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무대 뒤에서 화려한 인생의 막을 올리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월17일 09시30분    조회:723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임동길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연변가무단이 알심들여 창작한 “들끓는 장백산”(2001년, 대형민족가무), “천년아리랑”(2006년, 대형음악무용시), “장백산아리랑”(2009년, 대형가무), “노래하노라 장백산”(2012년, 대형조선족창작가무) 등 굵직굵직한 작품들이 련달아 제2회, 제3회, 제4회 소수민족문예회보공연에서 프로그램 대상, 금상 등 상을 무더기로 수상함으로써 연변가무단의 실력을 만천하에 과시했다. 특히 “노래하노라 장백산”은 2013년에 개최된 중국 제10차 예술절 제14차 문화상평의에서 최고상인 “문화우수극목상”과 함께 무대미술상도 수상하였는데 연변가무단의 화려한 수상배후에는 막뒤에서 불철주야 열과 성을 다한 국가1급무대미술설계이며 연변가무단 무대미술설계부 주임인 임동길(45세)씨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 있다.

임동길씨의 아버지는 대형가극 “백일홍”(1956년), “아리랑”(1980년), “장화홍련전”(1981년), “장백의 진달래”(1982년), “심순애와 리수일”(1986년) 등을 창작한 유명한 작곡가인 임영호선생이다. 임영호(당시 훈춘현예술단 음악지휘)선생은 아들이 음악을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소학교 2학년부터 발풍금을 가르쳤으나 임동길씨는 음악 대신 부친이 창작한 가극들을 보면서 오히려 무대미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88년, 임동길씨는 소원대로 연변대학 예술학원 미술학부에 입학했고 졸업뒤 연변시조선족구연단에 배치받았다. 1994년 3월부터 1년 반동안 중앙연극학원에서 무대미술설계를 전공한 뒤 1995년부터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주말극장프로 무대설계를 겸직해오다가1999년 연변가무단 무대미술 디자이너로 자리를 옮겼고 2년후에는 무대미술설계부 주임으로 발탁되였다.

무대의 분위기를 꾸미거나 살리기 위한 무대장치로 조명, 화장, 의상 등 시각적인상을 일으키는 조형미술따위를 통털어 이르는 무대미술은 문예표현종목의 정서와 기분을 표현해주고 주제를 관객들에게 제시해주는 홀시할수 없는 역할을 감당한다. 때문에 무대미술설계는 연출가와 무대무술가의 협동관계 및 무대파트 내부의 조명, 미술, 세트제작, 분장, 의상, 소도구, 음향 등 다양한 분야의 협업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무대미술설계가가 연출의 의견을 귀담아듣는 한편 작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 스케치를 그려내고 연출의 승인을 받으면 곧바로 본격전인 작업에 들어가는데 이때면 임동길씨는 23명에 달하는 부하직원들을 진두지휘하여 조명, 음향 설비를 점검하고 철제구조물로 된 대도구와 소도구제작에도 직접 팔을 걷어붙인다.

