림성 조선문신문잡지 심열위원 연변일보 론설위원(전...
  • 2013-11-13
  • “나시족은 운룡설산을 자신들의 정신적지주로 생각한답니다. 하늘이 손에 잡힐듯 하지만 하늘대신 산을 품은 나시족의 정신은 만년설만큼 고결해 보였습니다” 길림성 지질국 연변지질 제6조사원에서 니화석 지질학자로 근무했던 김한산(73살)선생이 건네는 첫마디였다. 그는 째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2013-11-13
  • 동항시정기수산물양식기지 오기범총경리의 창업담   관전정기수산물양식장, 동항시정기수산물양식기지 오기범(1966년 생)총경리가 동항시바다가에서 민물고기 양식과 수출로 흥부박을 캐고있다. 연길태생인 그는 지난 1983년에 연변대학 정치학부를 졸업하고 연길시방직공장에 배치받아 10년간 사업을 해오다가 1993년...
  • 2013-11-12
  •  조선족 미술계 원로 김영호 옹    11월 5일 오후 2시, 기자가 중국 조선족 미술계의 원로이자 거목인 김영호화백(83세)의 저택을 찾았을 때 선생은 한창 래년에 연변대학 미술학원 미술전시홀에서 마련될 수채화 중심의 개인전시회(약 40여폭)에 출품할 작품을 창작중이였다. “오전에는 약 3시간 동...
  • 2013-11-08
  •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 새회장에 뽑힌 이건기 싱가포르 한나프레스 사장. "갈라진 한인 언론인 단체 통합에 앞장서겠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현재 전 세계 한인 언론인들의 단체가 세계한인언론인연합회(세계한언)와 재외동포언론인연합회(재언협)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 2013-11-0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