모든 준비가 완벽해도 숨을 돌릴수가 없다. 특히 대도시의 대형극장들에서는 공연 이틀전에야 무대를 내주기에 설치작업은 밤낮이 따로 없다. 대형화물트럭 4대 분량의 무대설비를 설치하는데 몇십명이 개미처럼 분주하게 돌아쳐도 이틀이란 시간은 빠듯하기만 하다. 잇달아 들이닥치는 리허설, 숨 돌릴새 없이 진행되는 정식공연에서 추호의 오차도 없으려면 눈을 집어 뜯으며 피곤을 쫓는수 밖에 없다. 또 공연이 끝나면 분초를 다투어 무대설비를 철거해야 한다.중체력 로동자들도 혀를 내두를 강도 높은 로동은 임동길씨한테 “꼬리 없는 황소”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헌신정신이 결여하면 무대설계임무를 원만하게 완수하기 힘들다”는 임동길씨, 신진들도 조선족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사명감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좋은 결과를 거둘것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연변일보
김인덕 기자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현재 북경에 거주하고있는 김선씨(1959년)는 조선족녀류화가이다. 3년전 친구의 소개로 연길의 한 커피숍에서 김선씨를 만나면서 그녀를 알게 됐다. 고향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있는 김선씨는 13년전부터 해마다 한두번씩 연변에 와 생활을 체험하고 미술소재를 축적한다. “저는 2002년 음력설부터 련속 3년간...
  • 2015-03-06
  •         현재 북경에 거주하고있는 김선씨(1959년)는 조선족녀류화가이다. 3년전 친구의 소개로 연길의 한 커피숍에서 김선씨를 만나면서 그녀를 알게 됐다. 고향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있는 김선씨는 13년전부터 해마다 한두번씩 연변에 와 생활을 체험하고 미술소재를 축적한다. “저는 2002년 ...
  • 2015-03-06
  • 딸깍딸깍 의족을 신은 강혜씨,장애인 재활을 돕는 일 하게 된 사연 강혜 1974년생 조선족 장애인 의족을 전문 생산하고 의족착용 장애자들의 재활을 돕는 장춘엔도라이트(恩德莱)재활기기회사 총경리 ... ... 이번 취재대상이다. 딸깍딸깍&nb...
  • 2015-03-04
  • 길림공상학원 당위서기 길림성진흥총회 회장 신봉철을 만나본다 기자의 인터뷰를 받고있는 길림공상학원 신봉철서기 신봉철을 취재하면서 조선족사회에서 들은 가장 많은 평가가 《보기드문 조선족 재직간부》라는것이다. 그와 함께 사업했던 여러 단위와 부문의 여러 민족 동료들도 한결같이 《참으로 많은 일을 해놓은 훌...
  • 2015-02-26
  • 브레이크 없는 휘황한 질주 “흑룡강신문”사 길림성특파원 겸 길림성 지사장 윤운걸선생   편집자주;윤운걸 기자는 일찍 의학원을 졸업하고 연변대학 부속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의사로 근무하다가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다.그의 말대로 하면 의사는 한사람의 병을 고치지만 언론인...
  • 2015-02-16
  • 항일연군의 살아있는 전설 이재덕 글/ 김 호 림   “오늘 동무들이 여기에 와서(온 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녀는 약간은 어눌한 우리말이지만 아주 똑똑한 발음으로 이렇게 말꼭지를 뗐다. 그녀는 일행이 갖고 간 우리말 잡지 “중국민족”의 글을 별로 망설이지 않고 쉽게 읽고 있었...
  • 2015-02-16
  • 중국우수창신기업가 및 중국민족산업련합회 부회장으로 당선   연변BO예술환경미디어유한회사 리사회 회장 리성남은 일전 북경에서 있은 중국민족산업발전포럼에서 중국민족산업련합회 부회장으로 당선되고 《중국우수창신기업가》의 영예를 받았다. 2월 4일 기자는 연변BO환경예술미디어회사 사무실에서 길림성 유일...
  • 2015-02-06
  • [서울=동북아신문]중국동포 아마추어 예술가 70여명으로 만들어진 예술단체가 있다. 지난해 10월 출범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제문화예술진흥회(이하 진흥회, 회장 최애순)다. 진흥회 회원들은 5~60대 적지 않은 나이지만 열정은 그 누구에 못지않게 크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 연습실에 나와서 노래면 노래, 무용이면...
  • 2015-02-05
  • 한국충북대 물리학과 최설매 씨 정부초청 외국인 장학생 1300여명중 1등 40세 만학도… 전학기 만점 기록 “조선족학교 살리겠다”일념 도전 하루 15시간 연구실 붙박이 생활   낯선 한국 땅에서 ‘조선족 학교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꿈을 일궈가고 있는 연변 동포가 있다. “고향...
  • 2015-02-04
  • 조선족 로큰롤(摇滚, 록이라고도 함, )가수 최건은 1986년 북경 로동자체육관에서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一无所有)》를 불러 전 중국을 뒤흔들었다.  28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지금 매일 신인가수들이 등장하고 매일 새 노래가 울려퍼지며 매일 새로운 진전이 있는 가운데 최건은 여전히 로큰롤의 대표가수로 시대와...
  • 2015-02-02
‹처음  이전 86 87 88 89 90 91 92 93 94 95 9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